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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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

독서모임에서 작년의 최고의 책이라고 추천받은 지 거의 반년만에 겨우 폈다. 올해 초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워서, 처음부터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을 꺼내들 수 없었다. 여러 일이 있고 나서 마음이 진정되고는 겨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읽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가자지 슬픈 에피소드를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것만 견디고나면 말과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남에게 공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가 대화하면서 이걸 피하기가 얼마나 힘들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한마디하는 것인데, 진심어린 공감 없는 충조평판은 상대에게 더 큰 상처로 남을 뿐이다. 충조평판을 빼면 달리 할 말이 없어서랜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해결을 하려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니, 공감이란 힘든만큼 상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제목처럼 당신은 항상 옳다, 라고 주문을 외워본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이면서 무작정 긍정하기 힘든 것이, 나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완벽한 공감을 하지 못한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도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책을 썼다고, 많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도 공감은 여전히 힘든 일이다.

나는 여지껏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나시 여태까지의 대화에서 내 태도가 어떠했는지 자문해본다. 남에게 개입하고 잘난척하고 싶어 충조평판을 함부로 했다. 마음은 열지 않은채 그저 귀만 열고 듣기만 했다. 내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공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내가 나눴던 모든 말들은 그저 표피적인 것이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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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센스 - 흥분하지 않고 우아하게 리드하는
셀레스트 헤들리 지음, 김성환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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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책이어서 딱히 읽을 생각은 없었다. 부서 후배가 리디셀렉트를 통해 읽는다길래 생각나서 읽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마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어서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 읽어도 딱히 새로운 건 없다. 책의 소제목만 봐도 괜찮고, 그냥 테드 동영상을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상세한 내용은 크게 필요 없다. 흠, 어째 테드 영상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은 다들 별 게 없냐.

목차만 봐도 전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말을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노력한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질문을 한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는다, 쓸데없고 주제와 관련 없는 생각은 흘려보낸다, 옳음보다 친절함을 선택한다, 비언어적 표현에 관심을 가져본다... 어때요, 참 쉽죠?

같은 자기계발서지만 성공을 위한 책보다 그나마 나은 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 인생의 성공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팁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의 기조는 유지하면서(알지만 하지 않는다!) 성공과 일상의 영역은 다르니까 말이다.

오랜 후가 아니라 당장 내 옆의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타인과 대화하면서 주변에 잘못된 반응한다 싶을 때마다 한번씩은 펴볼 만한 책이다. 그렇다고 막 좋은 건 아니고. 뭐, 그냥 테드 동영상 보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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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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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괴테의 출세작이자 사랑 이야기의 대표 소설. 베르테르 효과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컸던 소설. 짝사랑의 절절함을 너무나도 잘 그려낸 소설. 이라지만 2012년에 읽었을 때에는 큰 감흥은 없었다. 진짜 사랑을 하고난 후에는 다르게 읽힐 거라는 조언으로 묵히고 묵혀서 다시 꺼내들었는데...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아직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건지 이번에도 크게와닿지 않았다. 1774년, 무려 200년도 더 된 사랑 이야기를 읽는 느낌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변하는 게 없구나 싶다가도 이미 이런 류의 소설은 수도 없이 나왔으니 괴테의 불세출의 출세작이라는 문학사적 의미 말고 크게 의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나 지금이나 먼 미래에나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 표현 방법만 달라질 뿐이지 사랑과 호감의 감정, 그리고 짝사랑이 혼자 애태우고 쩔쩔매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지 않을까?

> 또 날씨가 너무 좋을 땐 그것을 핑계삼아 발하임으로 가는 것이다. 일단 발하임까지만 가면 로테가 살고 있는 곳은 불과 반시간의 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로테를 느낄 수 있는 대기속에 너무 가까이 온 거다. 그래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벌써 나는 그곳에 가 있는 거다. 나는 할머니에게 자석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배가 그 산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갑자기 쇠붙이란 쇠붙이는 그리로 빨려가 버리고 못 같은 산 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그리하여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허물어져 떨어지는 널빤지 조각에 깔려서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이다. _69쪽

> 신께선 내가 사랑해 마지않은 그대들을 축복하시고, 내게 베풀어주시지 않았던 좋은 나날을 그대들에게 내려주시기를! _115쪽

>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곩으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_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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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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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1. 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책이다. 2003년 학원 지하에 있던 동네 서점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책. 다 읽고서는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책도 이렇게 재밌구나, 했던 책. 자주는 아니지만 2-3년에 한번씩은 꼭 읽는 책. 민음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등 큰 출판사에서 출간한 판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 정말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책.

