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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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읽기 너무 힘들었다.

첫째로, 여러 평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가독성이 아주 안 좋다.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과거의 사건으로 너무 뜬금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 뒷문장을 읽어야 앞문장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번역도 그렇다. 침모라는 단어를 요새 누가 쓰는가. 순우리말의 맛을 살리는 번역도 아니고, 사전을 한번 뒤지게 만드는 번역이라니. 괄호 안에 뜻이라도 써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게다가 가로가 길고 줄간격이 약간 좁은 넙데데한 판형도 가독성에 영향을 주었다.

둘째로, 코라의 여정을 읽는 자체가 너무 괴롭다. 조지아 농장에서 코라가 테런스를 감싸면서 지팡이로 얼굴을 맞는 장면에서 특별한 묘사 하나 없는데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무기력하게 살던 코라가 내면의 노예가 발목을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서 남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모습에서 위대하고 온전한 한 인간의 모습을 봐서일까.

코라가 농장을 탈출해 그럭저럭 잘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조금만 지나면 바로 불행이 찾아온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는 관리를 받으면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조금이나마 살아가지만 이면에는 친절을 가장한 무시무시한 음모가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다락방에만 틀어박혀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집주인 마틴과 에설의 보살핌을 받는다. 에설이 마음을 조금 열려고 하자 바로 노예 사냥꾼이 들이닥친다. 인디애나는 여태까지 지나쳐왔던 곳 중에 가장 완벽한 곳이었지만 이곳조차 백인들에게 무참히 짖밟힌다. 코라는 이 여정에서 자신이 마음을 주었던 사람(시저, 마틴, 로열, 수많은 흑인들)들을 모두 잃는다.

희망과 행복이 보여 드디어 코라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나 싶으면 단 한 쪽만 넘겨도 무자비한 폭력이 흑인들의 삶을 망가뜨려버린다(작가가 변태인 게 분명하다). 작가의 이러한 단호함은 코라, 그리고 과거 많은 흑인들이 느꼈던 무한한 절망감을 그대로 전해준다. 원치도 않는데 자신의 인생에 훅 치고 들어오는 불행을, 흑인들은 평생 느끼면서 살았을 것이다. 마지막 메이블 장은 코라가 붙들고 있던 내면의 마지막 ‘하나’를 산산히 부숴 가루로 갈아버리는 느낌이다(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이기도 하다). 코라가 지하철도에서 나와 세인트루이스로 가는 마차를 얻어탈 때조차 희망보다 앞으로 다가올 절망에 불안감은 더 커진다.

책 제목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란 실제로 남부의 노예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던 점조직이라고 한다. 작가는 어릴 적 이를 실제 지하철도로 알았다고 하는데, 이를 바탕으로 훌륭한 대체 역사소설을 집필했다. 모든 사건이 실제 벌어진 일은 아니겠지만, 그 바탕에는 실제로 있었을 법한 부류의 사람들(흑인 노예는 인간취급하지 않는 주인/그나마 챙겨주는 주인/추노꾼/겉으로 친절한 척하면서 뒤로는 이용해먹으려는 사기꾼/같은 흑인이면서도 공동체적 모습을 보이지 않는 통수킹/노예제를 하루 빨리 없애려고 노력했던 인도주의자)이 함께 해 현실감을 더했다. 이런 사람들이 아직도 판치는 지금, 우리는 100년 전에 비해서 진보했는가 하는 질문에 확언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도 저열한 사고에 갖힌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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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걸 (알라딘 리커버 특별판, 양장)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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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솔직히 생물학을 좋아하지 않아.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세포의 감수분열을 배우면서 생물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렸어.

나에게 과학이란 단 두 부류였어. 세상을 수식으로 표현하면서 작은 양자 세계부터 거대한 은하까지 모두 보여주는 물리학, 세상의 수많은 화학반응을 발견하고 물질들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현상의 화학. 이런 면에서 과학은 경이에 가까웠지. 관심이 없다보니까 생물학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고.

<랩걸>을 읽고나서 생명의 웅장함과 위대함, 단아함이란 무엇인지 조금은 느낀 것 같애. 어떻게 보면 생물학도 내가 좋아하던 화학과 일정 부분 겹치거든. 생물학의 많은 개념도 결국 화학식으로 풀이되는 경우가 있더라고. 과학은 그래, 물화생지, 처럼 완벽히 구분되지는 않는 듯해. 그저 감수분열을 피하려고 의식적으로 생물학에서 눈을 돌려왔던 걸까.

