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을 만나러  **교도소에 갔다 왔다.  독서토론 지도라는 밥벌이용 명목이 있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적은 없다. 그냥 십 여명의 회원들과 둘러 앉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얘기하고 서로의 무탈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언젠가  회원들 몇몇이 졸랐다.  (남자만 수용하는 곳이라  회원들 모두 남성이다. 이십대에서 오십대까지 그야말로 개성이 뚜렷한) 자신들과 너무 먼 작가들의 작품만 얘기하니 공감도 가지 않고 재미가 없단다. 해서 내 작품을 꼭 한 번 토론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직 내 작품집이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대답해주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그간  발표한 작품 중 그나마 그들에게 공개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 싶은 것으로 여섯 편의 단편을 소책자로 만들어 갔었다. 그 교재로 토론하는 동안 나는 쑥스러웠다. 단편 속에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자의식과 내 생활인 듯한 에피소드가 도드라지는 부분에서 그들이 몹시 좋아하며 놀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옛애인을 곧 만나게 될 주인공이 번민 끝에 친한 친구더러 '자줄까?'라고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요?' 라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원래 소설은 구라까는 것이니 상상은 자유'라고 급하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난 시간 수업이었다.   

  오늘 두 시간의 주어진 시간을 끝내고 나오는데, 평소 가장 열성적인 <안경>씨(앞 선 글에서 '구름'으로 등장한 적 있음)가 면회를 요청했다. 그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서도 교도관 입회 없이는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담당 교도관이 얘기를 해도 좋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안경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예의 내 작품이 실린 소책자를 펼쳤다. 세상에나! 책 갈피갈피마다  꼼꼼하게 적은 감상문이 실려 있었다. 때론 포스트 잇에다, 더러는 수첩을 잘라  붙인 곳에, 구절구절마다 자신이 느낀 감흥이나 고쳐야 할 부분까지 자신 만의 독후감을 써 놓은 것이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봤으면 여섯 편 중 두 편 밖에 읽지 못했노라고 미안해 했다. 다음에 만날 때 나머지 것을 읽고 또 그렇게 손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경 씨는 시를 쓴다. 자작시를 써서 내가 수업을 마치면 서류 봉투에 넣어 준다.  나는 주변 시인들에게 부탁해 감상문을 받아 넘겨주곤 한다. 안경 씨는 그 작업을 무척 고마워하고 흥미있어 한다. 장기수인데다 이곳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읽고 쓰는 데 무척 관심이 많아진 경우이다. 얼마 전 한 공모에서 2등으로 뽑힌 적 있어 거금의 상금을 타기도 했다. 다음 번 모임에 한 턱 쏜다고 기대하라는데 어쩐지 회원들보다 내가 더 기대가 된다.

  안경 씨가 지적해준 내 문장에 대한 언급은 반은 무시해도 되고 반은 받아들일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었다.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고, 주변에서도 애써 지적해주지 않은 그 구멍난 문장들을 들여다 보며 나는 안경 씨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제 글 바른 지적에 내가 상처 받을까 봐 지우개 흔적을 몇 번이나 남긴 그 세심한 감상문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바지런을 떨어 그 꼼꼼한 흔적들을 사진으로나마 올리고 싶지만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그것까지는 곤란하고, 지금도 멍하니 그 귀한 감상문을 들여다 보고만 있다. 어쩜 글자 한 자, 문장 부호 하나 틀림이 없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라는 건 눈치챘지만 이 정도 일줄이야.  

  방금 발견한 메모인데, 회덮밥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 옆에는 '저두 좋아해요.^^'라고 괄호를 쳐서 써 놓았다. 십여 년이 넘는 수감 생활 동안 안경 씨는 회덮밥을 먹어 본 적이 있을까? 까다로운 그곳 식단으로 봐서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그 어떤 식재료도 반입될 수 없다.) 아마 먹어 본 지 오래일 것이다. 그곳을 나올 때까지 좋아하는 회덮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죗값은 치러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회덮밥 앞에서는 자연스레 안경 씨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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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7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8 0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9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꼼미 2010-01-28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정말... 자체로 소설보다 더한 소설이네요. 팜므님 이런 일도 하시는군요. 저랑 친구라며요, 놀러 오셨으면 좋겠어요. 미시건. 언젠가.. 사는 얘기 더 많이 듣고 싶어서.

