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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도정일, 채현국 선생님과 더불어,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어른이자 노장 황현산 선생님의 말씀이다.


괴담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를 짚어내고 성찰을 이끌어낼 줄 아는 글(쟁이)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망각의 과잉에서 탈피하고, 기억의 과잉을 걷어내는 것.

그리하여 제대로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고 움직이게 하는 힘.

그런 글과 글쟁이를 만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영면은 그런 면에서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로 고생하다가 지난 17일 87세의 나이로 타계한 그는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쓴 사람이었다. 이야기하기 위해 살았고, 이야기하고 죽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이 집단적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잊지 않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과 혜안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글쟁이가 있으면 좋겠다.


윤민석은 그런 면에서 '노래'로 그것을 대신한다. 


맞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사회도, 정부도, 믿을 수도 기댈 수도 없게 됐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놓아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켜야 할, 끝까지 버려야 할 무언가가 우리에겐 있어야 한다. 


에코가 말했듯, 자기 안에 있는 타자를 발견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윤리를 얻는다.


커피노동자이자, 추출노동자, 조리노동자, 마감노동자로서,

노동자협동조합연합회 창립과 출범을 맞이하며, 떠오른 단상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내 노동윤리와 내 직업윤리가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며, 지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번 노동절의 내 선언은 "만국의 노동자여, 연결하고, 협동하라." 


 

이번 주, 가보(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애칭)를 애도하는 주간이 될 것이다. 

다행이라면, 내 주변에 가보를 알고 얘기할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작년에 그와 가보의 알츠하이머에 대해 안타까움과 슬픔을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와 함께 '내 슬픈 가보의 추억'을 이야기하면 좋겠다. 

그것이 '책의 날'에 하면 더욱 좋겠지만, 아니면 어떠랴. 


중요한 것은, 

가보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에도 '연결의 상상력'을 제공한 사람이 있던 덕분이었다.


아디오스! 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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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을 (아마도 자발적으로) 임대한 대한민국은, 

도대체 이리 비싸디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도 지옥도를 탈피할 생각을 않는 것일까.


사망자, 실종자, 구조자. 

모든 것이 숫자로 성큼 다가온다. 지옥은 그렇게 단순하게 숫자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제의 영화<한공주>에 이어 진도해상 '세월호' 침몰 앞에, 

아이들은 꼭 내게 물어오는 것 같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고 또 죽어가야 어른들은 정신을 차릴 것인가요?"

"어른이란 작자들은 왜 이 모양인가요? 잘 봐둘게요." 


적당한 망각은 삶의 축복이다. 

'유쾌한 망각의 철학'을 설파한 니체의 잠언에는 의당 고개를 끄덕인다. "망각한 자에겐 복이 있나니, 자신의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의 적당한 망각에 대한 예찬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을 지우면 내가 나 일 수 없음을 확인한!) 


문제는 망각의 과잉이다. 

지옥의 유황불에 익숙해진 우리는 과잉의 망각을 통해 현재의 노예가 됐다. 삶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했다. 그것은 되레 현재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침몰하고 붕괴하며 절멸한다. 


봄은 누구에게나 소리와 향기, 색채 등으로 다가오는 것이지만, 겨울의 꽁꽁 얼어붙음에서 소생과 부활의 기회가 평등하게 스며들지만, 


누군가에겐 그 봄이 없다. 

자연의 세계에 봄은 평등하게 다가오지만, 인간의 세계에서 봄은 그렇지 않다.

소생의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부활의 가능성은 들쑥날쑥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난무한다. 그 불평등은 이곳을 무간지옥으로 타오르게 만든다. 


살아야 할 것은 살지 못하고, 피어나야 할 것은 피어나지 피어나지 못한다. 

일어나야 할 것은 일어나지 못하고, 구조돼야 할 것은 구조되지 못한다. 


이것이 인간의 '질서'다. 이 질서가 인간 세계를 초라하고 천박하게 만든다. 어른은 어른답지 못하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바쁘다. 망각은 어른의 가장 큰 특징이다. 어른을 믿지 않고, 사회를 믿지 않는 아이들은 그래서 당연하다.   


도정일 선생님의 질문을 되새김질한다. 봄은 어디에 와야 하는가. 

