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킬 - 인공 지능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기술
크리스털 림 랭.그레고르 림 랭 지음, 박선령 옮김 / 니들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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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사회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요즘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라고 외쳤던 지구의 모든 나라와 사람들이 이제 각자 도생의 길로 접어든 듯 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각자 도생의 길이 이제 시작된 것은 아니다. 한가지만 잘해서는 안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멀티테스킹의 시대라는 말이다. 멀티테스킹은 한마디로 말해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은근슬쩍 우리의 삶속에서 마치 이전에도 있었던 듯 자리잡고 앉아있는 현상이 엄청 많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걸 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속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다는 말일 뿐이다. 지금의 세상에서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해간다는 말을 수도없이 들어왔다. 도대체 인간적인 감성이라는 게 무슨 뜻일까? 이 책의 부제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휴먼스킬은 '인공 지능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인간의 기술'을 뜻한다고.


기계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고 많은 사람이 걱정아닌 걱정을 한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을 찾으라는 말도 많이 들린다. 과학이 좋다고, 편한게 좋다고, 빠른 게 좋다고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뛰어왔으면서 이제와서 미래를 걱정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와버린 세상을 한탄하기보다는 그런 세상을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그것이 알고 싶어진다.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감성만큼은 기계가 따라올 수 없다고. 학창시절에 종종 I.Q 검사를 했었다. 지능지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E.Q가 높아야 한다고 하더니 S.Q 와 M.Q 가 높아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감성지수, 사회지수, 도덕지수가 높아야 힘들고 고된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일 터다. 그러더니 이제는 인성을 뜻하는 P.Q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한다. 결국 인간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말일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휴먼스킬은 다섯가지다. 집중과 마음챙김, 자기 인식, 공감, 복잡한 의사소통, 적응 회복력이다. 집중과 마음챙김은 한마디로 말해 '주의력 근육'을 강화하는 일종의 정신수양이다. 멍때리기를 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 TV에서 멍때리기 대회를 하는 걸 보여준 적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혀를 찼었지만 이 책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 집중과 마음챙김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밥을 먹을 때는 오로지 밥먹는 데만 집중을 하고, 놀 때는 오로지 노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친구를 만나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꿈같은 말이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어느 하나에 집중한다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좀 더 안정적인 직업은 뭐가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서도 저자는 말한다. E.Q 즉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이 유리하다고. 몇 개만 예를 든다면 CEO, 사회복지사, M&A 전문가, PR 또는 마케팅 책임자등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일은 기계가 하지만 인간이 기계와 공생할 수 있는 바텐더나 의료인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말하고 있다. 노인 요양 보호사나 여행 가이드, 위기 핫라인 자원 봉사자등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 기계라고해서 만능은 아니다. 과학이 능사는 아니듯이. 그만큼 인간의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 직업은 살아남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일 터다. 뜻이 있는 선진국의 몇 몇 그룹에서는 이미 그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위기감을 얼만큼이나 느끼고 있을지...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마치 아나로그 시대가 아예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단언컨데 디지털 시대는 많은 사람의 몰락을 가져올 게 뻔하다. 이 책의 서두에서도 말하고 있다. 디지털문화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에 대해. 아마도 많은 사람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정리해 본다.

미래세계에서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을 가하는 대상은 뱀이나 호랑이, 전염병이 아니라, 흔히 4D라고 하는 주의 산만, 관계 단절, 다양성 부족, 끊임없는 행위다.

