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리하는 법 -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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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 책 정리하는 법 - 조경국 (유유, 2018)

제 책장을 보면서 한숨 푹 쉬며 남기는 잡담입니다.


> 지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책과 서가는 괴로움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이사할 때마다 책을 줄이자고 다짐하지만 그때뿐입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다음 이사 때까지 그 다짐을 까맣게 잊으니까요. _p.78

책이 좋아 잔뜩 쌓아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문장이다. 책이 가득한 책장을 볼 때마다 마음은 너무나도 벅차지만 막상 이사하거나 책을 옮기는 일이라도 생기면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회사 기숙사에서 나와 1.5km 정도 떨어진 오피스텔로 이사할 때는 정말 아찔했다. 차가 없어 400권 정도 되는 책을 24L 여행용 캐리어에 담아 다섯 번 정도 ‘걸어서‘ 옮겼다. 한참 날씨가 쌀쌀한 늦겨울이었느니 망정이지, 지금처럼 뜨거운 날씨라면 차라리 책을 버리고 왔을 거다.

5x5 책장에 꽉꽉 담긴 책은 청소할 때도 골치아프다. 공사장 주변 오피스텔이어서일까, 어찌나 먼지가 많이 쌓이는지 일주일만 청소를 안해도 책에 먼지가 수북하다. 지난 3주 동안 모종의 사정(?) 때문에 방 청소를 게을리 했더니 눕여 놓은 책 앞표지에 쌓인 회색 먼지가 어우... 표지는 먼지만 쓸면 되니 괜찮은데, 세워둔 책은 책 윗쪽의 먼지를 닦아내면 책장 사이사이에 먼지놈들이 들어가 골치아프다.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를 앓는 당신을 위하여, 이 책이 나온 것이다. 제목만 봐도 책덕후를 자극하기 딱이다. 나는 이 책 신간알림이 뜨자마자 바로 구매했다. 수많은 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 내게는 어떻게 하면 책장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할까, 일말의 잘난척과 맞물리기도 했다. 저자 조경국은 진주에 위치한 헌책방 소소책방의 주인이다. 이전에 괜찮게 읽은 <필사의 기초>를 쓰기도 했다.

<책 정리하는 법>은 저자가 헌책방을 운영하는 지금까지 모은 책 정리와 보관법을 총망라해둔 책이다. 책 둘 곳이 사라져 보관 장소를 위해 물색하고, 독서를 위한 자신의 공간(방, 책상, 독서대 등)을 보여준다. 또 여러 서가의 형태와 책 정리와 이동, 보관하는 법을 차례차례 소개한다.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부분은 책 정리하는 법을 말하는 5장이다. 하지만 5장의 세부 내용을 보면, 십진분류법으로 또는 분야, 작가, 출판사 판형, 시리즈, 지역, 관심사, 비슷한 색깔별이나 읽은(혹은 읽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법을 나열한다. 아예 정리하지 않기 항목도 존재한다. 애서가라면 한번쯤은 생각하고 직접 해본 정리법일테다. 이 지점에서 <책 정리하는 법>은 제목을 보고 책을 산 이들은 익숙해서 새로울 게 없는 책이 되고 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허무함에 책을 잠시 덮고 내 서가를 쳐다본다. 시리즈와 분야별로 나름 깔끔히 정리된 책들.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을 정리하는 방법이 아니라 ‘왜 책을 정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 유명한 독서가이자 와세다대학교 비즈니스 스쿨 객원교수 나루케 마코토는 ‘뇌 기능을 백업하는 서가‘에 대해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가지고 있어도 필요할 때 꺼내 쓰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즐거움을 위한 순수한 독서라면 그냥 쌓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완벽한 서가를 찾는 일은 어쩌면 현재 가진 서가를 최대한 활용해 자신만의 ‘지식 저장소‘로 바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 뇌를 스쳐 간 정보를 눈에 보이는 형태로 두는 곳이 책장이 다. 책장은 뇌의 기억 영역 대신에 정보를 저장해 들 수 있는 장소다. 필요할 때 ‘이 내용은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하며 기억해 내고 책장에서 그 내용이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으면 책장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한 것이다. 세세한 정보의 백업은 책장에 맡기면 된다. (중략) 뇌를 백업하는 기능을 못 하는 책장이라면? 책은 차라리 종이 상자에 넣어서 쌓아 두는 편이 공간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정리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책장 하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서로 얻는 성장을 거부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_80쪽

