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26
오스카 와일드 지음, 하윤숙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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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꿔 말하면 내면의 세계와 현실속의 세계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쪽을 더 우선으로 생각할까? 아마도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을테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는 보이는 세계에 더 많은 관심과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보이는 세계일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하는 이정표보다는 보이는 세계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우리 주위에 더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기에, 아니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면 평생을 함께 살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이 또한 내면의 세계일 것이다. 일부러 보려고 노력한다면 볼 수는 있는 것일까? 내면의 세계, 내 영혼의 삶.. 풍족한 영혼의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현실속에서 보여지는 것에만 치우쳐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쾌락 - 어쩌면 인류가 지향하고 싶어하는 가장 최고의 행복은 아닐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쾌락의 얼굴은 앞뒤로 두개인 듯 하다.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행복을 맞이하려고 문을 열어주었더니 불행이라는 쌍둥이 동생도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던 말이 떠오른다.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과 우리가 버려야 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하는 모양이다. 무서운 사실은 이 쾌락으로 인도하는 존재가 분명 악한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다. 겉으로는 선한척 하며 다가오지만 결국은 악으로 인도하는 존재.. 누구에게나 유혹은 다가오고 누구에게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동기나 계기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유혹 - 살면서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혹이라는 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듯 하다. 우리가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것에 대한 유혹은 유난히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도리언 그레이에게도 그렇게 다가온 유혹.. 너무도 생생하게 실물처럼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 앞에서 그가 무심결에 흘렸던 한마디가 치명적인 운명의 고리를 엮어버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나르키소스가 떠올랐다. 예언자의 말처럼 정말로 그가 자신의 운명을 몰랐다면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끝내는 자살을 해야 했던 나르키소스의 운명속에는 수많은 여인들의 아픔이 잉태되어 있었다. 저토록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이, 그 빛나는  젊음의 순간만이 내게는 영원히 머물고 늙어가는 세월 모두는 저 초상화속의 자신에게 주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기도는 악마와의 거래였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자신의 운명을 도리언 그레이는 알았다. 그리고 그 거래에 흡족했다. 

비밀 - 사람은 누구나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비밀 한가지쯤은 가슴속에 품고 살아간다. 그 비밀이 어떤 형태이며 얼마만한 크기인가 하는 것만이 다를 뿐인데 그것조차도 철저하게 주관적인 개념일 뿐이다. 어느 순간 사악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초상화 앞에서 경악하던 도리언 그레이가 영혼과 맞바꾼  젊음을 유지하게 되었다는 운명을 인정해야만 했던 그 아픔도 잠시, 그의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러져 갔다. 그 비밀을 간직하게 만들어준 동기는 물론 쾌락이었다. 한 권의 책으로 대변되는 쾌락의 의미는 참으로 짧게 다가왔다. 그러나 깊었다. 한사람을 내세워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대들의 모든 쾌락을 알고 싶어했다던 그 이야기는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도리언 그레이의 비밀이 커텐으로 가리워져 거미줄 쳐진 다락방에 갇혀진 그 순간부터 그가 모른 척 했던 것은 영혼의 파멸이었다. 

타락 - 쾌락을 즐기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타락할 수 있다는 거였다. 많은 사교클럽을 왕래했고, 귀족들과 수많은 교제를 했지만 정작 자신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그의 삶. 그가 가까이했거나 그를 가까이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망가져가는 현실속에서도 악마는 내내 그를 몰아댔다.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너의 책임은 아니라고.. 너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거라고.. 너의 그 아름다운 젊음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반응이나 시선 따위는 무시해버려도 되는 거라고.. 끝내는 마약의 소굴까지 찾아들어가는 도리언 그레이에게 변해가는 자신의 초상화는 마음 한켠의 무거운 짐이었을 것이다. 사악하고 추하게 일그러지며 변해가는 자신의 초상화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것이 자신의 영혼이라고 믿을 수 없었기에 어쩌면 그는 더더욱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용서 그리고 인정 - 이미 늦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 그에게 찾아온 자신을 향한 환멸.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 결국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화가 바질마져 원망해야 했던 그의 절망. 그 초상화만 그리지 않았어도 자신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거라고 절규하며 변해버린 초상화 앞에서 화가를 죽여야만 했던 도리언 그레이에게 과연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던 누군가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우리는 왜 그다지도 삶의 유혹에는 약한지.. 우리는 왜 그다지도 수많은 변명거리를 찾아내야만 하는지.. 아름다운 외모와 부와 젊음 모두를 갖춘 도리언 그레이에게 젊음의 유한성을 말하며 다가왔던 헨리는 그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유독 그만이 도리언 그레이의 곁에서 흔들림없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 세상과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던 헨리 경을 세상사람들 모두는 사악한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그랬다. 도리언 그레이의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던 그의 존재는 사악함이었다. 더욱 끔찍한 것은 도리언 그레이를 사악함으로 이끌던 헨리 경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단순히 말 몇마디만으로도 도리언 그레이를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듣기에 달콤한 말로, 때로는 자기만의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말 한마디를 툭 던져줌으로써 그는 도리언 그레이를 움직였던 것이다.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서글픈 사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말이다. 도리언 그레이에게서 느껴지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숭배했던, 그리하여 삶에 대한 열정으로  도리언 그레이의 젊음을 그림속에 담아 주었던 화가 바질은 우리가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내면의 선함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내는 화가를 찔렀던 칼로 자신의 초상화를 찢어버리며 삶을 마감하는 도리언 그레이가 생각해보면 결국 승리자다. 자신의 운명을 인정했으니.. 죽는 순간만큼은 진정한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었으니.. 단지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하나의 행동이었다해도 말이다.

