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에서 역사적으로 쉬고 오다 - 그 누가 가도 좋을 감동의 사찰 27곳 순례기
이호일 글.사진 / 가람기획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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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아보자. 도대체 팔작지붕이 무엇이고 맞배지붕이 무엇이며 다포식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를... 보통은 잘 들어볼 수 없는 말들이 우리문화의 유적지를 돌게 되면 끝도없이 나오는 말들이다. 지붕구조의 하나로 지붕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고 나오는 팔작지붕.. 여기서도 우진각지붕이라는 말이 또 나온다.  네 개의 추녀마루가 동마루에 몰려 붙은 지붕으로 지은 집을 우진각집이라고 한단다. 그럼 또 추녀마루는 무얼까?  당마루에 이어 추녀를 기와로 덮은 부분이라고 나온다. 그럼 또 당마루는 무얼까? 당마루를 찾아보면 너새라는 말이 나온다. 너새가 또 궁금하다. 너새는 지붕머리 양쪽으로 마루가 되도록 기와를 덮은 부분을 말한다.  맞배지붕이라는 것은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으로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자형으로 되어있다. 처마의 양끝이 조금씩 치켜올라가고 용마루 중앙부를 처지게 해서 서로 어울리게 해 놓은 지붕을 말한다. 또한 다포식이란 말도 자주 듣게 되는데 공포가 많다는 뜻이다. 공포는 지붕과 지붕사이의 구조물로 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준다. 기둥의 바로 위에에 올리는 것이 기본인지라 복잡한 모양으로 장식효과가 뛰어나기도 하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것을 '주심포식'이라고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것을 '다포식'이라고 한다. 이때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려진 공포는 지붕을 받치는 효과는 없고 단지 장식의 역할만 한다)  이렇게보면 정말 끝도없다. 우리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렇게 낯선 언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쉽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좀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보게 되었다.

절집이라는 걸 가만히 생각해보면 바람소리나 풍경소리를 떠올리게 되고 아늑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우선적으로 자연속에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진다는 그자체부터가 황홀하다. 산행을 할 때마다 그곳에서 마주치는 절집들을 그냥 지나쳐가지 않고 꼭 한번은 들러보곤 했었다. 참 많다. 종파가 많으니 그 종파에 따른 절집도 얼마나 많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일반적인 절집보다 천년고찰이라 할 수 있는 절집들을 찾아갈 수 있다. 천년고찰이라는 말자체가 안고 있을 역사적 의미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음이다. 단지 우리가 그 역사적인 의미를 얼만큼이나 해석할 수 있으며 얼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이 책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아우르는 전통사찰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있다. 답사형식으로 찾아가는 사찰들의 모습을 직접 찍고 각 사찰에 대한 유래에서부터 역사적인 배경이나 건물들의 구조와 배치를 설명하면서 그 안에 담겨진 의미등을 소개해주고 있다. 또한 각 사찰마다 보유하고 있는 우리의 보물들에 대한 설명도 놓치지 않았다.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佛寶사찰 통도사, 法寶사찰 해인사, 僧寶사찰 송광사를 일러 한국의 삼보사찰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법당에 부처님을 모시지 않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의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한국의 5대적멸보궁이라고 한다. 또한 관음보살을 모셨다는 동해 낙산사의 홍련암, 서해 낙가산의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을 우리나라의 3대 관음성지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세곳의 관음성지가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 사자산 법흥사를 찾았을 때 법당에서 뵈지않는 부처의 모습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각 사찰마다의 창건설화가 참 재미있다.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어진 것도 있지만 하나의 떠도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삼보사찰이라는 말을 굳이 한자로 쓴 이유는 그 절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기 위해서였다. 일명 '스님 사관학교'라고 불리운다는 송광사를 僧寶사찰이라고 부르는 것만 보아도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며칠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도 송광사 출신이다.

책을 읽다보니 이렇게 우리 절을 돌아보기 전에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각 보살들이 뜻하는 바를 알고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처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아미타불의 왼편에서 세상을 소리를 들어 중생의 고통을 돌보아주신다는 관음보살이나(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우리가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면 들어주신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지혜를 상징한다는 문수보살, 이 理· 定 · 行 · 의 덕 을 맡아본다는 보현보살과 같이 좌우로 부처를 모시는 보살님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나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질테니 하는 말이다. 석가모니불에 이어 미래에 나타나 중생을 구원해주신다는 미륵불에 대한 예는 동학의 접주 손화중을 보더라도 잘 알 수가 있음이다. 문득 내 것이 아니라하여 무조건 견제하고보는 것은 빨리 버려야 할 습성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전국의 많은 절집들을 돌아보게 되면 정말로 놓치고 싶지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자연과 함께 어울어지는 모습이다. 그곳에 가면 그토록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있었다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모습말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월정사 전나무길과 내소사의 전나무길은 정말이지 두고두고 다시가고픈 길 중의 하나였다. 오래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가면 들려오는 산새소리와 맑은 숲의 냄새가 아직도 그리운 것을 보면 자연은 우리와 멀어져서는 안될 존재임이 분명하다. 오래전 내소사를 찾았을 때 그 맑은 숲을 지나 연꽃문양의 창살과 마주섰을 때 얼마나 감정이 북받치던지... 책에서 소개해 주었던 절집들중에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다. 언젠가 한번쯤은 들러보리라 다짐하지만 그래도 내가 가보았던 곳중에서 한번 더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서산의 개심사가 있다. 우연히 찾게 되었던 절집이었는데 그 소박함과 정갈함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모른다. 절집까지 오르는 길에 으름을 내밀며 이것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던 허름한 아저씨의 웃음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한켠이 따스해져온다. 작년 여름 남편과 찾았던 부안의 개암사도 잊을 수가 없다. 백제의 마지막 유민들이 항거를 했다던 울금바위가 개암사 뒤에서 멋지게 버텨주고 있는 곳.. 그곳 대웅전의 닫집이 얼마나 신비로웠었는지.. 닫집이 있는 법당이 그리 많지 않다던 보살님의 설명이 얼마나 귀하게 다가오던지...

책에서 알려주고 있는 절집도 좋지만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저마다의 특징적인 느낌을 전해주는 절집도 많다.  산행을 핑게삼아 이곳저곳 가보긴 했지만 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예전보다는 속세와 더 가까워졌구나 하는 거였다. 지금은 절집마다 템플스테이라는 것을 한다. 절집이 속세로 내려오는 것인지 속세를 떠난 우리가 절집을 찾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의 의미가 변질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을 가져보기도 한다. 크기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 하는 말이다. 저마다의 진실된 마음 혹은 저마다 무겁게 안고 살아가는 것을 하나쯤 내려놓고 싶어 찾아가는 절집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책을 덮으면서 이 책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중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지금은 이런 서적들도 많이 보인다는 것이 반가운 일이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동화되어지지 않는 종교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상芽相.. 자기의 학문이나 지위를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태백산에 들어갔으나 문수보살의 현신을 알아보지 못해 몸을 던져 죽었다던 자장율사의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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