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
조병국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함께 피를 나누었다고해서 물보다 진한 사랑이 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피를 나누었지만 버리고 버림을 받아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이 있는가 하면, 같은 피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오면서 가슴으로 피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훈훈한 느낌을 전해주는 까닭이다. 정말 오랜 세월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을 해 오셨던 조병국 할머니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가 겪어왔던 수많은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읽으며 눈가를 훔치기 몇 번,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의 글자로 살아숨쉬는 아이들의 이름앞에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살 부비며 산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낳았으나 기르지 못한 엄마와, 낳지 않았으나 길러주며 살아온 엄마와의 차이는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입양 사실을 알고는 친부모를 찾아갔다가 16년동안 길러준 양엄마에게 되돌아온 딸을 붙들고 다시 날아갈까봐 놓을 수 없었다던 엄마의 마음. 바로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핏줄이니까 달라도 뭔가 다르겠지 하며 찾아갔다던 그 딸이 돌아와 했던 말은 그 이질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는 거였다. 왜 그랬을까? 살을 부비며 산다는 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사랑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토록이나 예쁘게 태어났으나 힘겨운 병과 싸워야 했던 영희, 맑은 목소리로 장애인 합창단의 일원이 되었던 현군이,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의사가 되어 나타난 영수, 입양과 파양을 네번씩이나 겪어야 했던 기원이, 모진 엄마가 선택했던 죽음과 싸워 두 다리를 잃어야 했지만 꿋꿋하게 잘 살아내 준 아이, 똥통에 버려졌으나 건져올려진 분녀... 할머니의사의 기억속에 남겨진 아이들이 어찌 이 아이들뿐이겠는가? 자신의 아이가 있으면서도 딸아이를 입양했고 그 아이가 공뇌증이란 장애를 가졌음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아름이 엄마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의 사랑만 나누어줄 수 있었다면 나는 입양아라고 씩씩하게 말했던 아름이의 동생과 같은 당당함으로 그들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반아이들 앞에서 나는 입양아야, 라고 말할 수 있었던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그 당당함은 누가 만들어 주었는가? 부모라는 것이, 엄마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힘을 지닌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아니 그 부모의,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그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를 우리가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일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것들에게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기적... 어쩌면 버려졌던 아이 하나하나가 기적은 아니었을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제 몫을 해 달라고 그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이 자체가 어쩌면 기적은 아니었을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 아이가 태어나던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느닷없이 비상사태가 벌어졌고 그 상태로는 자연 분만을 할 수 없으니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었다. 나는 버텼다. 절대로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끝내 수술을 한다해도 엄마와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던 의사의 엄포 아래 수술실로 실려갔고 그렇게해서 얻은 게 지금의 아들녀석이었기에 남들은 정말 소중한 아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에야 느낀다. 잘 자라준 아들녀석의 소중함을. 하늘보다 더 높은 아이의 소중함을.. 내가 이럴진대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살아왔던 할머니 의사와 그 담당분들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잔잔하게 지나간 일을 떠올리며 어쩌면 눈물 흘렸을지도 모를 할머니 의사의 모습이 보여지는 듯 했다.

처음부터 눈물바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도 서러운 일인테 그 작은 몸뚱아리 어디에 병마를 이길 힘이 있다고 그토록이나 모진 시련을 주시는지, 신이 있다면 나는 달려가 따져보고 싶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은 읽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를 몇 번, 책장을 넘긴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가슴 떨리는 일이 될수도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창호지에 둘둘 말려 시체안치소에 들어갔던 아이가 모진 목숨 놓지 못하고 다시 꼼지락거렸을 때 빗속에 어린 생명을 버린 아이 엄마가 야속하고 매정했다는 조병국 할머니의 말씀은 백번 이해가 되었다. 살아달라고, 살아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모았다던 의료진들의 그 마음이 내 심장까지 흔들고 있었던 거다. 사랑,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길래 그 사랑에 이토록이나 목메인채 살아가야 하는가 말이다. 그토록 흔해빠진 사랑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왜 없어야 했는가 말이다. 그 사랑, 그 사랑은 왜 필요한 곳에 머물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을 보면서 감히 나는 말한다.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머물길 거부하기 때문일것이라고.  오래전에 우리의 가슴을 울렸던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떠올랐다. 지금도 제 2의, 제 3의 수잔 브링크가 끝도없이 만들어지고 있을 게다. 지금은 그래도 예전과 달리 우리의 인식이 많이 나아진 상태이지만 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내쫓기듯 입양되어갔던 그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더라면 하던 조병국 할머니의 마음이 내게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그리고 고맙다. 내게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이.

50년이 넘는 세월을 아이들과, 그것도 버려지고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하며 늙어가셨을 그 분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힘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싶다. 그 분이 아니었다해도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했던 분들은 많았다. 이 책속에 소개되어진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누구의 관심과 시선도 받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지금 이시간에도 사랑을 나누어주고 계신 분들은 많을 것이다. 힘겨운 세상, 아직은 살만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그 분들이 있는 까닭일게다. 책을 읽고나니 마음 깊숙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조차 부족한 내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렇게 커다란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두렵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주변에서 나의 작은 힘이나마 필요로 한다면 달려갈 수 있도록 조금씩 마음을 열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아이비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