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 은희경 (문학동네, 1998)


한국 소설은 쉬이 손이 가지 않는다. 특유의 우울함 때문이다. 뭐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인양 세상을 비관하기 일쑤다. 개중에 서사에 힘이 없는 작품은 정말 정이 가지 않는다. 한국 문단 특유의 순수문학을 향한 집념이 싫었다.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작을 보면 이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덧붙여 문장이 좋다고 꼽히는 작가도 잘 읽지 않았는데, 문장의 정갈함을 가꾸는 데 너무 치중한 나머지 그것만이 장점으로 보이는 이가 여럿 있기 때문이었다.


은희경도 그런 이미지였다. 내 비루한 독서력을 가리고자 하는 변명 같지만 말이다. 전에 <소년을 위로해줘>를 얼마 읽지 못하고 바로 덮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첫 페이지를 넘기기가 정말 힘들었다. 은.희.경. 작가 이름 세 글자가 주는 압박감이 너무 컸다. 게다가 20년 된 작품이라니, 너무 오래된 작품 아닌가.


그래도 읽어야겠지. 목욕재계를 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태까지 가졌던 은희경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완벽한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은희경 = 문장’이라는 등식이 머리에 가득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물론 어른의 사랑(…)이 소재가 흥미로워 더 잘 읽은 면도 있지만.


주인공 강진희는 애인을 여럿 둔다. 하나는 당연한 비극이 예정되어 있고, 둘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때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세 명의 애인을 선호한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에게, 사랑은 상대에게 목매다는 일이 아니다.


그녀가 여러 명의 애인을 만나는 건 단순히 바람둥이인 까닭은 아니다. 외로워서도 아니다. 그녀에게 애인은 외로움의 해소와 아무 관계가 없다. 애인 관계란 미래에 대한 부담이 없고 언제라도 원할 때에 자기의 감정을 철회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계다. 일대 일로 맺는 사랑의 감정이 때로는, 아니 대개 서로에게 폭력이 되고는 한다. 상대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순간 관계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독차지하고픈 욕망으로 전락하고 만다.


진희와 관계를 맺는 세 명의 남자는 그녀가 사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뚜렷이 나타낸다. 상현은 과거에 결혼했지만 상처만 가득 준 인물이다. 그녀가 사랑에 대한 신뢰를 잃는 순간이었다. 진희가 가진 여러 명의 애인은 상현이 만든 상처를 덮기 위한 미봉책이다. 현석은 현재 진희가 가장 사랑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다. 진희는 현석과 만날 때 가장 진지해진다. 하지만 현석이 청혼을 하자 그녀는 거절한다. 현석과의 관계를 무겁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종태와의 관계는 즐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한다. 여기에 진지함이란 없다. 가장 유희적인 관계라고 할까. 과거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유희만이 가득한 가벼운 관계다. 종태가 사랑한다 말하는 것은 단 한순간도 진지하게 들리지 않는다.


서로와의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것은 사랑할 때 누구나 겪는 자기최면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는 진희는 어떤 사랑으로 그 끝을 맺을까. 후반부에 진희는 사랑을 얻기 위해 한숨짓고, 얻은 다음에는 믿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결국에는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스스로 피폐해지는 과민한 기질을 가진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진희가 불쌍한 인물인가? 글쎄, 행복과 불행은 타자의 위치에서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단순히 이야기를 들었다고 행불행을 가를 수 없다.


은희경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라는 가사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서로가 마지막 사랑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으니, 지금의 상대와 춤을 즐기는 것이 마지막 춤을 추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 순간을 즐기면 언젠가 빛나리라. 보편적인 문장이면서도 진희의 과거와 사랑 방식이 엮이면서 복합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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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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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야기는 한 병원에서 시작한다. 경찰인 뤄샤오밍은 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 다섯을 병실에 불러모은다. 병실에는 뤄샤오밍의 스승이자 간암 말기 환자인 관전둬가 혼수상태로 누워 있다. 뤄샤오밍은 관전둬의 머리에 머리띠를 씌운다. 머리띠는 관전둬의 뇌파를 읽어 Yes와 No의 간단한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만든다. 뤄샤오밍은 살인 사건에 대해 말하고 관전둬에게 질문하면서 범인을 찾는다.


