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112~113쪽.)

 

 우리는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많다. 종교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떤 의미로 삼는가 하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이다' 라고 한 마르크스의 말은 종교에 대한 명목적이고 편집적인 신념에 대한 경고였다.

 사람들은 종교를 자신의 현실적인 삶 속의 기둥으로 삼지 못하고 종교를 의식의 도피처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 종교와 교단이 생활의 전부가 되고, 교주와 성직자를 절대적인 지표로 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개인이 존재하게 되는 양상이다. 이것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능엄경에 이르길 허공은 변함이 없는데 담긴 그릇에 따라 허공이 달리 보인다고 하였다.


"아난아,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나타난 인연이 있느니라. 햇빛은 해의 인연, 어둠은 구름의 인연, 통하는 것은 틈의 인연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나 이 참마음의 성품은 아무런 인연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모난 그릇 속에서 모난 허공을 보는 것과 같나니, 모난 그릇 속에서 보는 모난 허공은 모난 허공이 아니다. 똑같은 허공을 둥근 그릇 속에서는 둥글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릇이 모나고 둥글지언정 허공은 모나지도 둥글지도 않느니라." 


이는 우리가 본질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항상 어떤 그릇 속에 고정시켜 보려는 습관이 있음을 지적하신 부처님 말씀이다.
 

 (지옥에서 만난 사람에서 발췌. 112~113쪽.)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으며 그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꽃바람이 살랑이던 어느 해 봄. 나는 그곳에 갔다. 쏟아지는 햇볕은 따갑고 내 손을 잡은 조카 아이는 신이 나서 걸음마에 한참이었다. 잠시 절(망월사)에서 쉬며 그늘에 앉아 있자니 스님 한 분이 오시더니 책들을 내려두신다. 원하면 가져가서 읽으라는 스님의 말에 사람들은 책으로 몰려들었다. 그때 만난 책이 <벌거벗은 주지스님>이었다. 함께 간 가족 중 어머님과 내가 한 권씩 책을 품에 안았다. 이후 이 책에 대해 잠시 어머님께서 언급하셨을 때 순간 놀랐다. 품에만 안았지 책장을 들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책장에서 찾아내 부랴부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오후처럼 볕이 좋았던 그 봄. 망월사에 있던 하얀 진돗개는 잘 있는지 궁금하다. 조카 아이를 보고 좋아서 달려들던 천하 태평한 표정의 개였는데 그 덕에 조카는 놀라서 더듬더듬 옆걸음을 쳤었다. 이제 조카는 뛰어다니고 있으니 개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겨울 볕이라 꾸벅꾸벅 잠들기는 어렵겠지만 유유히 사람들 속을 걸어 다닐 것만 같다.

 

 읽었던 책을 다시 들춰내는 일은 늘 즐겁다. 그리고 새롭다. 책은 인연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이 책에 스민 나의 인연을 지인에게 실어 전하려고 한다. 처음부터 이 책은 지인에게 주고 싶었으니까. 잠시 인연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얼마 전에 이웃께 받은 책이 알고 보니 다른 이웃을 통해 날개를 단 책이었다. 즉, 이웃 가님이 나님에게 이후 나님이 내게. 이렇게 우리 셋 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반갑고 고마운 인연이다. 게다가 이 책을 주려고 마음먹었던 가님이 여행의 시작이었으니 책은 임자가 다 있나 보다. 주인에게 보내고 싶은 책들이 몇 권 있는데 전하지 못한지가 몇 년이다. 게으르고 게으르다. 이 책은 꼭 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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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버트 :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를 하신다면?
 

보르헤스 : 젊은 작가들에게 아주 초보적인 충고를 하나 하고 싶습니다. 작품의 발표가 아닌 작품 자체에 대해 생각하라고. 발표를 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독자를 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픽션을 쓰려거든 진지성을 가지고 상상할 수 없는 그 어떤 것도 쓰지 말라고. 단지 놀랍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것들을 쓰지 말고, 자신의 상상이 용인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들을 쓰라고. 그리고 문체에 관해서는 어휘의 풍요함보다는 어휘의 빈곤함을 추종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중략...) 또한 나는 작가가 즉흥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가가 지나치게 빨리 어떤 어휘를 맞는 것으로 단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어휘는 내게 그럴 듯한 사실성이 전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단 한 작품이 끝나면, 그것은 비밀스러운 전략과, 공허한 기교가 아닌 겸허한 솜씨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즉흥적인 듯한 것으로 보여야 합니다. (147-148쪽.)  

 

 기버트 : 만일 지식인이 이따금 현실을 망각한 채 자신의 상아탑 속에 갇혀 있다면 그러한 그가 자신의 몸담고 있는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공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보르헤스 : 나는 상아탑 속에 갇혀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 또한 현실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말한 대로 상아탑 속에 있기 때문에 어떤 시 한 편을 떠올리고 있고, 어떤 책 한 권을 구상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현실적인 겁니다. 나는, <현실은 일상적인 것이고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지구가 생겨온 이래 정열과 관념과 추측들은 일상적인 것만큼이나 현실적이었고, 그리고 게다가 그것들은 늘 일상적인 것들까지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나는 세계의 모든 철학자들은 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40-141쪽.)