"우리 모두 자기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들어 있지요"(-229쪽)  사실 영혼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내걸며 악마와 거래를 했던 이야기는 이 책만이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도 몇개는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은 섬뜩했다.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함께 한다던 도리언 그레이의 말처럼 우리는 아마도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쉽게 천국같은 지옥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소개글에서 살짝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적인 면을 들춰내고 있었지만 내게는 왠지 그것이 동성애적인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강한 느낌을 남겨주었던 때문일까? 도리언 그레이는 나일수도 있고 책을 읽고 있는 당신일수도 있다. 순수함을 숭배했던 화가 바질 홀워드는 선함이었고, 달콤한 말을 속삭여주던 헨리 워튼경은 악함이었을 뿐이다. 내 곁에 항상 머무는 두 친구의 모습이 왠지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익히 알던 현실의 삶이 밤의 비현실적인 그림자를 뚫고 되돌아온다. 우리는 지난밤 떠나왔던 지점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틀에 박힌 습관으로 가득 차 있는 똑같은 지루한 순환속에서 에너지를 계속 써야한다는 당위성이 끔찍한 느낌으로 우리를 덮칠 것이다. 때로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한줄기 강렬한 갈망이 우리를 덮치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 우리에게 쾌락을 안겨주는 세상, 모든 사물이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띠고 변화된 모습으로 다른 비밀을 간직하는 세상, 과거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고 설령 살아남더라도 의무감이나 후회를 의식하지 못하는 형태로, 심지어는 씁쓸함이 배어 있는 기쁨의 기억조차 갖지 않고 고통이 안겨준 쾌락의 기억조차 간직하지 않은 형태로 남아 있는 세상을 볼 수 있으리라는 갈망이 우리를 덮친다.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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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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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을 하는 백작이 있었다. 세금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보다 못한 그의 아내가 백성들의 세금을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내의 부탁에 화가 난 백작이 말했다.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바퀴 돈다면 부탁을 들어주겠소.. 고민을 하던 아내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알몸으로 말을 탄 채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그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집으로 들어가 창에 커튼을 내리고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딱 한사람을 제외하고. 그것을 바라보았던 딱 한명의 남자는 그 후 눈이 멀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이름이 바로 고디바 부인이라고 기억된다. 꽤나 오래전에 알게 된 이 이야기의 배경은 영국이었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이런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또한 여행의 매력일게다.  하나의 전설에 불과하겠지만 이야기가 품고 있는 뜻은 참으로 깊어 오래도록 기억되어지는 것들.. 그런 것들이 바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민담들을 만나게 되니 그것 또한 책장을 넘기며 기다려지는 하나의 별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빨강으로 대비되는 정열, 열정 그리고 투우, 현란하게 다가오는 플라멩코, 그리고 요즘들어 관심을 갖게 된 축구의 나라?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스페인, 아니 에스파냐.. 내가 그 나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저 피상적인 단어들만 튀어나온다. 이슬람 세력에 지배당하던 소왕국들이 국토회복운동에 성공함으로써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나라..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소왕국들이 갖고 있던 저마다의 특징이 상당히 강하게 다가온다. 비록 한사람의 왕이 가졌던 통치이념때문에 그랬다고는 하지만 소왕국들마다 자존심도 상당히 강하고 저마다 내세우며 쓰는 말도 달랐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이 나라의 정식이름이 에스타도 에스파뇰이라는 것과 스페인은 영어이름일 뿐이라는 것도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시한번 짚어보게 되었다. 사는 것에 온통 정신을 놓다보니 그 작은 상식하나조차도 놓치고 사나 싶어 아득해지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나마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일테니 위안 삼는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아니 그 기타줄이 만들어내는 선율이 너무 좋아서 정신이 몽롱해질때까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알함브라 궁전마져도 스페인이 품고 있다고 하니 저자의 말처럼 신비의 나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앞선다.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같은 이름은 축구열풍 때문에 왠지 가까운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다. 소왕국이었기에 그들만의 자존심 대결이 대단하다는 그 이름앞에서 어쩌면 그만큼의 자부심이 있기에 오늘날의 스페인이 만들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이나  돈키호테를 만들어냈다던 라만차, 안달루시아, 플라멩코, 그라나다, 우리나라의 마라톤을 빛내주었던 황영조 선수 공원이 있다던 몬주익, 살바도르 달리, 발렌시아, 바스크 등 멋지고 환상적인 이름들이 모두 스페인의 품안에 있었다니!  작가가 문화를 먼저 내세울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을 책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이해하게도 된다. 