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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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수박을 잘라 먹고, 에어켠 켜놓은 거실에서 앉거니 눕거니 해가며 책 읽는 것, 이 보다 더 시원한 피서법이 또 있을까. 주말에 이렇게 쉬어가며 《유림》 두번째 권 - 공자 편을 읽었습니다.
주말이 이틀이지만 토요일에는 술독이 깨지 않아^^ 일요일에는 가족 행사에 다녀오느라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해,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한 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니 열어놓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유림》 제2권의 부제는 〈周遊列國〉 - 말 그대로 여러 나라를 두로 돌아 다닌다는 뜻인데, 공자가 고향인 노나라를 네 번씩이나 떠나 겪었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출국은 기원전 517년 공자 나이 35세 때, 즉 三十而立 하고 四十而不惑하는 사이에 제(齊)나라로 망명을 떠납니다. 제나라로 가는 길에 태산의 산기슭에서 여인의 통곡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 때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가 만들어집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 이는 공자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노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이 난세 중의 난세였는데, 노나라에서는 임금 소공(昭公)이 세 귀족인 삼환씨(三桓氏)에 밀려 제나라로 도망쳐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로 정치적 망명을 하려했던 것은 노나라의 옛 임금이 가 있는 곳이기도 했고, 또한 당시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사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귤이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그것은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시면 작고 시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던 것도 안영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망명 생활은 그의 뜻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 통틀어 최고의 재상인 안영이 공자를 끝까지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임금 경공은 공자를 중용하려 하나 안영이 끝까지 반대를 합니다. 철저하게 현실주의자였던 안영의 눈에 공자는 이상주의자처럼 비쳤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경공에게 "중니(공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보이기는 하오나 실용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제나라의 대부들은 모두 공자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등용되어 실권을 장악하면 자신들의 위치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객을 보내 공자를 죽어려했다고까지 합니다.
이렇듯 공자의 망명 생활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게 되고, 불과 일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출국은 기원전 506년 공자 나이 46세 때 주(周)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첫 번째 출국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떠난 것이라면 두 번째 출국은 노나라 임금의 허락을 얻어 수레와 말까지 하사받아 떠난 호화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노자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신들의 만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노자가 서로 '인간'의 모습을 지닌 채로 만난 이 사건을 저자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노자의 사상과 공자의 사상의 차이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만남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그러나 싱겁게 끝나고 맙니다. 평행을 달리는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집니다.
노자를 만난 공자의 첫 마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노자 왈 "예에 대해서라면 더구나 나는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재차 묻자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할 법하지만, 후에 공자는 제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만나 뵌 노자는 마치 용과 같은 분이셨다." 용 - 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동물입니다. 한편으로는 노자를 마음 속으로 존경하지만, 인간사를 포기할 수 없는 공자의 무언의 항변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 이후로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가는데, 이 때부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하고, 노자는 영원히 은둔 생활을 하려 세상을 등지려 합니다. 노자가 은둔하기 위해 길을 떠나던 중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이를 알아 본 윤희라는 관리의 간청으로 노자는 며칠 만에 《도덕경》을 써주고 떠납니다. 노자 유일의 저서인 《도덕경》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노자에 대한 행적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오로지 전설만이 남게 됩니다.

제3장의 제목은 〈황금시대〉입니다. 기원전 501년 공자 나이 51세 때, 공자는 처음으로 중도재라는 벼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에 뛰어듭니다. 중도재는 중도라는 도시의 장입니다. 공자는 이를 적극 활용하여 정치가로 갓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외교가로서의 활동을 보입니다. 이웃 제나라의 침략 시도를 번번히 물리칩니다. 이로 인해 공자는 다음 해에 사공(司空)이라는 더 높은 벼슬을 얻게 됩니다. 비로소 중앙의 행정장관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공자 나이 54세 때에는 오늘날 대법원장 겸 법무장관에 해당되는 사구(司寇)라는 벼슬에 등용됩니다. 공자는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너그러웠지만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높은 자와 가진 자의 죄를 묻는 데는 매우 엄하게 하는 원칙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져갑니다. 말 그대로 공자의 황금시대인 것입니다.
이 때 공자는 모험을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도를 실현하기 위해, 삼환씨의 세력을 제거하고 노나라의 임금인 정공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삼환씨의 도성을 허물고 사병들을 해체하려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자의 의도대로 모두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삼환씨 중 마지막 맹손씨의 성을 함락하지 못합니다. 삼환씨의 저항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노나라에는 오랜만에 평화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다음 해에 공자는 최고의 재상인 대사구(大司寇)에 등용됩니다.