다크아이즈 2010-01-28 07:38   좋아요 0 | URL
미시건에 사신다는 건 몰랐어요. 용서하세요.^^* 제가 놀러 간다고 한 곳은 님의 이곳 서재. 아직 꼼꼼하게 둘러 보지 못했어요. 밥 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것만으로도 님은 벌써 제 친군걸요.^^*

글샘 2010-01-28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소책자를 만날 영광을 누릴 수 없을까요? ㅎㅎㅎ
그러려면 빵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감??

다크아이즈 2010-01-28 07:48   좋아요 0 | URL
글샘님께는 소책자로는 안 돼요.
정식 작품집 원고로 교정 봐 달라하면 거절 안 하실 거죠?
(제가 십 년 뒤라고 했던가요?)
참고로 로쟈님은 서평 써주시기로 했다니까요.ㅎㅎ

穀雨(곡우) 2010-01-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님의 활동범위가 대단하시네요. 교정교육까지 하시다니...^^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떠오르는군요. 그 안경씨도
인생을 새로 배운 감정으로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도하는 생각...
여튼 팜므님의 소책자가 어여 활자화 되어 제 손에 잡히기를 바랍니다.

다크아이즈 2010-01-28 22:34   좋아요 0 | URL
활자화 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내공 쌓는 게 어렵지요. 곡우님 같은 분이 계시는 한 절망에 절망을 거듭합니다. 그래도 절망보다 더한 힘을 얻으려고 버티고 있습니다.^^*
 

   

   . 

  필요에 의해 읽은 책

  리뷰 대신 정리라도 해놓자.

 

 

 

 

 

 

 

  이 책에 실린 여러 사연들은 저마다 고유한 아픔, 설움, 분노를 담고 있다. 시대 상식에 어긋나고, 사람이 일용해야 할 최소한의 양식조차 거부당한 이야기들이다. 읽는 이의 마음은 무겁지만 이 사연들 속에서 삶이란 그리 외롭지도 힘겹지만도 않다는 희망의 싹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인간>

1. 초몰룽마(에베레스트)의 두 사람 :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뉴질랜드 출신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 정상을 몇 발자국 앞두고 첫 발자국은 자네 몫이야. 아니, 나는 셰르파야. 1953년, 세상의 꼭대기에는 두 사람이 있었고, 첫 번째 사진에는 단 한 사람만이 찍혔다. 텐징 노르가이.       플러스) 전문 산악인 김세준 -  


2. 어떤 스트라이커의 1승 : 2002년 6월 월드컵. 한국:폴란드. 전반 26분 그가 왼발로 날린 공이 폴란드 골문을 갈랐다. 4무 10패 ‘1승’이 되는 순간. 1승 그것은 월드컵 진출 48년 만에 이룬 대한민국의 승리였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4강 진출보다 더욱 값진 것이었다.       플러스) 축구 저널리스트 서형욱 -  

 

3. 텔레비전 : 백남준,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 TV는 대중매체다. 현재 대중은 네트워크의 일방적 대상이다. 상호소통, 관객참여 같은 TV의 무궁한 잠재력은 지금까지 무시되고 교묘하게 억압되어왔다.       플러스) 팝아티스트 낸시랭  


4. 지독한 싸움꾼 : 진정한 힘이란 물리적 수단 속에 있지 않다. 꺾을 수 없는 의지 속에 있는 것이다. 제가 한 행위는 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고결한 의무였습니다. 제 행위에 대한 대가로 제게 부과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판결을 기꺼이 받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무기한 이어지는 옥중 단식.  


5. 어머니의 그림 : 케테 콜비츠 - 나는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솟구쳐 나오는 힘이었다. 나는 이 시대에 변호받을 수 없는 사람들, 정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싶었다. (83쪽)     플러스)판화가 이철수 - 내가 ‘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그런 언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따뜻한 언어’만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분노에 차 있거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데 대해 두려움과 환멸을 느끼고 산 지 오래다. 설사 내가 언젠가 분노에 찬 언어를 다시 사용해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것이 나를 삼켜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6. 몸의 학교 : 알바로 레스트레포 - 콜롬비아 고향으로 돌아와 몸의 학교 세움.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존경’이었다. 나는 춤을 통해 그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2009 현재 ‘몸의 학교’는 빈민아동, 1,2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플러스) 노리단 퍼포머 강희수 - 그냥, 지금 내가 행복한가 물어요.  


