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가벼운 마음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2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20230810 크리스티앙 보뱅.


사실 난 보뱅이 누군지도 몰랐다.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 책 좋아! 하고 말할 때도 사실 걱정된다. 내가 좋다는 말을 듣고 누가 그 책을 안 봤으면 좋겠다. 보고 나서 에이 안 좋잖아, 하면 미안할 것 같다.

몇 학번? 하고 반말하며 자기가 동문 선배임을 각인시키려던 교감 선생님은 나중에 공석이 된 업무를 떠맡기려고 나를 불러다가 으름장을 놓았다. 네가 어리잖아. 네가 해야지. 나는 거기다 대고 저 우울증이에요, 약 먹고 있어요, 하고 줄줄 울었다. 사실이었다. 그러다가 성대결절까지 와서 병가를 내겠다고 하니 얼른 쓰라고 했다. 우울증 진단서도 낼까요? 하니까 그건 뭣하러 내냐면서 손사래쳤다. 능력있는 사람이었는지 교감 온지 일 년 만에 다른 학교 교장으로 가버렸다. 무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그 사이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삼년차에 삼개월 가량의 휴가를 낸 시절은 성인이 된 이후 가장 자유로웠다. 여기저기 공연을 보러 다녔다. 사람들을 만났다. 무서운 영화를 잔뜩 보았다. 휴가 막바지에 예정 없이 애를 갖는 바람에 지금 이렇게 애엄마가 됐지만… 그것이 나의 스물 일곱. 음반 발매. 신촌에서의 마지막 공연. 아무도 모르는 젊은이의 은퇴.

이름이 너무 많아서 다 읽고도 진짜 이름을 모르겠는, 레베카라고 하겠다. 앞뒤 안 가리고 마음대로 어디든 떠나버리는 레베카랑 나는 맞지 않았다. 나는 어디로든 자리를 비우려면 이유를 대야하고, 내 빈자리를 채울 이들에게 맡길 것들이 있다. 열아홉 스물 언저리에 가출을 많이 하긴 했지만, 폭력으로부터 도피에 가까웠고, 그냥 웃음이 많고 좀 미친 엄마나 과묵하고 완벽주의인 아버지 정도가 아니었으니. 그래도 나는 걱정과 불안 없이 떠나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자유를 참 좋아하면서도 저렇게 아무런 매인 것 없이 남들은 불안하거나 말거나 걱정하거나 말거나 훌쩍 떠나 다른 이름이 되는 레베카에게 호감을 느끼거나 공감하거나 하지 못했다. 그냥 짜증나… 이건 부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

제목처럼 가볍고 산뜻하게, 마음 가는대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주인공과 문장이 제법 일치하는 소설이었다. 새삼 나는...역시 셀프 고문으로 글읽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엔간한 고생하지 않는 주인공에게는 곁을 주지 않는 것일까… 읽는 마음은 가벼운 주인공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냥 좀 사강 같으면서 로맹가리 같기도 한데 그만큼 호의를 가지고 읽지는 못해… 둘다 가질 수 없다면 두 놈다 버리겠다! 이게 뭐야… 배우도 하고 작가도 하고 네가 좋은 거 다해라…

교훈은, 얇다고 해도 숙제처럼 읽지 말자. 나한테 전혀 모르는 책 누가 읽어 달라 그러면 반사, 하자. 세상 사랑하는 사람이 그러더라도 아 됐고, 책 말고 사랑만 내놔 하자. 내 책은 내가 고른다. 보뱅 안녕. 난 준비가 안 됐어. 클린앤클리어 광고만 봐도 난 그 소녀 감성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 지금도 그래… 내 안식처는 다크앤더티어야...

+밑줄 긋기
-나는 행렬에 앞장섰고, 개양비귀꽃들로 가장 붉게 물든 땅을 골랐다.
(인상 깊어서가 아니고, 내가 본 전자책은 개양귀비가 개양비귀로 오타가 나 있었다. 아이고 웃겨, 하고 옮기고 보니 뒤에는 또 멀쩡히 양귀비였다. 양귀비 먹고 취했나.)

-신성함은 연약하다.

-그래도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기쁘다. 나는 그게 좋아. 아주 좋은 신호야. 우리가 너를 잘 키웠고, 오로지 자기 마음에만 귀 기울이는 법을 가르쳤다는 얘기니까.

-사랑을 할 때는 서둘러 했는데, 그 사랑에서는 훔친 과일 맛이 났다.

