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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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0 크리스티앙 보뱅.


사실 난 보뱅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 책 좋아! 하고 말할 때도 사실 걱정된다. 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누가 그 책을 안 봤으면 좋겠다. 보고 나서 에이 안 좋잖아, 하면 미안할 것 같다.

몇 학번? 하고 반말하며 자기가 동문 선배임을 각인시키려던 교감 선생님은 나중에 공석이 된 업무를 떠맡기려고 나를 불러다가 으름장을 놓았다. 네가 어리잖아. 네가 해야지. 나는 거기다 대고 저 우울증이에요, 약 먹고 있어요, 하고 줄줄 울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성대결절까지 와서 병가를 내겠다고 하니 얼른 쓰라고 했다. 우울증 진단서도 낼까요? 하니까 그건 뭣하러 내냐면서 손사래쳤다. 능력있는 사람이었는지 교감 온지 일 년 만에 다른 학교 교장으로 가버렸다. 무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그 사이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삼년차에 삼개월 가량의 휴가를 낸 시절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자유로웠다. 여기저기 공연을 보러 다녔다. 사람들을 만났다. 무서운 영화를 잔뜩 보았다. 휴가 막바지에 예정 없이 애를 갖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애엄마가 됐지만… 그것이 나의 스물 일곱. 음반 발매. 신촌에서의 마지막 공연. 아무도 모르는 젊은이의 은퇴.

이름이 너무 많아서 다 읽고도 진짜 이름을 모르겠는, 레베카라고 하겠다. 앞뒤 안 가리고 마음대로 어디든 떠나버리는 레베카랑 나는 맞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든 자리를 비우려면 이유를 대야하고, 내 빈자리를 채울 이들에게 맡길 것들이 있다. 열아홉 스물 언저리에 가출을 많이 하긴 했지만, 폭력으로부터 도피에 가까웠고, 그냥 웃음이 많고 좀 미친 엄마나 과묵하고 완벽주의인 아버지 정도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나는 걱정과 불안 없이 떠나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자유를 참 좋아하면서도 저렇게 아무런 매인 것 없이 남들은 불안하거나 말거나 걱정하거나 말거나 훌쩍 떠나 다른 이름이 되는 레베카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공감하거나 하지 못했다. 그냥 짜증나… 이건 부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제목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마음 가는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주인공과 문장이 제법 일치하는 소설이었다. 새삼 나는...역시 셀프 고문으로 글읽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엔간한 고생하지 않는 주인공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 것일까… 읽는 마음은 가벼운 주인공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냥 좀 사강 같으면서 로맹가리 같기도 한데 그만큼 호의를 가지고 읽지는 못해… 둘다 가질 수 없다면 두 놈다 버리겠다! 이게 뭐야… 배우도 하고 작가도 하고 네가 좋은 거 다해라…

교훈은, 얇다고 해도 숙제처럼 읽지 말자. 나한테 전혀 모르는 책 누가 읽어 달라 그러면 반사, 하자. 세상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더라도 아 됐고, 책 말고 사랑만 내놔 하자. 내 책은 내가 고른다. 보뱅 안녕. 난 준비가 안 됐어. 클린앤클리어 광고만 봐도 난 그 소녀 감성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 지금도 그래… 내 안식처는 다크앤더티어야...

+밑줄 긋기
-나는 행렬에 앞장섰고, 개양비귀꽃들로 가장 붉게 물든 땅을 골랐다.
(인상 깊어서가 아니고, 내가 본 전자책은 개양귀비가 개양비귀로 오타가 나 있었다. 아이고 웃겨, 하고 옮기고 보니 뒤에는 또 멀쩡히 양귀비였다. 양귀비 먹고 취했나.)

-신성함은 연약하다.

-그래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기쁘다. 나는 그게 좋아. 아주 좋은 신호야. 우리가 너를 잘 키웠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니까.

-사랑을 할 때는 서둘러 했는데, 그 사랑에서는 훔친 과일 맛이 났다.

-지혜는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마음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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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1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책에 대헤 고민중이예요.
한 번 더 읽어야겠어요.
사강보다는 훨씬 무겁게 여겨졌어요.
‘가벼움‘이란 단어를 더 생각해봐야겠더라고요^^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0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새삼 제 미감이랑 정서가 남들하고 구조가 다르다는 걸 재확인하고 가요...다들 아름답다, 감동이다 할 때 혼자만 못 느끼고 소외감 ㅋㅋㅋㅋ그래서 알아서 요령껏 피해 읽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실패하고 말았네요... 맑고 밝은 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탱되는 부분도 있는 세상 같습니다 ㅋㅋㅋ

