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 그 누가 가도 좋을 감동의 사찰 27곳 순례기
이호일 글.사진 / 가람기획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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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아보자. 도대체 팔작지붕이 무엇이고 맞배지붕이 무엇이며 다포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통은 잘 들어볼 수 없는 말들이 우리문화의 유적지를 돌게 되면 끝도없이 나오는 말들이다. 지붕구조의 하나로 지붕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고 나오는 팔작지붕.. 여기서도 우진각지붕이라는 말이 또 나온다.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을 우진각집이라고 한단다. 그럼 또 추녀마루는 무얼까?  당마루에 이어 추녀를 기와로 덮은 부분이라고 나온다. 그럼 또 당마루는 무얼까? 당마루를 찾아보면 너새라는 말이 나온다. 너새가 또 궁금하다. 너새는 지붕머리 양쪽으로 마루가 되도록 기와를 덮은 부분을 말한다.  맞배지붕이라는 것은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으로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자형으로 되어있다. 처마의 양끝이 조금씩 치켜올라가고 용마루 중앙부를 처지게 해서 서로 어울리게 해 놓은 지붕을 말한다. 또한 다포식이란 말도 자주 듣게 되는데 공포가 많다는 뜻이다. 공포는 지붕과 지붕사이의 구조물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다. 기둥의 바로 위에에 올리는 것이 기본인지라 복잡한 모양으로 장식효과가 뛰어나기도 하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것을 '주심포식'이라고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것을 '다포식'이라고 한다. 이때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려진 공포는 지붕을 받치는 효과는 없고 단지 장식의 역할만 한다)  이렇게보면 정말 끝도없다. 우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렇게 낯선 언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쉽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좀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보게 되었다.

절집이라는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람소리나 풍경소리를 떠올리게 되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우선적으로 자연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진다는 그자체부터가 황홀하다. 산행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절집들을 그냥 지나쳐가지 않고 꼭 한번은 들러보곤 했었다. 참 많다. 종파가 많으니 그 종파에 따른 절집도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일반적인 절집보다 천년고찰이라 할 수 있는 절집들을 찾아갈 수 있다. 천년고찰이라는 말자체가 안고 있을 역사적 의미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단지 우리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얼만큼이나 해석할 수 있으며 얼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 책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전통사찰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있다. 답사형식으로 찾아가는 사찰들의 모습을 직접 찍고 각 사찰에 대한 유래에서부터 역사적인 배경이나 건물들의 구조와 배치를 설명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의미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또한 각 사찰마다 보유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들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佛寶사찰 통도사, 法寶사찰 해인사, 僧寶사찰 송광사를 일러 한국의 삼보사찰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의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한국의 5대적멸보궁이라고 한다. 또한 관음보살을 모셨다는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 낙가산의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을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세곳의 관음성지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사자산 법흥사를 찾았을 때 법당에서 뵈지않는 부처의 모습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각 사찰마다의 창건설화가 참 재미있다.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어진 것도 있지만 하나의 떠도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삼보사찰이라는 말을 굳이 한자로 쓴 이유는 그 절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기 위해서였다. 일명 '스님 사관학교'라고 불리운다는 송광사를 僧寶사찰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며칠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도 송광사 출신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우리 절을 돌아보기 전에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각 보살들이 뜻하는 바를 알고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세상을 소리를 들어 중생의 고통을 돌보아주신다는 관음보살이나(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들어주신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지혜를 상징한다는 문수보살, 이 理· 定 · 行 · 의 덕 을 맡아본다는 보현보살과 같이 좌우로 부처를 모시는 보살님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나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테니 하는 말이다. 석가모니불에 이어 미래에 나타나 중생을 구원해주신다는 미륵불에 대한 예는 동학의 접주 손화중을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음이다. 