7. 안 돼! : 1976년 Silent Movie에서 피에로 빕이 처음으로 한 말. 마르셀 마르소 - 말과 침묵은 같은 뿌리다. 다만, 말은 수많은 진실을 속이고 자극하고 상처 입히며 우리가 사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침묵으로 끝난다. 우리의 판토마임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플러스) 유진규 - 1세대 마임이스트, 춘천마임축제 : 요즘 고민은 춘천마임축제만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 결국은 한국성, 아시아성을 확보하는 문제. 마임의 기반이 대부분 서구적인 것들이어서 이런 정체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8. 파블로 카잘스의 콘서트 :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당신은 정치에 대해 말하고 나는 원칙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항상 콘서트의 마지막에 연주하는 곡은 스페인의 민요, <새들의 노래>입니다. 나의 고향 카탈루냐의 하늘에서는 새드리 “피스, 피스”하고 노래합니다.      플러스) 공연연출가 탁현민 - 기본적으로 나는 공적인 영역에서든 사적인 영역에서든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예인도 마찬가지고,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약 손석희가 정말 좌파라면 방송에서 “나는 좌파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정상적인 사회다.  


9. 프라이버시 : 내 것, 남의 사정, 우리 일이 ‘경우에 따라’ 확 트이게 되는 사회? 남들이 다 아는 나만의 사생활?       플러스)진보네트워크 활동가 장여경 -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분야 담당. 통신비밀보호법 - 이번 통비법 개정안은 위헌소지를 없애기 위한 행보.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반인권적 시행령을 만들어 놓고, 이후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아예 모법을 뜯어고치는 식이다. 과태료 조항까지 끼워넣었다. (163쪽) 한국정부의 인터넷 통제가 위협적인 것은 중앙집중화 때문이다. 그래서 구글로 우르르 쏠리는 현상도 안타깝다.

10. 남겨진 논쟁 : 안락사. 품위 있는 죽음, 의학적 방조? - 목숨을 인위적으로 끊는 것은 살인행위. 생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것은 환자의 존엄성을 해치는 짓.  2008년 11월 연대 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 할머니’의 안락사 인정 판결이 나왔으나, 산소호흡기장치가 제거된 이후 한동안 할머니는 의식불명상태로 생존해 있었다.

<인생편>  

 

11. 칩코의 연인들 : 칩코 안돌란, 은 힌두어로 나무를 껴안는다는 뜻. 벌목 반대 비폭력 운동의 이름. 반다나 시바 등 여성 생태학자들이 속속 참여 인도 전역으로 퍼짐.  


12. 가비오따스 : 1970 콜롬비아 열대우림 운하 건설 계기로 파견된 파올로 루가리. 개발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고민 끝에 척박한 땅 가비오따스로 향함. 진정한 위기는 자원 부족이 아니라 상상력 부족에서 온다. 가비오따스 대안기술은 콜롬비아 700여 개 마을로 전수되고 중남미 다른 나라로 퍼져나감.       플러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도법 스님 - 인드라 망은 화엄경에 나오는 말로, 하늘에 있는 그물. 온 우주가 총체적 관계 그 자체라는 의미. 인간 삶 자체가 그물과 같은 공동체. 지리산 산내면 실상사 주변에서 마을공동체 회복운동. 


13. 서머 오브 러브 : 히피 문화. 냉전, 케네디 대통령 암살, 베트남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현실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꿈.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가에 모여 공동생활 시작. 스코트 맥켄지 - 샌 프란시스코 노래(샌 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그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불가능해진 소통과 교감 끝에 결국 히피의 죽음을 선언. 각자 있는 곳에 머무르며 우리들이 사는 그곳에 변화를 전합시다. 더 멋진 세상을 꿈꾸던 희망도 어떤 면에서는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플러스) 한 대수 - 나는 평화주의자. 공존 서로 함께 사는 문제를 생각한다.   


15. 카메라는 무기다 : 크리스틴 최 - 미국이 만든 우습고 못난 동양인의 이미지를 깨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이럴 때는 고민에 빠져 있는 것보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게 낫다. 내게는여전히 카메라가 무기이기 때문이다.       플러스)미디어몽구 김정환 - 미디어 몽구, 는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네티즌들이 궁금해할 것 같고 내가 궁금한 것을 찾아 나설 뿐이다. 꾸준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보면 콘텐츠도 나아질 것이고, 글솜씨나 취재능력도 나아질 것이라 희망한다.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블로그였음 좋겠다.  


