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뒹굴거렸다. 회식 뒤끝에 울아저씨 사들고온 물회를  아점(?)으로, 두마리 치킨을 늦은 점심으로, 좀 있으면 김치 볶음밥에 라면이 저녁상에 오를 것이다.  턱도 없는 나 같은 주부를 위해 마을마다 밥공장 생겼으면 하는 게 내가 줄곧 주창하는 바이다. 아니면 한 알만 먹어도 배부르는 영양 알약이라도 나오든지... 하도 세뇌되어서 나머지 세 식구들은 그러려니 한다.  

뒹굴거리는 동안 세 편의 밀린 원고를 써서 넘겼다. 그래도 시간이 아까워 빵굽는 타자기와 2009 이상 문학상을 옆에 두고 짬짬이 쳐다 본다.  폴 오스터를 잠시 생각하면서 아래와 같은 단상을 얻는다. 굳이 책과의 연관성이 절절한 것도 아닌데, 밑도 끝도 없는 잡념이 배꼽 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먹는 게 부실하니 허기가 빨리 찾아오는 건가?  

- 소비의  미덕을 아랫대에게 우아하게(안 되면 현명하게라도) 실천하는 노년을 꿈꾼다. 이 얘기는 내 친구가 즐겨하는 말인데, 나도 동의한다. 아랫대를 얌전한 모범생으로 앉혀놓고 진부하게 왈가왈부하는 노년의 풍경만은 피하고 싶다, 는 막연한 생각, 우아한 노년은 역시 머니가 보장한다는 부담감. 아무렴, 부지런히 타자기 놀려 빵을 마련해야겠구나.

- 이야기 사기꾼은 못 돼더라도 수완꾼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역시 독서를 통한다는 사실. 특히 폴 오스터 같은 편안한 능수능란은 욕심 저 밖의 차원에서 노닌다는 것을 감지한다. 

- 아무래도 무절제와 떠들썩함과 활기가 함께 하는 부류들이 자기기만이 없다는 확신. 그들은 덜 정치적이고, 덜 계산적이며, 쉽게 공감한다는 것. 점잖은 주연보다 익살스런 조연들이 주는 매혹, 침묵을 무기로 사용하는 자의 위선보다 수다를 장난감으로 사용하는 자의 위악을 높이 산다는 것. 거기서 나아가 좀 전엔 급기야 이런 발언까지 식구들 앞에 했다.  

쉰 김치의 우수성보다 난 식빵 피자(내가 가장 자신 있게 만드는 간식)위, 모짜렐라 치즈의 유혹에 더 약해. - 이 말에 울아저씨가 핀잔했다. 그렇게 국수주의를 경계한다고 네 잘난 (인문학적) 소양이 높아지는 건 아냐. 조금 웃겼다. 거기에 웬 국수주의? 나 비록 잔칫국수 좋아해서 자주 말아 먹으나 그런 뜻은 아닐세~  김치볶음밥에 치즈나 듬뿍 올려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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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0-01-2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에 대한 확실한 공감이네요. 동거녀와 의붓엄마처럼 산지가 근 십년도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이놈의 끼니마다 밥해먹는 일이 익숙해지지가 않아 괴로워 하는 중이죠. 똑같은 생각. 훌륭한 밥공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할일없이 책 읽다 보면 밥때는 또 다가 오는데 냉장고는 텅텅. 장정으로 변해가는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먹을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동거남은 직접 장을 봐오는데 저는 아직도 밥하는 엄마 노릇을 잘 못하네요. 너무 공감해서, 좀 흥분하고 갑니다.^^

다크아이즈 2010-01-21 00:38   좋아요 0 | URL
오뫗, 꼼미님 그대는 이유 불문하고 지금부터 나의 동지여요. <동거녀와 의붓엄마>이렇게 빼어난 표현이 있었군요. 근데 동거녀는 잘 보이고 싶어서라도 동거남 밥 잘 해 줄 것 같은데, 전 뭐 겁나는 게 없네요. 냉장고 뒤져서 스스로 삼겹삽 데쳐 먹는(굽지는 못하고) 아들놈 보면 뜨끔할 때 많습니다.

반가워요. 놀러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