단순히 재미와 감동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나에게 책장이란 크게 의미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저 예쁘고 그럴 듯하게 보이기 위해 책 정리하는 법이나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 책장의 90%는 읽지도 않은 새 책이니(읽은 후 보관하는 책은 모두 본가에 있다), 발췌문에서 말하는 지식 저장소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는 셈이다. ‘**즐거움을 위한 순수한 독서라면 그냥 쌓아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고 내 뼈를 때리는 문장은 정말, 울고만 싶다. 지식의 보고가 아닌 지적 허영을 위한 존재로 전락한 내 책장에게 정말 미안할 따름이다. (나무야,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이거지. 내 책과 서가는 분명 허영심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모르는 세상을 알고 싶은 욕심도 분명 마음의 기저에 깔려 있다. 그게 비중이 적어 겉으로 잘 안드러난달 뿐이지...

후반부의 책을 책커버로 쌓는 이야기나 옮기는 방법, 손상된 책을 손보는 이야기는 당장 내게 필요한 부분이 아니어서 크게 감명깊지 않았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아끼는 책이 있는 서재를 항상 내 인생의 베이스캠프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맺음말을 마음에 깊이 새긴다. 나를 대변하는 책장을 만들 수 있게 내일도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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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20 1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서 작년부터 책을 많이 팔았어요. 팔린 책의 빈자리에 새로운 책을 채워 넣을 수 있어서 좋긴 한데, 가끔 팔았던 책을 다시 사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애서가의 책 욕심은 끝이 없고 책을 파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습니다. ^^;;

양손잡이 2018-08-20 11:54   좋아요 0 | URL
cyrus님은 그래도 책을 많이 읽으시지만 저는 읽지도 않는 책만 계속 붙들고 있어서 고민이 커져만 갑니다 ㅠㅠ

비연 2018-08-20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사하면서 판다고 팔았는데 책장가득 책이 들어가게 되어 이제부터 더 사면 또 쌓아야할 판이라... 판 후에 산다 라고 원칙은 정했으나.... 아 눈앞에 책들이 어른거리고 알라디너들은 자꾸 좋은 책 소개하고... 알라딘을 끊어야 하나 ㅠㅜ

양손잡이 2018-08-20 13:23   좋아요 1 | URL
저도 이사 전에 반틈정도 팔았는데 요요현상 오듯 전보다 늘어났어요... 아무래도 책 읽기보다 돈쓰기를 더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알라딘은 절대 끊을 수 없으니 카드를 끊어저리는 방향이 옳을 것 같습니다 ㅋㅋ

비연 2018-08-20 13:27   좋아요 1 | URL
카드를 잘라야할까요 허허허 ㅠㅠㅠㅠ

양손잡이 2018-08-20 14:21   좋아요 0 | URL
저희는... 정답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ㅎ...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 카를로 로벨리의 존재론적 물리학 여행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이중원 감수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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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스켑틱이나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편 과학 대중서다. <코스모스>는 뭔가 클래식한 분위기의 책이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는 않았는데, 10년 전 읽은 <엘러건트 유니버스> 이후로 간만에 머리 쓰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과학서적이어서 요약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평가를 하기에는 이해가 어려워 다 관두고, 저자는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해오던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완전히 부숴버린다. 그에 따르면 공간은 최소 영역이 존재한다! 공간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최소 단위를 가지는 공간의 '양자'로 치환되는 셈이다. 공간은 알갱이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길이는 무려 1센티미터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10억분의 1의 백만분의 1이라고 한다(10^-33센티미터). 저자가 든 예시를 보자.


호두를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 전체만큼 크게 만든다고 해도 플랑크 길이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확대된 뒤에도 처음의 호두보다 백만 배나 더 작습니다.