이렇게 노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을 키워가자 이웃 제나라는 위협을 느낍니다. 안영은 수 년 전에 죽고 제나라는 대부 여서가 중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제나라 임금 경공은 노나라가 힘을 더 키워 제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미리 땅을 떼어 노나라에 바치자고 합니다. 그만큼 공자로 인해 노나라의 힘이 커져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여서는 땅을 떼어주기 전에 노나라를 한번 흔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바로 미인계. 여서는 노나라 임금 정공과 계환자가 여색을 매우 좋아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여서가 뽑은 80명의 미녀들에게 혼이 빼앗겨버린 정공과 계환자는 나라를 돌보는 일을 잊어버립니다. 공자는 탄식을 한 후, 미련 없이 노나라를 떠납니다.

공자는 황금시기를 스스로 마감하고 다시 먼 길을 떠납니다. 이 때가 공자 나이 56세. 그렇게 나라 밖으로 떠난 뒤 다시 돌아온 때가 68세 때. 공자는 이로부터 13년 동안 열국을 주유하게 됩니다.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합니다. 이때가 세 번째 출국. 이때부터 공자의 고행은 시작됩니다. 제3장의 제목이 상가지구(喪家之狗) 즉 초상집의 개라는 뜻입니다. 이 당시 공자의 상황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 때 공자가 70여 나라를 주유했다고 하나, 실제 기록은 위, 진, 섭 세 나라 뿐입니다. 그 전에 제와 주나라를 갔으니, 다 합쳐도 다섯 나라에 불과합니다. 결국 70여 나라를 유세한 것이 아니라 서너 개의 나라를 반복해서 순회했으며, 공자 자신은 더 많은 전국시대의 왕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다른 나라의 임금을 만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4장과 제5장, 즉 세 번째 출국와 네 번째 출국을 다룬 장에서는 공자의 파란만장한, 그러나 심히 힘든 열국 주유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열국의 왕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제후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거나 가택 연금을 당하거나, 급기야 제자들로부터도 의심과 반항을 받게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힘든 13년의 세월을 마감하고 노나라로 돌아오는 공자. 그것도 그의 제자 염구가 노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주유열국의 종말을 고하며 하는 말, "새가 나무를 선택해야지(良禽擇木) 어찌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현명한 사람은 자기재능을 키워줄 만한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긴다는 뜻입니다. 책의 마지막장 제5장의 제목이 바로 <양금택목(良禽擇木)>입니다.
이 외에도 자공과 자로 또한 각각 독립하여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공은 노나라 사신으로 등용되어 당대에는 공자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또 제자들을 두어 공자의 사상을 이어나갑니다. 공자가 그들에게 그러했듯이.
공자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발전된 건 이러한 제자 집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의 순서에 따라 공자의 여정을 옮겨놓다보니 정작 공자 사상의 진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이 짧은 글을 통해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살아있는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보시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수 많은 책들이 공자의 단면만을 부각하거나, 그의 사상만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작가 최인호는, 공자가 그의 사상을 완성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전국시대의 열국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다시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자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텍스트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논어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논어를 다시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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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수상록 범우문고 122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최혁순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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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범우문고 몇 권을 샀습니다. 부피가 적어 이동중에 쉽게 읽을 수 있고 다른 책들을 보면서 사이사이에 짬짬이 기분 전환을 겸해 읽을 수 있으며, 가격도 매우 저렴하여 가격 대비 질적인 측면에서 단연 으뜸이라 생각해서였습니다. 쇼펜하우어 수상록,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프로타고라스, 손자병법, 이태준의 문장강화(개정판), 박제가의 북학의를 샀습니다. 그 중 어제 《쇼펜하우어의 수상록》을 읽었습니다.

문고판인 까닭에 그가 남긴 에세이 중에서 일곱 편만 골라서 담았습니다. 사색, 독서와 서적, 저술, 여성, 자살, 예술, 죽음 등 일곱 가지의 주제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에세이를 두고 '독일어로 쓴 글 중에서 최고의 명문'이라고 평한다는데 번역본인 이 책만 봐서는 그것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주제에 대하여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화법은 그의 사상을 간결하고도 확실하게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발소에 가서도 결코 자신의 목덜미에 면도날을 대지 못하게 하고, 잘 때는 권총에 탄환을 재어 침대 옆에 두고 잤다는 '염세주의자' 쇼펜하우어. 흔히 염세주의(厭世主義) 또는 비관주의라 함은, 세상이나 인생에 실망하여 이를 '싫어하는' 생각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그의 글을 통해 단순히 세상을 '싫어한다'는 증거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세상과 인생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둘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깝습니다.