책은 생물학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식물의 생애에 맞춘 저자- 호프 자런 자신의 인생을 말해. 식물이 씨앗부터 자라 뿌리를 뻗고 줄기를 만들며 종국에는 꽃과 열매를 맺는 과정은,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일 수밖에 없겠지. 작가는 유사한 라이프 사이클을 가진 식물을 자신과 동일시한다고 볼 수 있는데, 바로 식물이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것이기에 이야기가 더 풍부해진 느낌이야.

이런 형식은 다른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데이비드 실즈의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가 비슷해. 삶과 죽음에 대한 통계와 명언, 일화 중간중간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해. 두 책의 비슷한 점은, 작가의 이야기 말고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의 이야기(<랩걸>의 경우 식물 이야기)가 주는 감정이 더 크다는 거야.

울림을 줬던 문장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옥수수가 조직 1그램을 만드는 데 물이 1리터가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했다.

1그램과 1리터가 주는 느낌은 확연히 다르지만, ‘조직 1그램’이라고 말하는 순간 거기서 느껴지는 웅장함이 더 커지더라. 단순히 무게로만 따지지 않고 말이지, 세포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작은 것들이 모여 생명을 만든다니, 놀라운 일이야. 말이 1그램이지 사실 그런 조직이 수없이 모여야 그만큼의 무게가 되거든. 귤 껍질을 깔 때 하얀 섬유질은 맛이 없고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떼곤 하는데, 귤나무는 열매를 맺으면서 이 보잘것없이 보이는 것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썼을까, 그 생각을 하면 식물의 발화와 성장은 그대로 상상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해.

이제 숲에 가면 잊지 말자. 눈에 보이는 나무가 한 그루라면 땅속에서 언젠가는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기를 열망하며 기다리는 나무가 100그루 이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이 문장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놀랍고 흥미로운지 뼈저리게 느껴지더라. 양자영역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생명은 얼마나 충만한지, 이런 생명이 살아가는 지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생각도 들었어.

유시민 작가가 딸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말했지만 사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 유작가나, 이 책을 즐겁게 읽은 사람과 이 이야기를 더 해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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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잘 읽는 방법 - 폼나게 재미나게 티나게 읽기
김봉진 지음 / 북스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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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책이 안 잡히고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때가 있다. 몇 개월마다 찾아오는 독서권태기다. 이럴 때는 책을 놓고 전혀 다른 행위(영화, 게임)를 한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겠다 싶을 때는 책과 독서에 관한 책(메타북)을 읽는다. 어렵지 않고 의욕을 다시 불태우기 때문이다.

<책 잘 읽는 방법>의 저자 김봉진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스타트업 ‘배달의 민족‘의 창업자다. 성공한 기업인은 보통 엘리트의 이미지를 가지기 일쑤지만 (미안하지만)김봉진은 그런 아우라는 없다. 공고-전문대의 학력은 물론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도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단다.

이런 저자가 <책 잘 읽는 방법>을 통해 책을 조금 더 쉽게 접하는 방법과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크게 책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법부터 꾸준히 책을 읽고 어려운 책을 넓혀가는 훈련법, 혼자 읽기가 아닌 함께 읽기를 위한 응용 방법등을 이야기한다.

책은 크게 특별하지는 않다. 이미 비슷한 내용의 책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근래에는 이동진과 북튜버 김겨울의 책이 있었고,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같은 주제의 책이 많다. 게다가 내용마저 유사하다. 책을 함부로 다뤄보기, 처음에는 질보다 양, 많이 사고 눈에 띄는 곳곳에 책 두기, 베스트셀러 말고 자신만의 책을 읽기, 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기, 재밌는 책도 좋지만 어려운 고전도 도전해보기... 수도 없이 들어본 내용이어서 저자가 중간에 소개한 목차와 머리말 놓치지 않기를 적극 활용해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의 절반, 아니 80%는 읽은 셈이다.