2023-08-11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11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방금 애들 가르치는 유열님 잘어울린다고 하고 왔는데.. 아니 취소.. 아니 그니까 잘어울리긴하는데 유열님 교사생활 힘드셨군요..😢
저도 가벼운 마음 읽으면서 부러웠어요!!!!!!ㅠㅠ 그래서 대리만족이 돼서 좋았고 ㅋㅋㅋ 저는 실제로도 그런 유형들 부러워하거든요. 천성이 걱정 없고 될대로 돼라 식이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 ㅋㅋㅋ 사실 삶 자체가 무거운건데 그런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건 타고남의 경지다... 하면서 ㅋㅋㅋ 근데 뤼시가 딱 그랬고 거기다가 보뱅의 문장들이 제 취향이라 더 좋았어요 ㅎㅎ
근데 패배의신호 루실을 보면서 저는 가벼운마음 뤼시가 떠올랐거든요? 유열님은 루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6   좋아요 2 | URL
루실이도 제멋대로긴 한데 마지막에 결국 타협하고 끌려가서 배드엔딩이잖아요? 스위스 가서 중절도 해야 했고 화려한 생활 버리고 버스 몇 시간 기다리고 출판사 가서 노동하고... 그 정도 몸 고생 맘 고생 하면 좀 봐주는 게 있는데 가벼운 마음의 빛돌이는 일단 자기가 내내 애고 자기는 애한테 발목을 안 잡혀서 내내 애일수 있지 싶어서...게다가 작가도 전혀 모르다가 아 사강처럼 젊은 여자 때 글이야? 할머니가 쓴 글이야? 하다가 돌아가신 시인 할배가 오십대 아저씨 때 썼다는 거 알고 이새끼가 판타지가 판타지 했네 하고 좀 화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요 은오님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제 읽어주세요 하지 마요 나 생각보다 곱고 예쁜 거 보면 그거 붙들고 읽는게 더 힘들더라구요...병든 사람임... 풀 먹는 호랭이임.... 개미 먹는 사슴임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7   좋아요 1 | URL
저는 같은 아저씨가 쓴 거래도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이런 데서 좀 더 미감을 느끼더라구요 ㅋㅋㅋ 부부가 각자 바람피고 가정 깨지고 개막장 드라마인데 그런거 잔잔하게 써 놓은 그런거가 더 좋음 ㅋㅋㅋ

은오 2023-08-11 10:01   좋아요 1 | URL
가벼운 나날 안그래도 보관함에 있는데 조만간 읽어볼게요! ㅋㅋㅋ 유열님 취향 알아가는중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0:10   좋아요 1 | URL
은오님처럼 말랑말랑한 두뇌 무엇이든 호기심 가지고 봐야지! 하는 그 말랑말랑함 부럽습니다... 난 굳었어...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썩으면서 굳었어... 틀렸으니 먼저 가...

hnine 2023-08-1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의 책이 반유행열반인 님 이 글 만큼 재미있을까요? **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51   좋아요 1 | URL
투덜투덜 투우덜 이런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에이치나인님 ㅎㅎㅎ 가만보니까 보뱅님이 글을 이쁘게는 써놨던데 농담이 없더라구요. 말장난 같은 것도 잘 안 함. 저는 초콜릿도 다크 90퍼센트 이런 거를 먹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8-1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은 저한테 어떨까 궁금해집니다.일단 열반인님에게는 별로였군요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4:29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는데 나만 안 좋아서 느끼는 외로움...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ㅋㅋㅋㅋ시인 겸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그래서 문장은 간결하고 예쁜데 저한테는 뭔가 발작버튼 같은 게 눌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취향이란ㅋㅋㅋㅋㅋㅋ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2 - 제 꿈 꾸세요
김멜라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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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8 김멜라, 김지연, 백수린, 위수정, 이주혜, 정한아, 이서수.

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이렇다.
한국소설 어떤 걸 읽을지 고민하는 이웃에게 수상작품집 같은 걸 읽고 취향에 맞는 작가를 찾아보세요, 조언하고는 뭐여 정작 나는 너무 오래 새 작가들을 안 찾아 나섰다 고였다 싶었다.
문득 작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읽은 친구가 이서수 소설을 보니 내 소설 생각이 났다 어쩌구 그래서 그땐 잊고 있었는데 그게 이서수가 맞았나? 친구에게 다시 물으니 몰라, 기억 안 나, 다 까먹었어, 친구는 이제 공부하느라 책을 하나도 읽지 않는 놀라운 삶을 산다.
2021 수상집을 보려다가 대상 작품을 포함한 이서수의 새 소설집을 전자책으로 미리 질러버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한 번도 안 읽은 작가 휙 질러버리고 읽는 내내 후회하는 거 아닐까. 정작 소개해놓고 잊어버린 친구새끼를 욕하는 건 아닐까.

다른 친구에게 켄트 하루프의 소설 설명을 했더니, 몇 줄 듣기만 해도 뭔 소설 말하는지 알겠네, 해서 내가 설명을 잘해서 그래, 했다. 정말 그 소설이 맞나 걱정되서 구글에 켄트 하루프를 쳤더니, ‘밤에 우리 영혼은’이 이서수의 인생책으로 소개된 페이지가 보였다. 이서수의 인생책이래, 했더니 이 친구는 이서수를 안 읽었다고 해서 더 불안해졌다. 나는 위대한 한 걸음을 외로이 내딛어야 하는가…

전자도서관을 뒤지다가 2022수상집을 찾았는데, 여기 이서수가 작년 대상 수상자 지위로 자선작 내놓은 것도 있고, 수상작가들 보니 모르는 작가 아는 작가 골고루여서 한 번 보기로 했다.

결론은, 나는 읽지 않고도 내 마음에 들 가능성이 높은 작가를 찾았고 ㅋㅋㅋ 수상작품집 읽으면서 제일 마음에 든 건 올해 수상작이 아니라 마지막에 실린 작년 수상작가의 소설이었다. 밑줄을 얼마나 벅벅 쳐놨는지. 소설집 재밌겠다!!! 아이 신난다!!!! 그런데 나보다 만배는 잘 쓰는데 너는 왜 내 생각을 했니? 그리고 잊어버렸다고???이새끼가…