〈자살에 대하여〉에서 그는, 자살은 죄악이 아닐 뿐더러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최후의 피난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합니다. "자살은 고난에 찬 이 세상 속에서 참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가상적인 구원만을 받는 것이므로, 자살은 최고의 윤리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성직자들이 자살을 죄악시하는 그 근거나 논리가 매우 졸렬함을 비판하는 것이지, 자살 그 자체를 미화하지는 않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되 자살은 결국 도피라는 그의 생각에서 '염세'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하여〉를 읽으니, 그가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상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은 자연에게 전혀 파격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때문에 상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지 않습니까? 이 말만 놓고 보자면 그의 생각이 노장사상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록 개체(인간 개인)의 죽음으로 개인의 의식은 일단락되지만 "죽음의 손에 멸망된 것은, 거의 형상뿐"이며 "우리의 한정된 빈약한 인식 능력은 시간 속에서 그 그림자와 이 형상을 의식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면 봄에 새 잎이 돋아나지만, 이런 사실로써 위로받지 못하고 '그 나뭇잎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서글퍼하는 비유를 하면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아, 미련한 나뭇잎이여! 너는 어디로 가느냐? 그리고 다른 잎사귀들은 어디서 오는가? 네가 두려워하는 허무의 심연은 어디 있는가? 너는 차라리 자기 자신이 나무 속에 숨어서 끊임없이 작용하고 활동하는 힘 속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 힘은 모든 나뭇잎의 세대를 통하여 생사에 구애받지 않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생사에 구애받지 않음이라! 이것이 과연 세상을 '싫어하는' 염세주의자의 생각인가요? 그렇다면 왜 노자와 장자를 두고 염세주의자라고 하지 않는 걸까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노장사상이라 하듯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생각을 쇼펜하우어 사상이라 하면 안 되는 걸까요?

〈사색에 대하여〉와 〈독서와 서적에 대하여〉에서도 깊이 새겨둘만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수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도 의문스러우며, 수량은 보잘것없어도 정리가 잘 된 장서라면 훌륭한 효과를 거두는 것과 같이 지식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진리를 터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여러 가지 지식이나 진리와 결합시키고 비교할 필요가 있다. 이 단계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완전한 자신의 지식이 되고 그 지식을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말이죠^^.
그러나 그는 시종일관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독서에서 얻는 것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나 남이 벗어서 버린 헌 옷에 불과하며, 오로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색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해도 좀 지나치리만치 독서의 '불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최고의 독서법은 "읽지 않는 기술"입니다. 양서를 읽기 위해서는 악서를 읽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을 해치듯 다독으로 부지런한 사람은 점차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말합니다.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책 읽는 것 자체를 게을리하는 사람들이 이 말로써 위안을 얻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이러한 통찰도 결국은 독서와 이에 따른 깊은 사색에서 얻어진 것일테니까요.

쇼펜하우어를 성인(聖人)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역사상 아직 염세적 사상을 가진 성인은 없었습니다. 또한 쇼펜하우어는 그의 생각 또는 주장과는 달리 실제 자신은 명예욕과 질투 또는 시기심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대학에서 헤겔에 맞선 강의를 개설하고 실패하고 저주스러운 욕설을 퍼부은 것만 봐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그가 생사의 구애됨을 거부하였듯이, 아침상을 받고 탁자를 향하고 있는 자세로 조용히 그리고 누구의 간호도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토록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어했던 그의 바람은, 훗날 고서점에서 그의 책을 우연히 발견한 니체로 인해 실현됩니다.

*
여성 혐오주의자

쇼펜하우어를 두고 염세주의자라고 못 박는 것에는 좀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그를 '여성 혐오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한 것 같습니다.
〈여성에 대하여〉에서 그는, "궁극적으로 여성은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여성은 날 때부터 적의를 품고"있는, 이른바 열등성이며 모든 면에서 남성에게 뒤떨어지는 제 2의 성이라고 규정합니다. 혹시 이 여자를 아름다운 성이라고 일컫는다면 이는 "성욕으로 말미암아 지성이 흐려진 남자들뿐"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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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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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새벽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합니다. 매미는 수컷만 울 수 있다죠.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매미의 삶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허무합니다. 7년 여, 많게는 십 수년을 번데기로 살다가 여름 한철 구애의 목청을 높이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충으로 고작 한철만 살다 떠나 갑니다. 그 짧은 생이 아쉬워 새벽부터 이리 울어대는 걸까요.

