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8
도쿠나가 케이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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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 가타기리 주류점의 부업일지


오랜만에 읽는 일본 소설이다. 자의로 고른 책은 아니다. 독서 동호회에서 <문구의 모험>을 읽으려다가 너무 두껍다는 이유로 바뀌었다. 회장님이 교보문고에 돌아다니시다가 즉석해서 고른 책이다. 비채 출판사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최신간이기도 하다. 직전에 나온 <골든 애플>부터 찬찬히 읽어보려 했던 시리즈여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야기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 무엇이든 배달한다는 모토를 가진 가타기리 주류점이 무대다. 원래는 술을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아버지로부터 가게를 받은 아들은 돈 되는 일을 하나라도 늘이고자 물건 배달도 시작한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프롤로그로 시작해, 본편에서는 이상한 배달업무를 맡는다. 인기 절정 여자 아이돌에게 케잌을 선물해달라는, 아주 수상쩍은 의뢰,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엄마에게 뭔지 모를 모형을 배달해달라는 어린 아이의 의뢰,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는 악질 상사에게 악의를 전하고 싶다는 의뢰. 배달 업무를 하면서 주류점 주인 가타기리는 그가 잊었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자신의 일상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을 알아챈다.


일본 소설, 그리고 잡화를 다루는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조곤조곤한 일본 소설 특유의 문장과 서술, 묘사가 돋보인다. 진중한 이야기가 주가 아니기에 페이지도 금세 넘어가는 편이다.


쉽게 읽힌다는 장점을 빼고는 단점이 너무 크게 보인다. 소설은 총 다섯 장의 이야기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을 준다. 각 장은 독립적인 이야기로 그 안에서 완결되는 형식이다. 등장한 소재들이 뒤에 다시 등장하여 미스터리한 프롤로그를 마무리한다. 전체를 만들기 위해 탑처럼 아래부터 이야기를 쌓는데, 결정적으로 각 이야기의 매력도가 떨어진다. 소소한 감동도 없고 터져나오는 교훈도 없다.


등장인물들은 가끔 서로의 조언을 구하며 언뜻 선문답 같은 대화를 한다. 정상에 위치한 여자 아이돌은 물건 배달을 온 가타기리에게 대뜸, 지금의 성공적인 삶과 엄마와의 평범한 인생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묻는다. 이에 가타기리는 그렇게 묻는 자체가 어느정도 결심한 것이 아니냐며 다소 오글거리고, 어쩌라고 반문이 드는 답을 한다. 병원에서 간호사와 나눈 대화, 오키나와 해변을 보면서 드는 생각, 손자를 위해 몰래 선물을 보내는 할아버지의 행동, 분명 무언가 담겨 있는데 충분히 끌어내지 못한 모양새다. 전체로는 마지막을 위한 포석 느낌의 이야기들인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는 게 문제다. 결말로 닿는 사이의 완급조절도 실패한 인상이다.


가타기리 사장 본인의 이야기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아쉽다. 분명 매력적인 인물임에도(초강력 츤데레) 묘사가 충분했다면 더 정감가는 인물이 되었으련만. 그의 과거를 흐릿하게 표현할 거면 단호하나 격정적이었어야 했다. (주류점의 전 사장인 아버지 이야기가 없어서 더욱 아쉽다)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속이 깊고 정이 많은 인물은 분명하지만(후세이 아줌마와의 대화는 정말 정겹다)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다 쓰고 보니… 하나 엉뚱한 생각이 드는데. 가타기리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다. 단순한 배달원일 뿐. 배달이라는 행위에서 수신자와 발신자 각 주체가, 배달되는 물건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각자의 몫이리라. 내내 철저히 배달원- 즉 타인의 입장에 서 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 가타기리도 배달의 일부가 되어 자신의 과거를 딛고 일어서는 점이 이야기의 변곡점이라 해야 할까. 이것 또한 유치찬란에 오글거리기는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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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6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구의 모험>이 두껍다고요? 그 책 정도면 양호한 편인데 사람마다 책의 분량에 대한 인식이 다르군요. ^^;;

양손잡이 2016-03-16 15:57   좋아요 0 | URL
376쪽이면 쬐끔 두꺼운 편이긴 한 것 같아요. 2주 동안 이만큼 읽을 능력들이 안되는 사람들이 모이기고 했구요 ㅠㅠ
 
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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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08.

재미 하나는 보장한다는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를 드디어 끝냈다. 교보문고에 들렀다 책장에 꽂힌 걸 보고 홧김에 샀던 책이다. 단순 재미만을 위한 독서를 할 때 읽겠다고 옆에 뒀는데 <겨울 밤 어느 한 여행자가>와 <메이블 이야기>덕분에 이 책을 펴게 되었다.