돈키호테 뿐만이 아니라 <노트르담의 꼽추>에 등장했었던 집시 에스메랄다를 떠올리게 되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잉그리드 버그만을 떠올리게 되는 곳이 또한 스페인이라는 나라라고 하니 정말이지 문화의 향기가 얼마나 강할까 싶어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여행서와는 다른 맛을 내는 것 같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그곳의 풍경과 특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안고 있는 문화적인 가치와 역사의 흔적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애 쓴 작가의 마음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사진기를 메고 다니며 이곳 저곳에서 찾아내고자 했던 스페인만의 숨결.. 그가 찾아낸 많은 것들이 이 책속에 녹아 있는 듯 하다. 덕분에 가고 싶은 곳도 많아지고 읽고 싶은 책도 많아졌다. 문학의 향기를 찾아 힘겨움을 마다않고 찾아갔을 그의 발걸음이 너무도 고맙게 다가왔다. 또한 알지 못했던 역사의 숨결을 내가 느낄 수 있도록 헤매다녔을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래서일까? 여행서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재미있는 민담을 들려주며 그 지루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옛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해도 호기심을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괴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았다던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를 내가 어찌 알겠는가마는 이 책속에서 사진으로 보여지던 성가족성당의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후원금으로만 지어지고 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날마다 조금씩 그 모습이 변해가고는 있지만 완성시기를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는 그 성가족 성당의 모습은 어찌보면 기괴하게도 보여지지만, 책의 제목처럼 일생에 한번 스페인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그곳부터 달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신비롭게도 보이고 어떻게 직선없이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고 나면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고 싶다.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과 작곡가 타레가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 궁전. 천국의 정원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헤네랄리페 정원을 꼭 한번은 가보고 싶다. 이슬람의 5계인 신앙,자비,기도,금식,메카 순례를 상징한다는 다섯손가락을 모은 손이 새겨져 있는 정의의 문을 통해 들어가 보고 싶다. 죽음과 영원한 삶을 동시에 나타낸다는 사이프러스 나무 터널 사이를 나도 걸어보고 싶다. 영원한 삶과 죽음을 안고 있다는 사이프러스 정원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보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내가 지금 저곳을 거닐고 있으면 참 좋겠다는 욕심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던 풍경이기도 했다. 책장을 넘긴다는 것이 정말 아쉬웠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나의 꿈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했다. 유럽여행에 스페인을 넣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로마교황청이 있는 바티칸과 아랍왕족들의 도박장으로 유명하다는 모나코, 스페인과 프랑스가 1년씩 번갈아 통치한다는 안도라 공국,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있다는 리히텐슈타인.. 이 네나라는 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고 한다. 이 네나라를 꼭 한번은 가고 싶어졌다. 어찌되었든 책을 통한 여행이었지만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여행하기 전에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여러가지 미리 챙겨들고 가면 그곳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만들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문학과 역사를 한곳에 아우르며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을 스페인에 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면 내게 오려는지...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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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역습 - 당신이 몰랐던 우유에 관한 거짓말 그리고 선전
티에리 수카르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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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무서운 책이다.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틀림없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그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린다는 건 정말이지 생각하기 싫은 일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때문에 이 책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양의 우유를 마셨습니까? 만약 당신이 지금까지 하루 석 잔 정도의 우유를 꾸준하게 마셔왔다면 당신은 이미 망가져 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플 준비는 다 끝내셨습니까? 지금부터 당신이 마신 우유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드릴 것입니다. 단 기절하지는 말아주십시오".. 강의는 시작되었고 그 강의를 듣고 있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살면서 마셨던 우유 모두를 토해내고 싶어졌다. 물론 악의적인 생각으로 이런 내용의 책을 낸 건 아니었겠지만 충분히 악의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책을 읽는 도중 나는 실제로 냉장고의 우유를 모두 싱크대에 쏟아 부어버렸다. 그리고 내 아이를 바라보았다. 싫다고 할 때 억지로라도 마시게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우유! 지독히도 철저하게 가려진 그 가면속의 얼굴앞에서..

