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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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7' 무슨 숫자냐고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CM멘트도 있지만 이렇게 눈 앞의 숫자로 보니 많긴 많네요. 다름아닌 메르타 안데르손을 비롯한 소위 '노인 강도단' 이라는 국적불명의 단체를 조직하여 스웨덴의 국보급 그림을 슬쩍했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에 등장하는 다섯명의 주요인물들 나이를 합한 숫자입니다. 거의 4백살에 가까운 세월의 축적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라는 아우라가 느껴질 정도의 숫자이기도 하죠.  이 숫자는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지수 (몸) 를 나타내는 숫자이지만 (즉 다시말해서 노후화가 되어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할 세월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죠) 반면에 그만큼 세월의 인내와 지혜 그리고 인생의 축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이기도 하죠. 인간에게 몸이라는 형이하학적 (하드웨어적) 이라는 실체는 아주 중요한 삶의 근원적인 요소임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매번 몸이라는 하드웨어에 집착아닌 집착을 할 수 밖에는 없는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를 부정하는 자체가 모순이기도 하고요. 고령화라는 용어가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는 지금, 우리에게 온전한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이런한 하드웨어를 온전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시기다 대두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소프트웨어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작품이 바로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메리타 할머니 시리즈이고요, 우리 독자들은 이 작품에서 진정한 하드웨어 즉 몸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네요.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는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의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 의 버전 두번째 작품입니다. 버전1 에서 독자들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친근한 케릭터들을 대면하게 되죠. 메르타 안데르손 (79세) : 노인 강도단의 리더. 합창단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요양소를 벗어나 노인 강도단을 만든다. 오스카르 크루프 (78세) : 닉네임 <천재>.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타고난 발명가. 기계를 조립하고 개조하는 취미가 있다. 비록 지금은 전동 휠체어를 개조하는 신세지만 젊은 시절 탔던 오토바이를 그리워한다. 사실상 노인 강도단의 브레인 역활을 한다. 안나그레타 비엘케 (81세) : 전직 은행원이자 암산의 여왕. 웃을 때 말 울음소리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베르틸 엥스트룀 (82세) : 닉네임 <갈퀴>. 정원 가꾸는 것을 좋아한다. 한때 선원이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려서 스티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스티나 오케르블롬 (77세) : 노인 강도단의 막내. 항상 차림새에 신경을 쓰며 뛰어난 수채화 솜씨를 가지고 있다. 문학 작품이나 속담, 명언을 자주 인용한다. 여성과 노인은 차이가 없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한다. 이렇듯 메르타 할머니와 그의 조력자들은 나이라는 숫자와는 정말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듯이 종행무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련의 행위들과 감칠맛 나는 멘트를 쏟아냅니다. 각자의 개성에 정말 너무도 어울리면서 거의 환상적인 앙상블을 이루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서사 그 자체만으로도 흥민진진한 세계로 발을 들여놓지 않을 재간이 없어지죠.


         1탄에 이어 이번에도 메르타 할머니 일당은 그야말로 보통 사람으로는 짐작할 수 도 없을 만큼의 기상천외한 발상을 시도 하죠. (달리 보면 메르타 할머니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기상천외한 상상을 사정없이 실천으로 옮긴다는 그 자체입니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보더라도 이들 노인네들보다 창창하다는 젊은것들도 감히 상상에만 만족하는 것들을 이들은 그야말로 질러버린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동안 사랑방 뒤켠의 한 자리만 잡고 있고 다소 고지식하면서 불통의 대상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노인들의 정체성을 완전히 180도 뒤 흔드는 그 자체이면서도, 왜 이들처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에 대한 명쾌한 해석으로 봐도 틀리지 않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나스 요나슨의 <창문넘어 도망간 100세 노인> 이라는 작품을 시초로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장르로 자리매김한 노인모험소설 장르는 아마도 전세계적인 고령화 열풍이라는 새태와 맞물려 그 인기가 더해지는 현상이지만 굳이 고령화라는 패러다임을 제거하더라도 어느 시대인건 충분히 어필될 수있는 소재와 사회적인 이슈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장르라는 뒤늦은 발견을 하게 되죠.  