문득 내 것이 아니라하여 무조건 견제하고보는 것은 빨리 버려야 할 습성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국의 많은 절집들을 돌아보게 되면 정말로 놓치고 싶지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지는 모습이다. 그곳에 가면 그토록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있었다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모습말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월정사 전나무길과 내소사의 전나무길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다시가고픈 길 중의 하나였다. 오래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가면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맑은 숲의 냄새가 아직도 그리운 것을 보면 자연은 우리와 멀어져서는 안될 존재임이 분명하다. 오래전 내소사를 찾았을 때 그 맑은 숲을 지나 연꽃문양의 창살과 마주섰을 때 얼마나 감정이 북받치던지... 책에서 소개해 주었던 절집들중에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다. 언젠가 한번쯤은 들러보리라 다짐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보았던 곳중에서 한번 더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서산의 개심사가 있다. 우연히 찾게 되었던 절집이었는데 그 소박함과 정갈함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모른다. 절집까지 오르는 길에 으름을 내밀며 이것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던 허름한 아저씨의 웃음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한켠이 따스해져온다. 작년 여름 남편과 찾았던 부안의 개암사도 잊을 수가 없다. 백제의 마지막 유민들이 항거를 했다던 울금바위가 개암사 뒤에서 멋지게 버텨주고 있는 곳.. 그곳 대웅전의 닫집이 얼마나 신비로웠었는지.. 닫집이 있는 법당이 그리 많지 않다던 보살님의 설명이 얼마나 귀하게 다가오던지...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절집도 좋지만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절집도 많다.  산행을 핑게삼아 이곳저곳 가보긴 했지만 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예전보다는 속세와 더 가까워졌구나 하는 거였다. 지금은 절집마다 템플스테이라는 것을 한다. 절집이 속세로 내려오는 것인지 속세를 떠난 우리가 절집을 찾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변질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크기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저마다의 진실된 마음 혹은 저마다 무겁게 안고 살아가는 것을 하나쯤 내려놓고 싶어 찾아가는 절집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책을 덮으면서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중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지금은 이런 서적들도 많이 보인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동화되어지지 않는 종교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상芽相.. 자기의 학문이나 지위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태백산에 들어갔으나 문수보살의 현신을 알아보지 못해 몸을 던져 죽었다던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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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도감 - 꽃과 채소로 가득 찬 뜰 만들기
사토우치 아이 지음, 김창원 옮김, 사노 히로히코 외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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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시 도시로 오셨지만 강원도로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갈 때마다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해주던 그 많은 꽃들이 생각난다. 언젠가 한번 찾아뵈었을 때 마당 한 구석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작은 동산을 보고 저게 뭐냐고 여쭈었더니 봄에 와 보면 알거라고만 하셨었는데 그 다음해 봄 나는 탄성을 질렀다. 그 작은 동산을 수놓았던 할미꽃의 미소라니! 워낙 화초를 좋아하시기도 했지만 찾아갔던 자식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하나씩 옮겨심은 야생화들이 작은 동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야생화들을 볼 때마다 우리 모두는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저마다의 꿈을 물어본다면 정원이 예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그만큼 꽃과 나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싶다.

화초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자신이 없어 나는 화초와 좀 늦게 가까워졌다. 처음엔 신발장위에 화분 하나 덜렁 올려놓고 오며가며 바라보기만 했었는데 두번째로 들여 놓았던 스파티필름이 어느순간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방망이 모양의 꽃술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그 후 어느날부터인가 거실 한쪽을 화분이 모두 차지해버리고 말았었다. 그런데 한순간의 실수로 그 많은 화분을 모두 잃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장 흔한 산세베리아나 행운목은 한번도 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 기초지식도 없이 그저 보는 것이 좋아 시작된 화초가꾸기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후로 나는 한동안 화분을 들이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배워 화초를 보리라 기약할 뿐.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눈에 띈 이 책은 이제는 뭔가 새로이 시작해봐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처럼 내게 다가왔다.