-지혜는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나이가 들면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마음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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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8-11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책에 대헤 고민중이예요.
한 번 더 읽어야겠어요.
사강보다는 훨씬 무겁게 여겨졌어요.
‘가벼움‘이란 단어를 더 생각해봐야겠더라고요^^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0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에 새삼 제 미감이랑 정서가 남들하고 구조가 다르다는 걸 재확인하고 가요...다들 아름답다, 감동이다 할 때 혼자만 못 느끼고 소외감 ㅋㅋㅋㅋ그래서 알아서 요령껏 피해 읽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실패하고 말았네요... 맑고 밝은 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탱되는 부분도 있는 세상 같습니다 ㅋㅋㅋ

2023-08-11 06: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11 0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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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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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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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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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오 2023-08-11 09: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방금 애들 가르치는 유열님 잘어울린다고 하고 왔는데.. 아니 취소.. 아니 그니까 잘어울리긴하는데 유열님 교사생활 힘드셨군요..😢
저도 가벼운 마음 읽으면서 부러웠어요!!!!!!ㅠㅠ 그래서 대리만족이 돼서 좋았고 ㅋㅋㅋ 저는 실제로도 그런 유형들 부러워하거든요. 천성이 걱정 없고 될대로 돼라 식이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 ㅋㅋㅋ 사실 삶 자체가 무거운건데 그런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사는게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닌가.. 이건 타고남의 경지다... 하면서 ㅋㅋㅋ 근데 뤼시가 딱 그랬고 거기다가 보뱅의 문장들이 제 취향이라 더 좋았어요 ㅎㅎ
근데 패배의신호 루실을 보면서 저는 가벼운마음 뤼시가 떠올랐거든요? 유열님은 루실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6   좋아요 2 | URL
루실이도 제멋대로긴 한데 마지막에 결국 타협하고 끌려가서 배드엔딩이잖아요? 스위스 가서 중절도 해야 했고 화려한 생활 버리고 버스 몇 시간 기다리고 출판사 가서 노동하고... 그 정도 몸 고생 맘 고생 하면 좀 봐주는 게 있는데 가벼운 마음의 빛돌이는 일단 자기가 내내 애고 자기는 애한테 발목을 안 잡혀서 내내 애일수 있지 싶어서...게다가 작가도 전혀 모르다가 아 사강처럼 젊은 여자 때 글이야? 할머니가 쓴 글이야? 하다가 돌아가신 시인 할배가 오십대 아저씨 때 썼다는 거 알고 이새끼가 판타지가 판타지 했네 하고 좀 화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요 은오님 내가 읽을 책은 내가 고른다 이제 읽어주세요 하지 마요 나 생각보다 곱고 예쁜 거 보면 그거 붙들고 읽는게 더 힘들더라구요...병든 사람임... 풀 먹는 호랭이임.... 개미 먹는 사슴임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37   좋아요 1 | URL
저는 같은 아저씨가 쓴 거래도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이런 데서 좀 더 미감을 느끼더라구요 ㅋㅋㅋ 부부가 각자 바람피고 가정 깨지고 개막장 드라마인데 그런거 잔잔하게 써 놓은 그런거가 더 좋음 ㅋㅋㅋ

은오 2023-08-11 10:01   좋아요 1 | URL
가벼운 나날 안그래도 보관함에 있는데 조만간 읽어볼게요! ㅋㅋㅋ 유열님 취향 알아가는중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0:10   좋아요 1 | URL
은오님처럼 말랑말랑한 두뇌 무엇이든 호기심 가지고 봐야지! 하는 그 말랑말랑함 부럽습니다... 난 굳었어... 하필이면 지저분하게 썩으면서 굳었어... 틀렸으니 먼저 가...

hnine 2023-08-11 0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뱅의 책이 반유행열반인 님 이 글 만큼 재미있을까요? **

반유행열반인 2023-08-11 09:51   좋아요 1 | URL
투덜투덜 투우덜 이런 글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에이치나인님 ㅎㅎㅎ 가만보니까 보뱅님이 글을 이쁘게는 써놨던데 농담이 없더라구요. 말장난 같은 것도 잘 안 함. 저는 초콜릿도 다크 90퍼센트 이런 거를 먹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Yeagene 2023-08-11 1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뱅은 저한테 어떨까 궁금해집니다.일단 열반인님에게는 별로였군요 ㅎㅎ 참고하겠습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8-11 14:29   좋아요 1 | URL
다들 좋다는데 나만 안 좋아서 느끼는 외로움...저는 왜 이 모양일까요 ㅋㅋㅋㅋ시인 겸 에세이스트라고 하는데 그래서 문장은 간결하고 예쁜데 저한테는 뭔가 발작버튼 같은 게 눌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취향이란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