          무엇보다 '다이아몬드' 와 '라스베이거스' 라는 부와 명예 그리고 양극화의 상징을 대두시키면서 작가는 이번 작품 내러티브의 근간을 어렴풋이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출발합니다. '다이아몬드' 는 예로부터 부의 상징으로 인류에게 많은 환상을 심어주었던 근원적인 심볼이고 이에 반에 '라스베이거스' 는 아메리카드림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표상으로 인지되어 있죠. 작가는 다름 아닌 이 두가지의 거대한 심볼을 마치 하찮은면서도 손쉬운 분리수거처럼 격하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드웨어의 년식이 거의 4백살가까이 된 노인들에게 취급되는 소소한 일상의 소일거리처럼 전락시키므로서 부의 상징이자 양극화의 표본에 대한 정면 도전을 실행합니다. 이러한 설정과 스트럭쳐는 이번 작품 역시 작가의 사유가 기초공사에서 만큼은 확실히 다져지고 있고 충분히 그 힘이 내제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작가는 이러한 사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인생의 선배 격인 나이 든 노인들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이와 동시에 인간은 하드웨어 즉 몸 이라는 고착화된 개념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판 홍길동을 연상케할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풀어가는 포복절도할 설정들과 서사들 여기에 이보다 안성맞춤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캐스팅 그리고 이를 마치 실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왠지모를 설득력과 이를 기반으로 둔 내러티브의 매끄러움이 독자들을 웃겼다 울렸다 하면서 대리만족의 기쁨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복지' 와 '분배' 라는 다소 무겁지만 거역할 수 없는 담론이 기저에 깔리면서 단지 노인모험소설이라는 어드벤쳐 같은 스피드와 스릴러를 선사함과 동시에 정말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문제점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지 고령화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더불어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이 과연 무엇일까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거리를 독자들 스스로 찾아가게끔 하는 기저가 있는 일종의 사회고발 작품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몸이라는 하드웨어의 년식이 과연 얼마나 중요할까에 대한 일종의 도발이자 그 하드웨어의 년식은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당위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죠. 속편은 원판보다 떨어진다는 속설을 무색케 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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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캐빈 10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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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스 웨어" ? 국내 독자들에겐 다소 생소한 인물이죠. 국내에 소개된 작품도 『인어 다크 다크 우드』라는 작품 고작 한편만 출간되었으니 더욱 더 생소한 작가라는 느낌이 먼저 와닿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단 한편만 접해봤는데 이 양반의 필력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단번에 받게 하는 작가라는 점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대해본 독자들이라면 다들 인정할 것입니다. 이미 영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애거서 크리스티의 뒤를 잇는 여류추리작가로 입지를 굳여가고 있을 정도로 영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기 급상승한 작가중 한명이라고 하네요. 전작이었던 『인어 다크 다크 우드』는 이미 헐리우드에서 영화화 결정하고 제작단계에 들어갈 정도로 루스 웨어의 작품에는 뭔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존재함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우먼 인 캐빈 10> 굳이 직역하자면 <10호실의 여자> 정도일까... 아주 드라이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분위기를 대충은 짐작하게할 정도로 아주 매끈하면서도 간결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이번 작품 역시 군더더기 없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내러티브가 전개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갖게 하고요.


          굳이 이번 작품의 장르를 어느 선에 두어야할 지 고민해본다면, 추리스릴러보다는 범죄스릴러에 가깝다고 해야할 듯 합니다. 물론 범인의 정체를 밝혀가는 과정에서 추리기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작품 전체적인 느낌과 분위기 그리고 설정된 요소등을 감안할때 범죄스릴러에 가까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초호화 요트 (절대 크루즈 같은 대형 여객선은 아니니까요) 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살인사건과 사건을 둘러싼 알 수 없는 정체의 인물들 그리고 주인공인 로라 블랙록 ('로' 로 불리죠) 의 활약상등을 담은 지극히 평볌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단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라는 특수한 공간적 환경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 특이하게 보일 뿐 그외의 요소들은 독자들이 그동안 경험했던 범죄스릴러와 별반의 특색을 찾기란 그다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입니다. 이렇듯 별반 흥미거리가 없는 작품이 왜 이리 영국의 독자들과 전세계의 독자들에게 호평을 듣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죠. 당연히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에에 대한 답은 분명히 있죠. 우선 장소적 배경이 바다위에 떠 있는 초호화 요트라는 점인데요. 루스 웨어는 전작인 『인어 다크 다크 우드』에서도 그랬듯이 사건 중심의 장소적 배경을 최대한 축소화 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런 장소적 배경은 전투에서 배수진을 치듯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끗하게 공개하면서도 그 협소한 공간속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점이 있는 거죠. 