주의 산만 : 대중들의 심각한 주의 산만 위기가 정점에 도달한 지금, 우리는 양자 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나의 시간과 관심을 오롯이 홀로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깜빡이는 불빛 몇 개와 더블탭을 대가로 귀중한 시간과 관심을 남에게 내줄 것인가? (-47쪽)

관계 단절 : 실제적인 관계가 꾸준히 디지털 관계로 대체되고 외로움과 우울함이 고조되는 초연결시대에 사는 우리는 선택이 불가피하다. 내 몸과 마음, 정신이 필요로 하는 직접적인 개입과 관계를 우선시 할 것인가? 아니면 디지털 내용물과 그에 수반되는 해로운 결과를 받아들일 것인가? (-50쪽)

다양성 부족 :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새로운 세계와 협력하면서 집단 내 사고방식, 문화적 고정관념,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며 다양한 관점을 취하고, 공통의 가치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 될 것인가? 아니면 현상유지라는 미명 뒤에 숨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글 것인가? (-54쪽)

끊임없는 행위 :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 단순히 뭔가를 하는 '인간 행위자'가 되었다. 정신상태 또한 지금보다 더 어수선했던 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는가? 지루하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 건 언제인가?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식힐 대상이나 오락거리를 찾지 않은지는 또 얼마나 되었는가? (-55쪽)

우리의 감정적인 삶은 날씨와 비슷하다,는 말이 시선을 끈다. 날씨처럼 변화무쌍하여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말일 것이다. 현대인들이 진짜로 중요한 것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불안감, 외로움, 단절감, 우울증 그리고 주변에 대한 배려 부족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말도 보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 증세를 겪어보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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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완성 글씨 연습장 - 악필 교정에서 바른 손글씨까지
박재은 지음 / 경향BP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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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두 마음이다. 이 나이에 글씨 쓸 일이 뭐 그리 많다고, 하다가도 또박또박 잘 쓴 글씨를 보면 또 마음이 바뀐다. 글씨체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는데 어쨌거나 글씨를 잘 쓴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주 글씨를 못쓰는 편은 아니다. 써놓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글씨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럼에도 글씨를 잘 쓰고 싶은 건 욕심일까?


언제부터인지 손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노트북으로 글쓰는 게 편해지기 시작했다. 글씨를 쓸 때 꾹꾹 눌러쓰는 타입이다보니 몇 줄 쓰고나면 연필 쥔 손이 뻐근하다. 그렇지만 역시 글씨는 손으로 쓰는 게 훨씬 안정적이다. 일단 글씨를 쓰다보면 마음이 안정된다. 가끔 틀린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기도 하면서. 그렇지않다고 생각했는데 글씨 쓰는 걸 보면 성격이 급한 편인가? 한다. 빠르게 쓰다보니 거의 흘림체에 가깝다. 게다가 왼쪽 줄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안쪽으로 치우치고, 오른쪽 끝은 이상하게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글쓰는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오랜동안을 그렇게 써와서 버릇처럼 되어버렸는지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옛날에는 펜글씨 교본이라고 있었다. 글씨 좀 써보겠다고 그 책으로 연습도 해 보았었지만 내 글씨는 여전히 그 수준이다. 그러니 이렇게 글씨 연습하는 책에 꽂히는 거다.


