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라틴여성문학소설선집
이사벨 아옌데 외 지음, 송병선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품절


작가의 말 ( 이사벨 아옌데)
1973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날은 내 인생을 결정지은 날이었다. 마치 도끼로 내 삶을 두 동강이 내버린 것과 같았다. 내 소설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탄생되었다. 이제 나는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것은 바로 내가 찾고자 하는 뿌리이다. 나는 그 뿌리를 심을 수 있는 확실한 땅을 찾고 있었다. 나의 글쓰기는 기억과 생각을 그 땅에 심어갔으며, 나의 모든 것은 바로 내가 쓰는 책 속에 스며들어 있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란 항상 생존의 연습이다. 그것이 나를 광기와 자살과 우울증에서 구해준 것이었다.
나는 인류가 역사를 필요로 한다고 믿는다. 개인에게 꿈이 중요하듯이, 역사는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우리 인간들이 꿈을 꾸지 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미치고 말 것이다. 꿈은 정신을 맑게 하며, 비밀을 가르쳐주고, 우리에게 우리 자신이 누군지 가르쳐준다. 이야기와 역사는 집단 차원에서 꿈과 동일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14쪽

작가의 말 (마갈리 가르시아 라미스)
비록 나는 정확성과 '사실성'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역사와 신문방송학을 공부했지만, 천성적으로 인간의 역사 뒤에 있는, 즉 상상력만 있다면 존재할 수 있는 소설적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난 위대한 사람이건, 핍박받는 사람이건, 이기주의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에게 관심이 있다. 특히 나는 그들이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살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일반적으로 나는 여자들과 남자들, 그리고 여자아이들을 다루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 작품에는 거의 대부분 죽음이나 죽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32쪽

작가의 말 ( 이사벨 가르마 )
글쓰기는 힘들고 끝없는 작업이다. 그것은 고독과 고통 속에서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과테말라에서 '문학적' 현실 속에 침잠하여 살아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작가들이 주제를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수많은 주제들로 포위되어 공격받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란 도구가 무엇인지 대략적으로 알고만 있다면, 작품을 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입다문 마을]을 쓰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중심인물의 죽음이었다. 정확히 나는 그 대목을 18번에 걸쳐 다시 쓰면서, 간으한 한 현실적이 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언젠가 우리 아버지는 이렇게 놀리기도 했다. "얘야, 불쌍한 아벨 사령관을 죽일 때면, 거기에 관해 너무 많은 경험을 갖게 될 거야. 그래서 아마도 살인자의 입장에서도 쓸 수 있게 될 거야."
난 중요한 목표가 있다. 난 우리나라의 대중들에게 읽히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도 대부분 그들은 문맹이다. -48쪽

작가의 말 ( 클라리벨 알레그리아 )
언제 시를 발견하게 되었는지 난 잘 모른다. 아마도 시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던 것 같다. 아직 글을 쓸 줄 몰랐을 때, 난 시를 어머니에게 불러주면서, 이것 좀 써줘요. 라고 말하곤 했다. 내 인형과 내 개와 별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난 망각을 두려워한다. 나는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가 말해 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해라. 그들을 잊으면 지옥에 간단다. " 난 지옥이란 말을 듣자 두려웠고, 그래서 마음속으로 물었다. " 사람들이 날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을 얻는 나의 비밀무기이며, 혼돈스런 나의 삶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자면, 전기 기술자나 수도 기술자와 같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철저하게 일해야 한다. 환 라몬 히메네스는 작가란 항상 쓰고 읽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다. 한편 로버트 그레이브스는 시인은 항상 은총의 상태에 머물며 자기 시와 서로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독서 역시 중요하다. 그것은 다른 세상을 발견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독서는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을 깊이 탐구하게 만들며, 다른 현실을 발견하도록 가르친다. -72쪽

작가의 말 ( 크리스티나 페리 로시)
모든 사람의 삶은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하나의 성, 하나의 가족, 하나의 국가만을 가지고 태어난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시기나 공간을 선택할 수 엇ㅂ다. 내게 글쓰기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가령 나는 과거에도 아니었으며 미래에도 절대로 될 수 없는 개의 관점에서 글을 쓸 수 있다. 따라서 읽고 쓴다는 것은 역사나 나이, 성 혹은 자신의 삶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과거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자신의 성(性)이나 공간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문학은 현실의 드라마이거나 현실 문제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은 미국 흑인 노예들의 삶을 증언하는 놀라운 작품이며, [보봐리 부인]은 시골 여인의 권태와 꿈을 그린 초상이기도 하다. 유대인 소녀의 생각을 적은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종교나 인종 차이로 박해받는 인간에 대한 생생하고 충실한 기록이다. 소설가의 작업은 진리를 찾으면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어주고, 내면의 고통을 기록하며,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80쪽