책장을 펼치면 미니꽃밭에서부터 창가에 만드는 꽃밭이나 연못만들기까지 그야말로 나만의 정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하지만 내게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았다. 하여 나는 원예도구라거나 물주는 요령, 집 비울 때 물 주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화분용 흙만들기, 화분갈이나 가지치기등 내게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해 보기로 했다. 또한 집에서 간단하게 기를 수 있는 채소가꾸는 재미에 대한 부분도 관심있게 보았다. 중요한 것은 흙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정말이지 크게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다. 채소를 기르는 요령이라거나 그 채소를 이용하여 샐러드나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가끔씩 찾아가던 친구집에서 방울토마토나 청경채를 볼 때마다 부러웠던 까닭이기도 하려니와 내가 키운 채소를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것부터가 참 멋진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정원을 가꾸게 되리라. 그러면 알아두어야 할 것들이 많을테고... 가을에 끈끈이대나물과 샤스타데이지의 씨를 뿌리고 이듬해 봄에 백일홍의 씨를 뿌린다면 봄부터 여름에 걸쳐 온갖 나비가 찾아들거라고 한다. 나비를 부르는 꽃 베스트 3종이다. 향기있는 뜰을 원한다면 서향이나 수수꽃다리, 인동덩굴이나 치자나무와 같은 것들을 심어야 한다. 만약 뜰이 없다면 프리지어나 나리종류, 장미나 은방울꽃을 화분에 심으면 될 것이다. (프리지아의 향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향기가 너무 좋아서 사왔던 꽃이 밤새 거실 한가득 향기를 채워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나를 너무나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치자꽃...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치자꽃을 진딧물에게 빼앗겨버리고 두번 다시는 가까이 하지 않았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들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결국 그 치자꽃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치자꽃의 향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화초를 키우고 싶다면 물주는 요령도 중요하다. 흙의 상태를 봐서 물을 주라고는 하지만 사실 초보자에게는 그것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서 주의깊게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다. 몇번의 실패를 각오해야만 온전히 나의 꽃이 될 수 있기에 어떤 식물인지, 식물의 상태가 어떤지를 꼼꼼하게 챙겨줘야 한다. 그리고 정원에 물을 주는 것인지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인지에 따라서도 물주기는 달라야 한다. 계절에 따라서 그 방법이 달라야 하며 얼만큼의 물을 어느때 주어야 하는지도 잘 알아야 하니 화초키우기를 쉽게 생각하고 덤벼들었다가는 마음 아픈일을 몇번은 겪어야 할 게다. 작은 화분 하나를 온전히 내 것으로 잘 키워낸다는 것에는 정성그러운 마음이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해도 부족해도 안되는 것이 식물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식물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겠지만 적당하다는 말의 의미는 정말이지 어렵다.

흙도 좋아야 한다. 특히 화분에서 키울 때는 더욱 더 그렇다. 화분에 담을 흙이 공기가 잘 통하는지, 수분을 잘 보존하는 능력이 있는지... 책을 보면 좋은 흙 또는 흙의 종류에 대한 설명을 아주 세세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직접 화분용 흙을 만드는 방법도 나와 있긴 하지만 쉽지 않을 듯 하다. 닭똥이나 깻묵, 뼛가루, 석회등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원에 가면 미리 만들어놓은 배양토를 살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했었다. 모르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진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나같은 초보자에게는 그 쪽이 훨씬 나을 듯 싶다. 그러면서 화원주인에게 어느정도의 정보를 함께 얻어오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토끼풀이나 보리, 자운영을 심어 풋거름으로 쓸 수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물론 식물의 성장을 도와준다는 비료의 종류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잘 나와있다.

한해살이 식물과 여러해살이 식물에 대해 알고 있는가? 한해살이 식물에도 봄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가을에 씨를 뿌리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팔꽃이나 해바라기, 백일홍, 맨드라미, 코스모스같은 것들은 봄에 씨를 뿌린다. 스위트피, 수레국화, 금잔화, 개양귀비와 같은 것들은 가을에 씨를 뿌려야 한다. 그래야 다음해 봄에 꽃을 볼 수 있게 된다. 장점이라면 두가지 모두가 씨를 뿌리고 자라기까지의 기간이 짧고 한번 뿌리면 해마다 부쩍부쩍 식구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내 정원을 갖고 있다면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일년내내 꽃을 볼 수 있다는 데 왜 안할까? 그런가하면 두해살이 식물도 있다. 씨를 뿌리고 다음해에 꽃을 볼 수 있는 것들인데 루나리아나 종꽃, 접시꽃등이 여기에 속한다. 컵과 같은 용기를 이용해 물로만 꽃을 피우는 수경재배 방법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히아신스,크로커스,수선화같은 이름만 들어도 웃음짓게 만드는 예쁜 꽃들을 수경재배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심기만 하면 해마다 수확할 수 있다는 파, 부추,생강,파슬리,아스파라거스같은 채소를 겨울에도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은 한번쯤 알아볼 만 하다. 상추나 시금치를 창가 화분에서 키워내 먹을 수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나는 사실 실내에서 키울 수 있는 식물에 관심이 많다. 꽃을 피우는 식물보다는 늘 푸른 색으로 곁에 있어주는 관엽식물을 더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아이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이다. 하트모양을 한 잎새와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풍성하게 잎을 틔우며 곡선으로 내려긋는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생명력 또한 강하다. 두번째로는 나무이면서도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는 목련을 좋아한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육식물 키우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통통하고 다부진, 그야말로 앙증맞은 모습에 유혹당한 탓이다. 아직 나만의 정원은 없지만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개나리로 담장을 치고 목련 두그루 심어 대문을 만들고 싶다던 어린 날의 꿈이 있었다. 현관 앞에는 능소화를 심어 흐드러지는 능소화를 위해 아치형 다리를 놓아주리라던 그 꿈은 아직 유효하다. 그 꿈의 실현이 멀지 않았으면 참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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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하는 힘 - 우유부단한 당신을 위한 결정력 높이기 프로젝트