 

* 보르헤스가 하버드 대학 교환 교수로 있을 때(69세) 기자 리타 기버트와 했던 대담 <보르헤스가 보르헤스에 대해 말하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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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알랭은 알랭 드 보통이 아니라 에밀 샤르티에의 필명이었다. 우연히 보통의 <행복한 건축>을 읽은 직후라 동명이인의 이름에 피식 웃고 말았다. 철자까지도 똑같았으니 말이다.   

 책을 읽을 때 어록을 마주할 때면 즐겁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자아와의 시간을 갖고 탐색해서 얻어낸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일까 싶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치열한 내면탐색기는 중학생 때와 대학생 때였던 거 같다. 그나마도 안으로 제대로 들어갔던 때는 순수했던 사춘기였고 후자 때는 안과 겉을 아우르느라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했던 거 같다.  

 초판이 77년이라 오래된 느낌이었으나 다음 순간 아차 싶었다. 나도 70년대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먼저 살다 간 이들의 철학과 마주하면 언제나 흥미롭다. 각설하고 앞에서도 잠시 말했지만 얼마나 깊이 골몰했는지 곳곳에서 흔적을 찾기 쉬웠다. 모두에게 자신만의 철학이 있겠지만, 그것을 얼마나 진지하게 숙고하여 이룩했는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거창하거나 절대적 진리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적 진리란 그리 흔하거나 많지도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바라보고 온몸으로 겪고 유추해서 정착해가는 과정이다. 서른 해가 넘었어도 나만의 철학에 큰 획이 그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에 치열하게 고민하던 때를 다시 꺼내오고 싶은 심정이다. 언제부터인가 메마른 자아의 샘물에서 한 바가지 가득 물을 뜰 수 있을지 실로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정념론(18쪽 참고.)을 읽으며 그렇게나 오랜 시간 감정과 마주했던 순간이 애쓰지 않아도 생생히 살아났다. 저자가 말하는 정념론을 간략하게나마 책을 인용해서 적자면 정념론(精念論)이란 데카르트의 저서를 알랭이 즐겨 예시인용하는 책으로 알랭 자신의 정념론도 있으며 정념(Passion)의 어의만으로 보면 감정에서 생기는 사념을 가리키나, 심리학이나 철학에서는 그리고 특히 이 글에서는 다스려지지 않는 감정의 총칭이라 한다. 여기까지 몇 줄에 걸쳐 적었지만 결국 다스려지지 않는 감정의 총칭을 다스려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그간 철학서를 등한시해왔음을 알았다. 또한, 사고의 흐름이 고였으니 길을 터주어야겠다. 저자의 사상을 접하며 크게 파동이 치는 부분은 없었지만 이런 생각들을 돌려주었으니 충분한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며 뇌를 고문하거나, 시간을 팔아먹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 반대로 마음에 고은 일렁임을 조금이라도 주는 책을 만나는 시간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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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혹은 거품의
눈물,
그 생애에 걸친 소금기


눈물은 왜 바다처럼 찝찔해야만 할까
 


폭풍우, 폭풍우도 없이!
 


 

(진이정,「눈물의 일생」전문)

 

참고 발췌「시인세계」2003 여름호.
       원시집은 진이정의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세계사, 1994)

                       ■ 진이정(1959-1993)
1959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남. 경희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1987년《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1993년 작고.
 

 이웃님의 포스트를 보고 진이정을 기억해내다
그의 유일한 한 권의 시집「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를 읽지는 못했다. 시 계간지에서 기획특집으로 다룬 글을 통해 그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 올린 시를 보며 얼마 전 올린 함민복의「눈물은 왜 짠가」도 떠오른다. 사실 1989년 유하, 박인택, 함민복, 차창룡은 동인을 결성해 주마다 만나 새로 써온 시를 읽고 합평회를 열었다고 한다. 가령 진이정의「진창」은 시인이 원고지 뒷면에 썼다고 한다. 주로 원고지 뒷면을 사용했던 거 같다고 차창룡은 당시를 회상한다.「아트만의 나날들」을 읽으며 나는 시인을 이해하고 싶어졌었다. '죽으면, 그렇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말 그리고 긴 시에서 그의 허무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절한 시인. 나는 여태 아트만(참자아)을 찾는 중이다. 그러나 시인은 어쩌면 벌써 찾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렇게나 빨리 우주로 속해버린 것일지도….

 

-4341.01.28.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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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우울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염은주 옮김 / 문학동네

 

 

 히라노 게이치로. 그는 내 또래의 작가. 법학을 공부해서인지 혹은 원래가 그런지 논리적인 글쓰기를
보여주는데 날카로움도 느껴진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본 산문집으로 2000년 1월부터 이 년간에
걸친 연재 에세이를 단행본화 한 것이 이 책이다.

 연재 에세이답게 무겁기보다는 짤막하게 그의 느낌을 담담하게 적었다. 첨가물 없는 음식처럼 그렇게
간략하게. 애당초 하나의 현상에 착안하여 깊이 있게 써서 만든 책은 아니지만 읽기 편하고 그의 독특
한 생각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조금 차가운 느낌이지만 그 속에는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이 스며있다.

 우리가 누리는 문명을 필터 없이 받아들여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미 세상은 오염되었고 그것은 물질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로의 회복이 미래로의
추구와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쳐졌으니 끊임없이 숙고해야 할 문제이다.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가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정보의 수신자와 송신자 모두를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유입된 정보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에 대해 더욱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론
은 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인 우리도 매스미디어와 좀더 냉
정하고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19쪽, 정체 모를 것.)




-4341.01.17.나무의 날. 작년에 만난 책. (07147-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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