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던가 블로그에 글을 올렸었는데 우리 아파트 놀이터, 산책로에는 2개의 숲속공유도서관이 있다.
사실 책이 너무도 없어서 여러 권을 기증했지만 내가 기증한 책은 다 어디로 갔는지 갈때마다 보아도 몇 개만 보인다. 낡아빠진 너덜한 책이 많고 아이들 책이 많다. 실망이지만 그래도 나아지리라 기대해본다. 그나마 다행인건 살림지식총서가 여러 권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몇 권을 읽었다. 놀이터에 나올때마다~ :)
저번에 읽은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선봉장
자유의 여신상, 그 형상과 이미지
여신상, 이민의 상징
억압되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흑인
이민 배척과 백인 우월주의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 유린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과 여권 운동
역설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

이 책의 목차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이들, 평등하지 못한 흑인들,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여성차별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들.
자유와 평등으로 느껴지는 자유의 여신상은 과연 그들을 꿈꾸게 해주었던가.
과연 그들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뿌리 깊게 박힌 불평등은 뿌리뽑을 수 있을까.
어느 사회나 문제는 있다. 이 나라나 저 나라나 근절해야 할 악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인지.
어제는 잠들기 전「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으며 가슴이 아팠다.
후지티브이에서 만든 다큐를 아직도 보지 않았다.
책부터 보고 나중에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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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6 22:44   좋아요 0 | URL
마을 내 작은도서관이 운영하기가 쉽지 않아요. 책 관리가 허술한데다가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로 도서관을 만들어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은비뫼 2015-05-26 23:07   좋아요 0 | URL
네. 좋은 의도로 만든 도서관이 이렇게 방치된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이것도 자원봉사가 필요할거 같기도 합니다..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전행선 옮김. 더클래식(2013)

원제 The Walden - Henry David Thoreau



 한 번의 보슬비만 내려도 그늘에서 자라는 풀까지 더욱 푸르게 물든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더 나은 생각을 받아들이면 앞으로의 전망를 밝힐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늘 현재에 살아간다면, 그리하여 풀잎이 자신 위로 떨어지는 작은 이슬방울의 영향력까지도 모두 드러내 보여 주듯이, 우리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의 이점을 이용한다면, 또한 과거에 주어진 기회를 소홀히 한 것을 속죄하느라 하릴없이 시간을 낭비하면서, 그것이 마치 의무를 다하는 행위인 양 여기지만 않는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터다.

 이미 봄이 왔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겨울 속을 헤맨다. 따스한 봄날 아침에는 모든 인간의 죄가 용서받는다. 그런 날은 악덕과도 휴전한다. 그런 봄날의 태양이 활활 타오르는 동안에는, 가장 극악한 죄인도 돌아올지 모른다. 나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게 되면, 우리는 이웃의 순수함도 알아볼 수 있다 어제만 해도 당신은 이웃 사람 하나를 도둑이나 주정꾼, 혹은 호색한이라 오해하고는 단지 동정하거나 경멸하면서 세상을 개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양이 밝고 따뜻하게 비추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는 가운데 맞이한 이 첫 봄날 아침, 당신은 차분하게 일에 몰두하는 그를 만난다. 그리고 방탕으로 지친 그의 혈관이 지금은 기쁨으로 얼마나 크게 부풀어 올랐는지, 또 그가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봄의 영향력을 느끼며 어떻게 새로운 날을 축복하고 있는지 보게 된다. 그 순간 당신은 그의 모든 허물을 잊게 된다. (384~385쪽, 봄)



A single gentle rain makes the grass many shades greener. So our prospects brighten on the influx of better thoughts. We should be blessed if we lived in the present always, and took advantage of every accident that befell us, like the grass which confesses the influence of the slightest dew that falls on it; and did not spend our time in atoning for the neglect of past opportunities, which we call doing our  duty. We loiter in winter while it is already spring. In a pleasant sping morning all men's sins are forgiven. Such a day is a truce to vice. While such a sun holds out to burn, the vilest sinner may return. Through our own recovered innocence we discern the innocence of our neighbors. You may have known your neighbor yesterday for a thief, a drunkard, or a sensualist, and merely pitied or despised him, and despaired of the world; but the sun shines bright and warm this first spring morning, recreating the world, and you meet him at some serene work, and see how his exhausted and debauched veins expand with still joy and bless the new day, feel the spring influence with the innocence of infancy, and all his faults are forgotten.