작가의 말 ( 비비아나 메예트)
나는 인터뷰할 때 왜 글을 쓰는냐는 불편한 질문을 받을 경우를 대비해, 무언가 독창적인 해답을 미리 준비해 놓으려고 하면서 그런 질문을 종종 내 자신에게 던진다. 여러 작가들에게 정말로 글을 쓰는 이유가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런 이유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결론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작품을 통해 사랑하게 된 작가는 바로 알프레도 브라이스 에체 니케이다. 그는 자기가 글을 쓰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더욱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몇몇 사람들은 삶이 우리를 억누를 수 없이 커다란 감동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인 경로와 일상을 통해서는 우리의 감정과 열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를 재창조하는 소설이란 글쓰기는 모든 위선에서 벗어나 우리를 표현하고자 하는 필요성을 만족시키는 방식이다. 그러나 난 글 쓰는 행위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면 절대로 만족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지 못하면, 그런 글 역시 나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꿈을 꾸고 희망을 잃지 않는 능력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꿈을 꾸고 희망을 갖는 행위이다. 글을 쓰는 데는 여러 동기가 있지만, 난 내 젊음을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쓴다. -96쪽

작가의 말 ( 로사리오 페레)
인생은 부조리극과 같다고 생각할 때마다, 난 말이 내 자신과 세상에게 믿음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건설적인 필요성 때문에 나는 글을 쓰고, 그래서 그것은 사랑을 갈구하는 나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난 내가 사랑하는 것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 그리고 내 자신과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파괴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현실의 나와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의도이다. 자연처럼 말은 무한히 현명하며, 낡고 부패한 것을 언제 괴멸시켜야 새로운 바탕 위에 삶을 건설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안에서 새롭게 삶을 창조하고, 그것을 보다 살 만한 현실로 대체하려는 욕망이 솟구치는 것은, 바로 현실에 대해 깊이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이상적인 인물과 세상을 위해 나는 글을 쓴다. -108쪽

작가의 말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
나의 문학 작업은 어느 정도 대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난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날 해야 할 일을 매일 지시받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첫해에 365개의 인터뷰를 했다. 매일 1개의 인터뷰를 했던 것이다. 나는 인터뷰 대상자들을 찾아 시간에 쫓긴 쥐새끼처럼 온 도시를 뛰어다녀야 했다. 당시 멕시코의 분위기는 예절과 엄숙성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인터뷰는 위대한 인물들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화가드은 인터뷰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항상 후대에 남길 말들을 돌에 새기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몹시 이상했다. 나는 미국의 수녀원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따라서 디에고 리베라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잇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 이 이빨들은 젖니인가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 이빨로 난 여자아이들을 먹어치우지요." 이런 멍청한 말로써 인터뷰를 시작했고, 그것들은 활자화되었다. 그러나 젊은 날의 무지는 모두 용서되는 법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인터뷰들은 나의 미래 계획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130쪽

작가의 말 ( 실비아 몰라노 )
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내가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가령 글을 쓸 때, 내 안에는 내가 절대로 되지 못할 무언가각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 작중인물들을 통해 내가 꿈꾸는 내 자신을 만든다.
나는 가능한 한 내 작중인물들에게 우리 모두가 지니고 있는 가난과 천박함을 볼 수 있는 분명한 목소리를 주고자 했다. 그 목소리는 바로 애인, 남편, 아이들, 혹은 우리와 같은 모순적인 존재들의 목소리가 될 수도 잇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면서 극단적인 삶을 살고, 말 뒤에 숨어버리며, 그런 행위를 통해 기뻐하고 슬퍼하는 내 욕망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의 충격을 완화시키고, 열정을 즐기거나 열정으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144쪽

작가의 말 ( 안드레아 마투라나 )
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가 된다는 것은 만인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다른 직업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글이란 출판되면 많은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지만, 그 행위는 별로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난 우리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일종의 병자가 되어야 한다. 과도하게 관찰하고 과도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이내 많이 바라보았지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단편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느데]는 몇 년 전에 들었던 어느 대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누군가가 옛날에 월경을 할 때면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면서, 여자들은 별로 잘 붙지 않는 헝겊 조각을 사용했으며, 그 헝겊 조각을 스스로 만들었고, 빨았으며, 보관했다고 말했다. 나는 가장 큰 두려움이 그 헝겊 조각들이 다리 사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는 것을 잘 기억한다. 그러면서 당사자들에게 이런 상황이 매우 괴로웠다면, 아마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어린 구경꾼이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서 피가 묻은 헝겊조각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더욱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에는 바로 이런 생각이 투영되어 있다. -152쪽

