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겨울의 시작. 

밝고 예쁜 목소리가 열었던 겨울의 첫날, 요조의 목소리로 맺음한다.

절묘한 앙상블이다. 12월의 별자리 운세는 내게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하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흥. 


왜 요조를 '여신'이라고 부르는지, 오늘 그 이유를 목격했다. 그것이 각자 다른 이유일지 몰라도, 내가 오늘 본 것은 아름다움. 은은하게 퍼지는 어떤 아름다움.  


요조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겨울의 낭만을 부추겼고, 

요조의 온 몸이 뿜어내는 나지막한 선율은 겨울의 낭만을 채색했다.   


요조. 참, 좋다. 참, 아름답다. 

커피 한 잔에 내 지닌 허섭한 아름다움 전부를 졸졸졸 추출해서 건네고 싶은 드문 사람.


물론 나도 평범한 속물이어서, 다른 셀럽과 결혼한 그의 옛 연인 소식에 기분이 어떨까 궁금증이 일기도 했고, 그의 옛 사랑을 쓴 글에 옛 연인을 대입시키기도 하였다. 



나야 그리 하여도, 

버스에서 나를 웃고 울린 여자, 요조. <요조, 기타 등등>. 

올해 아마도 버스에서 날 울린 두 번째 책? 그녀의 어쿠스틱 에세이. 


어디서 웃었냐고? 이 구절이었다.

"우리 모두 코를 후비며 살아가고 있다." 

팡, 터졌다. 아, 나도 그랬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giant. 

창문에 비치는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겨울밤 하늘의 별빛도 글썽글썽. 달빛은 울먹울먹. 


"나는 당신의 오늘을 보는 것이 좋다. 

     당신의 내일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아무렴. 당신으로 인해 나의 겨울 첫날은 충분히 좋았다. 아름다움이 충만한 하루. 이것으로 나는 12월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요조가 겨울의 낭만을 완성했다. 겨울, 이라고 적어줬고, 낭만이라고 불러줬다. 내가 이 좆 같은 세상을 버틸 수 있는 건,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매일 같이 만나야 하는 사소한 오늘의 아름다움. 나의 내일 같은 건 상관 없다. 오늘의 아름다움을 바랄 뿐.


당신, 요조, 그런 사람. 고마워요, 요조. 아, 좋다.

 

참, 옥상달빛의 '안부'도 오늘을 토닥토닥. 스담스담. 고마워, 옥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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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4일.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22주기. 
카페쇼에서 특별히 탄자니아 생두까지 구매했다. 

왜 '탄자니아'냐고? 
=> 
http://procope.org/488

오늘(일) 시간이 허락하질 못해서 탄자니아를 볶지 못했다.
내일(월) 수운잡방 오는 사람에게 특별히 제공할 나의 커피는, 'It's A Beautiful Day'! 


퀸과 함께다. 정확하게는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다.

 
당신의 아름다운 하루를 위해. 

죽기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던 프레디를 위해. 

여전히 아름답고 불멸로 남을 그의 노래를 위해.

It's A Beautiful Day.

물론 이 좆 같은 세상이 아름다울리 없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프레디 머큐리 형님이 그렇단다. 

잇츠 어 뷰티풀 데이라고. 

믿지 않을 도리도 없다.

우선, 탄자니아 커피 마시면서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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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인디언 아라파호 족은 이달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거의 한 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말도 있듯이, 우린 여전히 책을 통해 사라지지 않는 세계를 만난다. 다른 체로키 족에겐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11월에 마음의 산책을 권한다. 책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쉿, 당신에게만 권하는 나의 목록이다. 


1. 커피의 역사


사람은 참 신기하다. 커피를 마신 입에서 와 노래가 나온다.

그래서 커피는 한 편의 문학이다.

쉐호데트 수도원의 염소들이 먹은 붉은 장밋빛 카파나무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세계를 파악할 수 있었을까. 혹은 개인을 인식하게 됐을까. 커피와 계몽이 같은 뜻으로 쓰인 이유다.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야콥은 단순히 커피의 역사를 쓴 것이 아니다커피 한 잔, 그 속에 인류의 문명이 있고, 역사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커피의 역사. 따라서 커피의 역사를 마시는 것은 DNA를 통해 상속한 인류의 정신사와 만나는 것이다.