-김멜라, ‘제 꿈 꾸세요’
21년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읽고 더는 최신 신예작가들 작품을 안 찾아 읽었었다. 거기서 김멜라의 소설은 아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뤘던 것 같다. 기억 잘 안 나… 여성과 여성의 사랑,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고독사를 다뤘다. 첨예한 지금의 문제들 잘 가져다가 쓰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사람 얄밉다….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죽은 뒤에 내 시체가 썩기 전에 나를 찾아줄 사람 꿈에 나타나려고 길잡이 따라 죽은 이가 나서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그런 내린 눈처럼 보송보송한 이야기도 뭐 필요는 하겠지. 나는 필요 없어!!!!!!! ㅋㅋㅋㅋㅋㅋ
김멜라의 자선작으로 실린 ’메께라 께라‘는 더 동화였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엄마가 동생 낳는 사이 제주도에 있는 할아버지 사는 오름에서 노인들하고 신나게 놀다 집에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었다. 소설이랑 작가랑 동일시하는 거 제일 바보짓인거 알면서도 작가 이름도 특이하니 뭐 재일한국인 작가라도 되는가? 아님 제주 출신? 하고 프로필 검색했다가 에에이 서울출생 본명은 김은영이래...하고 그냥 일본 좋아하나 보다 작가들은 일본 여행 하는 소설을 참 많이들 쓴다 나는 오키나와 밖에 안 가봤다구…

-김지연 ‘포기’
김지연 소설도 젊작에서 보고 그땐 너무 별로네...했는데 돈 떼먹고 도망간 전남친 때문에 힘든 사촌형제 지켜보고 양꼬치 먹는 이야기는 그럭저럭 읽을 만 했다. 조금 더 읽어 볼만 할란가…

-백수린 ‘아주 환한 날들’
백수린 소설가는 할머니 나오는 소설에 재미들었냐...싶게 이번 소설에는 애들 맡는 것도 아니고 애들이 거부한 앵무새 맡는 할머니가 나왔다. 그래도 비교적 젊은 작가들 중에선 제일 할머니 소설 잘 씀…. ㅋㅋㅋㅋㅋ진짜 할머니 되면 완전 할머니 소설 장인되겠음…

-위수정 ‘아무도’
아 이건...내가 뭘 읽은 거지… 다른 남자 좋다고 별거 하고 나와서 정작 좋아하는 남자는 쌩까고 혼자 살게 된 여자는 자기 아빠랑 밥먹고 달리기 하고 혼자, 별거 중인 남자랑 아이스크림 먹는다. 우린 별로 맞지 않겠군요.

이주혜 ‘우리가 파주에 가면 꼭 날이 흐리지’
팬데믹 시대에 관해 소설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박상영 소설까지는 그럭저럭 읽었는데, 이 소설 속 갈등과 다친 마음, 그러니까 우리 끼리 아자아자 하던 언니들이 코로나 옮기면서 틀어지는 이야기는 비장한 이야기인데도 나는 자꾸 희극적으로 읽혔다. 미안해… 각자가 겪은 팬데믹은 너무 다르고, 계층화 되어 있고, 감염시기에 따라 너무너무 다르다. 나는 진짜 늦게 걸려가지고, 게다가 직장 안 나가던 시절이라 격리 시설도 나라에서 막 전화로 체크하는 것도 전혀 부재인 때를 보내고 집에서 그냥 타이레놀 먹고 처박혀 있었어서… 그래서 팬데믹에 대해 쓰는 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주혜 작가님 단편소설은...우린 정말 맞지 않아 유감입니다…

정한아 ‘지난밤 내 꿈에’
한센인의 후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갑자기 떨어진 월 오백만원의 무노동 소득.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많이 흥미로웠고 외할머니와 엄마와 딸의 관계를 미묘하게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나오는 같은 이름의 두 아이 이름이 내가 딸에게 지어준 이름이라 히히, 역시 많이들 픽하는 이름이로군, 홍상수보다 내가 먼저였어...하고 괜히 흐뭇했음...

이서수 ‘연희동의 밤’
3년 전에 연희 문학 창작촌에 들어가 있던 친구가 김초엽도 있다길래 몰래 딱밤이나 때려주고 도망치라고 했었다. 그 친구는 이번 여름에도 같은 곳에 들어가 망한 사랑에 대해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돈이 없어 먼 곳의 사람을 만날 비행기값이 없어 헤어지는 마음이 어떤 일인지 짐작도 못할 일인데 그 소설이 완성되면 읽고 짐작해 봐야겠다. 그리고 가장 해피엔딩은 그 소설이 어디 창작기금이든 문학상이든 타가지고 상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다시 외국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일이 아닐지…
친구가 연희동 있던 시절에 나는 신촌의 문화센터에 소설 강좌를 수강한다고 다녀서-강사인 소설가 선생님은 친구가 대학 다닐 때 배웠던 선생님인데 잘 가르치신다고 해서 굳이 찾아갔던 거였다. - 하여간에 저녁 늦은 강의 전까지 비는 시간에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신촌 인근을 돌아다녔었다. 그러니까 나는 연희동에 지내는 친구를 만나긴 했지만 연희동은 못 가봤다. 이서수가 소설로 끌고 다녀서 대신 다녀봤다. 신촌이랑 별 다를 거 없네… 그렇지만 이 친구는 정작 이서수를 안 읽었대고 나는 이제 읽었고 또 읽을 것이다. 결국 걱정은 괜한 것이었고 이 수상집 안 읽고 바로 단편집 읽어도 됐겠다 ㅋㅋㅋㅋ건진게 많이 없다 ㅋㅋㅋ여러분 이서수 같이 읽읍시다ㅋㅋㅋㅋ


+밑줄 긋기
-내가 꿈을 포기한 날, 이 세상이 어떤 풍경이었는지 남겨두려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언니가 썼던 각본에도 저 따위 대사가 많았다. 그러니 한 번도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없지. 언니의 각본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더라면 비웃음을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짤방 이미지로 숱하게 소비되었을 것이다. 나는 언니의 감성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인간의 오만 가지 감정을 단 두 가지로 정리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고 싶은 마음.