책을 펼치면서 와, 했다. 올망졸망 예쁜 글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개인적으로 흘림체나 필기체보다는 정자체에 관심이 많다보니 글씨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사각사각체, 동글이체, 또박또박체, 이름도 이쁘다. 이런! 일단 연필과 노트를 챙겨 글씨 쓰기를 시작한다. 책에서 하라는대로 따라 써보지만 역시 쉽지 않다. 한 술에 배부를수 없다. 다시 써 본다. 또 써 본다. 역시 많은 연습이 필요할 듯. 꾸준함도 필수다. 개성있는 글씨체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정자체에 매달리기로 한다. 붓펜으로 쓰는 몽글체도 욕심나지만 연필로 또박또박체와 볼펜으로 쓰는 동글이체를 연습중이다. 3주면 예쁜 글씨가 나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필기 노트를 잘 보지 않게 된다고 강의내용을 책에다, 그것도 좁은 행간에 글씨를 쓰다보니 악필이 되어버린 아들녀석에게도 한번 이 책을 권해봐야겠다. 이건 뭐지? 발로 쓴거냐? 뭐 이런 소리는 듣지 않아야 할테니 말이다. 인사 잘해서 손해볼 일 없듯 글씨 잘 써서 손해볼 일도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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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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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라는 제목을 보면서도 피상적인 산의 모습만을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산이 우리가 아는그림처럼 그런 모습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저자 자크 엘리제 르클뤼는 프랑스 사람으로 벨기에에서 교수를 지냈다. 현대인문지리학의 선구자라는 말도 보인다. 지정학이나 역사지리학, 사회지리학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고 환경문제를 중시하는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지리학자이면서 환경운동가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다는 말일 터다. 이 책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산의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산의 기원이나 물리적인 성격과 같은 산의 속성에 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숲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지, 기후 변화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산의 테두리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이나 식물에 대한 움직임도 살핀다. 그러다보니 전문적인 용어도 꽤나 많이 등장한 듯 하다. 일반적인 산의 모습만을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어느정도는 따분함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배웠으나 잊어버린 산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산은 동물과 식물만을 품고 있는 게 아니다. 산의 속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자연현상에 대해 예를 들면 호수나 강, 혹은 화산활동에 의해 새롭게 형성되는 자연의 여러가지 형태를 바라보게 된다. 저자는 숲속에서 살고 있는 산짐승들의 움직임까지 관찰했다. 아울러 산을 바라보는 인류의 시선속에서 산을 숭배하거나 신화를 창조해내는 것까지도. 사실 세계 여러나라의 창조신화를 보더라도 대부분 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단군신화 역시 그렇다. 그만큼 인간의 삶은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사라져도 산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산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위로 산을 파괴하고 그 산속에서 살고 있는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키고 있다. 하나의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멀쩡한 숲을 파괴하는 행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일로 인해 생겨날 엄청난 결과는 재앙이다. 이미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와 있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이렇다. 산마루와 골짜기, 바위와 결정산의 기원, 화석, 흙더미와 돌더미, 구름, 안개와 뇌우, 눈, 산사태, 빙하, 빙퇴석과 급류, 숲과 풀밭, 산짐승, 기후의 변화, 올림포스 산과 신, 수호신, 그리고 인간등... 목차만 봐도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금 따분하긴 했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산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이제는 잠시 쉬어갈 때임을. 이제는 제발 멈추어야 할 때임을. 다만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염려스러울 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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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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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1,000년 동안 햄버거를 먹는다면 우리는 금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금발이 되면 우리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327쪽) 새로운 쇠고기 우상의 힘을 포착한 맥도널드의 일본 영업소 소장 덴 푸지타가 한 말이란다. 기 막히지 않은가! 어떻게 저렇게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어떻게 저렇게 바보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그 사람을 찾아가 다시 한번 더 묻고 싶어진다. 원래 인간은 채식을 주로 했다. 그럼에도 昨今의 우리는 육식을 해야만 하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왜일까? 그것에 대해 아주 간단하게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육식의 종말>이다. 昨今의 우리가 어째서 이토록이나 육식을 욕망하며 살게 되었는지를 이 책은 아주 명쾌하게 밝혀주고 있다.

오래전에 <옥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수퍼돼지를 산골 소녀 미자가 분양받아 키우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옥자'라는 이름으로 미자와 함께 10년을 살았던 돼지는 다시 기업에게 끌려가고 가족같은 '옥자'를 구하기 위해 어린 미자가 동물보호단체와 힘을 합쳐 대그룹과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옥자'가 앞으로의 식량위기를 대처할 수퍼돼지였다는 거다. 끝도없이 육식을 탐하는 인간의 입을 위하여 유전자를 조작, 수퍼돼지를 만들어낸 기업이 이윤을 포기할 리 만무하다. 현대의 쇠고기는 실용주의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살아 있는 표본이나 마찬가지(-328쪽) 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때문에 그토록이나 육식을 탐하는 것일까? '단백질 사다리'나 '소고기 클럽'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을 통해 그런 말을 처음 알게 되었다. 미국이 만들어낸 용어다.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 축산산업을 더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육식을 가장 좋아했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이 1위에 올라섰다. 햄버거의 위세다. 그 햄버거 패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한다. 지구의 환경이나 기후 온난화를 걱정하는 환경론자들조차 소에 의해 망가지는 지구에 대해서는 함구를 하고 있다니 말해 무얼할까 싶다.

