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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2 (1부 2권) - 주유열국(周遊列國), 사람에 이르는 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평점 :
시원한 물에 샤워하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수박을 잘라 먹고, 에어켠 켜놓은 거실에서 앉거니 눕거니 해가며 책 읽는 것, 이 보다 더 시원한 피서법이 또 있을까. 주말에 이렇게 쉬어가며 《유림》 두번째 권 - 공자 편을 읽었습니다.
주말이 이틀이지만 토요일에는 술독이 깨지 않아^^ 일요일에는 가족 행사에 다녀오느라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해, 오늘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한 권 끝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니 열어놓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합니다.
《유림》 제2권의 부제는 〈周遊列國〉 - 말 그대로 여러 나라를 두로 돌아 다닌다는 뜻인데, 공자가 고향인 노나라를 네 번씩이나 떠나 겪었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출국은 기원전 517년 공자 나이 35세 때, 즉 三十而立 하고 四十而不惑하는 사이에 제(齊)나라로 망명을 떠납니다. 제나라로 가는 길에 태산의 산기슭에서 여인의 통곡 소리를 듣게 되는데 이 때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고사가 만들어집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 - 이는 공자가 자신의 나라를 떠나는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노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이 난세 중의 난세였는데, 노나라에서는 임금 소공(昭公)이 세 귀족인 삼환씨(三桓氏)에 밀려 제나라로 도망쳐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로 정치적 망명을 하려했던 것은 노나라의 옛 임금이 가 있는 곳이기도 했고, 또한 당시 가장 뛰어난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는 안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고사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귤이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그것은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 시면 작고 시고 떫어서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을 했던 것도 안영입니다.
그러나 공자의 망명 생활은 그의 뜻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춘추전국시대 통틀어 최고의 재상인 안영이 공자를 끝까지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임금 경공은 공자를 중용하려 하나 안영이 끝까지 반대를 합니다. 철저하게 현실주의자였던 안영의 눈에 공자는 이상주의자처럼 비쳤기 때문입니다. 안영은 경공에게 "중니(공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보이기는 하오나 실용적이지 못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제나라의 대부들은 모두 공자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공자가 등용되어 실권을 장악하면 자신들의 위치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객을 보내 공자를 죽어려했다고까지 합니다.
이렇듯 공자의 망명 생활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게 되고, 불과 일년 남짓 머물다가 다시 노나라로 돌아가게 됩니다.
두 번째 출국은 기원전 506년 공자 나이 46세 때 주(周)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첫 번째 출국이 정치적 망명을 위해 떠난 것이라면 두 번째 출국은 노나라 임금의 허락을 얻어 수레와 말까지 하사받아 떠난 호화 여행이었습니다. 이 여행의 목적은 노자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를 '신들의 만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노자가 서로 '인간'의 모습을 지닌 채로 만난 이 사건을 저자는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노자의 사상과 공자의 사상의 차이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만남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공자와 노자의 만남은, 그러나 싱겁게 끝나고 맙니다. 평행을 달리는 두 사람의 사상적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집니다.
노자를 만난 공자의 첫 마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주십시오." 노자 왈 "예에 대해서라면 더구나 나는 할 말이 없네." 그래도 재차 묻자 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란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그대도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 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말일세."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할 법하지만, 후에 공자는 제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만나 뵌 노자는 마치 용과 같은 분이셨다." 용 - 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동물입니다. 한편으로는 노자를 마음 속으로 존경하지만, 인간사를 포기할 수 없는 공자의 무언의 항변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 이후로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가는데, 이 때부터 제자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하고, 노자는 영원히 은둔 생활을 하려 세상을 등지려 합니다. 노자가 은둔하기 위해 길을 떠나던 중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이를 알아 본 윤희라는 관리의 간청으로 노자는 며칠 만에 《도덕경》을 써주고 떠납니다. 노자 유일의 저서인 《도덕경》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노자에 대한 행적은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오로지 전설만이 남게 됩니다.