자연의 봄은 왔지만, 인간의 봄, 사회의 봄을 결국 망실하고야 만 희생자들에게 나는 봄을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만 침몰한 것이 아니다. 또 침몰한 것은 우리의 봄이요, 그들의 봄이다. 

나는 이 지옥도를, 이 격한 아비규환을 물려받아야 할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며 한 없이 미안하다. 


이 지옥은 또 망각할 것을 강요할 것이기에, 

기억해야 한다. 4월의 봄이 잔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리고 당신도 함께 기억해주길 바란다. 최소한 우리는 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음을. 나도, 당신도 저 침몰에 분명 책임이 있다. 우리는 이 지옥도에서 구조되지 못할 것이지만, 아이들 다음 세대에까지 그것을 강요할 순 없지 않는가. 물귀신 작전을 펴는 것도 비겁하지 않은가. 


우리는 지옥을 임대한 채로, 그것도 비싼 임대료를 치러야 하겠지만,

그 자발적 임대차 계약은 우리에게서 쫑내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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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혁명은 혁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수히 많은 말을 통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은 입으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문자가 있는 사회에서는 글을 아는 남녀가 써내는 수많은 글로 나타난다. 

- 에릭 홈스봄 - 


오늘 볶는 커피는 아주 초큼은 특별해요.  

매일 매일이 특별하지만, 오늘은 아주 초큼 더! 

오늘, 그리고 한동안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커피를 준비하고 있거든요. 뭣보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사람과 나누고픈. 


한 명민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혁명주의자의 타계 소식에서 비롯됐어요.

역시 그 덕에,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도 알아차렸죠. 


그리고 자그맣게 혼잣말을 했어요.  

아 그래, 시월이구나, 시월. 10월.



에릭 홉스봄이 타계했습니다. ㅠ.ㅠ 

현지시각으로 10월1일. 어젯밤 들었습니다. 향년 95세. 

그리곤 떠올렸죠. 타협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탁월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에 놓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다가오네요. 


홉스봄 영감, 1917년 태어났어요. 뭔가 살짝 꿈틀하죠?

맞아요. 러시아 10월혁명(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던 해. 

그리곤 10월 혁명을 죽는 그날까지 늘 가슴에 품고 산 남자.

"10월 혁명의 꿈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버리고 거부했건만, 사라지지 않았다."


아… 이 미친 고해성사라니요! 


그렇게 가슴에 콕 박힌 '혁명의 시대'를 죽을 때까지 내치지 않고, 

성찰을 바탕으로 한 신념으로 평생을 지탱한 역사학자의 죽음이 시월이라는 사실. 그것에 자꾸 미련한 의미를 두게 됩니다. 


어쩌면 혹시, 이 노친네! 

죽을 날(日)까진 무리였어도 죽을 달(月)은 얄짤 없이 시월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무고한 혐의(?)까지 둡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시월에 죽음을 맞은 또 하나의 혁명, 체 게바라(9일). 곧 다가올 그의 45주기. 


또한 스물일곱의 요절로 이름을 박은, 

전설의 뮤지션 3J 중의 한 명이자 혁명적 뮤지션, 재니스 조플린(4일). 그녀의 42주기. 


시월은 그렇게 혁명의 달. 

그러니, 저는 훅 끌리듯 '혁명'을 레시피로 한 커피를 볶습니다.

마성의 혁명커피. 에릭 홈스봄을 추모하면서 체 게바라와 재니스 조플린까지 블랜딩한. 


로스팅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홉스봄 영감, 자서전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죠.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85세의 나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며 여전히 세상의 불의에 맞설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노친네의 외침을 외면할 자신, 없습니다. 그는 같은 책에서 여전히 짱짱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였죠.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내가 그 글을 유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p.508)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가들의 마음을 담은 커피. 

그들의 마음이 마냥 강퍅하리라 오해하지 마세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적 마음이 얼마나 달달하고 알싸한지, 제 커피는 그것을 알려줄 거예요.  


아, 마침 찾아온 우리 커피집 단골.  

간혹 저와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상상하는 그녀가 이심전심이었는지, 《혁명의 시대》를 들고 옵니다. 와우~ 이런 멋진 우연이! 


그녀도 이미 알아챘을 거예요. 

제가 오늘 어떤 커피를 만들어 제공할 것인지. 