물론 이런 협소한 공간을 배경으로 내러티브를 끌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작가 특유의 힘이 있다는 전제가 아니면 작품은 그저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수 많은 억지와 합리화가 교차하면서 독자들에게 외면당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루스 웨어에게는 이런 협소적 배경을 극대화 시키는 남다른 재주가 있어 보입니다. 명백하게 어디 갈 수 없는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겐 엄청난 규모의 초호화 유람선속을 배회하게 하는 묘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죠. 여기에 등장인물들의 행동묘사와 심리묘사가 절묘하게 일조를 하면서 쉴새없이 책장을 넘기게 합니다. 등장인물들의 묘사 역시 군더더기가 안보이는데요 그러니까 몸풀기를 생략하고 바로 100미터 출발선에서 출발하는 단거리 주자들 처럼 단숨에 하나의 틀속으로 몰아넣어 버립니다. 협소한 장소와 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등장인물의 스피드있는 품새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는 알 수 없는 공포까지 더해져서 한번 시작하면 그 끝을 보게하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을 범죄스릴러 장르로 봐야한다는 점은 서두에서 피력했는데요. 추리스릴러로 보기에는 설득력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인데요. 이미 왠만한 독자들 (특히 추리스릴러 매니아들이라면 그리고 굳이 추리스릴러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이라면 초호화 요트와 그의 소유주인 리터드 볼며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인데요. 그리고 추리적인 논리로 보더라도 상당히 어색한 골조를 가지고 있는 구조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루스 웨어는 (아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추리적인 기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느껴지는데요) 추리적인 기법보다는 스릴러와 등장인물들의 심리들을 최대한 믹싱하여 독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트릭아닌 트릭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종결되고 물론 해피앤딩으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도 계속해서 이게 끝이 아니고 뭔가 더 있을 것이라는 희망 아닌 희망 또 다른 반전을 기대할 만큼 속 시원하게 사건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단 일주일사이에 벌어지는 시신없는 살인사건 주인공인 탑승한 배속과 실종이라는 언론매체의 발빠른 보도 그리고 핏빛이 낭자한 유형의 사건도 아니지만 왠지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것 만 같은 구성들이 한데 뭉쳐 스릴감을 배가시켜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작품입니다. 상당한 스피드감을 가지고 있고 블록버스터 같은 스케일은 보이지 않지만 한편으로 그에 못지 않는 알토란 같은 스릴감으로 인해 중독성을 불러오는 작품입니다. 전작의 주인공 '리' 와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로' 뭐 굳이 별다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왠지 자꾸 오버랩되는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 역시 루스 웨어의 의도적인 트릭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게 하네요. 여러모로 무더운 여름에 맞게 캐쥬얼하게 한번 접해볼 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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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1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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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스타인벡은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표 작가답게 『분노의 포도』로 이미 평탄이 검증된 작가이죠. 이번 작품 <에덴의 동쪽> 역시 전작인『분노의 포도』와 일맥상통하는 연장선에 놓여 있는 작품이지만 작가 자신의 가족사를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 미국 역사 특히 미국 서부 개척 역사를 담고 있는 대하역사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미미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존재감에 한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작은 지류들이 모여모여 큰 강을 이루듯이 결국 인간의 존재와 그들의 삶의 방식들 각각 점점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역사라는 관점으로 그 개별 인간들에 대한 애착과 더불어 인간들의 자유의지에 대한 심도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죠. 형식상으로 두 집안의 스토리와 시대의 변천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내러티브의 처음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전반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욱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덴의 동쪽> 은 존 스타인벡 자신이 직접적으로 언급했듯이 자신의 작품 활동과 삶의 결정판과도 같은 작품이자, 기존 자신의 작품들은 바로 이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초석이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신의 외가를 작품속에 중요한 비중으로 캐스팅하면서 작품에 대한 애증을 한층 더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서부터 제1차세계대전까지 사이러스 트래스크, 새뮤얼 해밀턴 양대 집안의 3대를 그리고 있는 대하역사소설로, 미국이라는 가치관 그중에서도 미서부가 가지고 있는 모멘텀을 진지하게 해부하고 민낮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여기에 존 스타인벡의 전형적인 사유인 인간의 삶, 자유의지, 희망을 모토로 작품 전반에 걸쳐 인간본연의 모습을 성찰하게 합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 의식, 카인과 아벨의 갈등 구조를 모델로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등 인생의 대립적인 양면성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죠. 존 스타인벡은 인간이 언제까지 원죄라는 굴레에 얽매어 있어야 하는지, 인간 스스로 죄를 다스릴 수 있는지등 (이게 이번 작품의 키포인트이기도 한데요, '팀셸' 에 대한 해석의 문제) 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기도 합니다. 당연하지만 그 해답으로 인간의 자각 인식, 관용, 인간애, 인간의 자유의지 등을 내러티브 전반에 깔아놓고 있죠.


