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까다롭게 고른 고전이라 할지라도 책에만 갇혀 특정 언어로 된 글(한 계층이나 지역에만 통용되는 글)만 읽으면 자칫 모든 사물과 사건이 비유 없이 말을 하며, 그것만으로도 풍부하고 표준어인 언어를 잊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 언어는 널리 쓰이지만 인쇄되는 일은 거의 없다. 덧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살도 덧문을 아예 제거해 버리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편법이나 전술로도 우리가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을 대체할 수 없다. 역사나 철학이나 시 강좌를 아무리 잘 고르고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고 남보다 뛰어난 생활을 영위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훈련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의 운명을 읽고 눈앞에 있는 것을 보라. 그런 다음 미래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으라.
첫해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는데, 그것은 콩밭을 매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훨씬 낫게 보내기도 했다. 머리를 쓰든 손을 쓰든 그런 일 때문에 어느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희생시킬 수 없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뜰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웇나무에 둘러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 없이 집 안을 날아다녔다. 그러다 서쪽 창으로 햇빛이 들거나 큰길을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소리에 문득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이런 계절이면 나는 하룻밤 사이에 크는 옥수수만큼이나 쑥쑥 자랐으며, 손으로 어떤 노동을 했을 때보다도 훨씬 훌륭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여느 때의 할당량을 훨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이하생략)
(134~135쪽 부분 인용. 「월든」에서 '삶의 소리')
월든
- 작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출판
- 소담출판사
- 발매
- 200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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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무리 잘 고른 책이고 고전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책에만 몰두하여, 그 자체가 방언이며 지방어에 지나지 않는 어느 특정의 언어들만 읽는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언어를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이 언어야말로 모든 사물과 사건이 비유를 쓰지 않고 말하는 언어이며, 풍부하기 짝이 없는 어휘와 표준성을 지닌 언어인 것이다. 발표되는 것은 많지만 인쇄되는 것은 적다. 덧문 사이로 스며든 햇빛은 그 덧문을 완전히 걷어 버리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어떠한 관찰방법과 훈련도 항상 주의 깊게 살피는 자세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볼 가치가 있는 것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보는 훈련에 비하면 아무리 잘 선택된 역사나 철학이나 시의 공부도, 훌륭한 교제도, 가장 모범적인 생활습관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 앞에 놓여진 것들을 보고 당신의 운명을 읽으라. 그리고 미래를 향하여 발을 내디뎌라.
첫번째 여름에는 책을 읽지 못했다. 콩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시간을 보냈다. 꽃처럼 활짝 핀 어느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체적 일이든 정신적 일이든 일을 하느라 희생할 수는 없는 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어느 여름날 아침, 이제는 습관이 된 멱을 감은 다음,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한없이 공상에 잠기곤 했다. 그런 나의 주위에는 소나무, 호두나무와 옻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고독과 정적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오직 새들만이 곁에서 노래하거나 소리 없이 집 안을 넘나들었다. 그러다가 해가 서쪽 창문을 비추거나 또는 멀리 한길을 달리는 어느 여행자의 마차 소리를 듣고서야 문득 시간이 흘러간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
이런 날에 나는 밤새 훌쩍 크는 옥수수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정말이지 이런 시간들은 손으로 하는 그 어떤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그런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깎여 나가는 시간들이 아니고 오히려 나에게 할당된 생명의 시간을 초과해서 주어진 특별수당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동양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명상에 잠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하생략)
(160~161쪽 부분 인용, 「월든」에서 '숲의 소리들')
월든
- 작가
-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출판
- 이레
- 발매
- 20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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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을 펼치면 자꾸만 책장을 넘기고 싶어진다. 아무 곳이나 펴들고 읽어도 생각을 부르는 책.
같은 부분을 소담출판사는 '삶의 소리'로 이레출판사는 '숲의 소리들'로 번역했다.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
영문판 월든을 살까 하다가 더클래식 출판사에서 나온 「월든」을 사야겠다고 결정했다.
더클래식에서 다양한 책이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나왔다. 그중 나도 몇 권을 사고는 읽지는 못 했다.
톨스토이의「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으려고 책장에 올려두었는데 한번 읽어보고 괜찮으면 살까 싶기도 하다.
그래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도 아닌 영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