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 춘광4설(春光4說)
- 잘 지내고 있나요? 장국영 그리고 우리!
 

2013년 4월 1일.
장국영(張國榮, 장궈룽, Leslie Cheung)이 작별을 고한 지 10년째 되는 날입니다.

 

만우절의 거짓말처럼 다가왔던 10년 전 작별인사.
그의 뜨거운 작별인사로 우리는 한 시대를 떠나보냈습니다.

 

그렇다고 그를 잊진 않았습니다.
기억은 떠난 자가 아닌 남은 자의 몫이니까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

“슬픔은 언제나 형벌이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누가 슬픔을 즐기겠는가. 떠난 자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쓸쓸한 법이다. 그렇잖아도 이미 충분히 쓸쓸하고 허전한 삶인데, 떠난 자를 기억하는 슬픔까지 더해야 하는가. 더해야지 어쩌겠는가. 그게 살아남은 자가 치러야 할 대가인 법인데...”(조병준)

 

역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장국영의 명복을 빌고 슬픔을 더하는 일.
어쩌다 당신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영화를 돌려보는 일.
남은 자의 슬픔을 곱씹으면서 당신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일.

 


장국영 10주기를 하루 앞둔 3월31일(일) 오후 6시.
서울 서교동의 ‘수운잡방’에서 장국영을 기억하는 시간, ‘春光4說’이 열립니다.

 

제목에서 뭔가 떠오르죠?
맞습니다. 춘광사설, 같은 발음인 ‘春光乍洩’,
<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의 중국식 제목입니다.


춘광사설(春光乍洩),
‘구름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햇살’이란 뜻으로,
< 해피 투게더 >의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가 나눈 봄햇살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네 생과 사랑도, 우주력에 비한다면, 구름사이로 잠깐 비치는 봄햇살처럼 지나가 버리는 것이겠죠.

 

한편으로 그것은,
장국영의 생애를 함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3월31일(일)오후6시 수운잡방의 밤9시의 커피,
< 해피 투게더 >를 함께 관람하고 ‘春光4說’을 나눕니다.
4명이 봄햇살처럼 장국영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
밤9시가 되기 전이지만, 우리의 시간은 오후 6시를 밤 9시로 여기고 시작할게요.

 

참가신청, 위즈돔(http://www.wisdo.me/1749)을 통해서만 받습니다.
(* 참가비 5000원에는 밤 9시의 커피, 1000원(커피값)에 공간료 4000원이 포함돼 있습니다. 커피는 수운잡방의 '낭만'이 장국영을 블렌딩하여 볶고 내린 것만을 제공합니다. 다른 메뉴는 고를 수 없으니, 마땅히 참고 비워주세요. 아울러 저녁 먹을거리는 제공하지 않으니, 따로 준비해 주세요. ^.^)

 

그리고 다음날 4월 1일,
장국영을 위한 ‘엔딩 크레딧’, 오롯이 당신만이 올려주시면 됩니다.

(4월1일 수운잡방에선 ‘서울프린지네트워크’가 준비하는 ‘희망카페’가 열립니다.) 

 

 

참고로,
밤 9시의 커피에는,
힐링? 그따위 것 없습니다.
멘토? 그런 것도 취급하지 않습니다.

지금 세상이 이상하게 포장해서 파는 힐링과 멘토(링) 따위,
빤한 조언 따위 사절입니다. 힐링팔이, 멘토팔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밤 9시의 커피는, 오롯이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입니다.
그 커피 한 잔에는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세상이나 대한민국은 잊어도 좋습니다. 커피 향과 음악만으로 충분한 시간이니까.

 

외돌토리, 떠돌이, 허풍선이, 날라리, 양아치... 그 모든 사사롭고 소속을 거부하는 영혼의 해방구를 여는 시간, 밤 9시의 커피.

 

그리하여, 당신과 나,
‘잘 비워낸 한 생애가 천천히 식어가는 동안’

커피가 한 잔의 문학이자 생임을 확인하는 시간.