          이번 작품은 마치 해밀턴 家 와 트래스크 家 두 집안의 스토리를 담고 있지만 촛점은 사이러스 크래스크 집안에 맞쳐서 있죠. 특히 2대인 애덤 크래스크가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역활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물론 엘리아 카잔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서는 칼 (제임스 딘) 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만요) 새뮤얼 해밀턴과 애덤 크래스크 두 집안의 각각 아일랜드와 미국 동부에서 이주해온 이방인으로 설정되고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서부의 현황을 바라보게 하는 심판자 비슷한 역활도 부여 받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 신의 한수라 할 수 있는 캐스팅이 있는데요. 애덤의 쌍둥이 아들도 아니고 새뮤얼도 아니고 그렇다고 작가 자신도 아니죠. 그것은 다름아닌 리(작품 말미에 찰스라는 이름이 등장하긴 하죠)의 캐스팅입니다. 리의 등장이야말로 이번 작품 내러티브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활을 하면서 제3자적인 시각에서 두 집안의 균형과 더불어 당시 미국 서부인들의 가치관 그리고 삶에 대한 근원적인 조타수 역활을 수행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바로 리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서부로 떠밀려온 이방인이라는 것이고 더욱이 백인이 아닌 당시의 인종적인 시각의 견해에서 비교대상이 될 수 없었던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다시한번 존 스타인벡의 등장인물 캐스팅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어찌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작가 자신인 존이 챕터를 시작하는 나레이션 (이부분은 상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모든 독자들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의 역활을 수행하는 정도에 머물럿다면 작품에 기조에 깔려 있는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의지등 중요한 사유에 대한 해답들은 리를 통해서 끌어가고 있습니다. 달리보게 되면 리야말로 작가인 존 스타인벡의 현현이라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애덤이나 칼 그리고 새뮤얼보다 더 애착이 가는 인물이기도 하죠. 한편으로 존 스타인벡은 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동서양의 가치관의 이질적인 부분들을 해소하는 모습과 노력들을 엿볼 수 도 있다는 재미도 있습니다.


          인간의 원죄,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인간의 자유의지등 인간본연의 사유를 담고 있지만 무엇보다 애덤의 쌍둥이 아들들에 대한 작명을 둘러싸고 애덤과 새뮤얼 그리고 리가 논쟁하는 장면이 압권으로 다가오죠. 히브리어로 '팀셸(timshel)' 이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에 대한 새뮤얼과 리의 논쟁이 다름아닌 이번 작품에서 존 스타인벡이 만천하에 공표하는 사유와 일치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애덤이 숨을 거두면서 팀셸이라는 말을 남겨두고 유명을 달리하죠. 이렇게 딱 두번에 걸쳐서 등장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와 '너는 죄를 다스려라' 혹은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각각의 해석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준다는 논거인데요. 창세기 4장을 두고 기존 성서의 해석처럼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 라는 절대자가 언젠가는 인간을 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약속 내지는 인간에게 죄의 극복을 명령하는 의미를 가지는 일종의 피동적인 뉘양스로 해석되었지만, 리가 해석하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라는 즉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미는 상당히 센셔이니셜한 뉘양스를 풍기도 있습니다. 이말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결국 다스릴 수도,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뜻인데요 결국 죄를 다스리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점을 강조하죠. 죄 (원죄) 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인간의 자유의지에 다른 선택으로 죄를 다슬릴 수도 있고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존 스타인벡은 리라는 현현을 통해서 「인간의 자유의지」 를 만방에 선포하면서 그 어떠한 논리보다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버립니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 이번 작품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부분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대편인 라이자와 올리브라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치밀함도 잊지 않고 있죠.   