17. 바타와 삼부 곰보수레와 바트델거 : 2007년 신도림동 고층 공사현장 화재. 사람들을 구하ㅣ고도 신분을 밝힐 수 없었던 네 사람의 몽골인 불체자.       플러스) 용산 철거민 유가족 김영덕 - 사는 동안 철거민이 되리라곤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개발업자를 위한 재개발은 지금도 수도 없이 진행되고 있어요. 용역업체들 고용할 돈으로 철거민에게 한 푼이라도 나눠줄 생각은 왜 못하는 거지요?  


18. 괴물의 그림자 : 18세, 가네코 지즈오. 조선이름 이진우. 죽음을 앞에 두고 조선어 첫걸음을 시작하려 한다. 최후에 이르러 나는 나를 진우로 인식한 것이다. 2004년 현재 60만여 명의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에 살고 있지만 속속 일본 국적으로 귀화 연평균 5,500명씩 그 수가 감소하고 있다.      플러스)  보노짓 후세인 - 한국에서의 인종차별주의 유경험자. 인종차별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일민족, 단일언어에 익숙햇던 삶의 근저가 바뀌는 거세 당혹스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도적 인종차별이 아니라 무감각하다는 것이다.  


20. 보키니 : 불행은 종종 사소한 것들을 무시하는 데서 생겨난다. 행복은 종종 사소한 일에 관심을 기울일 때 생겨난다. 이 지구상에는 60억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따라서 행복에 이르는 길 역시 60억 개가 된다. 인디언 소년이 찾은 해답은 라코타 어 보키니... 새로운 행복한 평화로운 삶.          플러스) 슬로 라이프 운동, 쓰지 신이치 - 걷기, 느림,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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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물인지 진흙탕인지 모를 얼룩이 묻은 청춘의 문장들을 다시 꺼낸다. (두꺼운 종이질은 넘기기가 힘들다. 독자보다 책 파는 게 우선인가? 마음산책하려다가 마음상함이 먼저 오려한다. ) 

스물이 그립다.  간직해둔 거문고들 줄 끊어지는 소리는 나이들수록 자주 들린다. 김연수도 그러한가 보다.

   

 

 

 

  125 -126쪽 ) 

  이덕무가 글을 뽑고 박제가가 서문을 붙인 학산당인보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거문고 갑 속에 간직하여 두었더니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 들려오누나 

  내 마음 속에 간직해둔 거문고들도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를 울린다. 그 소리가 들릴 때면 나는 또 얼마나 놀라는지! 나는 참 많이도 흘러 내려왔구나. 항상 삶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구나. 스무 살, 그 무렵에 나는 '이제 그만 바라보자 / 저렇게 멀리서 반짝이는 섬들을'이라는 내용의 시를 썼지만, 이제는 그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빛이, 마치 새로 짠 스웨터처럼 , 얼마나 따뜻한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것 같아 가만가만 고개만 끄덕인다. 이따금 마음에서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가만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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穀雨(곡우) 2010-01-2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 전 무얼 해도 좋을 거란 막연한 설렘으로 가뭇없이 흘려 버렸던 기억만...
정말이지 사람은 추억을 빼먹고 사는 건가 봅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현이 나이를 먹어 느슨해져도 그 속에서 부유한 추억이 새록새록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청춘(?)을 돌파하고 있는 무지랭이의 전언이자 잡설입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팜므느와르님의 글과 채취에서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가식없이 흐르는 감정표현, 붙들어 매는 글사위. 숨은 진주를 발견한 기분이라면...^^

다크아이즈 2010-01-2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여삐 보아주시니 감사할 따름인뎌~ 알라딘이 좋은 점은 고수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제대로 자극 받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이죠. 곡우님께 많은 것 배우겠습니다. 꾸벅^^*

 

책 모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게으름 때문에 책은 늘어간다. 인터넷 서점을 활용한 이래 굳이 안 사도 되는 책을, 클릭 한 방으로 해결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정리하지 않은 서가는 점점 책들의 무덤이 되어 간다. 언제 한 번 확 쓸어담아 내놓을 건 내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최근에 내 손에 들어온 책은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한 채 마루와 책방을 떠다니고 있다. 잘 버려야 책에게도 미안한데 이게 뭔 짓인지.  