비록 9시가 되진 않았지만, 이심전심 그녀를 위해 1000원에 '혁명의 시대 커피'를 제공합니다.  



우리 커피점 서재에 꽂힌 《혁명의 시대》에 눈길이 갑니다. 

3분의 1도 채 읽지 않고 방치해놓고 있었던 《혁명의 시대》. 

이 시월엔 다시 꺼내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그녀가 말합니다. 


"우리 좀 통한다 그쵸?"


"하하. 절 너무 잘 아는 거 아니에요? 너무 많이 알면 조직의 후환이 있을 텐데~" 


"피, 그 조직 하나도 안 무섭네. 사실 그동안 회사 일 핑계로 쌓아놓기만 한 책이 너무 많아요. 홉스봄 할아버지가 죽어서야 다시 꺼내는 게 미안하긴 한데, 이달의 테마는 정했어요. 먼지 털어내기! 《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 그리고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까지 읽어보려고요. 그러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와~ 다 읽고 얘기 좀 해줘요. 그말 듣고 커피 좀 만들어볼 테니까. 지연씨 말을 원재료로 블랜딩 해드릴 테니, 꼭이요."


"근데 아저씨, 요즘 마을공동체는 잘 돼 가요? 잘 돼야 할 텐데."


"뭐, 그저 그래요. 쉽지만은 않네요. 관료주의라는 괴물이 삼키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고."  


"그럴 거예요. 공동체, 지금 꼭 소멸된 단어 같아서 요즘 사람들 쉽게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한편, 너무 무분별하게 남발돼서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홉스봄이 이런 신랄한 말도 했어요. "사회학적 의미에서 공동체들이 실재의 삶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된 최근 수십 년 동안처럼 '공동체'라는 단어가 무분별하고도 공허하게 남발된 것도 없을 것이다." 마을공동체도 무분별하고 공허하게 남발되는 공동체의 하나가 아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는 신념이 필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 홉스봄은 마을공동체에도 영감을 줄 것 같네요."


"이런 이런, 나보다 더 많이 마을공동체를 안다니까. 너무한 거 아니에요? 하하. 별별 일에 관심도 많고. 오늘은, 재즈 어때요?"


"짜잔, 그렇지 않아도 빌리 홀리데이 앨범 갖고 왔어요." 


"야~~ 진짜, 졌다, 졌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까. 오늘 안 왔으면 섭섭할 뻔 했어요. 진짜." 


"나 이래봬도 센스 짱이라니까요. 그래서 홉스봄이 마르크스와 혁명만큼 좋아했던 재즈도 당연히 준비했죠. 하늘에서도 들으라고 이렇게 짜잔~"

 

"맞아. 그러고 보니, 시월은 역시 재즈의 계절이네요. 홉스봄이 시월에 생을 마감한 이유가 마땅히 있다니까. 하하." 


"혹시 읽어봤어요?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Jazz Scene)》?"

 

"아뇨. 아직은." 


"홈스봄 영감, 재즈광이라서 프랜시스 뉴턴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냈어요. 역사에 대해서라면 불편부당한 자세를 꼿꼿이 유지했던 영감도 재즈 앞에선 어쩔 수 없었나 봐요. 흐물흐물해진다니까요. 되게 주관적이고 격정적으로 재즈에 대해서 아낌없는 헌사를 바치거든요. 물론 그것도 그의 말을 들어보면 이유가 있어요. "재즈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근간을 두면서도 주류 예술로 성정한 아주 드문 사례다." 아마, 더 오래 살았다면, '재즈의 시대'라는 책도 냈을지 모르죠. 호호."  


그리하여, 

그녀가 들고 온, 

홈스봄이 추도사까지 쓰면서 격하게 아꼈던 빌리 홀리데이의 선율을 BGM으로 깝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월의 가을밤, 빌리데이의 선율이 온 몸을 감쌉니다. 

비록 먼저 저 세상으로 가서 홉스봄으로부터 추도사를 받기도 했던, 빌리 홀리데이지만, 지금은 홉스봄을 위해 이런 노래를 불러줄 것 같아요. 

.   


 


"아저씨, 다음주,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 가요?"