-선생님은 왜 하필 술집에서 글을 쓰세요? 안 시끄러우세요?
난 시끄러워야 글이 더 잘 써져.
저는 그런 사람 미워요.
뜬금없는 말에 은단 씨와 나의 눈이 동시에 커다래졌다. 시끄러운 곳에서 글을 잘 쓰는 것이 왜 미움받을 일이지.

-언니가 으깨어 놓은 두부가 우리의 으깨어진 꿈 같았다. 언니의 으깨어진 사랑 같았다. 언니의 으깨어진 각본 같았다. 어떻게 그렇게 재미없는 각본을 쓸 수가 있지. 나는 지금도 그게 가장 큰 의문이지만, 언니에게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나는 언니를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했으니까.

-노래가 끝나자 언니가 말했다.
이 노래를 들으니까 내가 시대의 등불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언니의 말에 웃지 않았다. 시대의 등불이라니……. 나는 언니를 마주 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그 등불은 꺼졌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알았어. 나도 족쇄를 찰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에서 20세기의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동안, 우리는 21세기에 져서 꿈을 버린다. 둘 중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일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믿기 힘든 두 가지 일이 우리의 발밑을 위태롭게 흔들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바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모두 잊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한 가지만 떠올랐다. 나는 나를 착취해서 부자가 될 것이다.
(이서수, ‘연희동의 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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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9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9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3-08-11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기서는 김멜라 작품만 읽어봤네요.젊작상에도 수록되어 있었거든요.저는 귀여운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열반인님은 역시 별로셨군요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4:32   좋아요 1 | URL
예전에는 어린아이 화자인 소설들도 곧잘 읽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꺼리게 되는 화자나 호칭이 있습니다. 너는- 하는 제가 너인칭이라고 하는 소설이랑, 동물 의인화한 화자, 다 늙은 작가가 어린이 화자 흉내내는데 그게 정교하지 못할 때 (정교해도 뭔가 어느 순간 빈정 상할 때 ㅋㅋㅋ), 남자 작가가 여자 주인공 초점화자로 진행할 때,(반대로 내가 그렇게 쓴 거도 누가 보면 이상하다 할건데 ㅋㅋㅋ) 점점 까다로워 지는가 봅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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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5 김금희. 재독.


아이들 방학이라 그런지 별로 재미없는(사실 잘 모르는) 컨텐츠들만 가득하던 OTT목록에 제법 아는 영화들이 생겼다. 나흘 전에 아쿠아리움에 가서 흰돌고래 보고 온 것 말고는, 매일 점심 먹고 하드 하나씩 물려주는 것 말고는 여름방학이라고 특별한 경험을 아이들에게 마련해주는 데 게을렀다. 나는 내 산수문제를 풀고, 내 책을 보고, 아이들은 저들대로 알아서 논다. 그나마 같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야 영화나 보자” 하고서 어제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봤다. 나는 다섯 번도 넘게 본 영화라 나도 모르게 자꾸 다음 대사를 스포일러 하고 있었다. 오늘은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이건 세 번 밖에 안 봐서 내가 다음 장면을 예상하는게 내 상상력인지 기억력인지 헷갈려서 이러이러는 건가? 하고 말하면 곁의 사람이 아이들 눈치를 보며 스포잖아, 점잖게 나무랐다.

자꾸 봤던 영화나 드라마만 보고, 옛날 노래만 듣고, 최신의 생생하고 더 재미있다는 컨텐츠들을 피해다니는 건 노화와 보수화의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책은 희고 검은 글자들 뿐이라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탁 덮거나 쉴 수 있으니 안 봤던 걸 겁없이 본다. 그런데 어느 날은 뭔가 지쳐있었고 (그냥 산수를 못해서 또 빡이 침. 킬러문제도 아니고 그냥 곱셈공식인데 너무 오래 걸려서…) 그러다가 김금희 소설을 떠올렸다. 김금희 소설 뭐 읽을까요? 하는 두 번의 질문에 재잘재잘 하다가, 아, 나 정말 김금희 좋아하는 거 맞냐 왜 기억도 안 나고 최근엔 읽은 거도 없는데...하다가 이미 읽었던 짧은 소설집이랑, 단편 소설집을 하나씩 가져다 가까이 꽂아 두었다.

짧은 소설집을 먼저 보았는데, 힘아리가 없을 땐 정말로 크게 데미지 없이 고만고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게 겨우 일주일도 안 된 무렵이었더라. 삼분의 일 읽고 쉬면서 다른 책 보고, 또 삼 분의 일 보다 조금 안 되게 읽고 다른 책 또 보고, 오늘 삼 분의 일 보다는 좀 많이 남았던데 인터스텔라 보고 나서 중국냉면 밀키트로 다같이 점심 먹고 나서 뚝딱 읽었다.