와우... 우리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어떻게 보면 '없다'고 할 수 있는 길이다. 물리적 공간은 양자끼리의 관계의 망이 끊임없이 몰려드는 결과로 생겨난 조직이다. 공간은 불연속적인 구조를 가진다. 이 개념을 가지고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달리기 시합을 보면, 우리가 수학 시간에 배웠던 풀이가 어그러진다. 무한급수의 계산법을 이용해 제논의 역설을 논파했는데, 공간을 무한히 나눌 수 없고 최소단위의 '양자'가 존재한다면 이 계산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의 덧셈이 된다.


시간은... 공간의 양자가 이어지는 링크에서 만들어진 거품의 흔적이라고 한다(사실 시간 부분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진짜' 시간 t를 측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자연을 이해하고 기술하는 데에 아주 효과적인 도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시간'이란 개념을 자연히 익혀왔다. 골때리는 게, 양자역학의 기본 방정식을 보면 시간 변수 t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은 세계, 즉 공간 양자에 내재되어 있고, 양자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시간이 태어자는 것이다! 으아아! (그런 점에서 저자는 시간은 인류의 무지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이론으로 기술되는 세계는 우리가 익숙한 세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은 더 이상 없습니다. 사건들이 ‘그것에 따라’ 발생하는 시간도 더 이상 없습니다. 공간의 양자들과 물질들이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기본적인 과정이 존재할 뿐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이라는 가상은 이러한 기본적인 과정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을 멀리서 흐릿하게 보고 있는 결과입니다. 투명하고 잔잔한 산정 호수가 무수한 작은 물 분자들의 빠른 춤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내 머리 안에 최신 과학 이론은 초끈이론인데, 저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의 대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끈이론이라고 말한다. 사실 현재로서는 루프양자중력이 완전히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과학이론은 언제나 현재를 합리적으로 말해주는 것뿐이지, 온 세상의 진리를 담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루프양자중력이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되는 부분을 상쇄시켜준다니, 지금으로는 최선의 이론이겠다.


분명 저자가 이 책은 동료 물리학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확실한 사실들에 관한 책이 아니라고 말했듯이, 몇십 년이 지나면 분명 반박당하고 다른 이론이 튀어나올 것이다. 저자가 틀렸다 해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지만,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여행은 항상 즐거울 것이다. 한 달 꼬박 걸려 읽었지만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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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어퍼 이스트사이드
티에리 코엔 지음, 박아르마 옮김 / 희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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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심으로, 올해 읽은 소설 중 최악이다. 어쩌면 성인이 된 후에까지도.

2. 함께 읽는 책으로 선정되지 않았다면 이런 류의 책은 절대 펴지 않았을텐데. 가끔 페이지터너를 읽어서 스트레스를 풀 필요는 있지만, 적어도 페이지터너라면 <마션>만큼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3. 이 책은 정말 쉽게 읽힌다. 스토리도 볼 거 없고, 인물은 매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스토리? 주인공이 미쳤다고 눈가림하는 설정은 아주 진부하고 주변에서 계속 언급되는 인물이 범인일 가능성은 아주 적다. 그러므로 범인은 완전한 타인인데... 이런, 범인이 밝혀지니 웬걸, 너무 허무하다. 주인공과의 접점이 이렇게 적다니! 이딴식으로 악역을 소개하다니! 게다가 마지막에 범인을 낚는 저급한 속임수까지, 정말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4. 상업적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은 옮긴이의 말에서만 언뜻 볼 수 있었고, 소설 본문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행간에서 작가의 고뇌와 성공의 의미를 읽어낸 사람은...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통찰력이 대단한 사람이야.

5.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고, 스릴도 서스펜스도 없는, 절대 읽어서는 안될 소설이라고 단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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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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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읽었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가 왜 그런 어른이 되었는지, 어릴 적의 진희와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보다 훨씬 이야기가 풍부해서 좋았다.


