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눈

 

강풍을 동반한 비에 이어 눈이 날린다. 씽씽 불어라. 펄펄 날려라. 4월이라는 달력의 타이틀이 무색하다. 그러나 '4월'이라는 것을 제한다면, 그게 그리 대순가. 실은 4월의 눈, 반갑고 좋았다.(춥다고 봄날씨가 왜 이러느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19년 만이라고 했다. 19년 만의 손님이잖나.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봄비도 그렇다. 어느 때부턴가 봄은 가뭄이 더 익숙한 계절이었다. 그런데, 이틀에 걸쳐 내렸던 봄비라니. 젖은 봄밤이 섹시했다. 어쩌면 쉬이 찾아오지 않을 봄비의 흐느낌. 어젠 특히 소리도 좋았고, 내음도 좋았다.

 

무릇, 봄밤은 그렇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의 마음에만 쌓인 봄눈과 함께.

 

 

미도리  

 

 

 

어제 봄비 소리 들으면서 이번 4월, 모처럼 미도리를 꼭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봄날의 곰 같은 미도리. 그래, 맞다. 《상실의 계절(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 봄눈 같은 그 여자.

 

미도리도 아마, 봄밤을 가장 좋아하지 않을까? 미도리와 봄커피 한 잔,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아마 혀가 얼얼할 정도의 시큼한 산미의 커피를 좋아할 것 같다. 나는 그 커피, 미도리 커피라고 명명한다. 봄은 산미가 찐한 커피가 제격이다.

 

봄밤

 

어제 북살롱에서 만난 장석남 시인, 봄밤에는 바람나는 것이 제격이라고 했다. 바람나지 않으면 봄밤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 봄밤에 바람나는 것이 자신의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 봄밤에는 바람. 그래서 나, 봄밤이라는 계절을 가장 좋아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당신의 봄바람, 죄 아니다. 봄밤이 그렇게 부추겼으니까. 

봄바람에 흔들려야 생명인 것이다. 봄밤이니까.  

 

내게 봄은 김수영 시인의 '봄밤'과 함께 오는 것이었는데, 하나 더 추가요~

 

봄밤 2


봄밤엔 바람나네
內外 없이 바람나네
방들을 헐고 바람들 들이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숨결들에 반하네
늙은 살구나무의 밤샘 신음에
개나리 울타리가 노랗게 앓네
봄밤에 나는 바람난 國境이네
內外 없이, 憂國忠情 없이
바람난 國境이네
그러나 봄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앓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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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의 첫사랑임을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어야 한다.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봄밤을 함께 맞이했던 내 첫사랑들.

                                그리고 봄밤이 봄꿈이 되고 말았던 내 첫사랑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군가의 첫사랑 덕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닥치고 사랑.

얼렁뚱땅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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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

구럼비가 우는 날. 43톤의 폭약으로 기어코 울리고야 만다.

무식하고 잔인하다. 야만적이다. 

 

64년 전 4.3항쟁을 재연하고야 만다. 

구럼비가 운다.  


기형도

그날은 (기)형도의 기일. 23주기인데. 

 

<꽃> 한 편 띄운다. 구럼비 때문이라도 꽃 한 잔 생각나는 봄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구럼비 때문에라도. 

 

 

내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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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무지개 2012-03-08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면하면 안되는데.. 자꾸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그런 아픈 날이네요..

책을품은삶 2012-03-08 19:37   좋아요 0 | URL
이 아픔. 잊지 않아야죠. 반드시!
 

인류와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역사를 바꾼 위대한 위인이자, 

같은 해(1809년) 같은 날(2월12일) 태어난,

(찰스 로버트) 다윈과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일보다,

 

어쩌다 그들과 같은 날짜에 태어난 나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보다,

 

오늘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흔드는 것은, 휘트니 휴스턴.

 

그러니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듣는 것밖에 없다.

 

듣고 또 듣고 흥얼거리고 또 흥얼거린다.

 

케빈 코스트너가 묻는다. "YOU, OK?"

나는 답한다. "I'm Not OK!"

 

나도, "Wait!"라고 외치고 싶다. 휘트니를 향해.

아직 휘트니는, 그 목소리를 박제할 때가 아니다.

나는, 우리는 세기의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1992년 12월의 겨울, 스무살이 채 되기 전의 어린 준수는,

'보디가드'가 되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안녕, 휘트니...

당신의 노래가 때론 부서지고 흩어진 내 마음을 보듬고 지켜줬다. 

그러니, 안녕, 내 마음의 보디가드여...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듣는 것. 당신의 목소리와 노래를 듣는 것.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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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2-1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은임의 FM영화음악 1992년 12월 달의 방송을 듣고 있는데 바로 이 노래가 나왔어요. 참 아이러니하고, 참 슬프고, 안타깝고 그러네요. 음악은 여전히 좋건만 사람이 아까워요...ㅜ.ㅜ

책을품은삶 2012-02-15 00:04   좋아요 0 | URL
아, (정)은임 누나의 이름을 함께 거론하시다니요..ㅠ.ㅠ
휘트니 누나가 하늘에 가서, 은임 누나에게 방송 얘길 꺼낼지도 모르겠네요.

음악만 남았네요.
그리고 살아남은 우리의 슬픔도 함께...
 

용산참사 3주기 추모사업 :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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