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1 (1부 1권) - 왕도(王道), 하늘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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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일인지 새벽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합니다. 매미는 수컷만 울 수 있다죠. 암컷을 부르는 소리라고 합니다. 매미의 삶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허무합니다. 7년 여, 많게는 십 수년을 번데기로 살다가 여름 한철 구애의 목청을 높이는 것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성충으로 고작 한철만 살다 떠나 갑니다. 그 짧은 생이 아쉬워 새벽부터 이리 울어대는 걸까요.

매미 소리를 듣다가 비운의 정치개혁가 조광조가 떠오릅니다. 33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정계에 진출하고 중종의 총애를 받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중종의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한 정치개혁가 또는 실패한 이상주의자 조광조. 십 수년을 묻혀 있다가 고작 한철 암컷을 유혹하여 씨를 뿌리고 세상을 뜨는 매미처럼, 조광조 역시 그 짧은 4년의 행적을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낡은 정치의 개혁'이라는 선각자적 씨를 뿌리고 갔습니다. 4년이라고 해도 실제로 본격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한 건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 매미가 저리 처절하게 우는 건 짧은 생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꼭 해야할 일을 하고 떠나야한다는 절박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인호의 《유림》 1권을 읽었습니다. 조광조 편입니다. 2권은 공자, 3권은 퇴계 이황편입니다. 4,5,6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맹자, 노자, 이율곡에 대한 글인 것 같습니다.

소설은 정암 조광조가 죽기 직전 유배되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한 능주의 '적려유허비'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1권만 봐서 그런지 몰라도,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픽션보다는 논픽션이 주가 되는 이런 글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다큐 소설'?

1장 〈천인무간〉에서는 적려유허비를 찾아 500 년 전의 조광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하늘과 사람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사람은 하나'라는 천인무간의 사상을 견지했던 조광조에 대한 개관 성격의 글입니다. 조광조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와 기묘사화로 불리우는 조광조의 유배와 죽음의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광조를 찾아 떠나는 본격적인 여행은 2장부터입니다.
2장 〈기묘사화〉에서는 말 그대로 기묘사화의 전말을, 3장 〈지치주의〉에서는 조광조의 핵심 정치사상인 지치주의를, 4장 〈문정공〉에서는 조광조의 사후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문정공은 조광조를 존경하였던 선조가 죽은 조광조에 내린 시호입니다.

읽는 내내 몇 년전 TV에서 방영했던 〈여인천하〉라는 드라마가 연상되었습니다. 첩의 딸로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정난정이 주인공이었는데, 그 시기가 바로 조광조의 시기와 일치합니다. 당시 주인공 강수연 뿐만 아니라 경빈 박씨 역을 맡은 도지원의 표독스런 연기가 볼 만 했습니다. 매향이 역의 박주미도 예뻤죠 아마도^^. 드라마인 만큼 픽션이 상당히 가미되어 역사적 사실보다는 거의 흥미 위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임혁이 갖바치 역으로 나왔는데, 그 당시 저는 갖바치라는 존재 역시 '픽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천민인 갖바치가 조정의 고관대작인 조광조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갖바치는 꽤 비중있는 역사적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광조가 유배지로 떠날 때 그가 건내 준 희고 검은 짝짝이 가죽신 한 켤레와 참언 한 구절은 마지막까지 화두가 되어 조광조에 대한 평가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 참언 한 구절은 이러합니다.
"천층 물결 속에 몸이 뒤집혀 나오고 / 천년 세월도 검은 신을 희게 하지는 못하는구나."
저자는 그 가죽신이 바로 '공자'라고 말합니다.

아차차, 이거 천기누설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가죽신의 비밀을 풀기 위한 저자의 사고의 흐름이 책 뒷부분의 주된 내용인데 그 결론을 미리 말해버렸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아니하고 위와 같은 말의 뜻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또한 이 책은 단순히 인물의 갈등을 따라가는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는 평론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정도 천기누설이 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고 남기고 싶은 말들이 꽤 많았습니다. 특히 이 책은 수많은 고사들이 중첩되어 있어 '지식'으로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출근 시간에 쫓겨 요약 정리할 시간이 부족함이 안타깝네요.

결과적으으로 맥을 못 짚은 리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저 재미있으니 그 재미를 느끼고 싶으면 직접 봐라,는 식의 무례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제 글 실력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글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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