명색이 추리소설인데 사건을 해결하는 관전둬는 혼수상태고 뤄샤오밍은 지위에 맞지 않게 사건에서 많은 것을 놓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무고개하듯 질문을 던지고 뇌파를 읽으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는, 기존 추리소설에서 보여주지 않은 새로운 양상이라기보다는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 외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독자의 뒷통수를 여러번 친다. 뤄샤오밍의 이야기에 홀리는 순간, 우리는 작가 찬호께이에게 말려든다.


<1367>은 여섯 편의 이야기로 이뤄진 소설이다. 각 이야기마다 독립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생각해도 좋겠다. 모두 기승전결이 탄탄해 완성도가 높고 (반전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스포일러지만) 반전 또한 기가막히다.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단점 - 작가와 독자가 증거를 100%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은 피하지 못하지만, 작가는 이야기에서 서술한 모든 소재를 철저히 이용해 독자를 납득시킨다. 범인을 찾는 과정의 즐거움과 뒤로 갈수록 점점 다른 사건으로 변모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사건을 파헤치고 생각치도 못한 뒷처리까지 완벽하게 하는 관전둬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구성 또한 특이하다. 소설집이라 하면 각각의 이야기는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순차적인 시간대를 갖기 마련이다. <1367>은 2013년부터 1967년의 사건까지 시간의 역순으로 전개된다.(1367은 처음과 마지막 장의 년도에서 따왔다) 역행하는 시간대는 뒤로 갈수록 관전둬의 과거와 뤄샤오밍의 성장을 보여준다. 거기에 각 시간대는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60년대의 좌파혁명, 70년대의 염정공서(당시 경찰 내부의 부패를 조사하던 기관), 90년대의 홍콩 주권 반환까지, 작가는 홍콩의 역사를 이야기의 배경과 디테일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이런 면에서 <1367>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모를 띈다.


마지막 6장은 다른 장과 달리 1인치의 화자가 등장한다. 전체 이야기 중 전개의 힘은 다소 느슨한 편이다. 하지만 이조차 작가가 노린 점이리라. 화자인 ‘나’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다시 책의 맨 앞을 펼칠 수밖에 없다. 6장은 독립적인 여섯 편의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역행하는 시간대 구성은 단순히 흥미를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 소설 전체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작가의 철저한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불편한 지점은 관전둬(와 그의 수제자 뤄샤오밍)의 다크 히어로적인 면모다.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짓말과 협박은 기본이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건을 ‘일부러’ 만들기도 한다. 함정수사는 불법이 아닌가 싶다가도 시민을 지키고 더 큰 악을 처단하기키기 위해서 저 정도 거짓말은 눈감고 완벽하게 선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불온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마지막 장은 큰 의미를 가진다. 관전둬가 불법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시민을 보호하려고 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단순히 말을 잘 듣는 조직원으로 살 것인가,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 관전둬는 이 사건을 통해 한층 성장한다. 동시에 작가는 선과 악은 한끗 차이라고 말한다. ‘나’의 이름이 밝혀지는 순간, 하나의 단순한 선택이 인생의 무한한 가지를 만들어 전혀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몸소 체험할 것이다.


아주 기막힌 소설이다. 650여 쪽임에도 아주 재밌게 읽힌다. 각 시간대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문장을 꽤나 할애했지만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인물, 사건, 구성, 사건, 메세지까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감히 올해의 추리소설로 칭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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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 은유 (메멘토,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쓴다.


1. 작년 말에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한참 책읽기와 글쓰기 ‘기술’에 몰두하던 때라 실질적인 글쓰기 팁을 전수하는 책인줄 알았건만 웬걸, 글쓰기를 주제로 한 에세이집이었다. 찾던 주제의 글이 아닌지라 글의 첫 장을 읽자마자 바로 덮었다. 그때는 뭔가 삘이 오지 않았다.