"가야죠. 시월이잖아요. 그리고, 혁명의 계절이니까. 홉스봄도 없고, 체 게바라도 없고, '대가의 시대'가 소멸되고 있는 있는 마당에 재즈라도 있어야죠. 하하. 깊은 슬픔이 담긴 재즈 같은 거. 혁명처럼 지독하며 진하고 슬픈 커피와 함께라면,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 밤, 밤9시의 커피를 찾는 사람들에겐 '혁명의 시대 커피'와 함께 이 말이 적힌 쪽지를 살짝 건네야겠습니다. 


홈스봄이 손자들에게 전한 유언 같은 한 마디.

"호기심을 가지거라. 호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최대의 자산이거든."


작년에 나왔으나 한국엔 아직 번역되지 않은 홈스봄의 저서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How to Change the World)가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영감의 이런저런 말씀이 오늘, 밤9시의 커피에선 반짝반짝 빛납니다. 


물론 내가 받아들인 대의가 실패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공산주의를 선택하지 말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상을 품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인류를 위한 유일한 이상이 물질적 풍요를 통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인류는 언젠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미래는 더욱 낫고, 더욱 정의로우며, 더욱 활력 있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굿바이, 홈스봄 할아버지! 

당신의 죽음으로 '대가의 시대'도 거의 종결되어가는 것 같네요. 

이 서늘한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것인지, 당신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그 바람결에 묻은 슬픔, 혹시 혁명이 흘린 것일까요?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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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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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7 0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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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8 20: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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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9 01: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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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대수 - 양호 

신촌 아트레온 부근의 편의점. 내 눈에 확 들어왔다. 한대수 선생님이다. '행복의 나라로', 짝퉁은 가라. 진짜 자유영혼 혹은 폭풍고통의 연속. 얼른 다가갔다. 한 아이가 편의점에서 뛰쳐나와서 팔딱팔딱 뛴다. 저 해 맑은 웃음. 양호다. 한양호. 2007년에 태어난 선생님의 늦둥이 딸이다. 지금, 한대수 삶의 이유. 선생님의 노래, <양호야 양호야>의 주인공. 

그러나 양호의 해맑은 웃음과 달리, 선생님의 표정은 밝지 않다. 건강을 여쭸다. 겉치레라도 괜찮다고 답할 법 하나, 선생님은 대번에 좋지 않다, 고 말씀하신다. 들고 있던 책에 사인을 받으며, 선생님은 최근에 출간된 책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한 청년도 그런 우리에게 다가와 선생님의 사인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표정, 어둡다. 진짜 건강이 좋지 않으신 거다. 발걸음을 떼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근 김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 영화배우 김추련 선생이 떠올랐다. 스스로 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런가. 죽도록 방치해 놓은 건 아닌가. 한대수 선생님과 같은 국보(!) 혹은 인간문화재(!)를 이렇게 내버려둬도 좋은가. 무엇을 지켜야하는지, 예술가를 어떻게 대우해야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국가는 뭐하는 거지? 

그런 그들과 우리를 위한 사회적기업은 어떤가. 

과거 우리를 충만하게 만들었던, 우리를 지켜줬던 예술가들을 지키는 일은, 곧 지금의 우리를 위한 것이다. 지독한 상실감에 젖기 전에 말이다. 그들과 우리를 위한 사회적기업이 필요하다는 생각, 나쁘지 않다. 

행복의 나라, 혼자 가는 길은 모른다. 그곳은 어떻게든 함께 가야할 길이다.



2. 눈물
가을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왠지 한 바탕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얼 스틸> 덕분에 눈물을 만났다. 왜 저런 영화냐고? 그건 상관 없다. 그냥 울고 싶었으니까. 고맙다. 리얼 스틸.

그것 아나? 강철도 운다.  

3. 다행
어제 인도와 도로 사이에서 쓰러진 아저씨. 타박상은 어쩔 수 없으나, 괜찮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박원순 시장이 숨진 노숙자 빈소를 부러 찾아갔다는 소식이 누군가를 움직이게 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술 많이 마시고 길가에 쓰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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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운 좋게도, 공저자로 '꼽사리'를 꼈던 《100인의 책마을》.
책은 지난해 가을경 태어났으나, 그 속에 담긴 나는, 2년 전의 나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그때와 또 다르다.
 편협하고 옹졸한 것은 여전하지만, 나는 달라졌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싫음(혹은 나쁨)과는 상관 없이.