미타니 코지 지음, 고정아 옮김 / 영진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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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선택과 결정이 존재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일들이 선택을 요구할 것이며 또 그에 따르는 결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 많은 선택과 결정이 온전히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왠지 섬뜩해지지는 기분이 앞서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선택과 결정중에서 잘했다고 생각되어졌던 경우는 과연 몇번이나 될까?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고 후회하지 않았을 선택과 결정이었다면 매번 그것을 돌이켜볼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소를 짓기보다 후회를 더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도 그렇다.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면 늘 후회가 따라왔다. 그래서일까?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문제, 결정하는 힘에 대하여 한번쯤은 어드바이스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책을 선택하고 읽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던 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름대로는 다부진 성격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비켜 뒤돌아보니 우유부단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봐 다부진 사람처럼 의식적으로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떻게 결정을 하면 뒤돌아보아 후회하지 않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결정하는 힘이 무엇이길래... 그렇다면 여기서 결정하는 힘에 대하여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결정하는 것에는 스스로 하는 것과 타인과 논의해서 결정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뭐 사실이 그렇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것과 논의해서 결정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중요한가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부터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험에 비추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한다고 한다. 아무리 강하게 필요성을 어필한다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거나 믿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정상화 편견'이라는 함정이란다. 경험이나 감으로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추측에 기대는 심리를 말하는 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말을 왜 함정이라고까지 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두번째로 타인과 논의를 해서 결정할 사항이라면 경청과 질의와 응답, 즉 회피하지 않고 듣고, 묻고, 대답하는 Q&A력을 필요로 한다.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중요한 것부터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질문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똑바로 대답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자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제대로 듣고 제대로 물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도 되겠다. 항상 '그것은 중요한 것인가!'하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말이다. 질문자와 대답하는 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 '그것은 중요한 것인가!'이다. 말하는 자와 듣든자 모두 서로에게 경청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엇나간 주제로 맞서는 일은 생겨나지 않을테니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은 '습관'이라고. 익숙하지 않기 대문에 멋대로 말하고 멋대로 주제를 바꿔버린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문득문득 떠오른 생각을 가차없이 내뱉고 아무말이나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그냥 입다물고 있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들이 상대방에게 방해가 된다는 것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고.. 정말이지 무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번쯤은 되새겨 볼 말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말이 하나 있다. '3분 철학'.. 말하기 전에 혹은 행동하기 전에 3분씩만 먼저 생각하라던  말이 회자되어지던 때가 있었다. 3분동안 먼저 생각한다면 화를 낼 일이 있더라도 그 강도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 3분이라는 시간속에는 '易地思之'의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결국은 상대방을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분.. 3분의 힘 앞에 잠시 멈추어 나를 반추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책의 내용중에서 가장 먼저 배우고 싶었던 것은 '희사법喜捨法' 이었다. 결정한 일을 실행하는 단계에서 거쳐가야 할 부분이지만 제대로 버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간단하게 보이질 않았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무엇이 더 중요한가!'이다. 희사喜捨 라는 말은 원래 종교단어로 기부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강제성과 자발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탓에 그런 표현을 썼다고 하지만 실천하기 쉬운 것, 자기 자신에게 잘 맞는 것부터 시도해보자는 말에는 백프로 공감한다.