간절하게, 두려움 없이...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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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

거리를 거닐 때도, 미디어를 만날 때도, 온통 한 사람의 얼굴이 도배질하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앞으로 5년 잘하길 바란다는 이성을 비집고 나오는, 저 지겹고 구린 얼굴과 쇳소리 비슷한 목소리가 싫었다. 그가 오십 차례 이상 내뱉은 '국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나는 포함이 안 됐으면 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진짜, 이땅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어설프게 형성된 '국민'이기보다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을 섭렵한 '인민'이나 '시민'이고 싶으니까. (물론 알다시피 이 땅에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은 없었다!)

 

그런 꿍한 마음을 치유해준 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으니.

이땅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미국(정부)이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니 아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내게 하루 힐링이었다.

 

 

눈물이 찔끔.ㅠㅠ

 

내게서 줄리아 로버츠를 은퇴시킨 여신,

앤 헤서웨이(여우조연상)부터 시작된 힐링 릴레이는,

<레미제라블>팀의 감동적인 군무와 노래로 감정을 고조시키더니.

 

 

 

연기가 곧 '운명'이었던 십대의 소녀에게 혹했던 기억이 아직 짠하건만,

 

스물 셋의 나이,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치켜 든 '꽈당' 제니퍼 로렌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늘 나를 놀래키는 사랑과 이야기의 연금술사인,

아시아, 그리고 대만의 감독 이안과 그가 만든 눈과 마음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랍고 감동스러운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땡큐, 쉐쉐, 나마스떼! 이안 감독님의 천진난만한 수상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미친 연기술사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 포스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초의 3회 수상! 앞으로 우리는 링컨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얼굴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방점을 찍은 건, 미셸 오바마의 깜짝 등장에 이은 최우수 작품상 호명!

그의 입에서 <아르고>가 툭~ 나올 줄은 전혀 일절 네버, 와우~

 

감독 벤 에플렉의 기쁨 한 바가지를 우물에서 길어올린 듯한 속사포 랩 소견 발표와

그 옆에서 므흣하고 웃고 있는 제작자 조지 클루니의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모습.


 

할리우드의 시상식이 내 마음의 앙금을 깡그리 없애버렸다.

제 나라 대통령보다 남의 나라 영화와 배우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힐링된 나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라는 인간이니까.

 

2월25일, '원 배드 데이'에서 '원 파인 데이'로 바뀐 어느 날.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앤 헤서웨이의 노예로다~ㅋ

 

<브로크백 마운틴>, 잭(제이크 질렌할)의 아내 루린에 대한 이야기를 외전으로 만들면 좋겠다. 그전부터 <프린세스 다이어리>로 알았다손 치더라도, 내게 처음 '배우'로 다가온 앤을 발견했던 그때 그 이야기. 그러고보니, 두 사람이 겹치네. 앤 헤서웨이, 리안. 덩달아 5년 전 1월22일 떠났던, 히스 레저.

 

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보고 싶다.

제니퍼 로렌스의 반짝반짝 빛나는!!! 구름의 흰 가장자리, 한줄기 빛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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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리마스터링 된 <러브레터>.

재개봉에 앞선 시사회, 가슴이 뛰었다. 보는 내내 뛰었다.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한 영화다.

슬픔을 애도하는 법.

극 중에서 아키바가 언급했듯,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와타나베 히로코는 후지이 이츠키를 그제서야 보낸다.

'오겡끼데스까(잘 지내나요?)'

 

그 옛날, 나도 히로코를 통해 애도하는 법을 배웠다.

함께 시사회를 본 친구도 무척 좋아했다.

슬픔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눈물을 나눌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어제(11일) 1주기를 맞은 휘트니 휴스턴의 유작, <스파클>도 보고 싶어졌다.

가족의 유대감과 성공의 어두운 면, 음악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영화.

출연은 물론 제작까지 겸했다는, 휘트니가 마지막을 불살랐다는 영화.

영화적으로 좋은 평가를 못 얻었다고 하나, <스파클>은 그걸 넘어설 수밖에 없다.

세상에 없는 여자, 휘트니 휴스턴의 것이기 때문이다.

 

휘트니 휴스턴, 오겡끼데스까.