매미 소리를 듣다가 비운의 정치개혁가 조광조가 떠오릅니다. 3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하고 중종의 총애를 받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중종의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정치개혁가 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 조광조. 십 수년을 묻혀 있다가 고작 한철 암컷을 유혹하여 씨를 뿌리고 세상을 뜨는 매미처럼, 조광조 역시 그 짧은 4년의 행적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낡은 정치의 개혁'이라는 선각자적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4년이라고 해도 실제로 본격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한 건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 매미가 저리 처절하게 우는 건 짧은 생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떠나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인호의 《유림》 1권을 읽었습니다. 조광조 편입니다. 2권은 공자, 3권은 퇴계 이황편입니다. 4,5,6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맹자, 노자, 이율곡에 대한 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정암 조광조가 죽기 직전 유배되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능주의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1권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이런 글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큐 소설'?

1장 〈천인무간〉에서는 적려유허비를 찾아 500 년 전의 조광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천인무간의 사상을 견지했던 조광조에 대한 개관 성격의 글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기묘사화로 불리우는 조광조의 유배와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광조를 찾아 떠나는 본격적인 여행은 2장부터입니다.
2장 〈기묘사화〉에서는 말 그대로 기묘사화의 전말을, 3장 〈지치주의〉에서는 조광조의 핵심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를, 4장 〈문정공〉에서는 조광조의 사후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문정공은 조광조를 존경하였던 선조가 죽은 조광조에 내린 시호입니다.

읽는 내내 몇 년전 TV에서 방영했던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연상되었습니다. 첩의 딸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정난정이 주인공이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조광조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당시 주인공 강수연 뿐만 아니라 경빈 박씨 역을 맡은 도지원의 표독스런 연기가 볼 만 했습니다. 매향이 역의 박주미도 예뻤죠 아마도^^. 드라마인 만큼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역사적 사실보다는 거의 흥미 위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임혁이 갖바치 역으로 나왔는데, 그 당시 저는 갖바치라는 존재 역시 '픽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천민인 갖바치가 조정의 고관대작인 조광조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갖바치는 꽤 비중있는 역사적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광조가 유배지로 떠날 때 그가 건내 준 희고 검은 짝짝이 가죽신 한 켤레와 참언 한 구절은 마지막까지 화두가 되어 조광조에 대한 평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참언 한 구절은 이러합니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저자는 그 가죽신이 바로 '공자'라고 말합니다.

아차차, 이거 천기누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죽신의 비밀을 풀기 위한 저자의 사고의 흐름이 책 뒷부분의 주된 내용인데 그 결론을 미리 말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평론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 천기누설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수많은 고사들이 중첩되어 있어 '지식'으로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출근 시간에 쫓겨 요약 정리할 시간이 부족함이 안타깝네요.

결과적으으로 맥을 못 짚은 리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재미있으니 그 재미를 느끼고 싶으면 직접 봐라,는 식의 무례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제 글 실력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글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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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 생일입니다.
이미 한참 전에 회사 내 책상 달력에 빨간 글씨로 써두었던지라 그냥 지나칠 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늘 바라보면서도, 그 날이 오늘인지는 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 제가 써놓고도 헷갈리는 표현입니다. ㅎ) 그렇게 그동안 시간은 제멋대로 가고 저도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 선물

아내 선물을 뭘로 살까,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습니다. 딱히 지금의 아내 뿐만 아니라 과거 그 누구에겐들 선물하고 감사를 표하고 칭찬을 하고... 뭐, 이런 것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산 지도 벌써 7년인데, 여전히 이런 기념일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저란 놈을 생각해 보건데, 뭐 깊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서두, 능한 잡기 하나 없고 어디 감동 줄 만한 이벤트 하나 기획하지 못하는 놈입니다. 어휘로 보나 어투로 보면 (각고의 노력 끝에) 저를 경상도 놈이라고 보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런 면을 보자면 여전히 영락없는 '경상도 보리 문디'입니다.

회사에는 여자를 대하는 것 만큼은 자타 공인 프로페셔널이 한 사람 있습니다. 곧 장가갈 총각이구요, 물론 아무 여자한테나 껄떡대지는 않습니다. 한 1년 넘게 제가 봐온 바로는 그 '공인'을 어디서 받았는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쨋든, 저보다는 한 수, 아니 백 수 위인 것만은 틀림 없습니다.
그 총각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참~ 속옷을 사가래두요! 제발 시키는 대로 좀 해봐요. 손해 안 본다니까요.' 나 참, 누가 뭐랬남...

땡퇴근을 해서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 이리저리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정말 속옷을 사? 8호선을 타다가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성북행 국철을 타고 내릴 때까지 고민... 하다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안 산다.