2주 전에 도서관을 찾았을 때, 사실 이 책은 관심목록에 없었다. 다른 책을 한참 찾다가 우연히 서가에 꽂힌 빨간 표지의 책을 봤다. 그때 느꼈지, 아, 이놈은 지금 읽어야 하는구나. 그길로 뽑아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찬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었다.


2. 은유는 필명으로 여성 작가이다. 문단에 등단해서 전문적인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심지어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 소속해 공부하며 글쓰기를 가르친다. 소설이나 시보다는 실증적인 글을 주로 쓰는 듯하다. 최근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출간하며 여성으로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제의 언어를 통해 말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수유너머R에서 진행됐던 글쓰기 수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수업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주부, 직장인, 학생, 취업준비생, 사회단체 활동가, 성폭력 피해 여성과 서로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을 권하는데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공감능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을 확장시키는 데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관계가 부족하면 인생에서 오직 ‘내’ 이야기만 있으니, 소통도 힘들고 결국 존재의 빈곤으로 자신을 표현할 글감마저 떨어지는 셈이다.


3. 책 읽기에 대해 말하면서 카프카의 ‘도끼’를 언급한다. 김웅현이 <책은 도끼다>로 많이 퍼트린 그 구절! 거기에 발터 벤야민의 말도 덧붙인다.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쉬운 책, 재밌는 책만 읽지 말고 어렵고 자신을 멍하게 만들 책을 읽으라는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도 한다.


저자는 특히 문학을 강조한다. 특히 문학의 ‘쓸모-없음’을 말하면서 김현 선생의 글을 소개한다. 남은 일생 내내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하느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하며 김현 선생이 쓴 글이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 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나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_김현. 95쪽.


간혹 무의미한 책 읽기를 권하는 글을 본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김열규 교수의 <독서>에서 본 것 같다. 문학을 뭐하러 읽느냐, 돈도 안되고 명예도 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나 경영서처럼 독자를 바꾸고 돈을 벌어다주지 못한다. 이런 비아냥 속에서도 우리가 문학을 읽고 ‘하는’ 이유는 따로 없다. 문학은 그 자체, 그냥 문학이기 때문이다.


4. 작가가 르포르타주를 주로 쓰는 걸로 아는데, 재밌게도 시도 좋아한다고 한다. 시를 읽으면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를 접하고 색다른 느낌을 갖는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천석꾼  부럽지 않게 든든하다고 한다. 이 느낌에 관한 짤막한 에피소드가 있다. 김수영의 시를 읽는 수업에서, 한 학인이 시 읽기가 너무 어려워 유명한 철학자가 진행한 김수영 시 강연을 들었다고 한다.(아마 강신주일테지) 내가 보기에는 아주 기특한 일이었는데, 저자 입장에서는 아니었나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안 읽히는’ 김수영의 시-삶이지, 김수영이ㅡ 시-삶을 이론의 형틀로 찍어낸 ‘잘 읽히는’ 지식인의 해석이 아니다. 소박하고 거칠더라도 자기 느낌과 생각으로 시를 읽어내고 해설하느라 낑낑대는 것이 공부다. 독서의 참맛이다. (학자의) 권위에 복종하지 말고 (나만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의 본령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삶의 결을 무한히 펼치는 데 있다. 시가 아무리 어려워도 처음 읽을 때는 참고도서를 들춰보지 말자고 당부했다. _100,101쪽.


<나는 이렇게 읽습니다>에서 소개한 문사철 독서법과 반대되는 입장이다. 시와 소설은 그렇게 다른가보다. 소설은 서사에 힘이 있다. 서사를 완벽히 알려면 그것이 어떻게 나왔는지 시대 흐름이나 작가가 추구하는 바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온전하게 소화된다. 그러나 시는 다른 걸까. 물론 시대상도 중요하다. 시인이 자신의 시대를 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면 시가 더 잘보인다. 허나 문학은 오독도 그 맛이다. 저자가 이런 의미로 썼다 해도 우리가 이런 의미가 아닌 저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다. 짧은 구절에 소설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시이기에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 같다.