나처럼 아줌마 소리를 들어야 하는 여자들이라면 칼슘 보충제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열게 된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폐경이나 골다공증이라는 말들이 주변에 난무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면 칼슘섭취를 늘린다고 골다공증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단순히 '유제품 소비를 장려하기 위해' 낙농업계와 제약업계가 손을 잡았다는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마치 유제품을 먹지 않으면 골다공증으로부터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거라고 말하던 수많은 광고와, 젊었을 때 우유를 먹지 않으면 훗날 후회할 일 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학회와 연구소도 모자라 정부까지 나서서 캠페인을 벌였다면 믿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일까? 칼슘 보충으로 골밀도가 증가되어 유지되지는 않았다는 연구 결과를 보여주는 저자의 말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또 다시 묻고 있다. 유제품을 많이 먹으면 골절을 적게 당할까? 그 질문의 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현재 유제품을 많이 먹으며 칼슘 섭취량이 많은 서구적 생활 방식을 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골절이 드물게 발생한다는 말이다. 유제품 소비 세계기록과 대퇴골 경부 골절 세계기록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스웨덴의 예를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우유소비가 적은 중국만 해도 대퇴골 경부 골절 빈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우유를 마셔야 했을까? 지금까지 허울좋은 우유의 장단에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마디로 우유나 유제품이 골다공증 예방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말이다. 우유가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준다는 근거는 없단다. 오히려 유제품을 더 많이 섭취하는 여성이 유방암이나 골다공증에 더 많이 걸린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우유를 먹으면 설사한다는 사람이 참 많다. 그런 까닭에 나 역시도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락토오스라는 젖당을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건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나만 그런가? 나는 왜 그렇지? 했었던 의문점을 풀어주는 대목이 있다. 모든 포유류는 새끼일 때 어미젖을 소화시킬 수 있는 락타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내고, 락토오스를 인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갈락토스와 글루코스로 변화시켜준다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 유아기를 지나면 그 락타아제의 활동이 줄어들어 성장하고 나면 90퍼센트나 감소한다고 하니 성장한 포유류가 우유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쉽게 말해 병이 아니라는 말일게다. 습관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뿐더러 많이 마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락토오스의 영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두통, 집중력 저하, 기억력 장애, 극심한 피로, 근육과 관절의 통증, 알레르기 반응등..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은 저렇게 놀랍도록 부정적인 얼굴을 숨기고 있는 우유나 유제품의 감언이설에 더 이상은 속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순히 눈앞에서 우유만을 없앤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스크림이나 요구르트같은 유제품들처럼 락토오스가 숨어있는 곳이 많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부모들이 좋다는 건 사실 전부 다 나쁘다. 햇빛, 우유, 육류, 대학 - 우디 앨런의 말이라고 써있던 문장을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루빨리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거였다. 아이들의 영양을 보충해주기보다는 우유 생산업자들에게 시장을 제공해야 하는 경제적 필요성을 더 크게 보았던 탓에 아이들에게 우유 급식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자식을 둔 엄마 입장에서 듣기에 기분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실 우유뿐만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원칙이 그런 원리를 무시하고는 형성되지 못할거라는 생각마져도 들었다. 더구나 우유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완전식품이 아니었다는 말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사실 난 식료품에 대한 루머들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오래전 유지파동이 일어났을 때도 거리낌없이 라면을 먹었고 조류독감 때문에 온 세상이 시끄러울 때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닭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이번 우유에 대한 사실에 대해서는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소화도 잘 되지 않고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우리 식구들은 많이 먹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선 오히려 위안삼아야 될 일로 여겨지니 이 무슨 일인지...

