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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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가 늘 말하듯 아는만큼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의 목차가 궁금했다. 어떤 형태의 동선을 그리고 있는지. 우선은 서울길을 걷는다. 파리가 부럽지 않은 역사도시라는 말과 함께. 서울역에 가장 먼저 눈길을 주었다. 서울역사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부터 지금은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서울역의 상징, 그리고 서울로7017이라는 고가. 사실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곳이다. 한번은 가봐야지 하면서도 가까이 있다보니 늘 뒷전이다. 비상시국이 끝나면 이번에는 기필코 가봐야지 한다. 혜화동과 성북동길은 참 많이 걸었었는데 아무리 걸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산책길임에는 분명하다. 늘 지나치면서도 들어가보지 못했던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이 벨기에 영사관이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관심을 두었더라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을. 사실 서울의 구석구석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역사의 흔적이 많다. 볼 게 많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많은 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듯 하다. 서울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하는 책도 많다. 하지만 어떤 느낌으로 걸었는지의 차이는 분명해보인다.

서울의 옛지명은 한양이다. 옛조선의 수도이다보니 조선의 문화를 느낄만한 곳이 많다. 더구나 그 한양을 가운데 두고 4킬로미터 밖 40킬로미터 이내의 장소에 왕릉이 있다. 풍수적으로 길지이며 성역이다보니 주변의 환경과는 많이 다르다. 일단 숲과 나무가 참 좋은 왕릉길은 걷다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그 기준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한 왕릉도 있으니 핑게김에 잠시 서울을 떠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서 조금은 실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찾아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알고 간다면 그것 또한 역사공부가 아닐까 싶다.

서울길을 걷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도 있다. 가장 안타까운 곳중의 하나가 인사동이다. 인사동만의 느낌은 어떤 것일까?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기에 하는 말이다. 전통문화거리라고는 하지만 교복을 입고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보았던 필방이나 표구방, 화랑등의 고즈넉함을 지금의 인사동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인사동만의 특색이 없어보인다는 말이다. 지금의 인사동 부근에 고려의 흥복사라는 절과 조선의 원각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중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율곡이나 조광조등도 살았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도화서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필방이나 화랑등이 많았던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익선동의 변화도 그다지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겉모습만 그대로일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피맛골처럼 없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게다. 더 늦기전에 을지유람을 한번 해 봐야겠다고 메모를 해 둔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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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성 - 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고백
리하르트 폰크라프트에빙 지음, 홍문우 옮김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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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의 심리와 고백'이라는 부제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는 건 실수였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코패스라는 말의 의미를 정정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뿐이다. '사이코패스'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면만이 강조된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처럼 들렸다는 거다. 하지만 아무런 편견없이 이 책을 읽는다는 건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읽는 내내 책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아니 사실은 너무나 낯설고 낯뜨거운 고백들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이 책은 한마디로 사례집이다. 광기인지 성도착증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두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서 사회생활이 힘겨웠던 이들의 실상을 집대성해놓았다. 인간의 욕구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식욕과 성욕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도 학술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말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동성애, 사디즘, 마조히즘, 페티시즘과 같은 성에 관련된 용어들이 모두 이 책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처럼 이 책은 그 모든 증세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법과 사회가 그들의 성과 취향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282쪽) 라는 말처럼 의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들은 단지 환자였을 뿐일까? 어떻게 보면 마치 그들을 변호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성적 도착은 난폭한 외부의 자극이 없어도, 개인의 성장기에 비정상적이고 퇴행적인 성생활에 따라 나타난다. 그런데 그 현상이 선천적인 것이라 놀랍다.(-228쪽) 심리학을 다루었던 책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말이다. 성장기에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았느냐에 따라 어른이 되어서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지 않는가. 내 안의 아이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라고. 그런 면에서 바라본다면 그들도 사회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라면 다 똑같았을 욕구 충족을 그들은 자제하지 못했으니까.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너무나 아프고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사람이 많을테니까. 하지만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쾌락 추구와 싸우는 도덕성을 보존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싸움은 불공평한 무기로 겨루는 싸움이기에 처벌의 위협은 성욕처럼 강한 본능에 대단한 맞수가 못 된다고. 의사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고. 오늘날과 같은 현상은 최근 몇 세대만에 누적된 신경과민과 밀접하다고. 결론적으로 말해 사회는 그들을 처벌하기에 앞서 그들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성과 관련된 행동은 수많은 말썽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 한 사람의 신체와 정신 건강의 문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과 행복에도 직결된 문제다. 말썽은 온갖 법적 문제를 제기한다. 특수한 이 문제를 다룰 유능한 역략이 절실하다.- 피에르 자네 (-480쪽) 공감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살면서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추어 갈 역량이 절실한 건 사실이다. 기대를 벗어나 감히 짐작하지도 못했던 내용이어서 읽기 힘들었던 책이지만 이런 방면으로 연구분석을 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이 책을 참고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던 증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이 책의 사례를 통해 고칠 수 있었다고하니 하는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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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 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
박정호 지음 / 더퀘스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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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라는 부제가 보인다. 사실 그게 궁금했다. 경제학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속에 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집을 장만할 때도 지역이나 가격을 비교해보고 자신에게 맞는 혹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그렇다. 처음에 들어간 집에서 마음에 딱 맞는 것을 찾았다 할지라도 보통은 다른 곳에도 한번 더 가보고 결정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혹시나 그곳보다 더 싼 곳이 있을지 모르니까. 혹시나 그것보다 더 좋은 걸 보게 될지도 모르니까. 경제학자라고 하니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하면서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다. 경제학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보다 좀더 효율적으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공부하는 거라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모두 경제학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돈이 많고 누구는 돈이 부족하다. 왜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려워보인다. 이 책에는 우리의 생활속에 늘 함께 하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경제학'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나 신화속에서 찾을 수 있는 경제의 원리는 의외로 재미있게 다가온다. 아울러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들에게 한방 얻어맞을 수도 있다. 생각보다 잘 읽힌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해방을 위한 것이었을까? 분명히 그렇게 배웠지만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산업화의 구조를 갖고 있던 북부와 면화재배가 주축을 이루고 있던 남부의 경제적 구조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권 또는 경제문제로 인해 촉발된 전쟁이었으며 그 와중에 북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 바로 노예해방선언이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링컨의 배신이다.