작가의 말 ( 릴리아나 에케르 )
한 작품의 초고는 필요악과 같다. 글쓰기는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바꾸고, 여러 상황을 재정리하고, 마지막 문장을 음악처럼 만들 수 있다. 소설이란 실제 삶이 제공하지 못하는 여러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나는 글쓰기에 심취한다. 그리고 글을 쓸 때면 나의 광기와 나의 조그만 생각, 심지어 나의 육체-왜냐하면 글을 쓸 때면 손과 온몸이 긴장과 동시에 기쁨을 느끼니까- 가 한 소리를 내고, 나도 모르게 나는 조화롭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여인이 된다. -160쪽

작가의 말 ( 카르멘 나랑호 )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꺼내서 좋은 문체와 혁신적인 방식으로 쓰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 자신들을 발견하길 우너한다. 난 사람들이 과거의 모델을 떨쳐버리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잇는 자신만의 형식을 실험하는 것을 보면 기뻐한다. 우리가 할 수 잇는 최고의 것은 혁신하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며, 독자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순간은 불확실하고, 따라서 문학은 우리의 계속된 위기를 말해야 한다.
-176쪽

작가의 말 ( 아나 마리아 슈아)
젊었을 때 나는 글 쓰는 직업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나는 낭만주의적 방식으로 영감을 믿고 있었다. 날개를 단 무사이들이 작가의 머리 주위로 변덕스럽게 훨훨 날아다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노력을 한 결과, 나는 이 두 가지, 즉 무사이들은 변덕스럽고 글 쓰는 직업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감은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오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순간 글을 쓰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나는 매일 아침 규칙적으로 글을 쓴다. 아니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 직업에는 내가 나의 의지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심지어 음악 소리도 약간 성가시게 생각한다. 그러나 광고회사에 다니며 글을 쓴 덕택에 최악의 조건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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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햇빛이 빛나던 어느 오후, 둘세 로사 오레야노는 카니발의 여왕이 되어 재스민 왕관을 썼다. 다른 후보들의 어머니들은 그런 결정이 부당하다면서, 둘세 로사가 그 지방에서 가장 힘 있는 상원의원 안셀모 요레야노의 외동딸이기 때문이라고 투덜댔다. 여자들은 이 소녀가 매력적이고 품위 있으며, 피아노도 잘 치고 그 누구보다도 춤을 잘 춘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더 아름다운 경쟁자들이 있다고 수군거렸다. 그들은 오건디 옷을 입고서 화관을 쓴 채 시상대에 서서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고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이런 이유로 몇 달 수 엄청난 불행이 오레야노 가족의 집을 습격해서 수많은 죽음을 야기했을 때, 몇몇 여자들은 고소해하기도 했다. 이런 불행을 수습하는 데는 30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미의 여왕을 선출하던 밤에 산타 테레사의 시청 홀에서는 무도회가 열렸고, 머나먼 마을의 청연들이 둘세 로사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녀는 행복한 표정이었고, 너무나도 우아하게 춤을 추었기 때문에, 청년들은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왔던 마을로 되돌아가자, 한결같이 그녀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둘세 로사는 이 세상 최고의 미녀라는 뜻밖의 명성을 누리게 되었고, 이후 그 누구도 감히 이런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폭로할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피부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눈은 투명하기 이를 데 없다는 과장된 묘사는 입과 입을 통해 전해졌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덧붙이곤 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시인들은 둘세 로사라는 여인을 상상하면서 그녀에게 바치는 시를 쓰기도 했다.