'우유의 복음' 이라는 말이 재미있다. 그 우유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일러 저자는 침략자들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설탕이나 정제된 곡류 그리고 유제품에 대한 잘못된 진실을 파헤치기까지 그가 안고 있었을 심리적 부담이나 외적인 압력, 내적 갈등이 얼마나 컸을지는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호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칼슘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게 만들었을까? 물론 지금은 칼슘은 많이 먹어도 필요한 만큼만 흡수된다고 하는 이론이 많이 들려오기는 한다. '우유로비'가 있었기에 유제품이 단독으로 하나의 식품군을 갖게 되었다는 말은 우스운 논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책이라는 무서운 실세를 모른척 할 수가 없으니 힘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움츠러들 수 밖에 없다. 무언가에 길들여진다는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을 것이다. 습관처럼 몸이 기억해버려 아무런 생각없이 움직인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일테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거리로 나가 이제부터는 우유를 먹지 맙시다, 라고 소리친다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할 것이다. 책 한권만으로 우유가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기엔 어렵다. 내가 무슨 과학자도 아니고 영양학을 논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순간적인 분노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어쩌자고 인류는 스스로가 자멸의 길로 가고 있는지...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한다면 이 세상은 정말이지 최악의 상태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생뚱맞게도 우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씩만 상대방을 걱정해주며 살아가는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생각해보니 가장 커다란 문제는 식생활이었다. 그것도 서구적으로 변해가는 식생활이! 식물성 단백질보다 동물성 단백질이 우리 몸에 해가 된다는 건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유의 단백질인 카제인 성분이 든 먹이를 먹은 쥐가 모두 죽거나 빈사상태였다는 결과를 보면서 나는 설마했었다. 단백질이 암을 유발하다니!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큰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송아지의 성장을 돕기 위한 물질 IGF-1이라고 불리는 성장인자때문인데 그 성장인자가 아이들의 키를 키운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IGF-1이 우유를 통해 우리 몸속의 혈액속으로 들어가 키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세포를 더 빨리 증식시킨다는 것이었다. 암세포를 IGF-1에 노출시키면 누가 되었든 암세포가 빠르게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우유를 만드는 낙농업계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은폐시키기에 급급했다!  전립선암과 고환암이 걱정된다면 남성들이여 우유나 치즈같은 유제품을 저멀리 던져버릴지어다! 책 속 내용에 의하면 우유나 치즈, 요구르트를 많이 먹었던 남성들이 그렇지 않은 남성들보다 70%나 더 많이 전립선암에 걸렸다는 연구보고가 있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또한 여성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유제품을 꾸준히 먹는 여성이 거의 먹지 않는 여성에 비해 난소암의 위험이 더 높았다고 한다. 요구르트 다이어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오히려 그 다이어트 덕분에 체중이 2kg 가량 더 늘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유제품, 즉 요구르트는 우리의 몸을 날씬하게 해 주지 못한다고 한다.

칼슘의 실제 필요량은 생활습관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칼슘 권장량이라는 것은 술책의 하나일 뿐이다. 정해진 권장량만큼 먹지 않으면 큰일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사기였을 뿐이다.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칼슘 필요량이라는 것은 유제품을 먹지 않아도, 아주 조금만 먹는다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싱겁게 먹는 사람에게는 그 조금의 권장량조차도 의미가 없단다. 그러니 '칼슘불안'에서 벗어나라는 말을 끝으로 저자의 강의는 마무리 된다. 콩이나 양배추, 브로콜리 같은 채소에 들어 있는 칼슘은 소화도 잘되고 흡수율이 높으며, 버섯이나 적포도주같은 채소나 과일은 뼈의 파괴과정을 줄여준다고 하니 기억해 둘 말이다. 패스트푸드를 피하고 싱겁게 먹으면서 콩이나 덩이줄기작물, 토마토, 잎채소, 바나나, 생선을 많이 먹어준다면 우리 몸의 만성적인 산중독증을 중화시키고 골밀도를 유지시키는 칼륨을 충분히 얻을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웰빙이라고 말하는, 그리고 건강식품이니 꼭 먹어야 한다는 녹색채소나 호두 따위의 견과류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좋다고 하는 것들을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이 힘들겠지만 이렇게 한권의 책을 통해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에 대해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한 피라미드 식단의 가장 아래 1단의 식품을 소개하고 싶다. 하루 5가지~12가지를 먹는게 좋다고 하는 것들로 야채, 덩이줄기작물, 뿌리채소, 콩과 콩과식물, 생과일과 말린 과일등이다. 그러면 가장 윗쪽에 자리잡고 있어 일주일에 0~3회 어쩌다 먹는게 좋다고 나온 식품엔 무엇이 있을까? 흰빵, 콘푸레이크, 흰쌀밥, 감자, 사탕류, 제과제빵, 돼지고기 가공품 따위인데 자주 먹을 경우 소화계 암의 위험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무서웠다. 하지만 이런 책이,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과 마주설 수 있는 용기있는 책이 많이 나와준다면 참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우리를 혼돈속에 몰아넣는다해도 말이다. 혹시라도 우유나 유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믿고 싶지 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적절한 대안을 찾은 다음에 우유를 밀어내라는 저자의 말을 기억하기 바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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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0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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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함께 피를 나누었다고해서 물보다 진한 사랑이 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피를 나누었지만 버리고 버림을 받아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이 있는가 하면, 같은 피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가슴으로 피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훈훈한 느낌을 전해주는 까닭이다. 정말 오랜 세월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을 해 오셨던 조병국 할머니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가 겪어왔던 수많은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가를 훔치기 몇 번,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의 글자로 살아숨쉬는 아이들의 이름앞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살 부비며 산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낳았으나 기르지 못한 엄마와, 낳지 않았으나 길러주며 살아온 엄마와의 차이는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입양 사실을 알고는 친부모를 찾아갔다가 16년동안 길러준 양엄마에게 되돌아온 딸을 붙들고 다시 날아갈까봐 놓을 수 없었다던 엄마의 마음. 