영국이 평원의 공짜 목초와 중서부 곡창 지대의 잉여 옥수수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1억 600만 에이커에 달하는 미국 농경 지대에서는 2억 2,000만 톤의 곡식이 소를 비롯한 다른 가축들을 위해 재배되고 있다. 미국에서 가축들, 그것도 주로 소가 소비하는 곡물은 전국민이 소비하는 곡식의 두 배에 육박한다. 전세계적으로는 6억 톤의 곡식이 가축들, 그 대부분은 소의 먹이로 사용되고 있다. 만약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가축 사료가 아닌 인간이 직접 소비한다면 지구상의 10억의 사람들이 곡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열량이 높은 곡물을 다량으로 먹이는 것이 소의 생리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열량이 높은 곡물은 혹위의 정상적인 미생물 기능을 방해하며, 그 결과 일련의 소화기 질환들이 발생한다. 가장 흔한 질환으로는 '혹위-간 농양 합병증'이 있다. (-122쪽)

미국 공중위생국에 의하면 살모넬라균 발병 사례의 과반수 이상은 육류와 가금류의 섭취에서 기인한다. 살모넬라균과 같은 식중독으로 해마다 2,000명이 사망하고, 50만 명이 입원하며, 그에 따른 보건비용과 부차적인 다른 비용으로 수억 달러가 지출된다. 전국적으로 가장 규모가 큰 일부 도축장들의 위생 상태에 대한 검사관들의 기록은 가히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그들은 공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심장도 뛰지 않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암소들을 도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런 주검들의 몸 안에는 녹슨 쇳가루, 부러진 이빨, 손톱과 발톱, 고리, 꼬리표, 송진 등의 이물질이 가득 찬 해 그래도 해체 공정을 따라 이동한다.(-169쪽)

방목지와 농경지로 전환된 열대우림 지역이 재차 사료 작품 재배지로 전환되면서 시골의 농부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보호할 어떤 수다도 없이 설자리를 빼앗긴 채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대적 육우 사육은 고도의 자본집약적 산업인 동시에 노동 절감 산업이다. 농업에서는 때때로 1평방 마일에 농부를 100명까지 고용할 수 있지만, 열대우림 지역의 축산 목장에서는 평균적으로 소 2,000마리에 인부 1명을 고용하는데, 이는 기껏해야 12평방 마일에 인부 1명이 고용되는 수치이다. 토지도 없이 절망에 빠진 수백만의 농부들은 하찮은 일자리라도 구하기 위해서 인구가 밀집한 도시 지역으로 이주했다. 그들은 대부분 턱없이 부족한 정부의 구호물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길거리나 도시 외곽의 임시 판자촌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야 했다.(-181쪽)

미국에서 '쇠고기는 왕'이다. 자그마치 10만 마리의 소들이 매일 도축되고 있다. 또한 일주일에 미국 전체 가정의 91%가 쇠고기를 구입한다... 현재 미국인들은 전세계 쇠고기 생산량의 23%에 달하는 양을 소비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미국인들의 연간1인당 쇠고기 소비량은 평균 65파운드이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쇠고기를 좋아하도록 길들여진다. 이런 통계 수치는 가히 놀랄 만한 수준이다... 사실상 지난 반세기 동안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는 국민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육류 소비, 특히 쇠고기 소비가 증가했다. 그 점에서 OECD회원국들은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다.... 소득 수준 향상과 육류, 쇠고기 소비 증가의 관계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쇠고기 소비는 부와 지위를 드러내주는 특권의 한가지 형태이다. 또한 국가간에서도 쇠고기 클럽은 권력을 상징하며, 국가의 탱크와 함선 보유 숫자나 산업 생산력의 상승 수지 못지않게 모든 면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쇠고기 소비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입맛'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인류의 가장 복잡한 문제인 사회 정의와 평등의 차원으로서까지 확장된 것이다.수백만 인구가 최소한의 일일권장 칼로리를 섭취하지 못하는 가운데 극소수의 특권층이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를 소비하는 현상은 현재 우리 문명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범지구의 식량 전쟁과 식단 정치에서 국제 쇠고기 클럽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 인류 생존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필수적이다. (-187~189쪽)