그리고 동네 전철역에서 내려 근처 빵집으로 갔습니다. 꽃집은 통과(집에 장미꽃 몇 송이 있는데 더 가져가봐야 처치 곤란. 그리고 오늘의 목표는 최대한 일찍 들어가는 것!).그리고 제일 작은 케익 하나 샀습니다. 케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그래서 차마 초 하나 달라고 하기도 뭣한 손바닥만한 케익을 사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결국 초를 달라는 말은 못했습니다. 한 두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아내가 문을 열고, 저는 조막만한 케익 하나 내밀며,
"이번에 선물 따로 준비 못했어. 그래도 내 맘 알지?"

"그~으럼, 어여 들어와요. 오늘 덥지?"

이것으로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 끝.

# 외식

어제 약속하기로는, 오늘 저녁은 나가서 근처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스파게티를 먹으려 했습니다. 제가 그런 이상한(?)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내가 자주 먹을 일이 없었던지라.
그런데 오늘따라 날씨가 유난히 덥고, 게다가 딸의 몸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아, 피자 한 판 시켜 먹는 것으로 오늘의 外食은 偎食으로 대체.
외식도 끝.
* 偎 : 가까이할 외, 사랑할 외. 고로 偎食은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서 먹는다. (물론 방금 지어낸 말)

# 행복한 변명

쓰고 보니 웃깁니다. 제 못난 자랑을 이렇게 배실배실 실없이 할 수 있다니. 오늘 새벽까지 봤던 고우영의 만화 속 못난이 유방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글을 쓰다니. 아마 맘 속으로부터 행복해서겠죠?

이 즈음해서 저를 좀 삐딱하게 바라보는 눈길이 느껴집니다. 저 위에 썼던 확인 불가능한 '공인' 총각의 눈이 그러할 것 같고, 올해 시집을 간 두 명의 회사 동료의 눈도 그러할 것 같고...

그래서 변명을 좀 할까합니다.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 정말 오랜만에 피자 한 판 시켜 먹은 것. 그냥 마음으로 축하한다고 말한 것. 진심으로 받아 준 것. 이것이 행복합니다.

큰 자극에 익숙치 아니하여 오히려 작은 울림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부부가 사는 법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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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세트 - 전8권
고우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벼르고 벼르던 고우영의 초한지(8권)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주말농장에도 가지 아니하고 읽었습니다. 남들은 몇 시간이면 읽어치운다는 만화를 이틀을 꼬박 다 채워가며 읽었습니다. 주말 내내 딸이 제 주위 반경 1미터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 붙어있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겠지만 원래 그림 보는 속도가 느린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만화도 평소에 좀 읽어 본 사람이나 빨리 읽지, 저처럼 만화 대여점에 제 돈 주고 간 일이 없는 사람에게는 글을 읽으랴 그림을 보랴 더 정신이 없습니다. 누가 옆에서 만화책 보는 제 모습을 봤다면 무슨 대단한 철학서적 읽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하하하~

표정은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참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렇다고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초한지의 결말은, 아시다시피, 교토사양구팽(狡兎死良狗烹)으로 끝납니다. 그야말로 허무합니다.
수많은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장수와 병졸들의 목이 댕강댕강 잘려나가고, 허리가 싹둑싹둑 잘려나가고, 몸둥아리가 좌우 균등 분할되는 장면을, 고우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그저 남정네의 노리개이고, 대의(?)를 위해 변절은 밥먹듯하고... 그 전형적인 인물로 날건달 유방을 그리고 있습니다. 한신의 표현대로 '구역질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초한지를 읽었으니, 아니 보았으니, 거창하게 뭐 느낀 거 없냐구요?
없습니다.

예전에 삼국지를 두어번 읽고 나서, 뭔가 '깨달은' 것처럼, 술자리의 안주로 삼아 떠든 적이 있었는데, 부끄럽습니다. 삼국지가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고 불멸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된 것 역시 부끄럽습니다. 뭐 제가 선정한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본받으라는 건지, 요즘 많이 헷갈리고 있습니다. 초한지도 역시 마찬가지구요. 삼국지 초한지를 읽어야 세상 사는 법을 깨닫는다는 말은 군대 가야 사람된다는 말이나 다름 없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는 법'과 '사람된다'는 말에 어떤 답이 있겠습니까.

고전을 꼭 읽어야한다고 강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나, 고전 - 결국은 역사를 읽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 말은 그저 호들갑 떨며 읽지는 말자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거기에 무슨 답이 있다는 듯이 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횡설수설합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찾아 떠나는 괴철처럼 말입니다.
죽은 한신의 시체를 얻으러 가는 괴철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고도 범하는 것이 사람의 실책이며, 모르는 듯 누리는 것이 인간의 권세인가?"

고우영의 초한지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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