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빈

경복궁, 1년에 1~2번은 가게 된다. 올해는 연초부터. 따지자면, 봉빈(난)의 흔적을 좇는 자리.

자선당(資善堂)을 다시 봤다. 자비로운 성품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곳. 동궁전(東宮殿)이라고도 불리는 그곳.

세자(와 세자빈)의 공간이다. 다음에 왕이 될 사람이기에 떠오르는 해에 비유해 궁궐의 동쪽에 배치했다. 동양의 전통이다. 세자를 동궁마마라 부르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경복궁 해체작업의 첫 번째 건물로 자선당을 지목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다음 왕의 건축물이니까.

일본인이 그것을 샀고, 박물관으로 흘러갔다. 지진이 일어났다. 소실됐고, 내동댕이 처진 상태에서 김정동 교수가 부서지다시피한 바위(흙)을 가져왔다. 자선당은 복원됐다.

 

어쨌든 이곳. 문종이 세자시절부터 28년을 보낸, 어쩌면 자선당의 유일한 주인이라 불릴 법하다.

순종이 자선당에 있었다하나, 일제의 철저한 관리감독하에 있었으니. 28년을 세자로 자선당에서 살면서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위대한 왕이었던 아버지와 비교당하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첫 번째 부인은 미신신봉자로 쫓겨났다. 봉빈은 두 번째 부인이었다.   

 

봉빈은 자선당 한켠을 차지했다. 문종이 거처한 건너편 방.

그러나 그녀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시아버지(세종)에 의해 쫓겨났다.

《채홍》은 그런 사실을 두고, 김별아 작가가 소설적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채홍(彩虹), 즉 무지개. 성적 소수자들의 상징. 

 

그녀의 거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그녀는 사랑을 원했고, 그에 따라 행동했으나 우주는 합당한 응답을 보내지 않았던 것 아닐까.

사랑은 양자역학이 작용한다. 현재 상태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어도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종의 아들을 지아비로 두고, 세자빈이라는 명백한 지위였음에도,

봉빈은 사랑을 택했던 것일 게다. 사랑이 죄가 됐다. 사랑때문에 죽었다.

그렇기에 김별아 작가는 봉빈을 기억하라고 한다. 기록되지 못했기에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사랑.

 

 

 

여자

스티븐 호킹. 8일이면 70세 생일을 맞이한다는 천재 물리학자. 

우주의 신비 일부를 풀었던 그도, '완벽한 미스터리'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 과학잡지와의 인터뷰, 하루 중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 

호킹 박사는, "Women. They are a complete mystery."라고 말했단다.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밝히고자 일생을 바친 사람이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여자가 아녔을까.

여자라는 우주. 여자라는 신비. 여자라는 비밀. 여자는 미스터리요, 수수께끼.

그만큼 이해하기 어렵다는 여자라는 말은 곧, 사랑이 그랬다는 얘기와도 통하리라.

 

유럽의 인권사를 봐도, 특히 여성 투표권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중세 철학자들은 여성에게 영혼이 있는지 여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결론도 못 냈고.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만 해도,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적어놨지만, 

여성이나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여자사람은 어쩌면 권력을 지닌 수컷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컷들, 여자들이 권력을 가지거나 힘이 세지는 것에 대해 극렬한 반응을 보이잖나. 여자사람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리 말한다.

수컷이 여자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해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다.

수컷은 자기 본위로만 생각하고 타인을 인식하는 것밖에 모른다.

그래서 다른 베이스를 가진 여자사람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뭐, 맞네. 맞아. 전대에서 돈봉투 돌린 건 다 수컷의 짓이다.

자기 본위로만 타인을 인식하는 이들에게 돈봉투 따위야 뭐.

 

허나, 봉투는 또 무슨 죈가.

봉투, 사랑의 이야기를 고이 담아 사랑하는 자의 손에 올라섰던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낭만은 없다. 더러운 지폐만 잔뜩 담겨서 누군가의 주머니로 쏙 들어간다.

봉투도 참 못할 짓이다. 자긴들 그러고 싶겠느냐마는.

 

봉빈이 폐위되고, 죽어야 했던 이유? 동성애, 아니다!

감히 말하건대, 수컷들이 여자사람을 모르는 '무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컷들에겐 이런 죄명이 주어질 것이다. 여자사람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대역죄!