진희는 어린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 똑똑하고 남(특히 장군이... 불쌍한 우리 장군이)를 이용할 줄 안다. 특히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분리해 세상과 거리를 두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는 이모(영옥)과는 반대다. 진희와 영옥은 거울에 비친 것마냥 정반대의 인물이다. 영옥은 진희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으면서 때로는 진희보다 어린 듯한 느낌을 준다. 엄마(진희의 할머니)에게 자주 어리광피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철없는 행동을 많이 하지만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사는 게 진희보다 정감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희가 허석을 대하며 허둥대는 모습은 소설에서 쉬이 볼 수 없는 진희의 부끄러운(?) 장면이기에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옥은 이형렬과의 이별, 경자의 죽음을 겪으면서 한단계 성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한편 아쉬운 마음도 든다.


90년대에 쓰인 작품이어서 그런지 여자 팔자가 아주 난리났다. 진희의 삼촌은 소설 내에서 얼마 등장하지도 않는데 할머니는 자나깨나 아들 생각뿐이다. 광진테라 아줌마는 아주 못돼처먹은데다 한량노릇 하는 남편을 제발로 떠났음에도, 자식 생각과 남편이 보인 잠깐의 호의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만다. 과거의 시대풍토가 그랬음에 어쩔 수 없는 인물과 묘사여서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소설 마지막에 뜬금없이 등장한 아버지는 겨우 두 쪽의 비중이지만 진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이런 시간과 공간에서 자란 진희가 나이를 먹고 남성편력을 가진 것도 일견 이해는 간다. 


소설을 다 읽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라온 내 어린 시절을 대입해본다. 내가 진희처럼 빨리 성숙했다면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회상할까? 그 과거를 토대로 나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됐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의 죽음, 어른들의 비밀과 부정,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까지, 소설이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는 분명 일반적이지만 독자 개개인에게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모두들 다른 기억을 가지고 소회도 다르겠지. 문학이 주는 힘이다. 여러 사람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나저나, 제목은 왜 새의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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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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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아무 영양가 없는 잡담을 해봅시다.


1. 작년에 '소설가들이 꼽은 2017년 최고의 소설'이라는 수식어를 단 <바깥은 여름>(이하 여름)을 한 해 건너 드디어 읽었다. 여름이라는 화사한 계절, 그에 어울리는 파란색의 예쁜 표지까지, 작가의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이하 내 인생)에 비추어보면 통통 튀는 소설일 것 같은데 막상 책을 읽은 사람들은 우울의 끝판왕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찌 기대를 안할 수 있겠어?


2.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고 많이 읽히는 김애란 작가지만, 아직 그의 작품을 2편밖에 읽지 않고 평가도 극을 달린다. 첫 작품집 <달려아, 아비>는 재밌게 읽었는데 김애란을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어준 <내 인생>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2013 이상문학상 수상작 단편 '침묵의 미래'는 정말... 당시에는 최악이었다. 2012년 수상작들은 다들 좋아서 기대하며 읽었건만, 내게 '침묵의 미래'는 관념소설이라는 생각만 들게 했다.


3. 1호 2불호. 덕분에 그 좋다던 <비행운>도, <침이 고인다>도 모두 책만 사놓고 손도 안댔다. 사실 <여름>도 순위권에 없다가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처지에 놓여서 펴게 되었다. 뭐, 덕분에 좋은 책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극찬했을 때 읽었으면 함께 이야기하고 많은 의견을 나눴을텐데 조금 아쉽다. 부족한 내 안목을 탓하는 수밖에 없겠지.


4. 흠, 그런데 첫 작품 '입동'을 읽는데 어디서 읽은 느낌이다. 두번째 '노찬성과 에반'... 어라 이것도? '침묵의 미래'야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읽었다지만 다섯번째 작품 '풍경의 쓸모'도 익숙하다. 작년에 이 책을 읽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 책을 편 일이 없는데? 책 가장 뒷편에 작품 발표 지면을 보니 알겠다. 창비와 릿터, 현대문학 잡지에서 읽었구나. 나도 저 당시에는(2014년) 충실히 살았구나, 새삼 내가 낯설어진다.