그래도 뜻하지 않게 장식용, 보관용 기능을 하는 책을 만날 때도 있다. 어제 배달되어 온 책 중 몇 권이 그렇다. 반값 세일이라길래 주워담았는데, 그것들의 실체(?)를 보니 이건 뭐 읽기만을 위한 책 같지는 않다.  '장식만 해도 뽀대난다.'는 걸 강조하는 책 같다. 하기야 책이란 게 후다닥 읽어 치우라고만 있는 것도 아닌데다, 가끔씩은 소장하는 것만으로 그 기능을 다 할 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사지 않은 분들께 강추! -   

율리시스는 그야말로 율리시스 사전으로 활용하면 좋겠다. 평생을 두고 관심 생길 때마다 들춰보면, 뭘 몰라도 손끝이 저릿해질 듯. 권위자 김종건 교수의 번역인데 그 분도 평생 숙업이니 허영으로 들춰보는 나 같은 이들은 이 정도만 해도 행운이렷다. 칭찬할만한 일은 그 많은 각주를 텍스트 바로 밑에다 친절하게 배치하고 있다는 것. 아무리 좋은 주해도 성의없이 뒷면에 찌익~ 일렬로 붙여놓은 것 보면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앨범 장정이다. 배달되어 온 것 보고 놀라실 분 많을 것이다. 테오를 비롯한 가족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 더불어 적재적소에 배치된 고흐의 작업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운명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된다.  일반 독자로서 이런 책 갖는 것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단 번에 보는 책이 아니라 입술 부르트고, 위 갉아올 때 한 웅큼 약 털어넣고  누워서 뒤적이기에 좋은 책.  

세일할 때 좋은 사람들을 위한 선물로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출판사가 생각의 나무네. 눈여겨 봐야겠다.

 

 

 

 나머지 한 권 나의 정원(타샤 튜더)인데 반값 세일하던 것이 내가 살 때는 그 폭이 많이 줄어들었다. 잘 팔린다는 것일까?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영혼의 슴슴한 객토를 열망하는 자들에게 위안을 줄 것 같다. 변화를 원하지만, 만 가지 그놈의 환경 탓에 아무 것도 변하지 못하는 범인들의 한 쪽 가슴을 콩닥이게 하는 책. 절망마라. 잊지마라. 타샤 할매는  56세 때부터 이 정원을 다시 가꾸기 시작했음을... 정원이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임을 이 책을 뒤적이는 동안 강하게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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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1-20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저 빈센트 반 고흐책은 누워서 보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책일텐데요. 엄청 무겁잖아요. 저는 위에 올려 놓으신 책 율리시스, 빈센트 반 고흐, 다 반값으로 이미 구매해 놓았답니다. 그런데 이토록 무게가 나갈줄은 짐작도 못하고 사무실로 주문해 놓은터라, 집으로 가져가는데 아주 애를 먹었어요. 휴..

율리시스의 경우, 완독을 할 수나 있을까요?

다크아이즈 2010-01-20 18: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천장 보고 말고 아랫배 바닥에 깔고(옥매트 위라면 더 좋겠지요?)베개 턱밑에 넣어주고 그 무거운 고흐는 절대 고정으로다가 해놓고 몇 장 뒤적이다 자는 거죠, 뭐.

율리시스는 위에도 적었듯이 <율리시스 사전>으로 활용해야지 저걸 완독한다고 고집부리면 손끝 아리고, 목 부러질 것 같아요. 율리시스 학회에서도 십 년 동안 공부해도 다 이해 못한다잖아요. ㅋㅋ

또다른세상 2010-01-2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가 인터공원에서 8,740원에 팔아욧!!!!! 이렇게 팔아 뭐가 남을까 심히 궁금해지면서 어제부터 살까말까 고민하다 필시 안 읽을꺼 뻔한데 책장만 차지할꺼란 생각에 참자 하다가도 이건 거저야 가격 오르면 배아프지 않겠어라고 결제창을 왔다갔다. 거참 미치겠네요. 올핸 밀린 책들 다 읽을꺼라고 결심했는데...

다크아이즈 2010-01-20 23:02   좋아요 0 | URL
진작에 다른 곳에선 좀 더 싸다는 것 알고 있었어요. 이 정도만 해도 됐다, 하고 사야 맘이 편해요. 좋은 기획 해놓고도 책 덜 팔리니 덤핑하는 거겠지요. 맘이 좀 그래요. 율리시스 단칼에 읽다가는 목 삐걱거리는 수 있으니 사전식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어요. 책 없으면 아쉽잖아요.