상원의원 오레야노의 집에서 꽃피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소문은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자기가 둘세 로사를 알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25년 간 그는 시를 외우거나 여자를 쳐다볼 시간조차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단지 내전에만 관심이 있었다. 면도를 하기 시작한 이후, 그의 손에서는 무기가 떠난 적이 없었고, 오래 전부터 화약소리를 들어가면서 전선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 어머니의 입맞춤과 어머니가 부르던 성가도 잊은 지 오래였다. 그가 항상 전쟁에 참가할 명분이 있었던건 아니었다. 휴전 기간동안에는 그의 도당들이 쳐부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지어 억지로 이루어진 평화의 시기에도 그는 해적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는 폭력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적들이 있을 때에는 그들을 찾아 사방으로 나라를 돌아다녔으며, 그것들을 만들어내야만 했을 때에는 전쟁의 그림자와 싸우곤 했다. 아마 그가 속했던 정당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지 않았더라면, 이런 식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그는 비밀스런 존재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으로 변했고, 그것으로 폭력을 선동할 명분이 모두 끝나버렸던 것이다.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마지막 임무는 산타 테레사 마을을 징벌하는 원정이었다. 백이십 명의 도당을 이끌고 산타 테레사 사람들에게 따끔한 교훈을 주고 , 반대파의 주모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는 밤을 틈타 마을로 들어왔다. 그들은 공공건물의 창문을 향해 마구 총격을 가했고, 교회의 문을 부수고서 말을 탄 채 제단까지 진입했으며, 그들의 길을 막던 클레멘테 신부를 짓밟아 버렸다. 또한 자모회가 광장에 심었던 나무들을 불태운 다음, 전쟁을 부르짖으며 전속력으로 언덕 위에 자랑스럽게 서 있던 상원의원 오레야노의 저택을 향해 나아갔다.

 상원의원은 자기 딸을 가장 외딴 정원에 있던 침실에 가둬놓고 그 정원에 개를 풀은 다음, 충성스런 열두 명의 하인들을 이끌고 타데오 세스페데스를 기다렸다. 바로 그 순간 그가 생전에 수없이 불평했던 것처럼, 무기를 들고 자기 집의 명예를 지켜줄 남자아이들이 없다는 사실이 한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아주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언덕 중턱에서 밤을 공포에 떨게 만들면서 다가오고 있던 백이십 개의 가공할 만한 횃불을 보았기 때문이다. 상원의원은 아무 말 없이 마지막 남은 탄약을 나누어주었다. 이미 모든 것은 예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날이 밝기 전에 전쟁터에서 남자답게 죽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내 딸이 숨어 있는 방의 열쇠를 들고 가서 내가 지시한 의무를 수행하라"

상원의원은 총성이 시작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둘세 로사가 태어난 것을 보았고, 그녀가 걷기 시작할 때에는 그녀를 무릎에 안아주었으며, 겨울철 저녁때에는 귀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또한 그녀가 피아노치는 소리를 들었으며, 카니발의 여왕으로 화관을 썼던 날에는 모두 울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음 편히 죽을 수 있었다. 어쨌건 딸아이가 타데오 세스페데스의 손에 포로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원의원 오레야노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그가 전쟁터에서 무모하리만큼 용감하게 싸웠지만, 맨 마지막으로 남을 사람이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열두 명의 친구들이 하나씩 쓰러져가는 것을 보았고, 마침내 계속해서 저항한다는 것이 쓸모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는 배에 한 방의 총알을 맞았고, 그러자 그의 눈은 희미해졌다. 그는 간신히 자기 소유지를 에워싸고 있는 높은 벽으로 기어올라가는 그림자들만을 분간할 수 있었지만,  정신을 잃지 않고 세 번째 정원으로 몸을 끌며 들어갔다. 개들은 그가 땀과 피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체취를 알아보고,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그는 자물쇠에 열쇠를 집어넣어 무거운 문을 열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던 그의 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둘세 로사를 보았다. 아이는 카니발 축제에서 입었던 오건디 옷을 입고 있었으며, 왕관을 장식하고 있던 꽃들로 자기 머리를 단장하고 있었다.

"얘야, 이제 시간이 되었다." 그는 방아쇠를 잡아당기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발 밑에는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아버지, 저를 죽이지 마세요." 둘세 로사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살려주세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내 원수를 갚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안셀모 오레야노 상원의원은 열다섯 살 먹은 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타데오 세스페데스가 딸에게 무슨 짓을 할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러나 둘세 로사의 티 없는 눈에는 말할 수 없는 힘이 서려 있었다. 그래서 자기 딸이 목숨을 구하면, 반드시 자기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둘세 로사는 침대 위에 앉았고, 그도 딸 옆에 앉아서 문을 향해 조준했다.

죽음에 신음하던 개들의 울부짖음이 잠잠해지자, 빗장이 열리고 걸쇠가 공중으로 치솟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방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상원의원은 여섯 발의 총알을 쏘고 의식을 잃어버렸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죽음으로 신음하는 늙은이를 품에 안은 채 재스민 화관을 쓰고 있던 천사를 보자,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런 동안 천사의 흰옷은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늙은이를 다시 바라보고 동정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폭력에 취한 채 여러 시간 동안 싸워 기운이 없었기 때문었다.