5. 글쓰기, 문학 읽기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 2장까지는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글쓰기 기술을 조금씩 설명하는 3장부터 흥미가 떨어진다. 어라, 처음에는 글쓰기 기술을 바라고 읽었던 책인데 어느새 입장이 정반대가 됐다. 아마도 이 책에서 읽은 글이 실제의 팁이나 기술이 아니기 때문일테다. 은유라는 작가에게 기술적인 말을 듣다니, 뭔가 내 기대에 반하는 걸, 이라고 혼자 속상해하는 기분이랄까.


6. 6장 부록에 딸린 르포와 인터뷰는 읽기를 추천한다. 저자의 글이 아니라 저자와 함께 공부한 학인들의 글이다. 별 내용이 아닌 듯싶으면서도 가슴에 조그만 멍울 하나를 만든다. 인터뷰가 이렇게 울림을 주는지는 몰랐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을 인터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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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감시원 코니 윌리스 걸작선 1
코니 윌리스 지음, 김세경 외 옮김 / 아작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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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 (아작, 2015)


밀린 독후감이 많아서 기록의 의미로 짧게 쓰고 간다.


예전에 ‘리알토에서’를 읽다가 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대로 덮었던 책이다.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도 일치하지 않았고 엉망이었다. 아작 출판사가 막 책을 낼 때, 출판사의 느낌과 책 디자인이 마음에 쏙 들어서 책을 폈지만 그 난잡함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는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자 꾹 참고 페이지를 넘겼다. 전에 재미없게 읽었던 ‘리알토에서’도 중반을 넘어가니 속도가 붙었다. 흠, 괜찮네, 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니 그뒤부터는 일사천리. 아주 만족스런 소설집이다.


코니 윌리스는 미국 작가로 역대 최다 휴고상을 수상한(11번)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가졌다. 네뷸러상, 로커스상도 여러번 받았다. 데몬 나이트 기념 그랜드 마스터 상을 받은 그랜드 마스터이기도 하다.


작가의 대표 장르가 SF라고 하는데 코니 윌리스 작품집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이 책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SF는 아니다. 흔히 SF 하면 떠올리는 로봇, 시간여행, 우주활극, 우주비행선은 이야기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심지어 ’내부 소행’은 강령술 이야기다.


단편이기 때문에 전체를 통과하는 메세지나 요약은 넘어가고, 각 이야기마다 느낀 감상을 한두 줄로 써보면,


리알토에서 - 미시세계에서 설명되는 양자역학이 거시세계인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소 난잡하고 시끄럽지만 양자역학의 불가해성을 잘 표현해낸 이야기다.


나일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의 동명의 작품을 오마쥬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해 오마쥬 어쩌구는 패스. 한 인물의 죽음에 대한 완벽한 미스터리이자 스릴러다. 주인공은 정말 죽은 것일까? 언제부터 망자의 이야기인가? 그녀는(혹은 그들은) 왜 죽었을까? 저승으로 가는 주인공은 과연 어떻게 될까? 궁금증을 마구 일으킨다.


클리어리 가족이 보낸 편지 - 세기말의 절망적인 상황. 어딘가에 이유모를 폭탄이 떨어지고, 가족이라는 한 공동체가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할수밖에 없는 서글픈 상황을 그린다.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인물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화재 감시원 - 코니 윌리스에게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안겨준 작품. 책의 표제작인 동시에 코니 윌리스의 대표 중편이라고 한다. 역사를 어떤 식으로 봐야 하냐는 질문에 답하는 코니 윌리스의 멋지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단순히 몇 줄의 글에 표현된 역사 사건을 넓게 넓게 펼치면 순간은 정말 찬란하고 아름다우며,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온갖 감정의 집합체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단순히 문자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를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코니 윌리스의 강력한 설득.


내부 소행 - 특이하게도 강령술에 대한 이야기다. 흠,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떤 의도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으나(두 명의 회의주의자를 보여줌으로써 합리적 의심과 이성적인 판단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적어도 나는 회의주의자가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로 읽었다. 회의주의자의 두 번째 규칙 - ‘너무 훌륭해서 진짜라고 믿기 힘들 정도라면, 진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 을 계속 되뇌게 만드는 작품.