바로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핏줄이니까 달라도 뭔가 다르겠지 하며 찾아갔다던 그 딸이 돌아와 했던 말은 그 이질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거였다. 왜 그랬을까? 살을 부비며 산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사랑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토록이나 예쁘게 태어났으나 힘겨운 병과 싸워야 했던 영희, 맑은 목소리로 장애인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던 현군이,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의사가 되어 나타난 영수, 입양과 파양을 네번씩이나 겪어야 했던 기원이, 모진 엄마가 선택했던 죽음과 싸워 두 다리를 잃어야 했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내 준 아이, 똥통에 버려졌으나 건져올려진 분녀... 할머니의사의 기억속에 남겨진 아이들이 어찌 이 아이들뿐이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있으면서도 딸아이를 입양했고 그 아이가 공뇌증이란 장애를 가졌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이 엄마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의 사랑만 나누어줄 수 있었다면 나는 입양아라고 씩씩하게 말했던 아름이의 동생과 같은 당당함으로 그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반아이들 앞에서 나는 입양아야,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그 당당함은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부모라는 것이, 엄마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힘을 지닌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부모의,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를 우리가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일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것들에게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기적... 어쩌면 버려졌던 아이 하나하나가 기적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제 몫을 해 달라고 그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이 자체가 어쩌면 기적은 아니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느닷없이 비상사태가 벌어졌고 그 상태로는 자연 분만을 할 수 없으니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었다. 나는 버텼다. 절대로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끝내 수술을 한다해도 엄마와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던 의사의 엄포 아래 수술실로 실려갔고 그렇게해서 얻은 게 지금의 아들녀석이었기에 남들은 정말 소중한 아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야 느낀다. 잘 자라준 아들녀석의 소중함을. 하늘보다 더 높은 아이의 소중함을.. 내가 이럴진대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왔던 할머니 의사와 그 담당분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잔잔하게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어쩌면 눈물 흘렸을지도 모를 할머니 의사의 모습이 보여지는 듯 했다.

처음부터 눈물바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도 서러운 일인테 그 작은 몸뚱아리 어디에 병마를 이길 힘이 있다고 그토록이나 모진 시련을 주시는지, 신이 있다면 나는 달려가 따져보고 싶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은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를 몇 번, 책장을 넘긴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가슴 떨리는 일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창호지에 둘둘 말려 시체안치소에 들어갔던 아이가 모진 목숨 놓지 못하고 다시 꼼지락거렸을 때 빗속에 어린 생명을 버린 아이 엄마가 야속하고 매정했다는 조병국 할머니의 말씀은 백번 이해가 되었다. 살아달라고, 살아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모았다던 의료진들의 그 마음이 내 심장까지 흔들고 있었던 거다. 사랑,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 사랑에 이토록이나 목메인채 살아가야 하는가 말이다. 그토록 흔해빠진 사랑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왜 없어야 했는가 말이다. 그 사랑, 그 사랑은 왜 필요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을 보면서 감히 나는 말한다.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머물길 거부하기 때문일것이라고.  오래전에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떠올랐다. 지금도 제 2의, 제 3의 수잔 브링크가 끝도없이 만들어지고 있을 게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과 달리 우리의 인식이 많이 나아진 상태이지만 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내쫓기듯 입양되어갔던 그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던 조병국 할머니의 마음이 내게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그리고 고맙다. 내게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이.

50년이 넘는 세월을 아이들과, 그것도 버려지고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하며 늙어가셨을 그 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힘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싶다. 그 분이 아니었다해도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했던 분들은 많았다. 이 책속에 소개되어진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누구의 관심과 시선도 받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지금 이시간에도 사랑을 나누어주고 계신 분들은 많을 것이다. 힘겨운 세상, 아직은 살만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그 분들이 있는 까닭일게다. 책을 읽고나니 마음 깊숙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부족한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렇게 커다란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두렵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나의 작은 힘이나마 필요로 한다면 달려갈 수 있도록 조금씩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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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번째 법칙 -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냉혹한 성공의 기술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4
로버트 그린 외 지음, 안진환 옮김 / 살림Biz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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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해져라, 먹이사슬의 정상에 설 때까지!"