" 이 여자는 내 거야." 그는 자기 부하들이 그녀에게 손을 대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

환한 화염에 물든 채 우중충한 금요일이 밝았다. 언덕 위에는 깊은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마지막 신음소리마저 잠잠해지자, 둘세 로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원의 분수로 향했다. 전날만 해도 목련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이제는 잿더미 한가운데 있는 외로운 웅덩이에 불과했다. 둘세 로사가 입고 있던 하얀 오건디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그녀는 알몸이 될 때까지 천천히 그 옷을 벗고는 차가운 물 안으로 드어갔다. 태양은 자작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녀는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던 피와 자기 머리칼에 말라 붙어 있던 아버지의 피를 씻으면서 물이 붉게 물드는 것을 보았다. 몸을 깨끗하게 씻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침착하게 폐허가 되어버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서 몸을 가릴 것을 찾았다. 그녀는 하얀 무명 시트를 두르고 상원의원의 유해를 거두어들이기 위해 밖으로 나갔따. 그들은 상원의원의 다리를 묶어 언덕 기슭으로 끌고 갔었다. 그래서 그의 몸은 가련하게도 누더기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따. 그러나 사랑의 안내를 받은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시체를 모포로 둘둘 말았고, 그 옆에 앉아 해가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산타 테레사의 마을 주민들은 용기를 내어 오레야노 가족의 집으로 올라오던 중에 그렇게 앉아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주민들은 둘세 로사를 돕다가 죽은 사람들을 묻어주었고, 그때까지도 불에 타고 있던 잔해의 불을 껐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대모와 함께 그녀의 역사를 아무도 알지 못하는 다른 마을에 가서 살라고 애원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그러자 그들은 무리를 이루어 다시 그녀의 집을 짓기 시작했으며, 그녀를 지켜줄 여섯 마리의 사나운 개를 선물했다.

 목숨이 붙어 있던 그녀의 아버지를 끌고 간 그 순간부터, 그리고 타데오 세스페데스가 문을 닫고 가죽 허리띠를 푼 순간부터, 둘세 로사는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이후 30년 동안 밤이고 낮이고 이런 생각을 한시도 떨쳐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의 미소와 착한 마음씨를 모두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 한편 그녀가 아름답다는 명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음유시인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상상하면서 노래를 불렀고, 심지어는 그녀를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녀는 매일 새벽 네시에 일어나 집안과 농장의 허드렛일을 지시하고, 말을 타고 자기 소유지를 돌아다녔으며, 시리아 상인들처럼 억척스럽게 물건을 사고팔았고, 정원에 목련과 재스민을 길렀다. 저녁이 되면 남자 바지와 장화와 무기를 벗어버리고, 향내 나는 가방에 담겨 수도에서 도착한 멋진 옷들을 입었다. 밤이 되면 방문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하녀들은 손님들에게 케이크를 담은 접시와 아몬드 음료를 대접했다. 그런 동안 그녀는 피아노를 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가 정신병원의 환자복을 입지도 않았고, 갈멜 수녀원에 신참 수녀가 되지도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오레야노 가족의 저택에는 자주 파티가 열렸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자 이내 사람들은 예전의 비극을 말하지 않게 되었고, 살해다한 상원의원을 기억 속에서 지우게 되었다. 유명하고 돈 많은 신사들은 둘세 로사의 현명함과 아름답다는 명서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강간당했다는 과거의 흔적을 극복하고 청혼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모든 청혼을 거부했다. 이 세상에서 그녀의 사명은 복수이기 때문이었다.

*

타데오 세스페데스 역시 평생 그날 밤의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몇 시간후 그가 징벌 원정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도시로 길을 떠나자, 이내 죽은 상원의원의 시체를 잊어버렸고, 도취되어 있던 폭력의 감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는 화약 냄새가 진동하던 어두운 방안에서 우아한 춤옷을 입고 재스민 화관을 쓴 채 그의 거친 행동을 묵묵히 참아내던 소녀의 모습이 엄습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던 그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녀는 붉게 물든 채 갈기갈기 찢겨진 옷에 대충 가려져 있었고, 의식을 잃은 채 가련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평생 동안 매일 밤 그는 잠에 드는 순간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정부군이 주둔하고 권력을 손에 쥐게 되자, 그는 부지런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자 내전에 대한 기억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그를 타데오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산 저쪽에 농장을 구입했고, 정의롭게 농장을 관리했으며, 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둘세 로사 오레야노의 환영만 없었더라도 그는 어느 정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의 얼굴과 위로를 찾기 위해 품에 안았던 모든 여자들의 얼굴, 그리고 평생에 걸쳐 찾았던 수많은 살아 속에서도, 그는 카니발의 여왕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더욱 불행했던 것은, 종종 음유시인의 시구 속에서 그녀의 이름을 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것이었다.