씨앗과 화학제품, 소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도축장과 쇠고기 판매 및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은 곡물 사료로 사육한 가축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개발도상국가들을 향한 광고와 판매 활동은 순식간에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를 국가의 위상과 동일하게 만들었다. '단백질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성공의 표상이 되었고, 세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생산자들의 엘리트 클럽에 대한 입장을 보장했다.(-196쪽) 그들은 모두 근대적인 닭과 달걀 생산 시장 -비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하는 가장 신속하고 저렴한 방법- 을 세우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경제적 여건이 허락되는 상황에서 가능한 빠른 속도로 돼지고기, 우유, 낙농제품, 목초로 사육한 쇠고기의 순서로 단백질 사라리를 올라가, 마침내 곡물 사료로 사육된 쇠고기에 도달한다.

다른 국가들에게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가도록 권유함에 따라 미국 농부들과 농산업계 회사들의 이익이 증진됐다. 만약 자국에서 해외로 수출되는 곡물의 2/3가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축을 사육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은 '녹색 혁명' 기술로 인해 잉여 곡물이 발생하게 된 농업 열풍의 절정기에 단백질 사다리를 올라갔다.... 절망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의 전환은 역전될 기미가 전혀 없는 채 여러 나라에서 사료 곡물 생산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전환이 인간에게 미친 결과는 1984년 날마다 수천 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어 가던 에티오피아의 사례를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현재 수백만 에이커에 달하는 제3세계 토지가 오로지 유럽의 가축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재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97~198쪽)

오늘날 미 농무부 동물피해관리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육식동물들이 가축들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해마다 육식동물을 제거하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육식동물들은 야생동물들의 개체수가 환경이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음으로써 희생 동물 종들의 번식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서부 방목지에서 수백만 육식동물들의 멸종은 평원 생태계의 불안정을 초래했으며, 사막화의 확산으로 생태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육식동물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자 서부 평원에는 유해 동물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육식동물들이 조절 기능을 상실함에 따라 어떤 지역에서는 토끼, 다람쥐, 캥거루쥐, 땅다람쥐 및 여타 설치류들이 주기적으로 창궐했다. 그러자 정부 관리들은 육식동물과 위해 동물 간에 형성된 예전의 생태학적 균형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독약이 든 곡식을 공중 투하함으로써 설치류의 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려 했다.

정부 프로그램으로 인한 과잉 목축과 생태계의 불안정은 다시 메뚜기, 방아깨비, 수확개미 및 여타 곤충들의 창궐을 낳았고, 정부의 반응은 당연히 살충제를 대량으로 살포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생태계는 더욱 약화되었으며 토지는 사막화에 한층 더 취약해졌다. (-250~ 252쪽)

현대적 축산 단지로 인해 발생한 인류의 희생은 엄청났다. '개발도상국가들'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소 사육을 위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떠나야만 했다. 대부분은 지저분한 도시의 됫골목으로 강제로 이주당하여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쓰레기를 뒤져야 했다. 끊임없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그들은 영양실조로 인한 여러 질병에 걸려 쓰러졌다.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에서 신생아 10명 중 1명은 첫번째 생일을 맞이하지 못한다. 용케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런 아이들의 삶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폐해와 이미 손상된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기생충과 잠재적인 질병들로 서서히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에 불과하다. (-340쪽)

제1세계의 부유한 소비자들은 곡물 사료로 재배한 쇠고기를 즐기지만 인공적인 단백질 사슬의 최상위에 있는 산물을 먹는 대가로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의 육체는 콜레스테롤로 망가지고 동맥과 조직은 동물성 지방으로 질식하며, 그들은 '풍요의 질병'의 희생자로 전락하여 간혹 심장병과 결장암, 유방암, 당뇨병과 같은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간다.(-341쪽)