아시아 최초의 선물거래소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일본이다.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를 거점으로 삼고 지방의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다이묘들의 경제권을 박탈하기로 한다. 당시 일본은 격년주기로 흉년이 들어 쌀공급이 일정하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었기에 세금으로 거둬들인 쌀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각 지방에서 보낸 쌀이 한곳으로 모이자 오사카상인들은 쌀이 갑자기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선물거래를 시작했다고 한다.

개성상인들의 회계장부인 사개치부법은 복식부기를 사용한 것으로 복식부기의 원리를 처음 생각해냈다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상인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동인도회사는 설립목적이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한 초창기 증권회사였다. 그러다 주식의 가격이 변했고 그에 맞춰 투기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와 인도를 오가던 상인들이 위험부담을 덜어보자고 시작한 일이 투기광풍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그 비슷한 예로 튤립전쟁이 있다.

고대부터 있어왔던 순장제도는 왕권강화의 목적을 갖고 있었다. 암살이나 독살을 막기 위해 그런 제도를 두었다는데 듣고보니 가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을거야,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이런 상황에서 누가 왕을 죽이려하겠는가 말이다. 오히려 왕이 더 오래 살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했을 것이다. 단순히 죽은 다음의 세상을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 밖에도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많다. 매운 음식을 즐겨먹는 우리에게 고추는 경제적 요인에 의해 보편화 되었다는 것, 음악이나 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은 귀족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 대중문학의 최초 수요자는 하녀, 집사, 문지가, 가정교사와 같은 가사노동자들이었다는 것, 지금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자동차가 사실은 대기오염이나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등... 경제적인 용어가 등장해도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을 하는 까닭인지 막힘없이 잘 읽힌다. 늘 다가오는 경제용어는 항상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때문에 책을 통해서라도 경제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욕심을 부렸었는데 의외로 많은 것을 얻었다. 멋진 강의를 듣고 난 기분이다. 읽다보니 밑줄치고 메모한 부분이 꽤나 많다. 그런데 중세의 세금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려 웃음이 난다. 창문세, 난로세, 모자세, 장갑세, 벽지세, 수염세... 그 모든 세금에도 경제원리가 들어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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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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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산을 좋아해서 시간이 날때마다 산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저 단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작은 존재들, 이름모를 풀과 꽃들 그리고 나무들이 좋았다. 산의 정상까지 오르지 못해도 그날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던 하늘과 구름과 바람과 풀과 꽃들과 나무의 잔상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찾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서.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들에 핀 작은 풀과 그 풀속에서 피어나던 꽃들에게 시선을 빼앗기기 시작한 것이. 그러면서 알았다. 토종풀, 토종꽃들이라고 생각했었던 것들이 사실은 귀화식물이었다는 걸. 그 때의 실망감이라니! 그러나 어떠랴, 그저 풀이 좋고 꽃이 좋고 나무가 좋았던 것을.