음. 소설이 짧은 분량이라서 아주아주 여러 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편하게 편안하게 읽히네, 하나하나 대추야자 집어먹는 거 같네...하던 게 아, 너무 짧아서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에 남는게 없네… 재미가 줄어든 걸 보면 다 읽을 무렵에는 내가 회복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읽을 수록 뭔가 김금희 모양 얼음틀, 델리만쥬틀, 같은 게 있고 거기에 국물(?) 뚝딱 붓고 얼리거나 구워서 뚝딱 찍혀나온 결과물을 하나씩 뽑아 먹는 느낌이었다. 그 틀 만드는 건 공장에서 뚝딱 안 되고 장인이 한땀한땀 조각칼로 파가지고 특제로 만든 건 알겠는데, 또 그런 걸 연속으로 읽다보면 거기 양념이고 소스고 바른 건 조금 씩 다른 거를 알겠지만 또 그냥 그렇게 뭔가 틀을 간파한 사람이 이런 거 백 개도 쓸 수 있다!!하고 찍어내는 느낌도 들었다. 엽편 말고 전에 새로 나온 단편들 읽을 때도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장인 같기도 하지만 매너리즘 같을 때도 가끔 있는 것이지…

한국소설은 단편은 원고지 70-100매 분량으로, 장편은 한 권 짜리는 책 한 권 찍어낼 정도의, 그러니까 단편이 적게는 다섯 개에서 일곱 개 정도 한 권에 묶이니까, 원고지 350매에서 500매 안짝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라는 게 뭐 그렇게 딱 분량 정해 놓고 휙 튀어나오는 건 아닐 텐데 아무래도 이게 공모전에서 요구하는 규격이 그대로 정형화되어서 굳어진 건가 싶다. 그러니까 한국소설은 매니아층 있는 SF나 무협, 판타지 이런 것처럼 한 갈래의 장르처럼 보이고, 시조나 하이쿠처럼 뭔가 협의된 격식 마저(최소한의 분량이나, 서사가 흘러가는 방식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있는 것 같다. 사실 잘 모르겠다. 엽편은 거기에서는 좀 벗어나 있어 한 두 개 볼 때까지는 신선함도, 좀 덜 부담되는 느낌도 있는데, 짤막한 소설들이 넘칠 만큼 묶여 있어서 읽다보니 왜 다 고만고만해...하던 게 오헨리! 오헨리 소설 모음집 기분이었다.

단편소설은 그래도 몸에 인이 박혔는지 익숙해졌는지 책 한 권에 담긴 대여섯일곱 편을 읽고 나서 독후감 쓰면 한동안 이야기나 인물이 남는 기분이 드는데, 엽편은 2년 반 만에 읽는데 다 너무 생소했다. 느낌은 남았는데 인물도 서사도 다 새로 읽는 것 같은 거다… 이게 이득인지 아쉬운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분량 때문에 인물에 대한 정보량이 너무 적어서 피상적으로 인물과 만났다가 완전 친해지기 전에 이야기가 금세 끝나버려서 그런 것 같다.

엄마에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권해드렸더니 급 관심을 가지시고는 연달아 두 번을 읽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것도 참 신기해서 ㅋㅋㅋ뭔 소설도 모범생 시험공부하듯 보시네… 봤던 거 또 보는 건 영화랑 드라마로 족하니까, 인생이 생각보다 짧으니까, 야 임마 너 아직 이것도 안 읽었냐, 하는 새 소설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으니 옆에 꽂아둔 ’너무 한낮의 연애‘는 슬며시 원래 자리로 가서 쉬라고 한다. ㅋㅋㅋㅋ 거 그 근처에’관촌수필‘은 봤던 거긴 한데 20년 됐으니까 안 본 거나 다름 없어서 (왠지 나 보는 수능에 다시 나올 거 같아서) 이건 봐주기로 하고... 앞으로는 안 본 거 보자 안 본 거 ㅋㅋㅋㅋ


+밑줄 긋기-이번 밑줄들은 2년 전 독서와 거의 안 겹쳐서 좋았다.

-회사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간신히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햄버거 가게에서 에그머핀 세트를 시켰다. 연이어 이틀만 먹어도 질리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조금씩 뜯어 먹으며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머릿속을 커피로 깨우며 하는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백지에 가까운 다이어리에 특별할 것 없는 일정을 적어보거나 이제는 사이가 소원해진 사람들의 SNS계정에 들어가 댓글을 남길까 말까 고민해보는 것. 비 구경을 하거나 보도블록 사이로 난 풀잎들에 괜히 시선을 두는 것. 사실상 앞으로 낮 동안 선미가 해야 할 업무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었는데, 왜 그런 무용한 것들을 할 때만 서울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41, ’그의 에그머핀 2분의1‘중)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문득 하는 생각, 대체 지하철의 이 빈 공간들이 어떻게 지상의 압력을 견디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빈 공간이 견디는 것이 아니라 지상이 빈 공간을 견디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견디고 있어야 이 도시라는 일상의 세계가 유지되는 것이고, 각별히 애정한, 마음을 준 누군가 우리 일상에서 빠져나갔을 때, 남은 고통이 상대와 유리된 오로지 내 것이 되면서 그 상실감을 견뎌내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대 역시 견뎌야 완전한 이별이 가능한 것처럼. (77-78, ’우리가 헤이, 라고 부를 때‘중)

-“나는 사랑에는 그런 무한정의 투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영건이는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연애에 동의했고 나는 귀가 솔깃했다.
“야, 근데 생각하면 한심하지. 내가 뭐라고 걔 인생을 그렇게 걱정해. 쓸모없고 안 돌아오지.”
“안 돌아오니까 좋지. 주는 족족 돌아오면 정 없잖아.”
(119)

-늘 있는 좌석버스의 난폭 운전 속에 그렇게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의 머리카락이나 소매나 어깨가 스칠 때면 나는 이런 계절을 보내면 보낼수록 언젠가는 이 순간의 기억들을 물리적 통증에 가까운 아픔을 각오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울 수 없으리라 서늘하게 예감하기도 했다.
(124, ‘영건이가 온다’, 중. 몇 년 전에는 바로 이 다음 부분에 밑줄을 쳐 옮겨 놓았었다. 다시 읽다 보니 이 소설은 진짜 다 밑줄 벅벅 긋고 싶게 좋은 부분이 많았다. 보아를 그렇게 좋아한 적 없지만 보아를 좋아하는 남자애를 좋아한 적은 있어서 더 예사롭지 않게 읽힌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무는 꼭 그렇지 않아? 이렇게 겨울을 견디는 동안에는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는 것의 경계에 놓인 것 같아.” (209, ‘오직 그 소년과 소녀만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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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05 2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 영화나 보자”가 왤케 웃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ㅌ 무슨 친구한테 말씀하신줄 ㅋㅋㅋㅋ 유열님 친구같은 엄마일거같다 맞나요?