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깊은 뜻을 지닌 듯 하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다른 무언가를 버려야만 한다고 한다. 버리는 것에도 우선 순위를 정해서 실행한다면 필요없는 상실감 따위에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와같이 이 책속에는 결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3단계로 구분지어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일본인이다보니 예로 들어주었던 것들에 대한 무지함이 있었다. 스스로 결정하기, 타인과 논의해서 결정하기, 결정했으면 실행하기,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결정하는 힘을 넓히고 키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 직장이나 학교 또는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한번쯤은 체크해 보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딸아이에게 결정하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을 제안했다던 부분은 나의 입장에서 볼 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다스리라던 옛말도 있지만 아까운 자식일수록 여행을 보내라던 저자의 말이 나에게는 의미있게 다가왔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가족 모두에게 즐거움을 만들어주기 위해 고민하고 선택하고 결정했을 아이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내 아이에게도 한번쯤은 적용시켜 볼 만한 제안이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에 심부름이나 집안일 돕기를 잘했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의견에 나도 찬성한다. 공부지상주의가 되기 보다는 집안일돕기 지상주의가 되었을 때 '올바르게 결정하는 힘'을 기른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따를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선은 집안일부터 돕자'와 '공부해라! 끝나면 잠시 게임해도 괜찮다' 중에서 나는 어떤 주의일까? 왠지 껄끄러운 느낌을 주며 다가왔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던 책이었다. 과연 나는 어떤 주의일까?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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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에이브러햄 J. 트워스키 지음, 최한림 옮김, 찰스 M.슐츠 그림 / 미래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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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면 아기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면서 숨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우스운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 한 줄의 말이 유난스러울 정도로 크게 다가왔다. 문득 어린 시절 즐겨하던 놀이가 생각났다. 술래가 멀리 떨어진 채 뒤돌아서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면 술래가 돌아보기 전에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 그런 놀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을 술래에게 들키게 되면 그때부터는 들킨 아이가 술래가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생활이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하여 내 자신을 숨기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 사람들은 도덕적인 잣대에 너무 민감하다고 한다. 그만큼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산다는 말일게다. 왜 그럴까? 우리는 왜 그토록이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삶의 법칙인양 인식되어져버린 많은 관념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세상이 살기좋은 곳으로 개선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은 물욕을 추구하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것을 주문하기 때문"(-19쪽) 이라고 이 책은 아주 명쾌한 답을 내려주고 있다. 먼저 나 자신의 결점부터 고쳐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 먼저 고치려고 노력하다보면 남의 결점은 눈에 들어올 시간도 없을것이라고.. 내 결점을 고치는 것조차도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그것은 이미 나의 삶이 아닐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돌아보는 술래에게 가끔씩은 들켜보는 것도 괜찮은 일인듯 싶다.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도대체 좋은 일이 생기기는 하는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적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좋은 일'이란 것의 의미가 너무 광범위하다. 도대체가 '좋은 일'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거지? 사실 따지고보면 우리에게 좋은 일은 참 많았다. 우리를 스쳐갔던 모든 일들이 다 나쁘지만은 않았을테니 하는 말이다. 스쳐가는 모든 일들이 다 나쁘기만 하다면 정말이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왜 내게는 좋은 일이 안생기는 거지? 생각하곤 한다. 흔히 하는 말중에서 행복은 아주 작은 것들속에 머물며 우리가 찾으려고만 하면 가까운 곳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 행복 또한 좋은 일처럼 쉽게 느껴지지 않으니 그것이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살짝 미소를 짓게 한다.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되느냐고 묻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내심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내 속에 들어있던 말을 대신 밖으로 끌어내 준 까닭이 아닐까 한다. 뭐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이런 문제앞에서는 이렇게 행동하시오! 라는 행동지침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행동지침이라는 것들을 만화를 앞세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약간은 색다른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부담없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만화의 장점을 살려서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싶었던 모양이다. 우드스톡, 스누피, 찰리 브라운... 