5. 대부분의 일반문학이 그러듯, <여름> 안이 작품들은 모두 상실을 다룬다. 상실에 주는 공허와 슬픔,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수긍하거나, 부정하거나)를 보여준다. 절대 <내 인생>을 생각하며 읽으면 안되겠다. 물론 <내 인생>도 상실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만 <여름>보다 훨씬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6. 몇 작품에 대한 간단히 소회를 나눠보자. '입동'은 한 부부가 갑작스럽게 아이를 잃은 이야기다. 부부는 이 슬픔을 견디다가 집안의 더러워진 벽을 새로 도배하기로 마음먹는다. 슬픔과 더러움 - 슬픔의 극복과 도배를 통한 깨끗함은 아주 단순하면서 명쾌한 대비다. 여기서 끝났다면 별거 아닌 글이 되었겠지만, 부부가 도배를 하다가 벽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를 보는 순간 조금 새로운 국면에 도달한다. 잘 보이지 않는 벽 아래편에 그려진 아이의 낙서처럼, 슬픔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지워지지 않는다. 새로운 도배지을 벽에 붙이듯이 슬픔은 덧씌워질뿐 우리의 기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7. 노찬성과 에반. 초등학생 찬성이 버려진 개(에반)을 키우는 이야기이다. '노찬성과 에반'에서는 상실의 슬픔을 아는 찬성의 할머니와 상실의 개념을 모르는 찬성의 대비가 눈에 띈다. 에반이 나이가 들어 시름시름 앓을 때, 찬성은 돈이 없어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안락사를 시키기 위해 알바를 하며 돈을 번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같이 알바일을 하는 중학생은 찬성을 또라이 취급을 한다. 그래, 보통의 관점이라면 에반을 치료해줘야겠지만, 찬성은 에반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한 것은 아닐까? 에반을 위해 자신의 개념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해주려고 노력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진정한 공감과 진정한 용서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8. 침묵의 미래. 5년 전에 관념소설이라고 단정짓고 재미없다, 라고 평을 내렸는데... 지금 읽으니까 정말 좋다. '소수언어박물관'이라는 곳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고 연구한다. 그 연구가 단순히 학술적이지 않고,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유리 안에 전시하고 관람객이 오면 자신의 언어로 연기하듯 인사하는 식이다. 단편의 화자는 이제 막 소멸된(?) 언어(??)로, 언어의 존재와 소멸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 볼만하다. 이 단편에서도 대비가 빛을 발한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천여 개의 언어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모든 인간이 단번에 이해할 수 있는 언어라는 뜻깊은 대비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따로국밥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연민과 공감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5년 전에는 왜 이 작품을 그렇게 형편없다고 평했는지 모르겠다...


9.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편이다. 상실을 마주하는 태도를 너무나도 서글프게, 동시에 연민 있게 그린다. 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친 남편을 그리워하는 화자(아내)는 계속해서 딱지가 생기는 생채기에 괴로워한다. 주변 사람들은 남편을 애도하고 학생을 원망한다. 이 사람들 사이에서 학생의 누나가 쓴 편지를 읽고서 화자는 울면서 남편의 용기와 희생에 끝내 눈물을 흘린다. 단편 안에서 아내는 주로 시리에게 질문을 하는데, 시리와 편지는 같은 텍스트이면서도 상반된 메세지를 전한다. 전자는 짜여진 알고리즘에 의해 대답을 해 화자가 원하는 답변을 주지 않는다.(화자가 답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반면 후자는 사람(학생이 누나)이 직접 써 진심과 공감이 담겨 있다. 시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편지는 사라지는 인간적인 정과 감정교감을 뜻한다고 하면, 우리 인간이 잃어가고,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10. 단편 소설은 정말 어렵다. 장편에 비해 불친절하고 까딱 잘못 읽으면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놓치기 일쑤, 거기에 오해까지 더해지면 큰일이다. 그래서 모든 소설은 두 번 이상 읽어서 의미를 깊게 파악하고 싶은데 읽을 책은 많고 욕심은 크고 시간은 없으니 이정도로 만족...할리가 없잖아! 나도 더 똑똑해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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