 

여자도 미스터리, 사랑도 미스터리.

양자역학은 여자에게도 사랑에게도 작동한다.

 

그나저나, 호킹 박사님, 생신 축하합니다. :)

미스터리(여자)를 풀려는 노력, 거두진 마세요. 당신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 거예요.

 

이럴 땐, 아델(Adele)의 노래가 쵝오.

겨울밤에 어울리는 아델의 이토록 매혹적인 소울 튠하곤.

귀는 쫑긋, 말초신경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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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5일, 씨즈에서 주최한 사회적기업 관련, '비전 나눔 토크쇼'에 풍덩. 푸릇파릇한 청춘들의 세계를 향한 눈빛이 이글이글하다. 나야 흐리멍덩 동태 눈깔로 봤지만, 그들의 내뿜는 열기는 후끈후끈, 하악하악. 사회적기업이 빠질 수 있는, '좋은 일, 좋은 의미'의 함정. 암, 나도 저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고 봤다. 자가당착으로 빠지는 경우를 봤으니까. 그럼으로써, 과도한 노동, 잦은 구성원 교체, 민주적 운영의 상실 등 무늬만 사회적기업인 경우를 경험했으니까.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지만, 지금 내가 보는 인증제도는 '독'이다. 사회적기업이 대체 인증을 받아야 할 이유가 뭣인가. 많은 이들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아서 인건비나 딸려는 현실. 인증제도의 감옥에 창의와 혁신은 갇혔다. 박병은 트래블러스맵 이사가 지적한 것에 나는 완전 동의. '사회적기업 간판'과 '사회 혁신'은 동의어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기업의 구성원이 모두 행복한가!

쿠바 독립의 아버지이자, 문인·정치가·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는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올해, 사회적기업 혁신모델 탐방단이 역시 출동한다. 고민할 만하다. IT 및 SNS, 적정기술, 지역개발, 공동체 기업,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적기업, 대안소비. 나는 어떤 詩를 읊을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딸이 세계가 뭔지 물었을 때, 해주고 싶은 말이 계속 남는다.

"너도 세계의 일부고, 세계도 너의 일부란다. 그 다음은 네가 생각하렴."

 

아울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아버지(오다기리 죠)가 아들에게 했던 말도.

"네가 가족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 

 

아무렴. 사회적기업은, 세계를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근데, 문제는 오다기리 죠가 저리 말하면 간지 작렬인데, 내가 하면 없는 개간지가 된다는 것.

아, 슬프다. 잘난 것들만 대접받는 멋진 세상~   

 


홍자매

홍은정, 홍은영으로 구성된 팀(홍자매)에 나는 홀라당 반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자신 없는 것을 자신 없다, 그러니 도와 달라, 고 말하는 이들의 숨기지 못하는 '진정성'은 자신감과 같은 단어로 규정할 것이 아니다. 패기만만하고 자신감 충만해 뵈는 여느 청춘들과 다른 빛깔. 나는 그 빛깔이야말로 사회적기업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고 봤다. 아니, 그냥 그들의 가능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눈은 번쩍, 귀는 쫑긋, 입은 터억. 막감동, 완전감동, 폭풍감동.

 

'요행'을 바라지 말고 건강한 유기농 '여행'을! 이라는 테마를 건 그들의 여정이 미더울 수밖에 없었다. '로컬푸드' 그리고 '좋은 먹거리'를 생각하고 있을 그들과 어떤 식으로든 결합할 여지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살짝 들떴다. 동지들을 만난듯하여. 분명 좋은 사람들이다, 확신까지 들 정도. 아름다운 자매다.

 

홍자매. 부디, 똥파리가 들러붙어도 잘 떨어트리길. 파리채는 내가 책임진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홍자매팀은, 몇해 전 무농약 귤농사를 짓기 시작한 아버지를 계기로 '규격 외 농산물 활용과 지역관광을 통한 사회적 기업'을 준비 중이다.
지역관광의 사례학습, 규격 외 농산물의 이용현황과 활용가능 사례, 지역농산물의 2차 가공품 사례와 판로모색을 주제로 일본을 탐방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요리기술을 배우는 등 조용하지만 차근차근 사회적 기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쿠바 

1월1일의 쿠바. 나는 여전히 그것을 그린다. 1953년 7월26일부터 전개된 쿠바혁명은 1959년 1월1일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냄으로써 혁명의 깃발을 꽂았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가 꽂힌 건, 바로 쿠바(인들과 음악). 이토록 관능적인 포스터하곤. 딱 보면, 숨 막히지 않나? 나? 말초신경 돋는다! 'Must-See 필름'.