FBI 요원 사이먼 켄은 신가야라는 의문의 인물에게서 편지를 받는다. 편지가 배달되는 날부터 매일 한 명씩 사람이 죽는다는 경고가 담긴 편지였다. 실제로 공항에서 비행기끼리의 충돌로 사고가 났던 참이었다. 신가야는 계획된 살인을 막기 위해서 앨리스 로쟈를 찾아 그녀의 기억 속에서 단서를 찾으라고 한다.

사이먼은 앨리스와 그녀의 딸 미셸이 사는 집에 찾아가 신가야에 대해 묻는다. 신가야는 십 년 전 닷새 동안 앨리스와 뜨거운 사랑을 하고, 그녀의 눈앞에서 자살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잊지 못하고 모두 기억하는 앨리스는 잊을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신가야와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꺼린다. 하지만 사이먼의 간곡한 부탁으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이먼은 이 사고가 단순하지 않고 아주 치밀한 계획임을 깨닫는다.

어느정도는 다카노 카즈아키의 <제노사이드>가 떠오르는 책이다. <제노사이드>는 전세계를 무대로 한 치밀한 스토리와 빠르고 촘촘한 전개,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이 특징이었다. <궁극의 아이>도 비슷하다. 한국 소설 중 이만한 스케일을 가진 책은 많지 않다. 작가는 전세계를 타겟으로 한 소설 무대에 빠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군데 막힘없이 시원한 전개, 미래를 내다보는 신가야라는 인물의 신비로움, 현재와 미래 두 시간대의 차이에서 오는 미스터리함이 550여쪽의 책을 막힘없이 읽게 만드는 힘이다.

이야기를 중반부까지 단단하게 끌어오는 힘이 마지막으로 가면서 다소 무뎌져 다소 아쉽다. 초반부의 개연성이 후반부 들어 약해진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는 신가야의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인가. (설마 사랑은 아니겠지!) 마지막 사건에서 운명을 실제로 바꾼 것은 무엇인가. 큰 악 앞에서도 인간 본연의 감정과 꿈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결말 짓기인가.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지만 중간중간 문장이 엉성함도 눈에 띈다. `외과 수술로 감정을 제거한 것처런 무표정했다` 같은 낡은 비유, 거대한 음모가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을 전혀 어울리지 않게 `스위스 시계처럼 일말의 오차도 없었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어색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쭉쭉 읽어나간 책이었다. 디테일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책이다. 스케일이 크고 빠른 전개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작가의 이름, 장용민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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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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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지대넓얕>이 엄청난 화제였죠. 정치, 역사, 경제를 아우르는 한 줄기를 가지고 친근하고 쉬운 인문학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대넓얕의 저자 채사장이 정확히 1년만에 새 책을 냈습니다. `보통 사람을 위한 현실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단 <시민의 교양>입니다.

저자가 책을 쓴 이유가 뜻깊습니다. 티베트는 `티벳 사자의 서`라는 책이 있는데, 죽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격의 책이랍니다. 하물며 사자를 위한 안내서도 있는데, 현실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사장은 이런 이유로 책을 썼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거만해 보일 수 있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벽잡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간단하게 설명하고 단순한 개념을 선사합니다.

책은 크게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라는 소재로 진행됩니다. 맨 첫 주제인 세금에서는, 세금을 올리는냐, 또는 그대로 두거나 내리느냐에 따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지 말합니더. 그리고 전작 <지대넓앝>과 마찬가지로 큰 줄기를 나누고 후려쳐 버리는ㅍ게 이 책의 최대 장점입니다.

하지만 전작에서도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와 그 안에 보여지는 예시가 많은 부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책도 읽어나가는 데 조심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모든 독자들이 옳바른 정답을 찾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이드를 가지고 자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런 주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밑받침 하는 근거를 고민해야 합니다. 자신의 근거와 책에서 드는 예시가 서로 다르다면 그것 또한 자신이 공부해야 할 일이겠지요?

전작보다 세세하게 파고드는 부분이 있어 읽기가 전보다 수월하지 않지만, 현실에서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가를 끝없이 고민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뜻깊은 책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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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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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이 얼마나 두근두근한 제목인가. 집단주의와 민족주의가 횡행하는 지금의 우리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개인주의라니. 흔히 개인주의자라 하면 이기주의와 이어지기 마련인데 책에서는 두 개념이 조금 다르다고 말한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남을 생각하는 경향이 다르단다.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초반의 몇 꼭지를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흔한 주제의 글 모음이라고 느꼈다. 몇몇은 생각치도 못한 개념을 말해주었다. (미국 서비스가 좋지 않은 것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서 그렇다, 진짜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 방증이다 등등) 원했던 심도가 아니어서 아쉬웠지만 읽을만한 책이었다. 조급증에서 헤어나와 천천히 읽었다면 더 괜찮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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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0314 2016-02-05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글에 대해 공감합니다
 
문학동네X모나미X알라딘 작가펜(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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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거침없이 잘 써지나 똥이 많이 생겨 장식용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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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ㄱㅂ 2015-12-29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재밌는 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