열여덟의 나는 <보디가드>를 보고 보디가드가 되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원한 보디가드. 휘트니 휴스턴의 음성이 그렇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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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3-02-1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트니 휴스턴...오겡끼데스까... (먹먹해지네요...)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소셜 다이닝, '집밥'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 세 번째 시간, 집밥(1월24일)



어떤가요.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생각만 해도 흐뭇한 풍경이죠? 그렇게 밥을 함께 먹는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깔고 있는 것입니다. “밥 한 번 하자”는 말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가를 보면, ‘식사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를 허투루 넘길 수 없습니다. 건배를 하는 전통은 서양에서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태도라고 하죠. 또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함께 먹는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행위가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고, 단 한 끼라도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셜다이닝 집밥(www.zipbob.net, 대표 박인)’은 그런 순간을 만드는 공유기업입니다. ‘집에서 먹는 밥’이라서 집밥이 아니고, ‘같이 먹는 밥’이어서 집밥, 밥을 함께 먹는다는 삶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기적을 연결해주는 집밥입니다.


[서울, 공유경제를 만나다_집밥 신청 : http://wisdo.me/902]


같이 먹는 밥, 집밥


‘소셜다이닝 집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나의 식탁을 공유합니다.” 같이 먹으면 밥이 더 맛있다는 사실, 잘 알죠? 소셜다이닝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심포지온(Symposion, 향연)’입니다. 오늘날, 강연회로 인식되고 있는 심포지엄(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지칭했어요. 그러니,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인류의 DNA에 박힌 아주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였던 거죠.


그러나 사람들 생활이 바빠지고, 생활 형태에도 변화가 생기면서 우리는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을 잃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음식에 대한 존중과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죠. ‘밥상머리 문화’, 사라졌습니다. 박인 대표는 이런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특히나 본인의 경험에서도 ‘함께 먹는 밥’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집밥은 어쩌면 절심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반발.


박인 대표의 부모님은 인도에서 사업을 하셨고, 언니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자연히 박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생활,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혼자 먹는 게 싫었고, 그렇다고 공통의 관심사도 없이 무미건조한 자리에서의 밥 한 끼는 내키지 않았던 거죠. 박 대표, 어느 날, 회사를 관두고 혼자 집에 있다 보니, 우울해졌습니다. 혼자서 밥을 먹기도 싫고 이웃집 아주머니와 밥을 나눠먹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곤 실행에 옮겼습니다. 연락을 해서 함께 밥을 먹었던 경험. 그것이 참, 좋았습니다.


머리에 반짝 전구가 떴습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야. 함께 먹는 집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나와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함께 둘러앉아 먹는 밥상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면서 여유롭고 즐겁게 식사하는 밥상을 매개로 관계를 맺게 해주는 느낌의 공동체. 집밥은 그렇게 발을 뗐습니다. 그렇다면, 밥을 함께 먹는 것도 공유경제다? 왜 그런지, 박인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집밥을 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공유경제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방을 빌려주는 등은 이미 많이 하고 있어서 나는 음식으로 해보고 싶어서 집밥이 된 거죠. 하다 보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밥을 하는 것보다 ‘같이 먹는 것’임을 알았어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공유경제가 굳이 물건만 공유하는 게 아니고 같이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 개인 간의 신뢰를 기본으로 한 경제시스템을 공유경제라고 생각했고, 소셜다이닝도 공유경제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해외를 봐도 소셜다이닝은 공유경제의 범주로 인정받고 있고요.”


고로, 소셜다이닝 집밥은 누구나 편하게 밥 먹으러 와서 대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공유기업입니다. 식사를 매개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고 소통하게 하는 모임 문화기업입니다. 밥이 있고, 관계가 있고, 느낌이 있는 곳. 그러니 지난해 5월 탄생한 이 신생 공유기업은 250개가 넘는 밥상모임을 형성했고, 2천 명 가량이 밥 한 끼의 공동체를 경험했습니다. 덕분에 2012년 12월, 서울시 혁신형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고요.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밥상문화’에 대한 향수와 필요성을 공감한 덕분이겠죠.


집밥에서 만나는 공유경제


이미 타계했지만 일본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미식견문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p.174) 이것이야말로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좋은’ 음식을 만나면 ‘나눠’ 먹는 것. 미식(가)이 별건가요. 누군가와 작지만 내가 품은 세계를 공유하고 상호 교류하는 섭생을 하는 것.