          우리가 『분노의 포도』에서도 보았듯이 존 스타인벡의 근원적인 사유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의 의지 (톰 조드로 대변되죠) 에 대한 선택등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사유가 최우선으로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 역시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서 부터 시작되는 일련의 대하역사 드라마 같지만 그러한 서술들은 부차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금의 현대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과연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할 수 있는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해답을 찾게 해주는 바이블같은 명작이라 여겨지는 바이죠. 이러한 담론들을 걷어내더라도 이번 작품은 상당히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세밀한 인물들의 묘사, 당시 시대상을 짐작케 할 수 있는 각종 장면들 (마차의 시대를 접는 포드 자동차의 등장 그리고 당시 자동차 시동을 거는 복잡한 절차에 대한 서사등) 의 서사 그리고 간략하게나마 등장하는 작가 자신의 나레이션을 통해서 흐르는 강물 같은 군더더기 없는 서사들이 독자들의 시선을 충분히 사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노벨상을 수상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번 작품에 대한 찬사는 결코 겉치레적인 멘트가 아님을 독자들 스스로 확인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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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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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의 완벽한 오마주인 동시에 결말이 색다른 패러디, 방드리디의 위상 부각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재창조, 우화가 아닌 야만과 문명 그리고 순수함의 진가가 그대로 투영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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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루스 웨어 지음, 유혜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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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영국 작가인 루스 웨어지만 이미 영국과 전 세계적으로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이 파고들고 있는 떠오르는 신성이랄까요. 단 한편의 스릴러 (큰 틀안에서 범죄스릴러계열으로 봐야겠죠) 작품으로 이만큼의 호응과 주목을 받는 작가는 상당히 드물죠. 여기에 이미 영화화가 결정된 상태로 내러티브 자체가 상업적으로도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뭐 이러면 상당히 엔터테이먼트적인 작품으로 오인 받을 소지도 충분이 있겠지만요. 그렇더라도 한번은 루스 웨어의 작품세계를 검증 아닌 검증을 해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과연 어떠 부분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영화화할 만큼의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는지에 대해서요 여기에 이번 작품으로 하나로 반짝 인기에 끝날지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도 같이 반영될 듯 하기도 합니다.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굳이 직역하지 않겠지만 제목에서 부터 심상치 않는 느낌을 우선 던져 주네요. 왠지 으스스하고 불길한 (어둠이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에피타이저 맛을 자아내니까요) 느낌을 먼저 던집니다. 어느날 갑자기 십년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한통의 메일이 (정확히 그 친구는 아니지만 별로 좋지 못한 기억속의 친구가 결혼을 한다면서 그리고 결혼식은 아니고 신부의 싱글파티에 초대 한다는...) 오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많은 고민끝에 싱글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가게 되고 그 장소가 선뜻 다가가기 힘든 외딴 곳의 별장으로 서두에서도 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내러티브가 시작되죠. 뭐 이렇게 보면 아주 단순하면서도 흔히 우려먹는 컨셉트인데요. 루스 웨어는 여기서 그 우려먹던 컨셉트를 아주 효율적으로 창조적이자 자신만의 컨셉트로 치환시켜 버립니다. 우선 스토리의 장소적인 배경에서부터 아주 과감하게 선정하는데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공간적인 배경을 굉장히 미니멀하게 한정합니다. 별장이라는 한정된 장소 여기에 별장의 구조 자체가 외부에서 훤히 볼 수 있는 유리창의 구조로 된 별장 (왠지 외부자의 감시하에 놓여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 감시자나 외부자가 다름아닌 독자일 수 있다는 복선을 깔아버리죠) 그리고 또 극히 한정된 등장인물 (최대 6명) 를 등장시켜 범인의 범위를 아주 간결하게 좁혀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얼핏 한정된 장소와 한정된 등장인물 그리고 터지는 예기치 않는 진실과 사건... 뭐 답이 뻔한 것 아닌가 이런 선입관이 독자들 뇌리를 스치게 되는데요. 대게의 실패한 작품들이 그렇다는 거죠. 하지만 루스 웨어는 이러한 뻔한 구조를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미니멀화된 스트럭쳐라고 해야할까요. 극히 축소화된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롱숏에 가까운 기법을 혼합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거대한 장소와 더불어 수 많은 등장인물들이 출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등장인물들의 심도 깊고 절묘한 심리묘사가 더해져서 가능하게 되는데요. 우선 누가 범인인지 대한 축측을 불허 할 만큼 등장 인물들 각각의 심리가 독립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혼합되어 묘한 스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로라 쇼의 의식 세계에서부터 뭔가 꼬여 버리는데요. 루스 웨어의 신의 한수라고 할 만큼 이번 작품은 범죄심리스릴러로써 표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빠른 속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 더불어 상황묘사나 배경묘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멘트 하나 하나에 따라 알듯 모를듯한 묘한 공포감을 불러 오는 작품으로 한정적인 인물과 협소한 공간을 무한 확대하는 착각을 일으키는 유니크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제2의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찬사가 명불허전이 아니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전하는 작가이기도 하네요. 한 동안 전 세계 독자들에게 회자될 인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고 그래서 차기작이 더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품 전체가 주는 스산한 분위기와 등장인물들 각자가 연출해내는 기시감 같은 멘트들이 전반적으로 하나로 융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줍니다. 한번 손에 잡으면 끝을 보게 만드는 스토리의 빠른 전개가 행여 밤잠을 설치게 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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