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31일의 문장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언제 시작할까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때를 늦추는 것이다.


평론가이자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 -


ㅁ 오늘만큼은 이 문장만이 하루를 담을 수 있는 말이었다. 정말...


짧게 말하자면, 그냥 망설이다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게 되버렸다.


시간만 날리고, 결국 원래 하던 일을 하게 된 오늘이다.


마침 저 문장을 웹셔핑하는 도중 보게되었다.


타이밍이 얼마나 기막히던지... 나에게 하는 말 인줄 알았다.


ㅁ 그냥 요즘 뭔가를 할 때, 자꾸 망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망설이다가 결국 선택했는데, 별로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만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걸수도 있겠다.


어쨌든, 순간의 판단을 왜 이렇게 망설일까. 결국은 선택하고도 후회하는 이상한 결과만 만든다.


순간의 판단도 신중함과 더불어 중요한 부분인데, 요즘 자꾸 망설이는 게


스스로 뭔가를 망설이고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ㅁ 뭘 할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깨진 나날을 시작된 후부터, 망설인다. 자꾸 망설인다.


소심해진건지, 현실적으로 변한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닥쳐봐야 아는 것들을


자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택하려고 하니 조심스러워지고 망설여지는가 보다.


보이는 걸 선택하는 것처럼 쉬운 선택을 바라는가 보다. 


아니면 단 한 번의 실패를 하고 싶지 않은 건가.


그렇게 답이 보이는 선택을 하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신중함을 핑계로


미루고 있는 선택들. 어쩌면 좋을까...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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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의 문장


심연을 바라다보면 심연도 널 바라본다.


- ??? -


ㅁ 여기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바로 ???이다. 왜 ??? 인가.


사실 이 문장을 노트에서 발견했다. 문제는 어디서 보고 누구의 글인지 메모하지 않았다는 점.


심지어 언제쯤 쓴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메모장에 써져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을 기록할만큼 당시에 심각하게 받아드렸나 보다.


심연은 사실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마음? 좀 깊게 생각하는 정도?


그게 심연아닌가? 어쨌든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심연도 날 본단다.


... 조금 무섭긴 한데, 그 심연도 나 아닌가? 어쨌든 심연을 보면서


심연도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전에 무엇보다 심연을 보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런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 정말 끝도 없는 질문들만 입속을 맴돈다.


사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명확하지 않은 만큼 겉도는 느낌이다.


심연이 날 보면 무엇을 생각할까. 나는 심연을 왜 보는 걸까.


그리고 난 저 문장을 왜 적었던 걸까.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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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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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붕괴가 개인주의자에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지 않기 바라며

[네 이웃의 식탁](믿음사) - 구병모


ㅁ "꿈미래실험공동주택 입주를 환영합니다." 로 시작하는 뒷표지는 마치 요즘 한창 주택문제로 시끄러울 시대에 쉐어하우스의 이미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별 거 하지도 않은 채 환영한다는 저 문구만 보더라도, 그리고 그게 공동주택이란 말에서부터 벌써 피곤함을 느낀다면, 우린 이미 그 실체를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제목에서처럼 '견고한 식탁'만큼 그들의 '피곤함'은 반대로 엄청 크게 느껴졌다. 그런 소설이었다. 그 피곤함을 극적으로 표현된 소설. 구병모 작가님의 [네 이웃의 식탁]이다.


   ㅁ 책을 처음 읽을 땐 [네 이웃의 식탁]이란 제목인 dining table of your neighbor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보인 제목이 문득 you가 아니라 네 '쌍의' 이웃을 말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4쌍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어느 쪽이든, 둘 다 의미는 맞는 것 같다. (의도는 후자가 더 맞는 듯...) 너의 이웃의 식탁이라고 하던, 네 쌍의 이웃들의 식탁이라고 하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에 놓인 식탁인 점은 똑같다. 그래서 그 견고한 식탁이 시작과 끝을 맺는 역할이었다. 견고함. 공동체의 견고함을 의미한다. 

 

   마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에 나온 식탁을 상상했다. 물론 종교적 의미를 둘째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그 공간이 난 그렇게나 불편해보였다. 그래서 이 식탁도 그런 점에서 부담이었다. 거기에 그렇게나 견고하고 넓고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말 다했다. 그만큼 붕괴되는 공동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것일테니...


   ㅁ 이미 앞에서 거의 설명을 다한 기분이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부에서 추구한 실험적인 공동주택에 입주하는 부부들의 이야기다. 하나둘 입주하는 부부들 간에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그 공동체는 겉보기에 잘 돌아가는 기분이지만, 나름 각자의 입장에서, 특히 아내들의 입장에서 전개해나간다. 그렇게 여러 사건들이 휘말리고, 동시에 어긋난 사람들의 감정이 터지고 폭발하면서, 완전히 비틀어진다. 그렇게 삐걱삐걱 굴러가던 공동체는 당연하게 무너지고, 사람들 간의 감정도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결국 모든 게 부서진 채 끝이 난다. 마치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무섭게 붕괴된다.