누구보다 냉혹한 현실주의자이자 철저한 기회주의자가 돼라!
어찌보면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다. 착하게 살아라, 남들과 어긋나지 않고 잘 어울려야 한다, 될 수 있으면 혼자 튀려고 하지말고 함께 움직여라. 남에게 상처주는 행위는 왠만하면 하지 말아라 등등.. 우리가 어린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던 모든 말들이 이 책 한권으로 인하여 뒤집어지는, 어쩌면 가치관의 혼란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사회가, 변화의 물결이 내게 요구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라고. 실제적으로도 나는 아들녀석에게 늘 이렇게 말해왔다. 부당한 일에 기죽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라. 어쩔 수 없이 사기를 쳐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남을 아프게 한다해도 너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결행해라... 단 조건이 있다. 무작정 덤벼들지는 말아라. 전후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한 후 행동에 옮긴 후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퇴로는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자면 너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제발 물러터지게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면서 살아가지는 말아라.. 누군가는 말한다. 엄마 맞느냐고. 어떻게 자식에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는거냐고. 속깊은 이야기를 하자면 나 자신이 그렇게 살고 싶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늘 손해를 자처하면서 살아왔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그런 내 삶의 방식이 싫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논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속의 내용에 백번 공감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기심에 지배를 받는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현안을 우선시하는 건 당연하다. (-77쪽)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린시절의 양면성이 다시 표면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어른들의 세계에는 공격이 너무 많고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다보니 우리안의 일부가 많은 것을 타인에게 의존하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 (-82쪽)
오래전에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묻던 카피가 있었다. 기억속에 오래도록 남는 걸 보면 상당히 강한 인상을 남겨준 듯 하다. 양다리 걸치기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않고 이쪽과 저쪽 모두에게 걸친채로 있다가 자신에게 이익되는 쪽으로 슬쩍 발 한쪽을 빼버리면 끝나는 조금은 야비한 듯도 보여지는 양다리 걸치기. 하지만 나는 그 양다리 걸치기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기회주의자가 되라고. 그리하여 반전에 성공하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기회주의자라는 것이 꼭 가재미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삶의 모든 방해물을 반대로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본다는 것이 기회주의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기회. 그 기회란 놈을 잡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되어있지만 실상 그 기회를 잡는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말이다. 맥가이버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칼 하나만 있으면 만사가 오케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기회주의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땅의 기복에 따라 그 흐름이 달라지는 물처럼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형세를 갖춘다는 손자의 말은 퍽이나 인상적이다. 속임수를 사용한다거나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적절한 순간에 노골적으로 실력행사를 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되는가? 왜? 그렇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도  배워야 한다 너무 늦기전에. 사악한 행동을 해야 할 때와 그 방법을 간파하는 기술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융통성있게 적용하라고 말하고 있는 저자의 논리는 실제적인 삶을 생각해 볼 때 백프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솔직이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사회는 속임수와 조작이 없이는 이끌어 갈 수 없다는 데 나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몇 몇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하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마라. (-155쪽)
서로 도와야한다는 생각을 우선으로 앞세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문화속에서도 상대방을 향한 공격적인 충동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갈등과 마찰이 사악한 것이라는 주장은 어패가 있어보인다. 갈등에 대처하는 능력을 두고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는 없는 말이라는 얘기다. 선과 악으로 나눌 수는 없는 거라고 책에서도 말하고 있음이다. 단지 두려움에 대항하는 내적 에너지의 작용일 뿐이라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과연 우리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퍼센트나 될까? 아니 정말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경험에 의한 내면의 힘. 그런 힘이 충분하다면 당신도 사악해질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죄책감 따위는 필요없다. 앞길을 막는다면 제거해야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 대신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더욱 더 나은 길이라고 본다. 부당한 일이나 상황에 굴복하지 마라.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더 짓밝으려 할 것이다. 당하는 자가 더 바보스럽다. 자신을 괴롭히며 공격해 온다면 그 댓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 그것만이 내 스스로 나에게 존재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길이라는 말도 틀리게 보이지 않는다.. 책에서 말하듯이 파워게임에서는 이기는 것만이 상책이다. 여우같은 사람에게는 사자처럼 강하게 공격하고, 사자같은 사람에게는  여우같이 교활하게 공격하라는 말이, 그것도 아니라면 먹이 사슬의 위쪽에 있는, 나보다 더 힘있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여 그 힘을 이용하라는 말이  어찌보면 불합리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다른 면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비열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내가 그 상대방이 여우인지 사자인지를 제대로 가려낼 수 있는가이다. 