젊은 둘세 로사의 모습은 그의 마음속에서 자라났고, 이내 그의 마음을 온통 차지해 버렸다. 마침내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55세 생일을 축하하는 긴 연회 테이블 머리에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그때 테이블보 위의 재스민 꽃봉오리 사이로 벌거벗은 한 소녀를 보았다. 그러자 그는 그 악몽이 그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까지 그를 마음 편히 놔두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갑자기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하고 쳤고,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들은 흔들거렸다. 그는 모자와 지팡이를 가져오라고 했다.

"타데오 씨, 어디 가세요?" 어느 마을 유지가 물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갑니다." 그는 아무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채 급히 그곳을 빠져나가면서 말했다.

그는 힘들게 그녀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불행을 겪었던 그 집에 항상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따. 그는 그곳을 향해 차를 몰았다. 그때에는 도로 사정이 좋았기 때문에 거리는 더욱 짧아 보였다. 주위 풍경은 수십년을 지나오면서 이미 바뀌어 있었지만, 언덕의 마지막 커브를 돌자 오레야노 집안의 저택이 보였다. 마치 그의 도당들이 그 집을 무력으로 침공했을 때를 회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그곳에 그가 다이너마이트로 파괴했던, 강가의 돌로 지은 견고한 벽이 있었다. 또한 그곳에 화염에 휩싸였던 나무 창틀도 있었고, 상원의원 부하들의 시체를 매달았던 나무도 있었으며, 개들을 죽였던 마당도 있었다. 그는 문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단. 그는 감히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폭발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 자기가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덤불 사이로 빛나는 치마를 두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모든 생각의 힘을 동원하여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기를 바랐다. 저녁 여섯 시의 은은한 햇빛 속에서 그는 둘세 로사 오레야노가 정원의 오솔길로 둥둥 뜨듯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머리칼과 하얀 얼굴, 조화로운 몸짓, 너풀거리는 그녀의 옷을 알아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기가 이미 30년이나 지속되었던 꿈속에 있다고 믿었다.

"마침내 오는군요. 타데오 세스페데스." 그의 모습을 보자 그녀가 말했다. 시장처럼 검은 양복을 입고, 머리칼도 회색으로 변했지만, 그녀를 속일 수는 없었다. 아직도 그의 손은 해적의 손과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시도 당신을 잊을 수 없었어. 난 평생 당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어." 그는 너무나 창피해서 들릴까말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둘세 로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시간이 된 것이었다.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사형집행인의 흔적이 아니라 단지 신선한 눈물방울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30년 동안이나 길러온 증오를 마음속에서 찾으려 했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자기가 할 일이 있으니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순간을 떠올렸고, 이 남자가 저주의 포옹을 할 때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던 아버지의 유해를 무명 침대시트로 둘둘 말던 새벽의 순간을 되살렸다. 그리고 완벽한 복수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 하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기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니 정반대로 깊은 우수만을 느낄 뿐이었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키스를 하면서, 그 손바닥을 눈물로 적셨다. 그러자 그녀는 시시각각 미리 징벙을 음미했지만 감정이 생각에 등을 돌렸고, 결국은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겁을 했다.

다음 날부터 두 사람은 억압된 사랑의 수문을 열고서 처음으로 그들의 가혹한 운명 속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정원을 거닐며 자기 자신들에 관해 말을 했다. 물론 그들의 인생을 뒤틀어놓은 숙명의 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았다. 해거름이 질 때면 그녀는 피아노를 쳤고, 그는 그 음악소리를 부드러운 뼛속 깊이 느끼면서 담배를 피웠다. 마치 행복이 망토처럼 그를 두르고 있는 것 같아고, 과거의 악몽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그는 저녁을 먹은 후, 이제는 아무도 끔찍했던 옛날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던 산타 테레사로 향하곤 했다. 그는 최고의 호텔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고, 시끄러운 음악이 울리며, 엄청난 술과 음식이 난무한 요란한 파티를 벌이고 싶어 했다. 그는 모든 남자들이 꿈을 잃어버리던 나이에 사랑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그는 청춘 시절의 힘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둘세 로사를 사랑과 아름다움으로 에워싸고 싶었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에게 주려고 했고, 그것으로 자기가 젊었을 때 했던 못된 짓을 늙어서나마 보상하고 싶어 했다. 가끔씩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최소한의 원한이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단지 서로 공유하는 사랑의 빛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다. 그렇게 행복했던 한 달이 지났다.