집밥이 가진 차별화된 특징 중 하나도 그것입니다. ‘특정 관심사를 통해서 만난다. 호스트들의 명확한 주제가 있다.’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 유독 밥을 먹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밥을 먹는다는 행위가 주는 중요성 때문이겠죠.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책 《심야식당》이 주는 감성이 바로 집밥의 것과 맥이 닿습니다. 화려하고 대단한 밥상 아닙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밥상머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시간과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겁니다. 그래서 집밥은 ‘도시락’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채비도 갖추고 있습니다. 좋은 음식을 함께 나눠먹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일, 참 설레는 일이지 않나요?


“집밥은 꿈꿉니다. 전국의 집밥 네트워크를! 밥상으로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그려요. 집밥의 커뮤니티와 이야기가 계속 퍼지고 커진다면 제주도에 놀러가서 여행자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밥상 앞에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풍성은 밥상 앞에서 조금은 냉랭했던 우리도 ‘밥 한 번 먹은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박 대표의 말에서 탐식가와 미식가의 차이를 엿봅니다. 음식은 그냥 있을 뿐인데, 음식을 대하는 마음에 따라 그 음식은 달라집니다. 음식 먹는 일이 달라진다는 것은 삶과 세상을 새로이 재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맛있는 음식만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 탐식이라면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미식은, 함께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고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그 방법을 공유합니다.


1월24일 목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시신청사 3층 회의실,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 나누는 소셜 다이닝> 집밥을 만나보세요. 참가신청은 위즈돔(http://wisdo.me/902).



by. 커피향 공유하는 남자, 김이준수(공유경제 에디터)


밤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가 있는, 당신과 나의 공간을 꿈꾼다.

커피 한 잔으로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고, 세계를 공유한다.

그 알싸하고 향긋하며 좋은 커피향, 나만 맡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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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와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김광석 < 먼지가 되어 >

 

아무렴. 1월 6일은 '김광석'으로 채우는 하루.

그래서 '커피 김광석'을 마시면서, 김광석의 노래로 마음을 다스린다. 

 

2013년 1월 6일, 김광석 17주기.

광석이 형이 없음에도, 노래가 여태 불리고, 추모의 기운이 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렵지 않다.  

그의 노래 한 곡 한 곡이 누군가의 추억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추억에선 <사랑했지만>이, 또 누군가에겐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 등이 어쩔 수 없이 박혀 있음으로 인해서다. 

 

모든 노래가 모든 이의 추억 속 한 자락이 되는 경우, 김광석이다. 

김광석이기에 가능한 그것은, 많은 이의 삶의 결에 김광석이라는 노래가 묻어 있다.

 

오늘, 동숭동 학전블루에서 '김광석 따라부르기'가 열렸다.

1월 26일 대구와 2월 1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 무대가 열린다. 4월엔 김광석 쥬크박스 뮤지컬 <그날들>(6월까지)이 무대에 오른다.

 

언제부터인가, 이맘 때면 늘 찾아갔던 홍대 부근의 그곳. '들꽃이 피는 자리'.

주점이다. 김광석이 있고, 체 게바라가 있다. 주인 아저씨에게 김광석에 얽힌 뭔가 추억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광석 노래가 늘 울려퍼지는 이곳. 원하면 또 틀어준다. 조만간 들꽃이 피는 자리에 들러야 겠다.     

 

오늘 김광석으로 모든 것을 채우는가 했는데, 

또 하나의 먼지가 된 사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조성민.

그는 내 또래다. '한국야구 황금세대 92학번'의 절정이었던 조성민.  

뭣보다 내 고등학교 때의 여신, 진실 누나의 한때 사랑이었다. 

성민은 먼지가 되어 진실 누나에게 날려갔다. 참, 슬프다.

 

광석이형 만으로도 헛헛한 이내 마음.

성민이의 죽음이 내 마음에 먼지를 불러 일으킨다.

(유)덕화 형의 <심플 라이프>가 그런 내 마음을 다독여줬다.

커피 김광석이 1월 6일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광석이 형 노래(<사랑했지만>)에 묻어 있는 너.

그런 너는 잘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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