   물론 '공동체=악'을 말하려는 게 아닐 것이다. 다만, 삐걱거리는 공동체의 현실태를 보여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옮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읽다보면, 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 주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개인주의적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길 정도다. 그게 의도가 아닌데 말이다. 제발 그렇게 해석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읽는 내내 내가 피곤한 것도 사람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리에서 생뚱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면 요진 혼자 비협조적이고 정 없는 이가 될 판이었고 ...(중략) ... 객관적으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도 요진은 자신이 고작 선의를 드러내고 보장받기 위한 선후 관계에 집착하는 예민함의 결정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p. 50

   그렇다. 무리에 있으면 누구나 고민하고 '어 그러죠. 괜찮아요.' 그런 말로 넘기는 상황. 눈치보며 할 말 다하지 못하는 게 관계인 셈이다. 읽는 내내 그런 순간이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할 말 하고 살자! 라고 주장해봐야 실제로 무리 내에서 그런 말 쉽게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관계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자, 동시에 그런 생활에 피곤함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 바로 사람이니까. 사회적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찜찜함을 느끼는 게,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적절한 표현이 책에도 나온다.


홍단희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요진은 뭐라고 토를 달 수가 없어서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때웠다. 자신의 마음은 어딘가 용납되지 않는데 이미 형성된 분위기가 그 용납되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때, 이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화제 전황 정도였다.

p.127


ㅁ 책을 덮고 나면, '역시 공동체는...'라거나 '역시 1+1=2가 아니라 0에 가깝구나.' 라는 회의적 시각을 갖는다. 반면 [네 이웃의 식탁]을 읽고 좀 더 바람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공동체의 모습이 이런 면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읽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공동체 이전에 사람들도 중요하고, 적절한 만남과 혼자만의 시간 보장도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어쨌건 공동체의 붕괴가 개인주의를 빙자한 이기주의로 나아가지 않길 바라는 바. 겸사겸사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나 역시 공동체의 양면을 동시에 인지하고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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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의 문장


새로운 모양으로 쌓지도 못하게 합니다. 같은 동선, 패턴, 동작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 일을 죽기보다 하기 실헝한다고 합니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도 없고, 새롭게 일을 배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가요? 혹시 당신도 직장에서 매일매일 똑같이 벽돌을 나르고 있는 건 아닌가요?


[최고의 선택](리더북스) - 김형철 교수님


ㅁ 뻔한 일, 뻔한 반복의 생활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하지만 거기엔 능숙함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가장 문제는 의미를 찾지 못하거나, 새로운, 또는 신선한 무언가가 없다는 점이 아마 가장 짜증나고


고통스러운 부분이 아닐까.


어쨌든 그런 점은 과거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나보다. 신화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 


시시프스의 형벌말이다.


의미없는 바위올리는 일을 자꾸한다. 그러면 정말 미칠 수 밖에...


자신이 '매일매일 똑같이 벽돌을 나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익숙함에 속아서


그냥저냥 사는게 아닌지 돌아본다.


김형철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다가 알게 된 책인데, 무척 재밌어 보였다.


철학과 경영의 만남이라니 묘하게 안어울릴 듯한 두 분야가 어떻게 합쳐졌는지 궁금하다.


여유가 된다면,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ㅁ 하루를 담는 문장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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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10월 5주/11월 1주 : 우리 주위에 널린 건물들이 무엇을 바꿀까. 

[건축이 바꾼다](마티) - 박인석


ㅁ 건물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렇다면 건물만큼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예전부터 눈독들였던 건축 책중 하나다. 김광현 교수님의 책을 가장 먼저 보고 싶었지만,


그건 내용이 정말 방대해서 지금 읽을 시간이 없을 듯 했다.


그래서 차선책이었던 이번 주의 책 [건축이 바꾼다]를 펼쳤다.


부제가 '집, 도시, 일자리에 관한 모든 쟁점'이라고 적혀있다.


어떤 쟁점들일까 생각하려는 순간, 떠오르는 각종 문제들. 잘 알지 않은가.


주거문제부터, 생활환경문제, 교통 및 여러 마찰들. 부동산까지 엮여 경제문제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게 바로 건축이다. 그래서 집, 도시만 있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어떤 쟁점들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쓰셨을지 궁금하다.


이번 주의 책으로 시작해보는 건축이야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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