또다른님 첨 뵙는 분인데, 반갑네요. 강쥐 구경하러 가야겠어요.
 

  밥,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뒹굴거렸다. 회식 뒤끝에 울아저씨 사들고온 물회를  아점(?)으로, 두마리 치킨을 늦은 점심으로, 좀 있으면 김치 볶음밥에 라면이 저녁상에 오를 것이다.  턱도 없는 나 같은 주부를 위해 마을마다 밥공장 생겼으면 하는 게 내가 줄곧 주창하는 바이다. 아니면 한 알만 먹어도 배부르는 영양 알약이라도 나오든지... 하도 세뇌되어서 나머지 세 식구들은 그러려니 한다.  

뒹굴거리는 동안 세 편의 밀린 원고를 써서 넘겼다. 그래도 시간이 아까워 빵굽는 타자기와 2009 이상 문학상을 옆에 두고 짬짬이 쳐다 본다.  폴 오스터를 잠시 생각하면서 아래와 같은 단상을 얻는다. 굳이 책과의 연관성이 절절한 것도 아닌데, 밑도 끝도 없는 잡념이 배꼽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먹는 게 부실하니 허기가 빨리 찾아오는 건가?  

- 소비의  미덕을 아랫대에게 우아하게(안 되면 현명하게라도) 실천하는 노년을 꿈꾼다. 이 얘기는 내 친구가 즐겨하는 말인데, 나도 동의한다. 아랫대를 얌전한 모범생으로 앉혀놓고 진부하게 왈가왈부하는 노년의 풍경만은 피하고 싶다, 는 막연한 생각, 우아한 노년은 역시 머니가 보장한다는 부담감. 아무렴, 부지런히 타자기 놀려 빵을 마련해야겠구나.

- 이야기 사기꾼은 못 돼더라도 수완꾼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역시 독서를 통한다는 사실. 특히 폴 오스터 같은 편안한 능수능란은 욕심 저 밖의 차원에서 노닌다는 것을 감지한다. 

- 아무래도 무절제와 떠들썩함과 활기가 함께 하는 부류들이 자기기만이 없다는 확신. 그들은 덜 정치적이고, 덜 계산적이며, 쉽게 공감한다는 것. 점잖은 주연보다 익살스런 조연들이 주는 매혹, 침묵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의 위선보다 수다를 장난감으로 사용하는 자의 위악을 높이 산다는 것. 거기서 나아가 좀 전엔 급기야 이런 발언까지 식구들 앞에 했다.  

쉰 김치의 우수성보다 난 식빵 피자(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간식)위, 모짜렐라 치즈의 유혹에 더 약해. - 이 말에 울아저씨가 핀잔했다. 그렇게 국수주의를 경계한다고 네 잘난 (인문학적) 소양이 높아지는 건 아냐. 조금 웃겼다. 거기에 웬 국수주의? 나 비록 잔칫국수 좋아해서 자주 말아 먹으나 그런 뜻은 아닐세~  김치볶음밥에 치즈나 듬뿍 올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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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0-01-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에 대한 확실한 공감이네요. 동거녀와 의붓엄마처럼 산지가 근 십년도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이놈의 끼니마다 밥해먹는 일이 익숙해지지가 않아 괴로워 하는 중이죠. 똑같은 생각. 훌륭한 밥공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일없이 책 읽다 보면 밥때는 또 다가 오는데 냉장고는 텅텅. 장정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먹을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동거남은 직접 장을 봐오는데 저는 아직도 밥하는 엄마 노릇을 잘 못하네요. 너무 공감해서, 좀 흥분하고 갑니다.^^

다크아이즈 2010-01-21 00:38   좋아요 0 | URL
오뫗, 꼼미님 그대는 이유 불문하고 지금부터 나의 동지여요. <동거녀와 의붓엄마>이렇게 빼어난 표현이 있었군요. 근데 동거녀는 잘 보이고 싶어서라도 동거남 밥 잘 해 줄 것 같은데, 전 뭐 겁나는 게 없네요. 냉장고 뒤져서 스스로 삼겹삽 데쳐 먹는(굽지는 못하고) 아들놈 보면 뜨끔할 때 많습니다.

반가워요. 놀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