제3장의 제목은 〈황금시대〉입니다. 기원전 501년 공자 나이 51세 때, 공자는 처음으로 중도재라는 벼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에 뛰어듭니다. 중도재는 중도라는 도시의 장입니다. 공자는 이를 적극 활용하여 정치가로 갓 데뷔하자마자 뛰어난 외교가로서의 활동을 보입니다. 이웃 제나라의 침략 시도를 번번히 물리칩니다. 이로 인해 공자는 다음 해에 사공(司空)이라는 더 높은 벼슬을 얻게 됩니다. 비로소 중앙의 행정장관으로 진입한 것입니다. 공자 나이 54세 때에는 오늘날 대법원장 겸 법무장관에 해당되는 사구(司寇)라는 벼슬에 등용됩니다. 공자는 백성들의 죄에 대해서는 너그러웠지만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할 높은 자와 가진 자의 죄를 묻는 데는 매우 엄하게 하는 원칙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져갑니다. 말 그대로 공자의 황금시대인 것입니다.
이 때 공자는 모험을 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도를 실현하기 위해, 삼환씨의 세력을 제거하고 노나라의 임금인 정공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삼환씨의 도성을 허물고 사병들을 해체하려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공자의 의도대로 모두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삼환씨 중 마지막 맹손씨의 성을 함락하지 못합니다. 삼환씨의 저항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노나라에는 오랜만에 평화의 시기가 도래합니다.
다음 해에 공자는 최고의 재상인 대사구(大司寇)에 등용됩니다.
이렇게 노나라가 안정되고 국력을 키워가자 이웃 제나라는 위협을 느낍니다. 안영은 수 년 전에 죽고 제나라는 대부 여서가 중심 인물이 되었습니다. 제나라 임금 경공은 노나라가 힘을 더 키워 제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미리 땅을 떼어 노나라에 바치자고 합니다. 그만큼 공자로 인해 노나라의 힘이 커져가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여서는 땅을 떼어주기 전에 노나라를 한번 흔들어보자고 제안합니다. 바로 미인계. 여서는 노나라 임금 정공과 계환자가 여색을 매우 좋아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여서가 뽑은 80명의 미녀들에게 혼이 빼앗겨버린 정공과 계환자는 나라를 돌보는 일을 잊어버립니다. 공자는 탄식을 한 후, 미련 없이 노나라를 떠납니다.
공자는 황금시기를 스스로 마감하고 다시 먼 길을 떠납니다. 이 때가 공자 나이 56세. 그렇게 나라 밖으로 떠난 뒤 다시 돌아온 때가 68세 때. 공자는 이로부터 13년 동안 열국을 주유하게 됩니다.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합니다. 이때가 세 번째 출국. 이때부터 공자의 고행은 시작됩니다. 제3장의 제목이 상가지구(喪家之狗) 즉 초상집의 개라는 뜻입니다. 이 당시 공자의 상황을 표현한 말입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 때 공자가 70여 나라를 주유했다고 하나, 실제 기록은 위, 진, 섭 세 나라 뿐입니다. 그 전에 제와 주나라를 갔으니, 다 합쳐도 다섯 나라에 불과합니다. 결국 70여 나라를 유세한 것이 아니라 서너 개의 나라를 반복해서 순회했으며, 공자 자신은 더 많은 전국시대의 왕들을 만나고자 했지만 다른 나라의 임금을 만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4장과 제5장, 즉 세 번째 출국와 네 번째 출국을 다룬 장에서는 공자의 파란만장한, 그러나 심히 힘든 열국 주유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열국의 왕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거나 제후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거나 가택 연금을 당하거나, 급기야 제자들로부터도 의심과 반항을 받게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힘든 13년의 세월을 마감하고 노나라로 돌아오는 공자. 그것도 그의 제자 염구가 노나라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자가 주유열국의 종말을 고하며 하는 말, "새가 나무를 선택해야지(良禽擇木) 어찌 나무가 새를 선택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현명한 사람은 자기재능을 키워줄 만한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긴다는 뜻입니다. 책의 마지막장 제5장의 제목이 바로 <양금택목(良禽擇木)>입니다.
이 외에도 자공과 자로 또한 각각 독립하여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공은 노나라 사신으로 등용되어 당대에는 공자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또 제자들을 두어 공자의 사상을 이어나갑니다. 공자가 그들에게 그러했듯이.
공자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발전된 건 이러한 제자 집단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의 순서에 따라 공자의 여정을 옮겨놓다보니 정작 공자 사상의 진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이 짧은 글을 통해 더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살아있는 공자의 생생한 모습을 보시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수 많은 책들이 공자의 단면만을 부각하거나, 그의 사상만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작가 최인호는, 공자가 그의 사상을 완성하고 실현시키기 위해 전국시대의 열국들을 두루 돌아다니며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다시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자를 이해하는 데 이만한 텍스트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논어를 보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논어를 다시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