책에 텍스트로 찍히기 전의 판본이다.
그러니, 정제되지 않은, 인터넷에서 좀 더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말도 있다.

올해, 나는 어떻게 달라지고, 변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다만 그때나 지금 달라지지 않은 건, 이 엄한 세상, 버티고 견뎌야 한다는 것.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큰 어긋남 없이 지켜나가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지키기가 가능하길. 

 

 
 

[저자 소개] 준수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만든 커피 한 잔에 미소 짓고,

공공성과 편협한 취향들이 공존하는 커피하우스의 일부가 될 날을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커피라는 콘텐츠로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하고,

아름답고 섹시한 여성의 고혹적인 자태를 좋아하고,

야구장에서 미친놈처럼 자이언츠 응원하는 것을 좋아하고,

몇 점의 구름이 그려진 청명한 하늘과 마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비 오는 날,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마음까지 함께 두드리면 좋아하고,

식물이 우거진 길을 거닐면 좋아하고,

편협하고 편파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과 글을 좋아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정성이 깃든 요리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다만, 사람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사람의 가변성을 믿으며,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

소원 중의 하나는, 나이테처럼 멋진 주름을 가진 노장이 되는 것.

사랑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랑지상주의자에 가까운 사람.



내 좋은 친구들, ‘F4’와 인사하실래요?  
 

자, 책에 얽힌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 여기, 한 청년의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보탠 ‘F4’가 있어. 청춘 시절이 대개 그렇잖아. 방향을 몰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것. 아니 방향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헐떡거리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어떤 한 순간에서 그 이후가 비롯되고야 마는. 모든 만남이 우연이듯, 책도 마찬가지야. 우연이 켜켜이 쌓여 인연이 되고, 그 인연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고... 꽐라!~

아, 잡설 닥치라고. 좋아. 바로 그 F4를 알려주지. 《고종석의 유럽통신》(고종석 지음/문학동네 펴냄, 1995)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조병준 지음/그린비 펴냄, 1998) 《B급 좌파》(김규항 지음/야간비행 펴냄, 2002) 《지구 위의 작업실》(김갑수 지음/푸른숲 펴냄, 2009). 그건, 곧 고종석이고, 조병준이며, 김규항인 한편 김갑수인. 책(글)과 사람이 다를 수도 있다고? 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내겐 그들이 지금 여기까지 내 인생의 F4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

F4가 꺼내놓은 지도. 그건 아직 청춘을 관통하는 내게, 방황과 방랑이 추적추적 대는 내 삶에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줬어. 군대 시절에 읽었던 《고종석의 유럽통신》, 사회로 본격 나가기 전에 만난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오후 4시의 평화》, 직장 생활 중 접했던 《B급 좌파》, 직장을 탈출하고 새 삶을 꾸릴 때 읽었던 《지구 위의 작업실》.

삶의 어떤 변곡점에서 만났던 F4, 그러니까 그들은 내 좋은 친구들. 그들은 내 젊음의 한때를 함께 했고, 위태하던 내 민무늬 정신에 위안과 방향을 제시해줬어. 어쩌면 나는 이들에 의지한 것이 아니었을까도 싶어. 살아온 날보다 많이 남은 살아갈 날에도, 믿고 기댈 수 있는 친구이기도 하고.

사실 내 생각과 행동, 사고체계와 인식이 어디까지 고유한 내 것이고, 어디부터 주입되고 흉내 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어. 너도 마찬가지겠지? 그래도 일정 부분, 구획 지을 순 없지만, 이 친구들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은 분명해. 지분이 얼마나 되냐고? 흥, 지분 따위 따지는 건, 경영권 다툼을 하거나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치는 곳에서 하는 거라고! 꽐라~

물론, 지금 다시 보면, 그때와 다른 울림을 안겨다주기도 하지. 세월이 마냥 그때와 똑같은 시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니까. 나도 다른 무게의 세월을 관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안겨다 준 주름, 청춘의 변곡점을 기억해.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평생 따라붙을 지도니까. 그들을 통해 나는 다시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까. 그래. 내 친구들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줄게. 자~자, 인사해. 안녕, 준수의 친구들.


[이상 인트로, 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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