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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평점 :
-20230805 김금희. 재독.
아이들 방학이라 그런지 별로 재미없는(사실 잘 모르는) 컨텐츠들만 가득하던 OTT목록에 제법 아는 영화들이 생겼다. 나흘 전에 아쿠아리움에 가서 흰돌고래 보고 온 것 말고는, 매일 점심 먹고 하드 하나씩 물려주는 것 말고는 여름방학이라고 특별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마련해주는 데 게을렀다. 나는 내 산수문제를 풀고, 내 책을 보고, 아이들은 저들대로 알아서 논다. 그나마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야 영화나 보자” 하고서 어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봤다. 나는 다섯 번도 넘게 본 영화라 나도 모르게 자꾸 다음 대사를 스포일러 하고 있었다. 오늘은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이건 세 번 밖에 안 봐서 내가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게 내 상상력인지 기억력인지 헷갈려서 이러이러는 건가? 하고 말하면 곁의 사람이 아이들 눈치를 보며 스포잖아, 점잖게 나무랐다.
자꾸 봤던 영화나 드라마만 보고, 옛날 노래만 듣고, 최신의 생생하고 더 재미있다는 컨텐츠들을 피해다니는 건 노화와 보수화의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책은 희고 검은 글자들 뿐이라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탁 덮거나 쉴 수 있으니 안 봤던 걸 겁없이 본다. 그런데 어느 날은 뭔가 지쳐있었고 (그냥 산수를 못해서 또 빡이 침. 킬러문제도 아니고 그냥 곱셈공식인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러다가 김금희 소설을 떠올렸다. 김금희 소설 뭐 읽을까요? 하는 두 번의 질문에 재잘재잘 하다가, 아, 나 정말 김금희 좋아하는 거 맞냐 왜 기억도 안 나고 최근엔 읽은 거도 없는데...하다가 이미 읽었던 짧은 소설집이랑, 단편 소설집을 하나씩 가져다 가까이 꽂아 두었다.
짧은 소설집을 먼저 보았는데, 힘아리가 없을 땐 정말로 크게 데미지 없이 고만고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겨우 일주일도 안 된 무렵이었더라. 삼분의 일 읽고 쉬면서 다른 책 보고, 또 삼 분의 일 보다 조금 안 되게 읽고 다른 책 또 보고, 오늘 삼 분의 일 보다는 좀 많이 남았던데 인터스텔라 보고 나서 중국냉면 밀키트로 다같이 점심 먹고 나서 뚝딱 읽었다.
음. 소설이 짧은 분량이라서 아주아주 여러 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편하게 편안하게 읽히네, 하나하나 대추야자 집어먹는 거 같네...하던 게 아, 너무 짧아서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에 남는게 없네… 재미가 줄어든 걸 보면 다 읽을 무렵에는 내가 회복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읽을 수록 뭔가 김금희 모양 얼음틀, 델리만쥬틀, 같은 게 있고 거기에 국물(?) 뚝딱 붓고 얼리거나 구워서 뚝딱 찍혀나온 결과물을 하나씩 뽑아 먹는 느낌이었다. 그 틀 만드는 건 공장에서 뚝딱 안 되고 장인이 한땀한땀 조각칼로 파가지고 특제로 만든 건 알겠는데, 또 그런 걸 연속으로 읽다보면 거기 양념이고 소스고 바른 건 조금 씩 다른 거를 알겠지만 또 그냥 그렇게 뭔가 틀을 간파한 사람이 이런 거 백 개도 쓸 수 있다!!하고 찍어내는 느낌도 들었다. 엽편 말고 전에 새로 나온 단편들 읽을 때도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장인 같기도 하지만 매너리즘 같을 때도 가끔 있는 것이지…
한국소설은 단편은 원고지 70-100매 분량으로, 장편은 한 권 짜리는 책 한 권 찍어낼 정도의, 그러니까 단편이 적게는 다섯 개에서 일곱 개 정도 한 권에 묶이니까, 원고지 350매에서 500매 안짝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라는 게 뭐 그렇게 딱 분량 정해 놓고 휙 튀어나오는 건 아닐 텐데 아무래도 이게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규격이 그대로 정형화되어서 굳어진 건가 싶다. 그러니까 한국소설은 매니아층 있는 SF나 무협, 판타지 이런 것처럼 한 갈래의 장르처럼 보이고, 시조나 하이쿠처럼 뭔가 협의된 격식 마저(최소한의 분량이나, 서사가 흘러가는 방식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있는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엽편은 거기에서는 좀 벗어나 있어 한 두 개 볼 때까지는 신선함도, 좀 덜 부담되는 느낌도 있는데, 짤막한 소설들이 넘칠 만큼 묶여 있어서 읽다보니 왜 다 고만고만해...하던 게 오헨리! 오헨리 소설 모음집 기분이었다.
