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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ㅣ 창해ABC북 1
마리 엘렌 당페라 외 지음, 이재형 옮김 / 창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손때묻은 책만큼 정겨운 것이 또 있을까. 이 책은 자주 들춰보고 들고 다니기도 편리하다. (문고본)
샤갈 작품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뭐니뭐니해도 그의 색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강렬하면서도 단
순하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기도 하다고 느껴지지만 그는 색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색깔이 혼자 놀
고 말하기를 원한다.' (27쪽) 이를테면 색채해방. 셰익스피어가 언어유희를 즐기듯 샤갈은 색채의 유
희를 즐겼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프랑스로 국적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그는 고향을 그리워했다. 만약 그곳
에 그대로 있었다면 그의 작품활동은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다. 동유럽에서 확산된 반유대주의로 나치
치하에서는 그의 그림이 철거되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대교를 접하고 자라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은 깊은 충격을 주는 동시에 그의 유대성향을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유대인
의 고통이 녹아있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빨간 유대인>의 경우 강렬한 빨간색과 초록색이 인상적이
다. 또한, 그가 그린 어릿광대의 서커스 장면도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이해된다. 이들은 모두 슬픔을 안
고 사는 이들이며 그들 속에는 샤갈의 고뇌도 들어 있다고 느껴졌다. 성서를 표현한 작품도 독특했다.
샤갈의 작품에서 그의 아내였던 벨라와의 달콤한 그림은 마치 헤몽 페네의 작품에 나오는 예쁜 연인들
의 모습처럼 낭만적이다. <포도주 잔을 든 두 사람의 초상>, <도시 위에서> 등을 보면 밝고 행복한 모
습에 기분이 좋아진다. 꿈꾸는 듯한 이들의 자유로움은 벨라의 죽음으로 10개월간 그림을 그리지 않을
만큼 샤갈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이후 샤갈은 바바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이
후에도 벨라를 추억하며 작품을 그렸다.
샤갈에게 그림은 내면의 발산이자 형이상학적인 그 무엇의 표현이었다. 그의 자화상이나 <환영> 등을
보면 묘한 느낌을 받는다. 조각상 같은 입체감과 의미, 색이 특징인데 사실 그는 어떠어떠한 ~주의로
정의되는 것을 싫어했다. 입체파, 인상파, 자연주의 등에서부터 자유롭게 창작을 했던 어찌 보면 아웃
사이더였다. 그렇다고 그가 당시의 화풍이나 화가를 비웃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서 영향도
받았으나 자신만의 특징을 잊지 않았다. 그의 강렬함은 고흐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샤갈은 화가보
다는 오히려 시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아폴리네르의 경우는 <아폴리네르에게 바침>이라는 유화도 그
렸으며 루이 아라공의 시집에는 동판화로 작품을 넣기도 했다.
샤갈의 색에 취하면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문고판인데도 여러 내용이 담겨있는 이 책은 작아도 그림을 감상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물론 더 많은
작품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봐야겠지만 전체적으로 샤갈 입문서로 괜찮다. 단점이라면 세 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내 책은 귀퉁이 부분에 얼룩이 져서 깨
끗하진 않지만 나들이 갈 때 가방에 넣고 가는 즐거움은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