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 공부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 가령 한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나는 그 아이를 어떤 교수가 있는 곳으로 보내는 식의 흔해 빠진 방법은 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강의되고 실습되지만 삶의 예술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빵은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 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 방울의 식초 안에 사는 괴균들을 연구하면서 자기의 주위에서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75쪽, 「월든」이레출판사, '숲 생활의 경제학' 일부 발췌) ​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식이야말로 수학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갈고 닦아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어느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경우, 나는 흔한 방식으로 그 아이를 교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교수하고 실습할지 몰라도 인생이라는 기술을 배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법은 배울지 몰라도 그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화학에 대해서는 배우겠지만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를 것이고,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기계를 만드는 방법은 모를 것이며,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기 눈의 티끌은 보지 못하거나, 그 자신이 어떤 부랑자의 위성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또는 식초 한 방울에 든 세균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자기 주위에서 우글대는 괴물에 먹혀버릴 수도 있다.

(60~61쪽, 「월든」소담출판사, '삶의 경제학' 일부 발췌) ​ ​

 

 

 

 

「월든」의 첫 번째 이야기는 '숲 생활의 경제학', '삶의 경제학'이다. 두 책의 내용은 같으나 번역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좋아하는 책이라 자주 펼쳐보고자 기록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적으면 좋겠지만 그저 이렇게라도 같은 내용을 두 번 키보드로 두드리며 읽는 시간이 좋다.

 사실 이 첫 부분은 좋은 내용이 많다. 건축과 집에 대한 소로우의 생각도 그렇고 옮기고 싶은 부분이 많다. 조금씩 천천히. 평생을 이 두 책이 너덜거리게 될 때까지 읽을 것이다. 더는 「월든」을 사지 말자고 하면서도 자꾸 다른 출판사의 책과 원본을 기웃거린다. 읽을수록 새로운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튀어나오는 소로우의 생각과 만나는 즐거움이 좋다. 정민의 「죽비소리」또한 자주 들춰 봐야 하는데. 이 책 또한 나중에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야겠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만 더 남겨야겠다.

 

 

사람들은 많이 안다고 말하지만

보라! 그것들은 날개가 돋쳐 날아가 버렸다.

모든 예술과 과학이.

그리고 무수한 발명품들이.

바람이 부는구나.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그것뿐.

(62쪽, 「월든, 이레」'숲 생활의 경제학' 일부 발췌) ​

사람들은 많은 걸 안다고 말하네.

하지만 보라! 거기엔 날개가 달렸나니

예술이며 과학,

수많은 지식도,

불어오는 바람

그것이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것이라네.

(50~51쪽, 「월든, 소담」'삶의 경제학'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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