2.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 어릴 적에는 그저 테스트를 좇고 끝을 보기 위해서 책장을 넘기기 바빴는데 커가면서 각 인물들의 모습과 성격이 매번 달리 보인다. 개츠비는,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토록 순수해보였는데

> 그는 그 과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가 되돌리고 싶은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그 자신에 대한 어떤 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졌지만, 만약 다시 한 번 출발점으로 돌아가 천천히 모든 것을 다시 음미할 수만 있다면,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낼 수 있었으리라…

라는 문장을 읽고나니, 이제는 이 인간이 순수해서인지 멍청해서인지 정말 얼탱이가 없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가 데이지를 정말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데이지가 속해 있는 상류사회와 그 속에서 나른하게 퍼질 수 있는 분위기(그런 점에서 개츠비의 연정의 대상이 꼭 데이지가 아니어도 됐으리라)를 열망한 건지 헷갈린다.

데이지는 순백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순수한 인물로 기억됐는데,

> (개츠비의 저택을 둘러보며)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그녀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묻혀 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이 없거든요.”

같은 문구를 보니 돈과 여유만 밝히는 미련퉁이에 엄청나게 수동적인 인물의 이미지로 바뀌었다(전형적인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3. 닉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부도덕적인 사실은 이번에 다시금 느껴졌다. 톰 뷰캐넌(폭력과 거친 말투를 쓰고, 배우자가 있음에도 정부를 둬서 시시덕거림), 조던 베이커(골프 경기 중 반칙을 쓰는 등 부도덕적인 인물로 그려짐) 등이 보여준 모습에서, 성공하려면 이런 자질을 가져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흘러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 걸러 하루 성대한 파티를 열었던 당시의 미국이 이겨내지 못한 도덕적 해이를 아주 뚜렷이 보여준다.

4. 디카프리오가 주연으로 출연한 동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서 책을 읽으니 자연스럽게 영화의 장면이 하나둘 떠오르기도 한다. “내가 개츠비요.”라는 대사와 함께 뒤에서 폭죽이 터지는 장면이나, 강렬한 색감과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파티 장면은 책이 묘사하지 못한 미국의 ‘황금시대’의 색채를 얼마나 잘 옮겨놓았는지, 나에게는 책과 영화 모두 만점짜리 작품들이다.

6. <위대한 개츠비>는 첫문장뿐 아니라 마지막 문장도 정말 유명한데,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라는 다소 알 수 없는 문장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방해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흘러간 것들을 다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그게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계속 손을 뻗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저택을 구경할 때 개츠비가 느꼈던 감정에서 실마리를 잡아보자면

>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일 겁니다. 당신 집의 부두 끝에는 항상 밤새도록 초록빛 불이 켜져 있더군요.” 개츠비가 말했다.
> 데이지는 느닷없이 개츠비에게 팔짱을 끼었지만 그는 자기가 방금 한 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그 불빛이 지니고 있던 엄청난 의미가 이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그를 데이지와 갈라놓았던 그 엄청난 거리와 비교해 보면 그 불빛은 그녀와 아주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달 가까이 있는 어떤 별처럼 그렇게 가깝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한낱 부두에 켜져 있는 초록색 불빛에 지나지 않았다. 그에게 마법을 부렸던 물건 중 하나가 줄어든 셈이다.

라는 문장에서처럼, 과거를 애타게 그리다가 그것을 기껏 잡고나니, 그것은 그저 미화된 기억을 두르고 반짝였을 뿐이었고 실상은 별거 없었던 것이다.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보았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열망일까?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장을 남기고 책은 다시 덮혔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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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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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엄청 기대했던 책이다. 허세와 잘난 척의 상징으로 짬짬이 철학서적을 읽고 개념을 언급했던 나다. 철학의 어떤 개념을 삶의 무기로 활용할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일상으로 이끌어내는 방식은 무엇일까? 부제인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처럼 과연 어떤 이야기와 소재가 튀어나올까? 나도 이 책을 토대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철학의 기초에 대한 책은 대부분 철학사를 다룬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은 저자의 말대로 다소 지루하고 현대와 맞지도 않는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금세 지루해지도 흥미를 잃고는 두꺼운 철학사 책을 덮어버리고 만다.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처럼 말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이하 ‘삶의 무기‘>는 과감히 철학사를 지워버렸다. 개념과 사상만을 가져와서 간단히 소개하고 이를 비즈니스와 경영, 삶의 태도에 접목시킨다. 지리멸렬한 철학사에 지친 이에게, 여러 개념을 쏙쏙 뽑아서 소개하는 류의 책은 철학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허물기에 좋다.