그만큼 경험에 의한 힘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말일테다. <사악하게 행동해야 할 때를 포착하라>는 장을 읽으면서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알 수 없는 통쾌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던 책이 있다. 얼마전에 읽었던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이다. 독특한 이력으로 라이프모델이 되었던 이 책속의 '피프티 센트'나, <괴짜 사회학>에서 갱단의 두목이 되기까지의 인생여정을 보여주었던 '제프티', 그리고 책의 저자였던 수디르 벤카테시의 조금은 황당했던 모험이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프티가 걸어갔던 길위에 피프티 센트가 성공으로 갔던 길이 겹쳐졌다. 그러나 성공해야 할 조건으로 세상을 맨주먹으로 시작해야 한다거나, 자격이나 재산 혹은 특권 등 물려받은 것이 모두 사실상의 장애물이라는 말은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것들이 방해물로만 작용될 것이라는 생각자체를 공감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한번 더 생각해보아도 지극히 편협된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찌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모습을 원하기에 그런 논리가 적용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적당한 발판을 기초로 삼아 성공한 사람보다는 바닥부터 시작했다는 모험 따위가 그들의 일정 부분을 더 돋보이게 할 수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리더로서의 역할에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성공의 첫시작점부터다. 지금은 권위를 부정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방향제시를 분명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가기를 바라며 그 열망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성공의 정점에 오는 순간 더 과감해져라>는 말에 더욱 힘이 실린다.  

여기 또 하나의 공감이 있다. 완전공감이다. <외부의 비판을 기꺼이 받아들여라>라는 학습장인데 피드백을 참고하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품의 품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무료로 나누어준 뒤 평가를 기다리는 '테스터 tester' 와, 피드백이 부정적인 경우 한개값으로 두개를 파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일루전 illusion' 을 통한 살아남기 전략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혼자만의 생각보다는 고객을 혹은 상대방을 중시해야 한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결국은 요구에 부응하는 그리하여 비판에도 마음을 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니 감정적 통제, 즉 아까 말했던 내면의 힘이 커야 할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다시 말한다면 '의사소통'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상대방과 통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가 잦은 접촉에 있다고 하니 사람들과 단절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어떤 것에 대해 공유하거나 공감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접근법이야말로 세상을 지배하는 지름길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의 차이점에 대해 마음을 열어 상대방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대해 감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고립시키지마라! 단절된 삶의방식을 거부하라! 일단은 거리감을 없애버리고 비판과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있다록 조치를 취하라!

그 외에도  <당신의 적보다 더 오래 견뎌내라> 에서는 지루함과 권태를 이겨내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높은 곳을 겨냥하라> 에서는 남다른 자신감을, <죽음과 삶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라> 에서는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안고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극복해야 하며 살아있는 하루 하루를 기적과도 같다고 생각하라, 고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런 법칙들을 받아들이고 삶의 순간마다 그대로 적용시킨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어려운 과제이다보니 이렇게 약간씩 비틀어놓은 같은 종류의 책들이 나오고 또 나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자기계발서라는 책을 읽다보면 형식에 약간의 변화만 주었을 뿐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느 책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변하지않는 진리이기도 하고... '50번째 법칙'이라는 제목부터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3의 법칙','제5의 법칙'도 아니고 '50번째 법칙'이라니!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되어라, 교활하리만치 치밀한 반전을 꾀할 수 잇는 기회주의자가 되어라, 공격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사악해져라, 언제나 마음의 문을 열어두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라, 그리하여 그들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것이 비판이라면 더더욱 크게 마음을 열고서...

멋진 수식어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기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어쩌면 얼음처럼 차갑다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과가 나를 증명해주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법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50번째 법칙', 나 역시 나의 삶에 이 법칙을 적용시키며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피프티 센트가 누구야? 했었다. 가수라는데 무슨 노래를 불렀다는 건지..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피프티 센트가 지금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래퍼이자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는 뮤지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마도 드라마같은 그의 인생여정때문에 더 많은 매혹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성공했기 때문에!!! 로버트 그린이라는 사람을 통해 옛날의 영웅 나폴레옹과 견줄 수 있는 영웅으로 재탄생된 피프티 센트의 이야기가 바로 이 '50번째 법칙'이라는 말이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 장마다 깊은 호흡을 요구했던 책을 덮으면서 한사람을 모티브삼아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구상했을 저자의 시간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피프티 센트나 로버트 그린이나 둘 다 앞서가는 사람들임엔 분명한 듯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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