​(290~291p,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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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 공부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 가령 한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떤 교수가 있는 곳으로 보내는 식의 흔해 빠진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강의되고 실습되지만 삶의 예술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빵은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 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방울의 식초 안에 사는 괴균들을 연구하면서 자기의 주위에서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75쪽, 「월든」이레출판사, '숲 생활의 경제학' 일부 발췌) ​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식이야말로 수학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갈고 닦아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어느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경우, 나는 흔한 방식으로 그 아이를 교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교수하고 실습할지 몰라도 인생이라는 기술을 배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법은 배울지 몰라도 그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화학에 대해서는 배우겠지만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를 것이고,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기계를 만드는 방법은 모를 것이며,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기 눈의 티끌은 보지 못하거나, 그 자신이 어떤 부랑자의 위성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또는 식초 한 방울에 든 세균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자기 주위에서 우글대는 괴물에 먹혀버릴 수도 있다.

(60~61쪽, 「월든」소담출판사, '삶의 경제학' 일부 발췌) ​ ​

 

 

 

 

「월든」의 첫 번째 이야기는 '숲 생활의 경제학', '삶의 경제학'이다. 두 책의 내용은 같으나 번역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좋아하는 책이라 자주 펼쳐보고자 기록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적으면 좋겠지만 그저 이렇게라도 같은 내용을 두 번 키보드로 두드리며 읽는 시간이 좋다.

 사실 이 첫 부분은 좋은 내용이 많다. 건축과 집에 대한 소로우의 생각도 그렇고 옮기고 싶은 부분이 많다. 조금씩 천천히. 평생을 이 두 책이 너덜거리게 될 때까지 읽을 것이다. 더는 「월든」을 사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 다른 출판사의 책과 원본을 기웃거린다. 읽을수록 새로운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튀어나오는 소로우의 생각과 만나는 즐거움이 좋다. 정민의 「죽비소리」또한 자주 들춰 봐야 하는데. 이 책 또한 나중에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야겠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만 더 남겨야겠다.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말하지만

보라! 그것들은 날개가 돋쳐 날아가 버렸다.

모든 예술과 과학이.

그리고 무수한 발명품들이.

바람이 부는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뿐.

(62쪽, 「월든, 이레」'숲 생활의 경제학' 일부 발췌) ​

사람들은 많은 걸 안다고 말하네.

하지만 보라! 거기엔 날개가 달렸나니

예술이며 과학,

수많은 지식도,

불어오는 바람

그것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이라네.

(50~51쪽, 「월든, 소담」'삶의 경제학'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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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까다롭게 고른 고전이라 할지라도 책에만 갇혀 특정 언어로 된 글(한 계층이나 지역에만 통용되는 글)만 읽으면 자칫 모든 사물과 사건이 비유 없이 말을 하며, 그것만으로도 풍부하고 표준어인 언어를 잊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 언어는 널리 쓰이지만 인쇄되는 일은 거의 없다. 덧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도 덧문을 아예 제거해 버리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편법이나 전술로도 우리가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대체할 수 없다. 역사나 철학이나 시 강좌를 아무리 잘 고르고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고 남보다 뛰어난 생활을 영위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훈련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의 운명을 읽고 눈앞에 있는 것을 보라. 그런 다음 미래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으라.

 첫해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는데, 그것은 콩밭을 매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낫게 보내기도 했다. 머리를 쓰든 손을 쓰든 그런 일 때문에 어느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희생시킬 수 없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뜰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웇나무에 둘러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 없이 집 안을 날아다녔다. 그러다 서쪽 창으로 햇빛이 들거나 큰길을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소리에 문득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이런 계절이면 나는 하룻밤 사이에 크는 옥수수만큼이나 쑥쑥 자랐으며, 손으로 어떤 노동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훌륭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여느 때의 할당량을 훨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이하생략)

(134~135쪽 부분 인용. 「월든」에서 '삶의 소리')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출판
소담출판사
발매
200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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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아무리 잘 고른 책이고 고전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책에만 몰두하여, 그 자체가 방언이며 지방어에 지나지 않는 어느 특정의 언어들만 읽는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언어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이 언어야말로 모든 사물과 사건이 비유를 쓰지 않고 말하는 언어이며, 풍부하기 짝이 없는 어휘와 표준성을 지닌 언어인 것이다. 발표되는 것은 많지만 인쇄되는 것은 적다. 덧문 사이로 스며든 햇빛은 그 덧문을 완전히 걷어 버리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떠한 관찰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공부도, 훌륭한 교제도, 가장 모범적인 생활습관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 앞에 놓여진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발을 내디뎌라.

 첫번째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다. 콩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꽃처럼 활짝 핀 어느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체적 일이든 정신적 일이든 일을 하느라 희생할 수는 없는 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어느 여름날 아침,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오직 새들만이 곁에서 노래하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넘나들었다. 그러다가 해가 서쪽 창문을 비추거나 또는 멀리 한길을 달리는 어느 여행자의 마차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시간이 흘러간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런 날에 나는 밤새 훌쩍 크는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깎여 나가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동양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명상에 잠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하생략)

(160~161쪽 부분 인용, 「월든」에서 '숲의 소리들')

 ​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출판
이레
발매
20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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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든을 펼치면 자꾸만 책장을 넘기고 싶어진다. 아무 곳이나 펴들고 읽어도 생각을 부르는 책.