단편소설은 그래도 몸에 인이 박혔는지 익숙해졌는지 책 한 권에 담긴 대여섯일곱 편을 읽고 나서 독후감 쓰면 한동안 이야기나 인물이 남는 기분이 드는데, 엽편은 2년 반 만에 읽는데 다 너무 생소했다. 느낌은 남았는데 인물도 서사도 다 새로 읽는 것 같은 거다… 이게 이득인지 아쉬운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분량 때문에 인물에 대한 정보량이 너무 적어서 피상적으로 인물과 만났다가 완전 친해지기 전에 이야기가 금세 끝나버려서 그런 것 같다.
엄마에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권해드렸더니 급 관심을 가지시고는 연달아 두 번을 읽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것도 참 신기해서 ㅋㅋㅋ뭔 소설도 모범생 시험공부하듯 보시네… 봤던 거 또 보는 건 영화랑 드라마로 족하니까, 인생이 생각보다 짧으니까, 야 임마 너 아직 이것도 안 읽었냐, 하는 새 소설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으니 옆에 꽂아둔 ’너무 한낮의 연애‘는 슬며시 원래 자리로 가서 쉬라고 한다. ㅋㅋㅋㅋ 거 그 근처에’관촌수필‘은 봤던 거긴 한데 20년 됐으니까 안 본 거나 다름 없어서 (왠지 나 보는 수능에 다시 나올 거 같아서) 이건 봐주기로 하고... 앞으로는 안 본 거 보자 안 본 거 ㅋㅋㅋㅋ
+밑줄 긋기-이번 밑줄들은 2년 전 독서와 거의 안 겹쳐서 좋았다.
-회사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간신히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햄버거 가게에서 에그머핀 세트를 시켰다. 연이어 이틀만 먹어도 질리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머릿속을 커피로 깨우며 하는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백지에 가까운 다이어리에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을 적어보거나 이제는 사이가 소원해진 사람들의 SNS계정에 들어가 댓글을 남길까 말까 고민해보는 것. 비 구경을 하거나 보도블록 사이로 난 풀잎들에 괜히 시선을 두는 것. 사실상 앞으로 낮 동안 선미가 해야 할 업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었는데, 왜 그런 무용한 것들을 할 때만 서울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41, ’그의 에그머핀 2분의1‘중)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77-78,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중)
-“나는 사랑에는 그런 무한정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건이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연애에 동의했고 나는 귀가 솔깃했다.
“야, 근데 생각하면 한심하지. 내가 뭐라고 걔 인생을 그렇게 걱정해. 쓸모없고 안 돌아오지.”
“안 돌아오니까 좋지. 주는 족족 돌아오면 정 없잖아.”
(119)
-늘 있는 좌석버스의 난폭 운전 속에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의 머리카락이나 소매나 어깨가 스칠 때면 나는 이런 계절을 보내면 보낼수록 언젠가는 이 순간의 기억들을 물리적 통증에 가까운 아픔을 각오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울 수 없으리라 서늘하게 예감하기도 했다.
(124, ‘영건이가 온다’, 중. 몇 년 전에는 바로 이 다음 부분에 밑줄을 쳐 옮겨 놓았었다. 다시 읽다 보니 이 소설은 진짜 다 밑줄 벅벅 긋고 싶게 좋은 부분이 많았다. 보아를 그렇게 좋아한 적 없지만 보아를 좋아하는 남자애를 좋아한 적은 있어서 더 예사롭지 않게 읽힌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꼭 그렇지 않아? 이렇게 겨울을 견디는 동안에는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의 경계에 놓인 것 같아.” (209, ‘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