책도 인문서 쪽으로 편중되어 있다. 저자의 독서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은 편이고과학서적은 눈을 아무리 씻어봐도 없다. 문학은 아예 배제하지 않고 일부러 찾아 읽는다고말하는데, 저자를 포함한 인문서를 즐겨 읽는 이들이 과학 분야를 소홀히 다루는 태도는 매우 아쉽다. 독서 분야로 한정지어보면 이 책은 <독서천재가 된 홍대리>와 겹친다. 홍대리가 명확하게 자기계발서를 표방했다면 <책 잘 읽는 방법>은 인문서를 가장한 자기계발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서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킨다. 독자는 자기계발서를 읽음으로서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는 것은 자기계발서의 단점이 절대 아니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독서법을 긍정한다. 대부분이 이미 생각해오던 방법이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가졌지만 저자와 나의 결과물이 이리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워낙 익숙한 내용이기 때문에 책의 깊이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실상 생각을 행동으로 연결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자기비판이라 볼 수 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작다. 3장을 제외하면 김봉진만의 노하우가 거의 없고 부록으로 붙은 ‘김동진의 도끼 같은 책‘도 내용이 조금 부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이 아직 낯설고 두려운 이에게는 다른 독서법 책보다 이 책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판형이 작고 책도 얇다. 결정적으로 한 쪽의 절반이 여백이어서 수월하게 책을 넘기기 수월하다. 저자가 말하듯이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으면 통쾌함과 자신감이 붙는다. 그 느낌을 가지고 더 좋은 책 더 재밌는 책을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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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독서 매너리즘에 빠질 때 책 읽기를 주제로 한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이런 책을 읽으면 독서 욕구가 다시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

양손잡이 2018-03-19 00:13   좋아요 0 | URL
제가 능력과 끈기가 부족해 요런 책을 자주 읽는데, 너무 자주 읽어서인지 이제 그 내용이 그 내용인 것 같네요. 제 한계에 대한 푸념이었습니다 ㅠㅠ
 
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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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세계에서 인간은 더이상 성교를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오로지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볼 수 있다. 주인공 아마네는 이런 세계에서 부모의 ‘교미’를 통해 세상의 빛을 보았다. 왜 자신만 이상한 걸까? 그녀는 자신의 진짜 본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사랑과 섹스에 몰입한다.


성인이 된 아마네는 남편 아마미야와 함께 실험도시 지바로 들어간다. 지바에서는 아이를 낳기까지만 하고 키우는 것은 국가기관이 담당한다. 동시에 시민 모두가 ‘엄마’가 되어 공동육아를 한다. 아마네 부부는 아이를 낳아도 센터에 보내지 않고 몰래 키우자고 하지만, 인공자궁을 달고 아이를 품은 남편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자 위화감을 느낀다.



어쩌면, 유토피아.


<소멸세계> 의 세계는 유토피아의 면모를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여성이 간단한 시술만 받으면 생리 시 고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피임시술도 쉬운 일이다. 인공수정으로 아이를 낳으니 생리와 피임이라는 필요성이 희박해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만이 가능했던 임신은 남성도 가능하다. 아직 개발 중이지만 인공자궁을 달면 남성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여성만 느끼던 출산의 불편함을 남성도 분담함으로써 생리적인 면에서 남녀 차이는 거의 사라졌다. 출산에 따른 남녀격차도 분명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양육의 불편함도 사라진다. 국가에서 모든 양육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사회 공동의 ‘엄마’로서 아이를 볼 때도 있지만 우리 사회와 같은 크기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전통적인 가족관계도 해체되면서 고부갈등 따위는 옛말사전에 오를 것이다.



어쩌면, 디스토피아.


