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 영화한편 봐야지! 했는데 코로나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메가박스에서 명작 리플레이를 한다. 저렴한 오천원에. 영화관에서 다시보고 싶은, 띵작인 건 아는데 선뜻 보지는 못했던 영화들이 리스트에 있었고, 그중에 슬플것 같아서 미뤄두고 있었던 로마가 있었다. 오- 너로 정했어 ㅋㅋ!! 바로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는 데, 관객이 두명 있었나? 널찍한 영화관에서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신나게 부스럭 거리며 실컷 쿨쩍거리며 잔잔 + 감동 + 오열의 두시간 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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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와 빨래, 또 청소와 빨래라는 집안일의 백색소음으로 가득한 영화는 중후반 쯤에 의외의 스펙터클을 선사하고 (생각해보니 맥시코는 사파티스타의 나라 아니었던가!) 끝없는 파도의 물먹임을 삶에 은유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 뒤 다시 청소와 빨래로 돌아온다.


영화의 백미라는 바닷가 씬에서 나는 몸서리를 쳤는 데,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의 바다에서 수영하며 놀다가 호되게 당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난 파도, 짠물, 숨막힘, 통제할 수 없는 몸, 발이 닿지 않는 순간의 공포. 뒤집어진 바다에는 오만 쓰레기와 모래자갈이 섞여있어 온몸이 얻어 맞아 아팠다. 영화관 스크린에 꽉찬 검은 바다를 보며 그날 그 바다의 숨막힘을 떠올렸고, 지금 내가 겪어내는 것들 역시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져 지겨웠다.
인생=바다, 혹은 바다보다 더 무서운 우리들 인생살이여!


원치 않는 파도에 푹절어가며 물먹는 클레오, 휩쓸리지 않고 불러야 하는 이름과 구해야하는 존재들, 부둥켜 안음, 고백. 나는 펑펑 울었는 데, 이건 어떤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냥 짜증의 눈물이었다. 아, 사는 거 힘들어 ㅆㅂ~~~ 굳이 왜 다 이렇게 힘들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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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영화처럼 아주 가까이서 들여다 보거나, 멀리서 조망했을 땐 쪼끔, 찰나, 아름다울 수 있겠으나 - 대체적으로 지겨운 일상의 노동을 반복해야하고, 그 와중에 환상적으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댓가를 치러야 하며,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란 사랑스럽고 귀찮고, 고용주에게 굳이 아프고 슬픈 비극을 설명해야 잘리지 않고 쉴 수 있고, 술한잔 할려고 하면 옆테이블에서 잔 치고 가고, 매번 선택은 너무 어렵고, 그래서 신중해봤자 결론은 도찐 개찐, 할 일들은 언제나 발앞에 엎질러져 있고, 나만한 사연 가진 인생들이 주변에 드글드글 한데 이와중에 역사는 개입하고, 사건들은 생겨나고, 상처를 주고 받고, 느낄 새도 없이 일들은 벌어지고, 눈물도 아껴뒀다 가성비로 흘려야함. 아- 클레오ㅠ인생 지겨워!!!!! 내 인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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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저는 황금같은 주말의 두시간 반동안 지겨운 인생을 편집한 영화를 본 것입니다. 의미부여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한참 인생이 지겨워진 저로서는 지겨워서 슬퍼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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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이렇게) 사는 거
의미 있을까?
의미없지.
그런데 사는 거 의미 원래 없잖아.
그놈의 의미 땜에 데여놓고 그걸 몰라.
걍 살자.
중간중간 하늘 (혹은 물에 비친 하늘) 올려다 보며.
지겨운 개똥 같은 것들만 대충 쓱싹 치워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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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8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보겠다고 넷플인가에 찜 해두었는데^^

공쟝쟝 2020-03-08 23:30   좋아요 1 | URL
싸운드 빵빵하게 하고 보세요~! 추천추천

비연 2020-03-09 10:22   좋아요 0 | URL
오케! 다음 주 주말의 명화로 보겠나이다 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