많이 들어본 이름들이다. 스누피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저자 에이브러햄 J. 트위스키는 정신과의사인데 찰리 브라운이라는 인기 만화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오해와 착각에 대하여 정신과적인 차원으로 풀이를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치도 만화해설가처럼. 그렇지 않다면 저자의 글에 맞추어 그 유명한 스느피를 그렸던 만화가 찰스 M. 슐츠가 그림을 그려준 것이리라 짐작할 뿐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자가 쓴글에 맞추어 만화가의 카툰을 실었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만화와 글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좋은 일은 언제 시작될까? 하고 묻는다면 답은 이것이다. 좋은 일은 지금 바로 시작될 수 있다. 다만 그 전에 가장 먼저 나 자신에 대한 비뚤어진 이미지나 결점부터 고쳐야 한다. 좋은 일의 시작 역시 바로 나의 손에 달려 있으니.. 자신을 평가하고 현실을 바로 볼 줄 알며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해야 하는지, 걱정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에 관한 것등등... 자신을 고쳐나가기 위한 해결책을 찰리 브라운이라는 만화속 주인공과 함께 잘 보여주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가장 으뜸인 듯 하다. 우산장수 아들과 소금장수 아들을 두었던 한 어머니의 걱정과 염려가 어느 순간부터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는 상황처럼 우리도 그렇게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문구가 있었다면 진짜 친구의 솔직한 평가와 그냥 아는 사람이 무심코 던지는 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였다. 사실이건 아니건, 좋건 싫건, 듣기좋은 말을 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양쪽 모두 흔히 말하는 '인사성 멘트' 에 익숙해져 있는 듯 하다. 진심어린 충고를 가려낼 줄 아는 그런 지혜가 필요한 듯 하다.

책을 통해 나에게 다가왔던 말을 내세워 혼자만의 결론을 유추해본다면 이렇다. 첫째로는 요컨대 무리없이 씹어 삼킬 수 있을 만큼만 물어뜯자는 이야기.(-148쪽) 욕심이다. 제 먹을양만큼만 먹으면 될 것을 욕심을 부리니 모든 것이 비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로는 듣는 것은 은행에 예금하듯 지식을 흡수하는 것이고, 말하는 것은 돈을 인출하듯 지식을 나눠주는 것이다. 인출액이 예금액을 초과하면 부도가 날 것은 당연지사다.(-176쪽) 세상에서 어려운 일중에 하나가 잘 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나를 먼저 앞세우기 보다는 남을 먼저 존중해주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세째로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입보다 강하지는 않다 (찰리 브라운-172쪽) 입속의 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두번째 결론과 일맥상통하는 말이지 싶다. 말과 얼킨 우리의 속담이 많은 것만 보아도 말한마디의 위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잘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는 황금률을 지키자 (-181쪽)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받는 것은 기분좋은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그렇듯이 남들도 그러할 것이니 나를 대하듯 남을 대하면 될 일이다. 담아두고 되새김질하며 살아갈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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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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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일까? 진정 신화일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이순신의 이야기. 들어도 들어도 가슴을 먹먹하게 할 우리의 영웅이야기.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얼만큼이나 알고 있는것일까? 그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제외하고서... 글자가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되고 그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전이되어져오는 어떤 느낌에 전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일까? 글로써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가에게 요즘 흠뻑 빠져들고 있던 탓에  김 훈이라는 이름이 주는 유혹에 강한 끌림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그의 문자들이 전해주는 여운이 너무 길었던 까닭이다. 역시 그랬다. 책장을 넘기고 한 자 한 자 나의 눈속에 담아갈 때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을것만 같았다. 때로는 긴장감으로,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때로는 분노로, 그리고 때로는 눈물로 그의 문장들이 살아 꿈틀거렸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꽉 쥐고 있던 조그만 주먹을 펼 때에야 내가 책을 읽고 있었다는 걸 인식할 뿐이었다. 그만큼 흡인력이 느껴졌다는 말일게다.

난중일기를 한번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주변사람들을 실명으로 적었다던 그 난중일기속의 인물들. 그들이 있어 이순신이 있었을 것이기에 그 이름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김 훈의 글은 <남한산성>에서도 그랬듯이 내가 책속 세상으로 발을 내디딘 그 순간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 책속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일게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일게다. 그래서 더 많은 분노를 느끼게 되었을게다. 이 책 <칼의 노래>를 읽다보면 어느새 나는 이순신이 되어 있다. 임금의 교서를 받고, 그래도 임금이라고 머리 조아리며 (마음과는 다른) 장계를 올리고, 당쟁의 틈바구니에서 주리가 틀리는 모진 형벌을 받고.... 어여삐 보이는 백성들을 내치지 못하고 그들을 군선위로 끌어 올리는 아비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두려움에 떠는 부하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강단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호통칠 수 있었던 장군의 마음을 버리지 않았기에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백성에게, 그리고 부하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 게다. 그리하여 그가 의정부의 형틀앞으로 끌려갔을 때 아무런 힘없는 백성들이, 부하들이 임금의 문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그를 살려 사직을 보존하소서...