소설 속 세계는 고도의 합리성을 추구한다. 과학은 다소 비효율적이던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었다. 합리성으로만 가득한 세계에서 인간은 유전자 캐리어로 격하된다. 우리는 균일하고다루기 편한 ‘인간’을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셈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후손을 위해 잠시 이 세상에 머무르는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그저 미래로 생명을 이어가는 매개체일 뿐이라니, 인간 진화의 긴 연대기 안에서는 맞는 말이겠지만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인간이 후손을 위한 매개체로 전락하면서 모두 개성을 잃는다. 지바 실험도시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모두 비슷한 생김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단발머리에 웃을 때 같은 근육을 쓴다. 아이들은 이름이 있을까? 개개인이 가진 특별한 능력도 특별히 발현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그저 후대를 위해 아이를 낳는 기계이자 소모품이 되어버린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편의점 세계>로 신선한 충격을 줬는데, <소멸세계>는 신선하다 못해 과하다 싶을 정도다. 재밌는 점은 두 작품 모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작가에 설득당한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흔들어 지금 우리가 부르는 상식에 의문을 들게 하는 점이 무라타 사야카가 작가로서 가진 힘이다. <소멸세계>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금이 진화의 세계에서는 짤막한 한순간이라는 허무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정상, 비정상, 상식을 언급했는데 추가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극도의 합리와 이성이 만든 <소멸세계>에서 인간의 존재는 위태위태하다. 인간이 유전자 캐리어와 사회적 기능으로서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인간 종이라는 넓은 풀에 개인이 파묻힌다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가장 뛰어난 종도 아니고 이 세상에 한 때 사는 존재지만 자기 성찰이 가능한 유일한 존재로서 동물과 다르다. 우리는 최고는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아마네의 남편 아마미야는, 지금 시대에는 가족이라 명명한 존재가 남과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미래에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마미야의 말에 반박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소 보수적인 사고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사회의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마지막에서 아마네는 어머니를 버림으로서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와 같은 구시대적 관습을 끊고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이와 육체적 성교를 하면서 다시 세상의 돌연변이가 된다. 아마네의 이런 행동은 정적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새로운 원동력이 될까? 아마네의 눈물겨운 발악이 이 세계에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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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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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 일본의 떠오르는 작가. 한국에 출간된 작품으로는 <편의점 인간>과 <소멸세계>가 있는데, 둘 다 읽다보면 정신이 없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뒤흔드는 두 작품을 읽다보면 누구 말마따나 혼이 비정상이 되는 기분이다.

주인고 후루쿠라는 서른 여섯으로, 무려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편의점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능력이 좋은데 정직원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에 만족한다.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고 공감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남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모양으로 살려고 노력한다.

정상으로 진입하려는 인물이 하나 더 등장한다. 같은 서른 중반의 시라하다. 돈도, 능력도 없는 그는 결혼을 통해 다수의 무리에 끼려고 한다. 후루쿠라와 시라하는 남들이 보는 정상의 범주에 끼기 위해 동거를 시작한다. 자신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시라하의 궤변에 편의점을 가장 편하게 느끼는 후루쿠라는 아르바이트를 관둔다. 편의점 말고는 삶의 목적이 없었던 후루쿠라의 삶은 무료하게 흐른다.

시라하는 후루쿠라와 동류의 캐릭터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시라하의 능력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30대 중반인데 왜 아직도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왜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가. 성행위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태연히 물어보면서 말이다. 시라하는 누구한테도 폐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 단지 소수파라는 이유로 다들 자신의 인생을 강간한다고 주장한다. (105쪽)

충분히 수긍가는 말이다. 후루쿠라와 시라하의 인생은 오롯이 그들의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든 남이 신경쓸 일이 아니다. 타인이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다수와 주류에 끼지 못하면 우리는 그를 비정상의 범주에 넣어버린다.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소수를 재단하고 비난한다. 진심이라고 생각한 충고는 고심해보면 스테레오타입의 지독한 폭력이 되는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시라하는 대척점에 서 있기도 하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상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그곳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회사 면접을 포기하고 편의점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하는 후루쿠라에게, 시라하는 말한다. 편의점 인간 따위는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무리의 규정에 어긋나 모든 사람에게 박해당하고 외로운 인생을 보낼 뿐이라고. (189쪽)

시라하는 정상을 향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반면 후루쿠라는 그런 게 뭐가 중요한가 나는 나대로인 게 좋다며 마이웨이로 산다. 다수의 정상성에서 벗어나려면 후루쿠라처럼 감정을 느끼지 못해야 하는 걸까? 미쳐야만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후루쿠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장애는 우리 세상에서 비정상으로 치부되지만 오히려 세상을 똑바로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나면 후루쿠라에 대한 답답함이 일 수밖에 없다. 능력이 그렇게 좋으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만족하는가? 왜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하는가? 더 나은 삶과 직장을 찾을 생각은 없는가? 이런 질문은 폭력적이다. 다들 이상한 사람한테는 흙발로 쳐들어와 그 원인을 규명할 권리가 있는 마냥 행동하기 때문이다. (70쪽) 대체 왜 그러고 살아, 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다수를 등에 업은 가해자로 전락한다.

정상 세계에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98쪽)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된다. 같이 미쳐야 할까? ‘정상인‘들과 함께 범주 바깥에 있는 이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비웃으면 될까? 서로를 가르는 선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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