맞다. 커피는 식물의 프로메테우스다. 이성(계몽)과 감성(낭만) 모두를 품고, 끝끝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중력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류의 소망 불씨를 태운다.

야콥은 이 놀라운 불씨의 역사를 향기롭게 부채질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좋은 책과 커피를 곁에 둔다는 건 삶의 축복이다.

이 책을 통해 두 가지 한꺼번에 충족할 수 있다. 책에서 커피향이 난다고, 놀라지 마시라.

야콥이 볶은 커피의 역사가 내는 향일 테니.



2. 셰어하우스

공유는 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집은 돈, 시간, 꿈 등 모든 것을 바꾸어놓고 조절하는,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삼키는 블랙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 집 마련의 신화'가 지금 한국의 모든 병폐를 기하급수적으로 폭발시킨 장본인인 것은 아닐까. 

셰어하우스는 그런 집에서 '공유'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함을 알려주는 또 다른 사회 변화의 시발이 될 것이다. 

공간과 사람, 주거와 삶에 대한 성찰은 더 늦기 전에 자유를 시작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니까. 

부디 세상의 기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나누고 공유하라!




3. 만화 이슬람 

믿고 보는 김태권이다. 나믿김믿. 

더구나 우리에게 이슬람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채 전달된 텍스트다. '한 손에 칼, 한 손엔 코란'으로 대변되는 이슬람의 상징적인 말부터가 잘못 됐으니까.   

제대로 이슬람을 이해하고 안다면, 우리의 세계는 분명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다.

김태권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 했을 것이다. 







4. 집의 초심, 오두막 이야기

또 집 이야기냐고? 응. 그렇다. 

집이 그만큼 중요하다. 집에 대한 사유나 고민이 적은 것은 그만큼 아파트라는 무게에 짓눌린 것도 하나의 이유이리라. 

당신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큰 것을 꼽으라면, 회사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다. 먹는 것과 있는 곳이다. 

뭣보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다. [집을, 순례하다]로 만났던, 일본의 주택전문 건축가. 그가 산기슭 비탈진 곳에 14평 오두막을 짓는 과정과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어찌 언급하지 않겠는가. 작은 집, 스몰하우스, 그속에 담긴 넓고 큰 삶. 리틀 빅, 스몰 빅의 이야기다. 

건강한 주거와 삶, 그 원점에 대한 이야기라니, 놓치면 후회한다! 



5. 부수적 피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로 우리의 '불평등 불감증'에 죽비를 때린 지그문트 바우만의 또 다른 불평등 시리즈다. 

'부수적 피해'라는 미국 군사 용어는 얼마나 잔인하고 용렬한 단어인가. 불가피한 민간인 피해라니. 

부수적이라는 말 속에 우리는 불평등의 속살을 본다. 

그 노골적인 불평등 획책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죽비에 우리의 기존 관념은 자꾸 '디스'를 당해야 한다. 

불평등에 무감해지도록 강요당한 자들의 협잡에 우리는 행복도, 삶도 다 뺏길 지경이니까. 

누구의 삶도 '부수적'이지 않다! 당신이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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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원의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꺾어 꽃병에 꽂듯이 하늘도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꺾어 천국을 장식한다." 아무렴, 20년 전 하늘이 리버 피닉스라는 청춘을 훌쩍 우리로부터 떼어낸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욕심쟁이 하늘!


20년이 그렇게 흘렀다. 그날 이후, 

내게 詩월의 마지막 날은 늘 리버 피닉스의 차지였다. 

세상에는 그냥 별다른 이유 없이 그래야만 하는 것이 있다. 

굳이 이유를 캐물어도 싱긋 웃어주고 말면 그뿐인 것이 있다.


쉬파, 누구는 스물 셋에서 영원한 청춘으로 남는다. 