같은 부분을 소담출판사는 '삶의 소리'로 이레출판사는 '숲의 소리들'로 번역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영문판 월든을 살까 하다가 더클래식 출판사에서 나온 「월든」을 사야겠다고 결정했다.

더클래식에서 다양한 책이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나왔다. 그중 나도 몇 권을 사고는 읽지는 못 했다.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려고 책장에 올려두었는데 한번 읽어보고 괜찮으면 살까 싶기도 하다.

그래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도 아닌 영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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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념에 사로잡힘으로써 건전한 의미에서 우리는 미칠 수가 있다. 정신의 의식적인 노력으로써 행위와 행위의 결과에서 초연할 수가 있으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급류처럼 우리 곁을 지나쳐가게 된다. 우리는 전적으로 자연에 빠진 것은 아니다. 나는 냇물에 뜬 유목(流木)일 수도 있고, 하늘에서 그 유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타라˚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연극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나와 좀더 깊은 관계가 있는 실제 시건에는 감동받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인간적 실재로서, 다시 말해서 사상과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로서만 알고 있다. 그와 동시에 타인에게서만큼이나 나 자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이중성을 느낀다. 경험이 아무리 강렬할 때라도 나는 마치 나의 일부가 아닌 듯한 관객의 존재를, 그 관객의 비판을 의식하고 있다. 그 관객은 함께 경험하지 않으면서 그 사건에 주목하는데,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타자인 것이다. 인생이라는 연극(그것은 비극이 될 수도 있다)이 끝나면 관객은 제 갈길로 간다. 그에게는 그 연극이 하나의 허구이며 상상에서 나온 작품에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이중성만으로도 우리는 쉽사리 형편없는 이웃이며 친구가 될 수 있다.

 나는 보다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는 일이 유익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도 함께 있으면 이내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감정도 식게 마련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방에 박혀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섞일 때 훨씬 외로움을 느낀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늘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하 생략)

인타라 - 우뢰나 비를 주관하는 베다교의 주신으로, 불교에서는 제석천에 해당됨.​

(163~164쪽. 고독에서 부분 발췌.)​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출판
소담출판사
발매
200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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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색을 함으로써 우리는 건전한 의미의 열광 속에 빠질 수 있다. 마음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행위들과 그 결과들로부터 초연하게 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만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격류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치게 된다.

​ 우리는 자연 속에 전적으로 몰입되어 있지 않다. 나는 시냇물에 흘러가는 나무토막일 수도 있고, 또는 하늘에서 그 나무토막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드라 신°일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연극 공연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지만, 반면에 나와 훨씬 더 이해 관계가 있을지 모르는 실제 사건에 그다지 감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인간적 실재로서만, 다시 말하면 여러 가지 사고와 감정의 장소로서만 알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는 물론 나 자신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어떤 이중성을 느끼고 있다.

 나의 경험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나는 나의 일부분이면서 나의 일부분이 아닌 것처럼 나의 경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단지 방관자로서 메모를 하고 있는 어떤 부분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부분은 '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제삼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인생의 연극(그것은 비극일 수도 있겠는데)이 끝나면 그 관객은 제 갈길을 가 버린다. 그 관객에 관한 한 그 인생극은 일종의 허구이며 상상의 작품일 따름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종종 우리를 변변찮은 이웃이나 친구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이 심신에 좋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들이라도 같이 있으면 곧 싫증이 나고 주의가 산만해진다.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홀로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고독하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지 항상 혼자이다. 고독은 한 사람과 그의 동료들 사이에 놓인 거리로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하 생략)

인드라 신_힌두교 신 중 하나로 공기,눈, 비, 바람과 천둥을 다스린다.

(193~194쪽. 고독에서 부분 발췌.)​

월든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출판
이레
발매
20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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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한자씩 키보드로 두드리다 보니 느낌이 다르다. 이것은 마치 필사를 하며 발견하는 놀라움과 비슷하다. 빠른 타수를 자랑하는 손놀림이 저절로 느려진다. 천천히 한자 한자 꾹꾹 눌러야 한다는 걸 알았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내가 할 일은 많기에 옮겨 적는 시간이나마 줄이려고 자판 위로 손가락이 날아다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인정한다.

 그리고 역시 두 출판사 비교는 아니지만 번역자에 따라 달라짐을 확연하게 느낀다. 간결하게 작가의 글을 번역해서 옮기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가. 번역자들에게 박수를. 아울러 솔직히 말하자면 두 책도 이번 부분이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읽기에 말이다. 원서를 보지 않았기에 또 원서를 사더라도 이들보다 더 잘 할 자신도 없다.

 우리가 읽는 모든 번역문학 아니 모든 모국어가 아닌 글은 이럴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취할 수 있는 게 있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번역자들에게 빚지고 있으니 감사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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