이렇게 재밌게 읽을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SF라는 이름에 피하지 말고 놀라운 이야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본다는 생각으로 책을 봤으면 한다. 읽는 재미에 생각하는 재미까지 여러모로 좋은 작품집이다. 미국에서 열 편의 중단편을 모아 책을 냈는데 <화재 감시원>은 이중 다섯 편을 추렸고 나머지는 <여왕마저도>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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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3-20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엔가 사서 읽다가 무슨 일에선지 다 못
읽은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나일 강의 죽음>까지 읽은 듯 하네요.

리뷰 보고 나서 다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손잡이 2017-03-20 17:54   좋아요 0 | URL
제대로 된 리뷰는 아니지만, 예상 밖의 재밌는 작품이었습니다. <여왕마저도> 평이 더 좋던데 기대 중입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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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우리말 바로 쓰기> 이후로 4년 만에 보는 교정에 관한 책이다. 그동안 읽은 글쓰기 책이 기본에 바탕하거나 특정 장르의 기술을 말했다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글쓰기 기술을 알려준다. 다만, 이 책은 초벌이 아닌 재벌을 위한 책이다. 다 쓴 글을 하나하나 공들여 교정하는 작업을 다루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여 년 동안 교정일을 보면서 수많은 글을 고쳐왔다. 유유 출판사에서 책을 세 권 냈는데, 첫 작인 <동사의 맛>으로 차차 유명세를 타더니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출판사의 대표작이 되었다고 한다. 시립 도서관에 갈 때마다 항상 대출 중일 정도다.

책은 두 개의 내용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는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메일이 오면서 시작한다. 보낸 이는 ‘이 책의 저자 김정선’이 교정 작업을 한 책의 저자인 함인주다. 함인주는 문장을 다듬어주어 고맙고 혹시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는지를 묻는다. 여러 통의 메일이 오고 가면서 교정자와 작가는 올바른 문장은 무엇인지 의견을 나눈다.

두 번째는 교정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흔히 잘못 쓰이는 문장의 예시를 들면서 문장을 어떻게 고치는지 보여준다. 목차의 첫 교정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다. 문장에 끼인 ‘적, 의, 것, 들’을 빼고서도 충분히 글이 자연스러운지 여러 예문을 말한다. 뒤이어 ‘있다’, ‘-에 대한’, ‘보이는’, ‘로부터’, 잘못 쓰이는 사동형 피동형 동사, 무분별하게 등장하는 지시 대명사 등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단어를 콕 집어 거침없이 고친다.

읽는 이마다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다르겠지만 나는 실질적으로 교정 기술을 보여주는 부분이 더 좋았다. 서로 주고받는 메일과 저자 개인의 이야기는 그 안에 함축적인 ‘무언가’를 담은 것이 분명했지만 통찰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것을 읽어내지 못했다. 반면에 저자가 말하는 교정의 예시는 내 글쓰기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에 더 절절히 다가왔다. 예전에 이런 부류의 책을 읽었다면 예문은 다 뛰어넘고 교정 기술만 봤을 테지만 이번에는 예문 하나하나를 저자와 함께 고쳐가며 그의 지식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글쓰기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는 이라면 글을 깔끔하고 간결하게 쓰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을 것이다. 사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정도는 난이도가 낮은 편이다. 앞서 언급한 ‘있다’와 과도한 피동형, 한국어에 그다지 필요 없는 복수형(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깊게 들어가면 주격 조사 ‘이, 가’와 보조사 ‘은, 는’, ‘에’와’에는’, ‘에’와 ‘에게’를 구분하여 사용해 문장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문장을 무조건 고치고 간략하게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심지어 외국어에서 빌려 온 듯한 문구도 우리말 표현을 풍성하게 해준다면 괜찮다고 말한다. 다만 귀찮고 편하다는 이유로 고민 없이 머리에 박힌 습관의 언어로 글을 쓰지 말자고 한다. 지적으로 보이는 문장이어도 표현을 더 정확히 하려고 고민하지 않는 것은 게으름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아예 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습관처럼 반복해서 사용하는 일은 피해야겠다.

문법책처럼 난해하지 않고 예시의 수준도 적당하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에게 안성맞춤인 책이다.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종이책을 다시 주문해야겠다. 옆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들춰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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