결혼 이틀 전이었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정원에 파티 음식이 차려질 테이블을 준비하고 있었고, 파티에 쓰여질 새들과 돼지들을 죽이고 있었으며, 집을 장식하기 위해 꽃들을 꺾고 있었다. 둘세 로사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았다. 그녀는 거울에 비춘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카니발의 여왕으로 화관을 썼던 날과 너무나 흡사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기의 마음을 속일 수가 없으며, 그를 사랑하기에 자기가 계획했던 복수를 절대로 할 수 없고, 상원의원의 영혼도 잠재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자 재봉사와 작별인사를 한 다음, 가위를 들고 지난 30년 동안 텅 비어 있었던 세 번째 정원의 침실로 갔다.

타데오 세스페데스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책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사방으로 찾아다녔다. 그는 개들이 짖는 소리를 듣고 집 끝으로 달려갔다. 정원사들의 도움으로 그는 빗장 걸린 문을 부수고 30년 전에 재스민 화관을 쓴 천사를 보았던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살아오면서 평생 동안 꿈 속에서 보아왔던 모습 그대로의 둘세 로사 오레야노를 발견했다. 그녀는 피 묻은 오건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영혼이 사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여자를 기억하면서 90세를 살 때까지 자기의 죗값을 치를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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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1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읽을때도 참 ' 강하다' 는 느낌을 받았지만, 글로 옮기면서는 계속 입에 맴도는 문장들이 많더라구요. 급작스레 바뀌는 시간의 흐름이라던가 간결하면서도 뭐랄까 이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왔던 틈과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슴을 치는 문장들이요. '개들은 그가 땀과 피와 슬픔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체취를 알아보고, 그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신데렐라의 함정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9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20살 처녀, 억만장자의 상속인입니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살인사건입니다.

나는 그 사건의 탐정입니다. 또 증인입니다. 그리고 피해자입니다. 게다가 범인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네 사람 모두입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요?

미스테리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보다 더 끄는 광고문구를 본 적이 있었던가?!

프랑스 작가 세바스띠엥 자프리조의 이 작품은 '추리기법을 쓴 소설' 이다. 탐정이자 증인이자 피해자이자 게다가 범인이도 한 상속녀의 심리를 따라가는 것은 무척이나 머리 아프고 피곤한 일임은 분명하지만( 진짜 피곤하고 페이지 넘기기가 곤욕일 정도였다.) 그러나 끝의 결론을 보기 위해서라도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

조금 읽다보면 트릭은 쉽게 눈치챌 수 있으나, 결정적인 결과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나 알 수 있다. ' 신데렐라의 함정' 이라는 말로. ( 이건 절대 스포일러 아님)

'신데렐라의 함정'은 짧은 중편이고, 그 뒤에는 또 '살인급행 침대열차' 가 있다. 결론이 조금 허무해서 그렇지,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침대칸에서 죽은 여자를 수사하며 동승했던 승객들의 시점으로 재구성된 이 작품도 꽤나 드라마틱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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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리 2005-03-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당연히- 그리고 곧 주문 ㅋ

미세스리 2005-03-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웩! 출고예상시간 72 시간!!!

비츠로 2005-03-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DMB가 출간되기 전 이 책 광고문구가 너무 흥미로워 3년전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가서 자유추리문고로 본 기억이 나는군요.

하이드 2005-03-12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사실, 광고문구가 정말 궁금증을 마구마구 자아네요. 읽는 중간이 좀 안 넘어가서 그렇지, 다 읽고 나서는 작가가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
 

Jane Urguhart 의 'Away' Kel님의 서재에서 호퍼 그림과 함께 문장들을 써 놓았는데, 정말 가슴을 쳤던.

Matthe Sharpe 의 The Sleeping Father

Sideways: The Shooting Script

 Sideways: The Shooting script  ( Alexander Payne ( Contributor), Jim Talor)

Rex Pickett 의 Sideways : A Novel

분명히 작년에 샀었던 책인데, 아무리 찾아도 없음. 아마 올림푸스 펜하고 같이 걸어나간듯 보인다. -_-+

Thomas Hardy 'The Mayor of Casterbridge' 하디의 소설이 읽고 싶었던 어느 날 장바구니에 넣어놨었던.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2005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hugh Johnson's pocket wine book 2005

엊그제 2003 버젼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나니, 나도 다시 가지고 싶어짐. 근데, 2005버젼이 있으니 요걸로 ^^a

Tortillitas para mamá

A collection of lyrical translations and Spanish texts of Latin American nursery rhymes. Ages 5-9.
Copyright 1987 Reed Business Information, Inc

아마,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보고 아마존 검색하다가 담아두었던 책.