 

책도 질렀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 반성장 복지국가는 어떻게 가능한가?>.

 

내게 <치코와 리타>를 보여주면, 그 어느 해 1월1일 혁명기념일에 맞춰 쿠바로 갈 때 데리고 간다! 무슨 재주로? 사회적기업은 가능하다. 쿠바에도 커피가 나거든! 크리스탈 마운틴. 나와 함께 관능의 볼레로를~ 

 

 

김광석

자정 넘은 이 시각 1월 6일, (김)광석이 형 16주기. 고딩 때 한 소녀가 수줍게 건넨 녹음테이프의 B면 첫 곡이 '사랑했지만'.(A면 첫 곡은 퀸의 'Love of my life') 그런 시절, 있었다. 그때 처음 '김광석'을 알았고, 그때 이후 '김광석이라는 노래'를 줄곧 좋아했다. 탁한 듯 맑았고, 노래는 세상을 품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 '이등병의 편지'는 또 얼마나 불러 제쳐댔던가. 저주 받은 이 군댈 나가면, 광석이 형 콘서트 보러 대학로 학전블루로 가야지 맘 먹고 있던, 제대 100일이 채 남지 않았던 1996년의 1월6일. 광석이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TV의 미친(?) 소리에 멍~하던 병장 이준수. 서른 즈음엔, 담배 뻑뻑 피면서 '서른 즈음에'를 주야장천 들었었다.  
 
비록 사회적기업가들과의 약속 때문에 오후 8시에 펼쳐지는 16주기 콘서트 ‘김광석 따라부르기 2012’에는 못 가지만, 술 들이키고, 광석이 형 노래나 불러 제쳐야지.  
 
광석이 형, 잘 있는교? ㅠㅠ
 

 

배짱

1년여 전에 처음 봰 한 출판사 대표님이 "배짱 많게 생겨서" 날 기억하고 있다고 얘길 건넨다. 기억해 주신 것, 참 고마운데, 그 말 태어나서 처음 듣는다. 좋은 말이겠지?ㅋ 사실, 난 그 대표님 기억을 못했거든. 아, 어쩜 좋아. 미인들만 기억하는 더러운 뇌 구조라.^^; 오늘, [내 마음을 만지다] 참 좋았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詩를 꺼낸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 원래 우리 각자 안에 시인 있거든. 우리 자체가 원래 詩거든. 그러니, 이런 질문, 당연하다.

나는 어떤 詩가 될 것인가? 

 

광석이 형은 그래, 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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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첫

어쩌다 그렇게 겹치는 날이 있다. 온전히 우연이지만.  

채식레스토랑에서 한 송년회. 첫사랑, 언제였느냐고 묻는다. 

내겐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지만, 안다. 묻는 것은 첫 번째 첫사랑.

스물 셋. 첫 번째를 규정하는 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니까. 안녕, 내 사랑.

 

그리고 최지우. 몰랐는데, <귀천도>에 캐스팅됐다가 낙마했단다.

귀천도. 귀천도애. 영화 못 봤지만, 노래 주야장천 듣고 읊었다. 맞다, 표절.

상관 없었다. 이미 노래가 파고든 뒤였으니까. 그런 내가 세뇌를 한 까닭일까.

그녀, <귀천도애>와 다른 한 노래를 가끔 원했다. 그녀, 원한다면 나는 불렀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주크박스. 추억 돋네. 하늘로 돌아가는 길의 슬픔, 歸天道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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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알싸하게 차가운 날씨를 맞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유는 모르겠지만, 죽기 전까지 꼭 쓰고 싶은 책이 떠올랐다. 사랑.
매우 거대하고 넓고 깊은 주제라, 사실 난망한 것이 사실이나,
아는 만큼, 알고자 최대한 노력해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마 혹한의 칼바람을 맞아서 화들짝 놀라서겠지. 그래도, 사랑.
너는 나고, 나는 너 자신이야, 우리는 한 사람이야.
온 삶을 걸거나 삶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든가, 사랑.
참, 미칠듯이 매혹적인 주제다.
지금처럼 비루하고 천박하게 쓰일 단어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쉽게 판타지라고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의미는.

