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들을 만나러 **교도소에 갔다 왔다. 독서토론 지도라는 밥벌이용 명목이 있긴 하지만 단 한 번도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적은 없다. 그냥 십 여명의 회원들과 둘러 앉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얘기하고 서로의 무탈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언젠가 회원들 몇몇이 졸랐다. (남자만 수용하는 곳이라 회원들 모두 남성이다. 이십대에서 오십대까지 그야말로 개성이 뚜렷한) 자신들과 너무 먼 작가들의 작품만 얘기하니 공감도 가지 않고 재미가 없단다. 해서 내 작품을 꼭 한 번 토론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직 내 작품집이 없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대답해주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어(?) 그간 발표한 작품 중 그나마 그들에게 공개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 싶은 것으로 여섯 편의 단편을 소책자로 만들어 갔었다. 그 교재로 토론하는 동안 나는 쑥스러웠다. 단편 속에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자의식과 내 생활인 듯한 에피소드가 도드라지는 부분에서 그들이 몹시 좋아하며 놀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옛애인을 곧 만나게 될 주인공이 번민 끝에 친한 친구더러 '자줄까?'라고 동의를 구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요?' 라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원래 소설은 구라까는 것이니 상상은 자유'라고 급하게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난 시간 수업이었다.
오늘 두 시간의 주어진 시간을 끝내고 나오는데, 평소 가장 열성적인 <안경>씨(앞 선 글에서 '구름'으로 등장한 적 있음)가 면회를 요청했다. 그 어떤 시간이나 장소에서도 교도관 입회 없이는 단독 플레이를 할 수 없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라면 규칙이다. 담당 교도관이 얘기를 해도 좋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안경 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예의 내 작품이 실린 소책자를 펼쳤다. 세상에나! 책 갈피갈피마다 꼼꼼하게 적은 감상문이 실려 있었다. 때론 포스트 잇에다, 더러는 수첩을 잘라 붙인 곳에, 구절구절마다 자신이 느낀 감흥이나 고쳐야 할 부분까지 자신 만의 독후감을 써 놓은 것이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봤으면 여섯 편 중 두 편 밖에 읽지 못했노라고 미안해 했다. 다음에 만날 때 나머지 것을 읽고 또 그렇게 손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경 씨는 시를 쓴다. 자작시를 써서 내가 수업을 마치면 서류 봉투에 넣어 준다. 나는 주변 시인들에게 부탁해 감상문을 받아 넘겨주곤 한다. 안경 씨는 그 작업을 무척 고마워하고 흥미있어 한다. 장기수인데다 이곳 생활을 오래 하면서 읽고 쓰는 데 무척 관심이 많아진 경우이다. 얼마 전 한 공모에서 2등으로 뽑힌 적 있어 거금의 상금을 타기도 했다. 다음 번 모임에 한 턱 쏜다고 기대하라는데 어쩐지 회원들보다 내가 더 기대가 된다.
안경 씨가 지적해준 내 문장에 대한 언급은 반은 무시해도 되고 반은 받아들일 가치가 충분한 것들이었다. 미처 내가 발견하지 못했고, 주변에서도 애써 지적해주지 않은 그 구멍난 문장들을 들여다 보며 나는 안경 씨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제 글 바른 지적에 내가 상처 받을까 봐 지우개 흔적을 몇 번이나 남긴 그 세심한 감상문에 눈물이 핑 돌 지경이다. 바지런을 떨어 그 꼼꼼한 흔적들을 사진으로나마 올리고 싶지만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그것까지는 곤란하고, 지금도 멍하니 그 귀한 감상문을 들여다 보고만 있다. 어쩜 글자 한 자, 문장 부호 하나 틀림이 없다.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라는 건 눈치챘지만 이 정도 일줄이야.
방금 발견한 메모인데, 회덮밥을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 옆에는 '저두 좋아해요.^^'라고 괄호를 쳐서 써 놓았다. 십여 년이 넘는 수감 생활 동안 안경 씨는 회덮밥을 먹어 본 적이 있을까? 까다로운 그곳 식단으로 봐서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는 그 어떤 식재료도 반입될 수 없다.) 아마 먹어 본 지 오래일 것이다. 그곳을 나올 때까지 좋아하는 회덮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을 수 없다는 것, 그것 만으로도 죗값은 치러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회덮밥 앞에서는 자연스레 안경 씨가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