반유행열반인 2023-08-06 13:49   좋아요 2 | URL
그건 저 말고 저희 어린이들에게 물어야 ㅋㅋㅋ(그냥 동네 일진 같다고 할지도요)

미미 2023-08-05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포잖아, 점잖게 나무랐다‘요ㅋㅋㅋㅋ가족들 모습이 그려져요

반유행열반인 2023-08-06 13:50   좋아요 2 | URL
사실 나무랐다기에도 약한 어조라 워워- 하는 정도요 ㅋㅋㅋ

새파랑 2023-08-06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김금희 작가님은 이 책으로 처음 접헸었습니다 ㅋ

오헨리 소설모읍집이랑 비슷한 느낌도 있긴 하네요. 역시 김금희=열반인님~!!

반유행열반인 2023-08-06 13:50   좋아요 2 | URL
등호는 적절하지 않은데요? ㅋㅋㅋ김금희 숨은 모질이 찌질이 팬 정도로요 ㅋㅋㅋ
 
[eBook] 누의 자리 트리플 18
이주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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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4 이주혜.


제목 붙인 이 문장은 내 것은 아니고, 오래 전 알던 어떤 아이의 미니홈피 이름이었던가 그 아이의 메신저 상태표시글이었던가 그랬다. 나는 이 문장으로 후렴 삼은 노래를 만들려다 실패하고, 이런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도 중도에 그만 두었다. 그런데 이주혜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다 보니 아주 비슷한, 거의 같은 문장을 읽었다. 늦은 사람이 땡. 늦게 태어나고 늦게 쓰는 것은 죄이다. 땡탈락. 그렇다고 삐져서 그런 건 아니고 ㅋㅋㅋ하여간에 이 소설집은 나랑 맞지 않았다. 악성독후감이 이어질 예정이니 멘탈을 지키실 관계자는 자리를 피해주세요...

오롯이 예닐곱 단편소설 모은 책이 아닌 건 왠지 최선 아닌 차선작들만 모을 것 같다. 트리플 시리즈 첫번째로 읽은 박서련 책이 아주 많이 별로였는데, 이 책도 그래서 걱정했는데, 차라리 그래서 그렇다고, 세 편만 모은 책이라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우연히도 트리플 읽은 두 작가를 처음 만난게 다 장편소설이었고, 모두 괜찮은 작품이었다. 그런데 단편은 다 나랑 안 맞네? 별로네? 장편보다 좀 못 썼네? 싶었다.

한 권으로 긴 이야기 묶고, 한 권 굵은 책 옮겨내고 그러던 작가들이라 스케일이 늘 큰 건지, 단편에 너무 많은 것들을 욱여 넣고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 따라가는 내내 좀 안 맞는 옷 입고 허부적대는 느낌이 들었다.

그놈의(아니 그년의) 너인칭이 너무 많이 나와 거슬렸다. 소설 세 편이 다 너, 너, 하는데 와, 나 너인칭 진짜 싫어하는 구나, 이번에 알았다.

여기 등장하는 사랑에 나는 외계인과 외계인의 사랑을 보듯 한순간도 공명하지 못했다. 영화 ‘캐롤’의 원작이 소설 ‘소금의 값’이라는데 나는 둘다 보지 않을 듯하다. 나는 왜 여자를 살면서 여자가 이렇게 낯설까. 나에게는 여자가 많이 어렵다. 사실 사람은 사랑은 원래 다 어렵지...


+밑줄 긋기
-아니, 누는 다시 태어나지 말자.

-톳, 도톳, 탓.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

(‘누의 자리’ 중)


-하이스미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롯의 아내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소설 속 캐롤과 테레즈의 고통에 집중했기 때문이겠지요. 만약 「마태복음」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거라면 고통보다는 사랑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금은 짜야 한다. 그게 소금의 값이고 소금의 대가이다. 캐롤과 테레즈의 입을 빌리면 이런 말이 되겠지요. 이 사랑은 고통이다. 그게 이 사랑의 값이고 대가이다. 소금은 짜서 소금이고 이 사랑은 고통이지만 끝내 사랑이다.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거야, 그렇지 않아?
(‘소금의 맛’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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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3-08-04 2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전 페이퍼 제 맘찍이 누의 자리였거든요. (니가 관계자니?) 악성 독후감이어도 좋아요. 고맙습니다. 이주혜 작가의 <그 고양이~> 어떠셨어요? 재밌게 봤거든요. (박서련 장편도 알려주시고요..) 왜케 다 주서먹으려고 하냐고 뭐라 하기 없기.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1:52   좋아요 3 | URL
아..저는 읽으면서 나는 안 맞아..했는데 유수님은 잘 읽으셨겠다 싶었어요. ㅋㅋㅋㅋㅋ 저는 ‘자두’만 봤구요 이주혜 작가님 당분간(혹은 영원히?) 쉴 것 같습니다. 이 기세면 저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도 못보는 거 아닌가 싶고... 박서련은 ‘채공녀 강주룡’ 봤는데 그게 데뷰작인가 그런데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단편은 몇 개 보니 아...안 되겠다... 너는 마음에 구멍이 너무 많은데 그게 나닮아서 버겁구나 (그리고 기대만큼 못 쓰는 구나 미안 메롱) 나는 더 못 쓰면서 성에 안 차면 이렇게 악플이나 달고 나새끼도 나다... ㅋㅋㅋㅋ맘찍 막 까서 죄송합니다...그래도 유수님은 소중합니다...(소중한데 대접이 이따위야...나쁜 반새끼)