억울하다. 역시, 억수로 잘 생기고 볼 일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 영원한 청춘을 그리면서 말이다.


내게 詩월 마지막날의 커피는 그래서, 리버 피닉스다.

리버 피닉스를 그리는 사람에게만 줄 수 있는 커피다.


언제고 詩월의 마지막 날, 당신만을 준비해 놓은 커피 레시피가 있다.

그 커피를 당신에게 건네며 나지막이 말할 것이다. Stand by me!


그래, 꽃 같은 청춘이다. 시들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피고 마는 꽃.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만에, 아프리카 청춘이도다~ 


안녕, 리버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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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다. 詩月.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詩적인 책 읽기다. 

쉽게 흔들리고 짧기만 한 이 계절, 그냥 흘려보내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삶을 詩로 만들 수 있는 방법, 이런 책을 읽으면 된다! 


 엄기호다. 망가진 학교에 대한 한탄 한 자락 더 보태려는 게 아니다. 교육 불가능의 시대, 학교 현장을 두려워해야 하는 교사의 존재라니, 우리는 왜 이런 지경에까지 도달했을까. 

우선 그들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절망과 망함, 명확한 현실 인식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거짓 희망이나 미화가 없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가치와 가능성을 믿고 선생이 된 교사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것, 그러면서 절망의 끝을 확인하는 것. 엄기호는 교사들이 '타자'를 만나라고 권하는데, 그것, 참 문학적이다. 시적이다. 시인 프르날두 페소아는 말하지 않았던가. 

"산다는 것은 타인이 되는 일이다."      



더 좋은 삶, 더 좋은 세계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만나야 할 질문이다. 그리고 답은 없다. 스스로 내야하는 문제지만, 다른 누군가의 통찰과 지성이 필요하다. 하워드 진, 노엄 촘스키, 우르바시 바이드, 피터 퀑, 위노나 라듀크, 벨 훅스, 바버라 에런라이크, 매닝 매러블, 마이클 앨버트. 귀를 기울여보자. 우리는, 나는 더 나아질 수 있다. 지금-여기의 혁명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자. 이 세계는 절망의 구덩이지만, 절망에서도 삶은 지속돼야 한다.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혁명은 詩적 정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건축이 그 최강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예술이자 자본의 최첨단이 건축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사이의 긴장과 자본과 예술 사이의 대립이 건축을 사유할 수밖에 없는 오브제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현대 건축의 3대 거장 가운데 라이트와 로에 두 사람을 다룬 책이라니 어찌 동하지 않을쏜가.  

잘 된 건축은 詩라고 감히 말하겠다. 현대 건축의 두 거장을 읽는 일은 한 편의 詩를 만나는 일이다. 詩월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 또 혁명이다. 

어쩔 수 없다. 詩월은 그렇다. 으스러진 혁명의 아이콘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10월 9일의 체 게바라. 올해 46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왜 등장하게 됐는지를 사유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랑스 혁명과 1948년의 혁명,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등을 통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당연히 혁명 이후의 삶과 세계가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혁명의 쟁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 이후다. 프랑스 혁명과 볼셰비키 혁명은 그것을 잘 대변해준다. 그러니 쓰러진 혁명 체 게바라를 그리는 일은 詩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다. 끊임없이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20세기 가장 완벽한 사람, 체 게바라를 위해 쿠바 커피를 내리고 싶다. 체 게바라는 그 자체로 詩였다. 



'그린'이라는 말에 섬뜩해할 필요는 없겠다. 그놈의 녹색성장 때문이다. 자연과 지구를 초토화하는 일에 '녹색'이라는 레떼르를 붙였던 전 정권의 개념 없음이 불러온 재앙 때문이다. 

그린 어바니즘, 생소한 타이틀인데, 도시와 환경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기 위한 개념이란다. 그것은 삶, 그것도 지속가능한 삶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도시의 역할과 책임을 다룬다. 도시와 시민은 서로 삼투압한다. 장소, 공동체, 생활양식 등을 형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사유이자 실천이다. 궁금하다. 그린 어바니즘을 통해 우리는 도시에서의 삶을 詩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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