취향에 물주기.... 참 멋진 말이다. 식물원을 찾아가는 일조차 취향에 물주는 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던 작가의 식물사랑을 한마디의 말로 화살처럼 꽂히게 만들고야 말았다. 세계의 식물원을 하나씩 찾아가보는 게 소원이라던 작가를 살짝 응원하게 된다. 행복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만큼이나 다분히 주관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식물을 통해 자신의 삶에 위안을 삼을 수 있다는 게 어찌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있을까 싶다. 좁은 공간이든 넓은 공간이든 즐기는 사람은 상관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참 좋았다. 식물을 열심히 죽이고 있는 이들중의 한사람으로써 열심히 죽여봐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지만 그럼으로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는 걸 안다. 지금도 죽은 채 말라 비틀어진 잎을 달고 있는 작은 화분 몇개를 버리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너무 사랑해서, 사랑이 넘쳐서 죽어버렸던 녀석들을 바라보며 절제를 생각하게 되고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까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죽은 녀석의 특성을 다시한번 알아보았던 시간들은 또하나의 생동감 그 자체였던 까닭이다.

틈날때마다 식물원을 찾아가곤 하지만 개인적으로 식물원보다 수목원쪽에 더 마음이 간다. 아직은 답답한 온실속에서 바라보는 식물보다는 넓고 큰 공간에서 자라는 나무들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의 부류인 모양이다. 작년 봄, 늦었다고 생각하며 천리포수목원으로 목련을 보러 갔었는데 왠걸! 도시의 목련은 이미 지고 있었는데도 그곳의 목련은 이제 막 멍울을 터트릴 준비중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결국 보고싶은 목련을 보지 못한채 허탈하게 돌아왔었던 기억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 누구나 한번쯤은 그려보았을 그런 집... 그 집에 가장 먼저 심고 싶은 나무가 있다면 목련이다. 그만큼 목련이 좋다. 좁은 베란다에서 아직은 죽지 않고 버텨주는 다섯개의 화분을 바라본다. 죽어나가는 녀석들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까닭에 이제는 그만 들여야지 하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을 이겨내고 자구를 밀어내는 녀석이 있어서 또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뾰족한 잎이나 가시가 달린 식물보다는 넓은 잎과 둥근 잎을 가진 식물이 더 좋고, 키가 작은 식물보다는 조금은 키가 큰 식물이 더 좋다. 식물편애? 키우기 편해요, 그냥 일주일이나 이주일에 한번씩 물만 주면 된다는 말에 속아서 집에 들였다가 죽어나간 녀석들이 몇이나 되는지... 향기에 반해서 혹은 예쁜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럼에도 여전히 식물이 눈에 띄면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세상에 식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그 사랑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 가까이 두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크기는 작아도 한사람의 마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직은 그 사랑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내 자신을 다시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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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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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한국에서 꽤나 알려진 작가가 아닐까 싶다. 일본의 3대 여류소설가이기도 하고. 한동안 그녀의 작품에 매료되었었다. 아마도 많은 작품이 번역되었을게다. <도쿄 타워>의 초판이 2005년이라고 되어있으니 벌써 15년이나 지난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세상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사실 이 작품을 읽지 않았기에 그런 호기심이 일어났을 테지만. 그래서 한번은 읽어봐야지 했던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젖어들었던 그녀의 작품 세계였다. 그녀의 문장은 읽으면 읽을수록 지친 마음을 쓰다듬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단지 도쿄 타워가 지켜봐 주는 장소의 이야기였을 뿐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높은 곳에 우뚝 선 채로 묵묵히 지켜봐주는 도쿄 타워가 있어서 그렇게 많은 흔들림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을까? 한낮의 도쿄 타워는 수수하고 온화한 아저씨 같다,는 표현이 보여서 하는 말이다. 수수하고 온화한, 견실하고 마음 푸근한..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고 작품속에서 말하고 있듯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를 품에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를 갈구하고 있다. 마흔 살 여자와 스무 살 남자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다. 단언컨대 이건 사랑이 아닌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문화의 차이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인듯 흘러가는 그들만의 사랑이라는 형태가 가끔은 껄끄럽게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남자아이 토오루와 코우지의 사랑을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도대체 사랑이란 말의 정의는 뭘까? 사랑이란 말에는 다분히 주관적인 느낌이 감춰져있다. 때로는 이기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에 의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어쩌다 연상의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린 토오루도, 차라리 연상의 여자가 연애하기엔 훨씬 편하다고 선택한 코우지도. 그런데 생각해보면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속 사랑은 그렇게 모두 불완전한 사랑이었던 듯 하다. 그녀의 작품속에서 다루어졌던 사랑의 형태가 대부분 그랬었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런 사랑들을 정말 예쁘게 표현하고 있으니 그것이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여자의 일상을 그녀의 남편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한 토오루가 함께 살자고 말하던 날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한집에서 함께 사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절대 같은 게 아니라고. 언어의 유희?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표현쯤? 늘 기다리는 입장의 토오루와 코우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모자가정인 토오루도 가족이 있었던 코우지도 외로웠던 거라고. 단지 그 외로움을 상대하는 방법이 조금은 유별났던 것 뿐이라고.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그저 괴로움일 뿐이다. 다만 '언젠가는'이라는 이유를 앞세운 희망고문일 뿐이다. 다시한번 느껴본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 괜찮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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