하지만, 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사를 훑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철학의 역사는 ‘제안 - 비판 - 재제안‘이라는 흐름이 연속으로 이루어졌다(11쪽)고 말한다. 철학사를 배제한다는 저자의 말이 여기서 모순을 일으킨다. 철학사를 모르면 이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철학사를 공부해야 한다. 철학의 개념을 쉽게 풀어쓰고 현실에 적용한 점은 좋지만, 이 책은 개념 변화의 흐름이 보이지 않아 철학사조의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없다. 맥락 없이 동떨어진 철학 개념은 그저 지식을 위한 단순한 단어로 치환될 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그리스 철학을 험하기만 하고 경치는 별 볼 일 없는 산으로 묘사한다(28쪽). 철학사를 공부하면서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그리스 철학의 어려움과 복잡함을 생각하면 100% 수긍하지만, 이데아를 언급하는 39장의 부제 ‘이상은 이상일 뿐, 환상에 사로잡히지 말지어다‘를 읽는 순간 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철학적 사고와 철학사의 논조를 완전히 폐기해 이데아를 그저 구식 이론으로만 치부하는 것이다. 철저히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려는 저자의 목적에는 100% 부합하지만, ‘철학서적‘이라고 부르기에는 저자의 자의적 해석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물론 저자는 이 책을 철학서적이라고 하지 않았다).

철학을 중심으로 계속 이야기해보자면, 저자는 철학 물음의 종류를 ‘What‘(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과 ‘How‘(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로 나누었다. 간략히 후려쳐보자면 전자는 형이상학을, 후자는 윤리학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어라? 뭔가 되게 중요한 게 빠졌는데? 나는 How 부분을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고 질문하는 인식론으로 설명할 줄 알았는데 저자에게 한 방 얻어맞았다. 저자는 자신의 집필 목적대로 인식론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영리하지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철학 개념이 독자에게 소개되지 않았는지 생각하면 아쉬울 따름이다.

가장 어이없는 점은 책 제목에는 ‘철학‘이 들어가면서 챕터별로 소개하는 개념은 심리학, 사회학, 언어학이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제목을 인문학과 사회학은, 아니 아예 <공부는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고쳐야 할 판이다. 인문학과 사회학은 넓게 펼치면 서로 영역이 겹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의 학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학문 분류가 너무 구시대적이어서일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은 거의 제목팔이 수준이다. ‘철학‘과 ‘삶의 무기‘라니, 너무 멋지고 그럴 듯해 보이잖아.

챕터별로 들어가도 할 말은 많다. ‘예정설‘을 말하면서 저자는 ‘노력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신은 말하지 않았다‘고 쓴다. 이러면서 올라갈 사람이 올라가는 현대 인사 평가 제도를 말하는데, 예정된 인사평가에 불만이 사라지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정설 개념의 껍데기만 가지고 되도 않는 걸 붙인 셈이다.

챕터 37 ‘공정한 세상 가설‘에서는1999년에 명예퇴직을 권고받은 과장이 사장실로 뛰어들어 할복한 일화를 언급한다. 저자는 회사에 모든 걸 받쳐 일한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한 인생이라고 말하며 명퇴를 권고한 회사의 태도에 분개한 사람을 ‘세상은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세상이 100% 공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개념에서 실례로 가는 비약이 꽤나 심하다. 이 부분만은 딱 일본 저서라는 분위기가 풍긴다.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그러한 세상에서 한층 더 공정한 세상을 목표로 싸워 나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요, 의무다˝라는 긍정적인 문단이 바로 뒤를 잇지만 찜찜한 생각은 쉬이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책에도 배울 점은 있는 법. 챕터 43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에서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개념에서 ‘사고의 폭을 넒히고 싶다면 어휘력을 길러라‘라는 주장을 한다. 이전에 나는 이 개념을,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신어제작을 언급하듯이 언어 사용과 금지, 의미의 고착화가 어떻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 원론적인 의미로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휘력을 길러야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니, 내게는 큰 역발상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철학사를 버리고 개념만 취한 책은 겉핥기밖에 될 수 없다. 간단한 철학사 입문서로는 디테일은 버렸지만 후려치기로 뼈대를 파악할 수 있는 <지대넓얕>이 더 좋다고 본다. 오류도 많고 후려치기는 정말 위험하지만 입문서로 ‘즐기기‘에는 훨씬 낫다(단, 정말 입문의 개념이지 <지대넓얕>으로 철학을 파악했다고 보면 큰일난다. 나처럼 뭣도 모르고 허세만 가득한 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이 독후감만 봐도 알 수 있다). 소설로 쓰인 철학사 <소피의 세계>와 만화로 그려낸 <만화로 보는 지상 최대의 철학 쑈>도 재밌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처럼 개념만 쏙쏙 뽑아낸 책 중에는 <철학의 13가지 질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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