유수 2023-08-04 21:57   좋아요 2 | URL
아 저도 누의자리 아직 안 읽었는데 이전 페이퍼 뭐부터 볼까 하셔서 그거 궁금한 마음에 투표한 거 말씀이에요. 저는 자두 아직이에요. 사는 놓고. 제 맘찍은 그 고양이에 있는데 반님이랑 갈리려나. 죄송해 마세요~ 전혀전혀~ (말줄임표 언젠가부터 비꼼의 냄새를 줄줄 흘리는데 제 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손사래톤😅😅)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1:59   좋아요 2 | URL
유수님 하여간에 (집에서는 모르겠고 알바 아니고) 나한테는 넘 착혀 ㅋㅋㅋ 자두는 좋았어요. 엄청 좋았어서 나한테 에이드리언 리치까지 팔았는데 단편은 제가 좀 원래 기준선을 너무 높게 잡고 이놈 이년 떼끼 더 잘 써라 막 그럽니다...(뭔데 니가 뭔데...ㅋㅋㅋ) 근데 진짜 유수님은 누의 자리 좋아할 거 같은데?? 끌리면 포기하지 마시고(얇아서 금세 봄) 꼭! 빌려보세요 희망도서 신청해서 보고 그때 사세요 ㅋㅋㅋㅋㅋㅋ

유수 2023-08-04 22:09   좋아요 3 | URL
제가 지금 보는 책에서 사드 나와서 멀고도 익숙한 기분으로 텍스트 따라가고 있음ㅋㅋ 딴길로 새는 거 무슨 일…
아무튼 저는 누의 자리 바로 못 읽을 거 같지만 왜 제가 좋아할 거 같다고 하시는지 매우 궁금함.. 이걸 잘 숙성시켜놓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2:30   좋아요 3 | URL
뭔가 사드 하면 내가 같이 연상될 걸 생각하니 이거 좋아해야 되나 으으으...사드는 진짜 갑툭튀 안 끼는데가 없어 생각보다 그래서 읽으니까 흠 난 봤지 끄덕끄덕 하는데 그게 좋은 일 같지가 않고...
이주혜 작가님이 엄청 감정선 타면서 적어둔 문장도 많고 불쑥불쑥 모성 억압 그러면서도 여성들끼리 위안 주고 받고 그런 거 안 빼먹고 다 넣으셨더라구요. 학원 강사도 나오고 학교 선생도 나오고 애 키우다 고생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리스도 만들고 뭐 그렇슴... 저는 그게 단편에는 너무 무리하게 많다 무겁다 그런 기분이긴 했는데 그런 거 소소하고 섬세하게 끼워주면 뭐 하나라도 걸려서 울림 얻는 독자들도 많겠다 싶었어요. 유수님은 나보다는 더 섬세하고 깊숙한 눈이니까 그런거 더 잘 볼 거 같음 ㅋㅋㅋㅋㅋ

유수 2023-08-04 22:37   좋아요 2 | URL
내 취향(의 테두리)을 무섭게 파악해 매달아두셨넼ㅋㅋ 두들겨 맞는 기분인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픈데 나쁘진 않다.. 될대로 되라 싶….
사드랑 반님을 묶어서 연상하진 않아요. 절대 읽지마라고 훠이훠이하신 게 연상되면 몰라도 ㅋㅋ 가르치길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하셨지만 참 잘 가르치실 거 같다는 제 짐작은 더 확고해집니다 후후

자목련 2023-08-08 08: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주혜의 책이라 반갑게 구매하고 읽었는데 리뷰는 아직 쓰지 못했어요. 어쩌면 쓰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요.
열반 님의 리뷰도 저와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 왠지 안도를 하는 ㅎㅎ
<자두>는 진짜 좋죠?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도 참 좋았어요.

반유행열반인 2023-08-08 09:54   좋아요 0 | URL
저는 자두만 보고 이 책을 보고 이번에 다른 수상집에서 단편 한 편 더 보고서 아...단편은 뭔가 늘 아쉽구나 싶었어요. 자두는 참 좋았습니다 ㅎㅎㅎ리뷰 쓰시게 되면 저보다 더 세심하게 제가 못 본 것 담겨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됩니다.
 

이거 한 번 해 보고 싶었다ㅋㅋㅋ 식자가 생각보다 어렵군요...
(원작:맛의 달인 38권 ‘라면전쟁’)

+무슨 책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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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3-08-04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왜 찔리죠? ㅋㅋㅌㅋ읽고 싶은 페이퍼 쓰면서 출판사 소개 복붙한적 있는 사람 나야나..

반유행열반인 2023-08-04 17:29   좋아요 3 | URL
셋째야 어서 오고... ㅋㅋㅋㅋㅋㅋ그래도 제공 받은 도서 광고는 아닐 거잖아요ㅎㅎㅎ

우끼 2023-08-04 17:30   좋아요 2 | URL
음.. 제공받은 것은 읽고.. 씁니다.. 읽으려고 제공받은 것이라..

