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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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까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첫 문단이다. 제목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대부분 손석구가 출연한 ‘나의 해방일지’를 떠올릴테다. 북토크에서 작가가 말하길, 편집부에서 의도가 빤히 보이는 제목을 권해서 조금 싫었다고 한다. 소설의 소재와 다르게 책 표지는 둥글둥글하고 가볍게 그려졌다. 독자들에게 조금 가볍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2. 소설 초장부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아버지는 혁명전사다. 지금 나로서는 무슨 중2병 같은 이름이 있나 하겠지만, 아버지 ‘고상욱’은 실제로 빨치산으로 생활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동지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총을 들고 투쟁한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의 딸이자 소설 속 화자의 이름인 ‘아리’는 부모가 활동한 산 이름에서 따왔단다(아빠 - 백아산, 엄마 - 지리산).
젊은 나이에 감옥에 수감됐다가 출소 후 고향인 구례로 내려온 아버지는 농사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농부이자 전직 빨갱이인 그는 노동이 힘들다며 몰래 빠져나와 막걸리와 소주를 마셔다. 커가면서 ‘나’는 가족에게 고압적인 아버지와 서먹한 사이가 되어 멀어지게 된다. 장례식에서 울지도 않는다. 그렇게 남인 것 같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여러 인물들과 함께 대화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아버지의 생을 돌아보게 된다.


3. 라는 게 대충 이야기의 골자다. 상당히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이들에 얽힌 과거 이야기가 서술된다. 단편적이고 다소 진부한 설정들의 이야기여서, 소설 자체로만 보면 솔직히 조금 아쉬운 편이다. 거의 모든 장면이 회상으로만 이루어진, 선호하지 않는 양식이다. 종국에 아버지를 이해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너무 쉽게 풀어지지 않았나 싶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말하나 싶지만, 나도 독자이자 소비자이니 할 말은 해야지.


4. 형식과 틀 이야기를 벗어나, 소설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볼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5. 가장 먼저, 나는 부모님을 100% 알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부모님과 20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학창시절에 공부하기에 바빴지만 매일 보는 사이였다. 이리도 가까이 붙어 있었던 우리인데, 나는 부모님을 잘 알고 있는가?

>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아버지는 정말 다양한 사람과 접점을 가졌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하나가 아닐 성싶다. 관계를 맺은 사람마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그렇다면 지인의 수만큼 인생의 갯수도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가끔 부모님의 과거 얘기가 궁금해 묻곤 한다.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이지만, 아버지의 군시절 이야기, 어머니의 빛났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놀라움의 연속이다. 부모님으로 살기 전, 한 사람으로서 살 때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부모가 된 후에도 어떤 자아와 생각으로 지냈고, 버텨왔는지. 김하나 작가의 ‘빅토리 노트’처럼, 부모님도 자신의 인생이 있었을텐데, 거기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6. 둘째로, 인간이 소외된 이념 투쟁의 허망함이다.

> 아버지는 백운산에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년뿐이었다. 고작 사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옭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분명 빨치산으로 살았다. 국가 안보에 안 좋은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다. 사회에 위험하다고 판단과 처벌이 가능하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죄에 있어서만 사람을 벌해야 하는데, 소설에서는 연좌제로 아버지의 친인척들도 벌을 받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었고, 그 충격으로 동생은 평생 형(아버지)을 원망했다.조카는 고위공직에 오르지 못했다.

빨치산 운동은 고작 4년을 했건만, 아버지는 평생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사회는 그가 살아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다. 위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영원히 억압할 자격이 있을까? 영원한 딜레마가 될 터다. 사람이 빠진,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의 대립에서 소외되는 것은 결국 우리다.


7. 마지막으로, 빨치산 ‘고상욱’이 아닌 그냥 사람 ‘고상욱’을 생각해본다.

아버지는 고향에서 많은 사람과 만나고 살았다. 과거 빨치산 동지는 물론이오, 조선일보를 보는 교련선생 출신 박선생과 단짝이고, 자신을 감시하는 담당형사와 술잔을 나누기도 했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소매를 걷고 찾아갔다.

> “생각이 다르면 안 보면 되지, 애도 아니고 맨날 싸우면서 왜 맨날 놀아요?”
>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신문을 촥 펴면서 말했다.
>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
> 아버지에게는 사상과 사람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사상보다 사람을 믿는 것이다. 그것이 사상과 빨치산 운동으로 발현되었지만, 뿌리에는 결국 사람이 있었다. 당시 빨치산들이 어떤 마음으로 총을 들고 투쟁했는지는 모르겠다. 우파 - 좌파, 모든 이들이 한반도라는 좁은 땅떵이에서 비극과 뒤엉켰을 뿐이다. 결국 사람 ’고상욱’은, 우리는 대단한 것 없이, 이상한 것 없이, 사람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고,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온몸으로 말하는 셈이다.


8. 소설에서 가장 가슴을 치는 문장은,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 있다.

>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우리가 욕심, 시기, 질투, 의심을 조금만 내려놓고 상대에게 자그마한 진심을 담아 손을 내민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유토피아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세상에 슬픔이 차츰 사라지고 웃음과 신뢰가 피어나길 바랄 뿐이다. 사람을 믿는 신념을 고수하려면 얼마나 무던해져야 할까. 아버지가 꿈꿔왔던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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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수 2023-06-0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53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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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양손잡이 2023-06-03 11:50   좋아요 0 | URL
이전에 출간된 책을 사두기만 하고 읽지를 못했는데(책 쇼핑 욕구가 많아서 좋다 생각하는 책은 무작정 사둡니다)이번 신긴은 얼른 사서 꼭! 읽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