 

 

 

냉면
겨울의 맛은 역시 냉면.
오늘, 4대천황의 하나로 꼽히는 필동면옥이었는데,
장충동 평양면옥의 슴슴한 담백함에 비해선 아쉬운 감이 있다.
어쩌면, 누구와 함께였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평양면옥에선 사랑이 앞에 있었을 때니, 그 맛이라는 게 얼마나 감질났겠는가.
쩝, 그리 생각하자니 좀 슬프군.
계절의 맛보다, 더 진한 것이 사랑의 맛인가 보다.
아, 나는 맛칼럼 같은 건 쓰기 글렀다.

 


원 데이
어쩜 이리, 한 마음을 한 순간에 홀라당 빼앗는 영화포스터가 다 있는가.
포스터 하나 때문에 이 사랑을 만나봐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앤 헤서웨이! <브로크백 마운틴>때부터 알아봤다. 된장, 이토록 알흠답다니.
Twenty years, Two people... 내용이야 어쨌든 닥치고 관람.
혹시 실망하더라도, 포스터 하나 만으로도 충분한 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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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011년 만난 여자들 중에 가장 예쁜, 아니 아름답고 지적인 여자를 봤다. 올해가 며칠 남았지만, 글쎄, 바뀔까? 그리 된다면 물론 좋지만, 보는 순간, 속으로 우와~ 했다. 동공은 커지만 귀는 쫑긋, 심장은 빠담빠담.

 

물론 속깊은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고, 다른 이들도 함께 한 자리라, 그저 외모와 아우라가 모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1년 동안 봤던 모든 여자를 압도하는 지성과 아름다움.

 

美, 그 자체. Beauty, PSO!

 

허나, 내게만 치명적이라면 그녀가 결혼을 했단다. 우르르르, 하늘에 구멍이 뿡~ 뚫리고 있었다. 이른바, 나이 먹은 여자들이 불평 혹은 불만을 내지르곤 한다. 세상의 멋진 남자들은 이미 다른 여자들이 채갔어. 그때 내 심정이 그랬다.

 

아, 세상의 아름다운 여자, 美는 이미 다른 남자들이 채갔구나. 저런 여자와 사랑하고 결혼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해야하는 거지?결혼이라는 제도는 참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구나. 스쳐지나가며 놓친 것들도 때론 얼마나 소중한가 말이다. 2011년, 그렇게 간다.

 

 

사십

서울 사는 몇몇 고등학교 동창들. 송년회랍시고 어제 모였다. 얘길 나누다, 내년 사십이 된단다. 맞다. 내가 그 얘길 꺼냈다. 갑자기 분위기 싸해진다. 한 녀석은, 누군가는 사십이 되는 새해 첫날, 온몸의 마디마디가 다 쑤시고 몸부터 달라진다는 얘길 꺼낸다. 우스개였는데도 녀석들 눈빛이 후~하는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들의 거의 모든 관심사는 아이(교육)와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기(혹은 출세·승진).

 

뭔 말을 하다가 무상 의료, 무상 교육을 슬쩍 꺼냈더니, 헛소리하지 말라는 구박만 날아든다. '기본 소득' 얘기도 좀체 통하지 않는다. 나의 절망과는 다른 자포자기다. 그들은 이미 세상의 진보와 꿈따윈 사치처럼 생각하는 세대가 됐다. 슬픈 일이다. 사십이어서 슬픈 게 아니라, '나'는 지워지고 가족위주로만(가정적인 것이 아닌!) 사고하면서 세상을 사유하지 못하는 샐러리맨들이어서. 슬픈 내 동창들의 추억이여.

 

슬퍼도 다시 한 번 오지 않을, 사십이여. 사십, 그냥 이 쇼를 즐겨라(Just enjoy the show!). 인생은 미로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같으니까. 잘 얻어먹었으니, 녀석들에게 건네는 나의 선물, < The Sh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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