Yeagene 2023-08-04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이거 열반인님이 만드신 거에요?어떻게?

반유행열반인 2023-08-04 18:11   좋아요 3 | URL
사진퍼다 하얀색 펜슬로 원래 대사 샤샤샥 지우고 아이패드 이미지 편집 메뉴에서 텍스트 넣기 하고 다른 메모앱에 적은 대사 복붙해서요??? ㅋㅋㅋㅋ피씨 시절에도 비트맵으로 공연 왕피씨(홍보포스터) 만들고 그랬습니다 포토샵 할 줄 모름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4 18:12   좋아요 4 | URL
그런데 저거 대사만 갈아주는 패러디 생성 웹페이지 누가 이미 만든 거 뒤늦게 발견했어요 ㅋㅋ내가 한 식자가 더 예쁨 ㅋㅋㅋㅋ

미미 2023-08-04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반인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3권 쓰셔야겠는데요? ㅋㅋㅋ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할 때 출판사 책소개 복붙하면 잘 받아줘요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4 18:15   좋아요 4 | URL
아아...그런 용도도 가능하군요 ㅋㅋㅋ그건 관료제용 문서(?)지만 독후감은 우리 아트하게 써야죠ㅋㅋㅋㅋ

우끼 2023-08-04 18:5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미미님도!!! 저도 그래요 !!!ㅋㅋㅋㅋ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시엔 출판사 책소개가 좋더라구요

미미 2023-08-04 19:01   좋아요 2 | URL
오 우끼님 찌찌뽕요!!ㅋㅋㅋㅋㅋ 저 맨날 퇴짜 맞다가 그렇게 한 뒤로 쭉 되더라구요. >.<

Falstaff 2023-08-04 2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여기 알라딘에서는 도저히 댓글 달기 힘드네요. ㅋㅋㅋ
정말 이런 만화가 있는 줄 알았음.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1:38   좋아요 4 | URL
왜요 왜 댓글 못 다셔요? 저렇게 아리송하게 달면 막 다른 사람들이 야 너 저 백작님이랑 무슨 관계야! 오해하기 딱 좋습니다 ㅋㅋㅋㅋㅋ
정말 저런 만화가 있는데 원작에선 저 삼총사가 각각 라멘의 면, 수프, 고명 전문가에요... 어느 분야든 세 가지 악습(?) 악행(?) 모아다 빈 칸 바꾸고 000의 개노답 삼형제-이러는 밈(인터넷 놀이)이 한 십년 전부터 유행입니다 ㅋㅋㅋ제가 너무 늦게 따라 함 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1:39   좋아요 4 | URL
아 저희는 네이버 블로그에서도 이웃 관계입니다 여러분....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8-04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열반인님 정교한 수학적 두뇌에, 이런 창의성까지!!! 전 아까 폰으로 열반인님 이 포스팅 보았을 때는, 세 컷만 보였거든요. 그래서 이해를 못하고 있었는데 ㅋㅋㅋ완전 빵 터집니다. 노답 ㅋㅋㅋ이럴수가!!! 너무 재밌잖아요 ㅎ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1:55   좋아요 2 | URL
얄님...정교한 수학적 두뇌란 대체...저는 없는 것을 있다고 하시면 곤란해요 ㅋㅋㅋ이것도 창의성으로 쳐주신다면 뭐 그거만 받겠습니다. 만들면서 헤헷 독후감 구경좀 했다 하는 사람은 공감하거나 아 저거 나 까는거냐...(아니에요 아닙니다) 하고 찔리겠지? 하면서 저거 만드느라 인생을 낭비하는 반새끼...

Falstaff 2023-08-04 22:0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나 더 있습니다.
저도 이 분류에 자유롭지는 않습니다만... 이름난 작가의 책에, 이름값 하나 보고 별점 팍팍 주는 거요!
또 있습니다!
읽지 않았으면서도, 앞으로 이 책 읽을 예정이다, 이거 읽을 거 공지한다, 하는 거 말입죠. 근데 뭐? 뭐가 어떤데? 왜 여기서 광고질이야, 흑흑흑, 제가 성격이 모나서 좀 삐딱한 거 같아요. 흑흑흑......

우끼 2023-08-04 22:12   좋아요 3 | URL
둘 다 좋습니다~~ 백작님 뜻대로 하시죠!!!

반유행열반인 2023-08-04 22:26   좋아요 3 | URL
그거는 알라딘이가 책 어떻게든 팔아먹을라고 읽을거에요 기능을 쳐 발라놔가지고 또 사람 맴이 있으면 한 번 눌러보고 싶은 거잖아요... 그거 저장용으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저도 눌러서 목록만 저장하고 읽을 거여용 하는 포스팅 올라가면 샥 지우는 편인데 그냥 신경 안 쓰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ㅋㅋㅋ
별점 팍팍에는 아 나도 ㅈ빠지게 읽었으니 니들도 고생해봐라, 하는 뻥카심도 좀 있어서 그거는 별점은 저는 거의 책 선택에 참고하지를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 골백작님 안 삐딱해요 그냥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쓰시느라 인생 피곤하시겠다(나도 그런데!) 함 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3-08-05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둘째 셋째는 해당없지만..


첫째에서 많이 찔립니다 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06 13:49   좋아요 2 | URL
왜 찔리셔요 새파랑님 감상도 늘 녹여주시잖아요 ㅋㅋㅋ

은오 2023-08-08 04: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서 유열님이랑 이웃분들 리뷰가 소중하지

반유행열반인 2023-08-08 07:56   좋아요 1 | URL
이런 거도 보러와 하면 와서 보고 웃어주시는 은오님 소중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