관계를 생각하고 구성하는 현대적 방식이 환경과 인간에 미친 영향은 거의 재난에 가까운 수준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류사회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잠식했다.(-344쪽)

곡물로 키운 소의 쇠고기는 불에 탄 삼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이나 개울을 희생시키고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그 결과물이다.(-352쪽)

할수만 있다면 이 책을 모두 다 여기에 옮기고 싶은 심정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개인적으로 육식보다는 채식을 좋아한다. 그렇다고해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단지 육류를 즐겨먹지 않을 뿐이다. 이미 서구화되어버렸을지도 모를 우리의 식단을 생각하게 된다. 사실 아시아 혹은 우리나라의 원래 식단을 그대로 이어간다면 건강보조식품 따위는 필요가 없다. 곡물사료를 먹인 쇠고기를 먹고 각종 병에 걸려 신음하는 서구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을 마치 우리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세뇌를 시키고 있음이다. 우리가 육류로 된 식단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풍요의 질병이라는 그 많은 성인병들도 이렇게까지 만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다. 동양은 서구화되어가는데 이미 그들은 그들의 식단을 버리기 위해 동양의 식단을 넘보고 있다. 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업적으로, 혹은 기업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에게 촉수를 뻗치고 있는 것이다. 광고를 통해 끝없이 세뇌를 시키면서 말이다. 손에 쥔 햄버거를 놓을 수 없으면서 다이어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간다는 그들의 딜레마를 우리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남의 떡이 커보여도 내 손에 쥔 떡이 훨씬 맛있는 법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던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아직도 국격과 국력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화가 나서. 먼저 산업화의 시대를 살았다는 이유로, 먼저 세상을 멀리 볼 수 있는 눈을 떳다는 이유로 지구를 황폐화시킨 유럽이나 미국으로 인해 세상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이 먹기 위한 소를 키우기 위해, 저들의 축산산업을 키워주기 위해 대책없이 사라져가는 열대우림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별점 백만점을 주고 싶은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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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1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
지유라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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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그림을 하얀 종이에 그린다. 연필로만 그릴 수도 있고, 거기에 채색을 하기도 하고. 물론 판화라는 색다른 그림도 있기는 하다. 이 책에 실린 그림들은 종이위에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작은 나무판 위에 그려진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위에 그린 그림처럼 보이지 않으니 이채롭다. 저자는 집을 그리기 위해 많은 곳을 찾아다녔다.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 그렇다고 그 그림들속에 뭔가 특별한 것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림들에게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소박한 집들. 그리고 그 집속에서 살고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저자는 집을 편안하고 행복한 곳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작품평속에 그림에 따뜻한 마음을 담고 싶어한다는 말도 보이긴 하지만 책 속에 실린 그림들은 충분히 따스함을 전해주고 있다.


문득 집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대체로 우리가 그리고 있는 집의 형태는 어떤 모양일까? 어렸을 적 집을 그리라고 하면 어떤 집을 그렸었는지 생각해 봤다. 낮은 담장을 두른 채 집 뒤로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고, 뭐 그런 형태의 집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昨今의 우리에게 그런 집은 이상일 뿐이다. 나이들면 살고 싶은 아주 먼 미래의 집일 뿐이다.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상자속에 살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집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변화의 물결속에 휩쓸리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살고 있다. 이 책속의 집들을 보면서 공연스레 집에게 미안해지는 건 왜인지.....


저자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12년간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어릴 적 꿈이었던 화가가 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집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남들이 자꾸만 물었단다. 그 좋은 직장을 놔두고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지금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그녀는 아마도 지금 엄청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집을 그리면서. 집을 그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행선지위에서 만나는 집과 그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다. 목포의 낡은 시계방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계절이 몇 번 바뀌도록 찾아갈 수 있는 마음이 그녀에게는 있는 것이다. 집을 그리면서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짜로 별 것도 아닌 이야기들. 어쩌면 그래서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듯 하다.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가 소복하게 담겨있는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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