Anna Gavalda ' I wish someone were waiting for me somewhere'

계속 구하고 싶었던 책인데, 우연히 발견. 표지도 예뻐서 덥썩

Jane Urguhart ' Stone Carvers, The '

Jane Urguhart의 책 하나 더

 

이런, Time Out Travel Guide도 없고, 미스테리 페이퍼백도 하나도 없네 -_-a

언제나 그렇지만 주문하고 나면 사야할 책이 마구 떠오른다.

배송비가 너무 올랐다.

60불이 넘는다. 대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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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5-03-10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 맨날 배송비 생각에. 아직 해외 쇼핑몰에서 주문 한 번도 안해본 매너라죠. 더 중요한 이유는. 한번 맛들이면 가계파탄날게 두려워. 으으으... 리히테르 프라하 실황 언제나 재고 있던데. 이거 원. 알라딘 해외 쇼핑몰 주문 모임이라도 조직해볼까요? ㅎㅎㅎ

하이드 2005-03-1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되고도 남았을터인데, 아마존이 워낙 세일만 하고 마일리지 비스므리한것도 없어요 -_-a
 



사실 알라딘에 나와 있는데, 이름 모자이크 한건 좀 웃기지만 ^^;;

암튼, 저 3명 당첨중에 한명이 나다. 으흐흐

내가 얼마전에 올렸던 '2월'이란 제목의 페이퍼에 장정일의 '생각' 에 대해 불평한 글이 있다.

파본이였는데, 알라딘에서 바꿔주길 기다리고 있는동안 잃어버렸다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보내주겠다고.

그 책에 대한 나의 리뷰는, '나만 좋은' 리뷰라고나 할까? 리뷰를 쓸 때 저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서도. 장정일의 책의 비꼬는 어조, 신랄한 어조를 책한권 분량만큼 접하고 나서 리뷰를 쓰면 전염되어 뭐랄까, 존 버거의 책을 읽고 나서 경건한 마음으로 리뷰를 쓰는 것과는 또 달리 한쪽 입구리를 살짝 올리고, 금방이라도 코웃음 칠것 같은 세상에 대한 저자의 '매' 에 감정이입되어 나도 뭔가 삐뚜한 마음으로 리뷰를 쓰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름대로 '좋았다' 라는 글이였지만, 팔리는데 도움이 되는 글이였는지는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보내준다니 그 맘이 고마웠는데, ( 원래 그런거에 감동 잘한다.)

오늘 다시 연락이 와서, 이벤트 당첨되신 분하고 같은 분 아니냐는거다. 맞다. 음흐흐.

그래서 내가 받을 책은

장정일의 '생각' 과 우리 시대의 인물 읽기( ;;; 두명으로 좁혀졌다) 노무현,김기덕, 장정일을 받게 되었다.

무려 네권. 공짜로.

책 받으면 내가 젤루 먼저 리뷰 올려야지. ( 아직 나오지는 않은듯. 검색에 뜨지 않는걸 보면)

흐흐흐 자랑할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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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5-03-09 0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좋으시겠어요. 넘 부러워요. ^^

하이드 2005-03-09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 히히 우리나라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책은 아직 기회가 안 닿아 못 읽어 봤는데, 좋은 기회가 될것 같아요.

하이드 2005-03-09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출판사가 알고보니 SF 시리즈도 많이 내주는 고마운 출판사더군요 ^^

마늘빵 2005-03-09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해요. 부럽다. 이벤트를 빨리 찾아먹어야지... 당첨시켜줄지는 모르겠지만.

marine 2005-03-0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은 이벤트에 자주 당첨되시는 것 같아요 전 여태까지 당첨이란 걸 돼 본 적이 없습니다

날개 2005-03-09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축하드려요..^^* 자랑할만 하시네~ 역시 하이드님이셔요!

미세스리 2005-03-09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당첨! 축하드려요!

반딧불,, 2005-03-0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축하드려요.

하루(春) 2005-03-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읽고 싶어서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축하해요. *^^*

하이드 2005-03-09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워낙 대충 쬐끔이라도 끌리는 이벤트상품은 다 사다 보니, 물먹는것도 많지만, 별 기대 안해도, 가끔 걸려주니, 어찌나 좋은지요 ^^ 휴머니스트 진중권 미학책 이벤트 걸린 이후 올해 들어 벌써 두번째네요. ^___^ 근데, 새벽 네시에 들어와서 글 올렸는데, 오타여와이군요. sideways 마야처럼 I'm the queen of the typo. -_-a 영화보고 설렁탕 한 그릇 먹고 왔을 뿐인데!!!

물만두 2005-03-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울보 2005-03-0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부럽다,,

놀자 2005-03-0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