임금의 몸과 적의 몸이 포개진 내 몸은 무거웠다. (-196쪽)  적이 있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적이 있었기에 그의 몸이 고문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임금은 나를 살릴수도, 죽일수도 없었던 것이라고 그가 생각했을 때 그는 알았다. 내 몸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임금은 그의 이름 석자를 앞세워 그의 뒤에 숨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는 그 이름을 두려워했다. 형식적인 명을 따르지 않았다고 그를 의정부의 형틀에 묶이게 했던 권율마저도 끝내 그에게 찾아와 이렇게 물었었다. 무슨 방책이 없겠느냐고...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 없었다던 이순신의 마음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말쟁이들의 싸움속에서 인정받을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모진 고문에서 벗어난 그에게 다가오는 운명은 어쩔 수 없이 거칠었다. 그가 머물며 상대해야 할 바다와도 같았을 것이다. 임금의 칼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한가닥 소망이 내게는 붉은 노을처럼 보였다. 붉게 타오르다 사그러드는 ...

..... 신의 몸이 아직 살아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 이() 올림 (-66쪽)

조선 역사를 많이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아는 것들속에서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고, 또한 이해하기 힘겨운 존재들 중 으뜸가는 이가 있다면 선조와 인조다. 가장 치욕드러운 과정을 겪어냈으면서도 가장 치욕스럽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던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들이 원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안다. 내가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말이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고 했던가? 그랬기에, 어쩌면 정말 그랬기에 이 순신이라는 이름이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소설로서만 읽혀지기를 바랄 뿐이라던 글쓴이의 바램과는 달리 내게는 이 소설이 단지 소설로서만 읽혀지지가 않았음이다. 장군이 아닌 한 사람으로써, 한 남자로써 겪어야 했을 수많은 감정의 기류들이 너무도 아픈 까닭이다.

그때 나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또 무서웠다.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212쪽)  어디 그 때 한번 뿐이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무서운 것들이 어디 그것뿐이랴.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판치던 그시절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몇이나 되었던가. 말()이 살아 말()처럼 뛰어다니던 시절. 그 시절을 가엾어했고 또 무서워했던 이가 어디 이순신뿐이랴.  직접 눈으로 보려하지 않았고 제 발로 찾아나서 진위를 가려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말()의 유희들. 누구의 말이 더 찬란하게 빛났는가에 따라 순간적으로 서열이 뒤바뀌던 그 시절. 간혹 그  말()의 유희를 즐길대로 즐기면서도 살아남는 자들이 있긴 했으나 그런 시절을 버텨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는 묻지 말자. 굳이 묻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으니... 지금의 말쟁이들 또한 그 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저만 먼저 살아야겠다고 아우성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환하게 보고 있으니... - 전하, 신들을 죽여주소서.- 툭하면 머리를 조아리며 습관처럼 내뱉던 그들을 앞에 두었다면 -그래, 내 너희를 죽여 이 나라의 사직을 바로잡고자 하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였다면 그러고 싶었다는 말이다. 진정 그랬으면 싶었다는 말이다.

답답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이 신화의 끝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도 나는 그 이순신의 탈을 벗어버리지 못했다. 그냥 그의 아픔을 잠시 더 느껴보고 싶었다. 사실과 소설이 어울어진 이야기 하나를 떨쳐내기가 이리도 어려운가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두어번 아산 현충사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지난 겨울이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한참 공사중이었다.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무엇을 찾아냈을까? 현시대속에서 다시 찾을 수 있었던 옛시절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러면서 나는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을 생각했다. 존재의 의미는 모두 버리고서 오롯이 덩치만 부풀린 채 어딘가에서 실려와 내려놓아진... 그 생뚱맞은 자리... 왠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잠시 머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그 날의 느낌이 그 곳 현충사에서는 되살아나지 않기를 빌었다. 쉽게 털어내지 못할 것 같은 이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다시 찾아가 보리라 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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