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오래 보기 - 진정한 관점을 찾기 위한 기나긴 응시
비비언 고닉 지음, 이주혜 옮김 / 에트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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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었든지 결국 모든 것은 관점이라는 지배적인 문제로 돌아갔다. (중략) 그저 관점을 하나 ‘가지기만‘ 해도 정말로 할 말이 있을 때와 단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종이 위에 검은 점을 옮기고 있을 때를 진지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9쪽)

이 판에서 그 남자들과 동등하게 여겨진 유일한 여성들이 메리 매카시와 한나 아렌트였고, 나머지는 사교 모임에는 받아들여졌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아내들이나 여자친구들이었다. (62쪽)

그러나 이와 같은 문장을 - 우리의 실제 삶과 너무도 동떨어진 - 표현력 있는 언어를 향한 사랑으로 반세기 전과 똑같이 찬사를 받는 예술가의 작품에서 읽는다는 것은 슬프고도 혼란스러운 일이다. (118쪽)

실천과 이론 사이 가장 중요한 차이를 만드는 정확한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 - 내면의 혼돈 - 이다. 그 차이 안에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삶이 존재하는데, 중재를 위한 이성이 영원히 감정적 갈등에 사로잡혀 있는 바람에 우리가 자신을 대하듯 진실로 타인을 대하기 위해 필요한 존중을 서로에게 허용하는 능력이 꾸준히 훼손되고 있다. (139쪽)

다시 말해 세계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결과라는 통찰이다. 자유롭게 숨 쉴 필요는 주어진 것이지만 자유롭게 숨 쉴 권리는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 권력을 향한 의지는 거리를 차지하기 위해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의 권리에 지속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체화된 힘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은 그 도전을 자유롭게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그 도전은 해당 조건 속에서 저항해야 한다. (179쪽)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행동력이 필요하다. 행동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정말로 행동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180쪽)

[남자로서 나의 삶]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여성협오는 느리고 새까만 독처럼 페이지 곳곳으로 새어 나와 예술적 일관성을 흐리고, 도덕적 지능을 붕괴시키며,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실상 아무 소용 없을 정도로 작품의 진정한 주제를 너무도 사적이고 추악하게 만들어버린다. (282쪽)

내가 보기에 여성의 종속은 여성의 결혼이 중추적인 경험이라는 -남성과 여성 모두 공유하는- 확신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중략) 결혼해 ‘보살핌을 받을‘ 것을 ‘깊이‘ 아는 여성은 -그래서 결혼이 인생의 중심 사건임을 아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경험 자아를 남편에게 넘겨주는 것이고, 그 경험 자아는 남편이 자신의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분의 무기가 된다. (중략) 오늘날 페미니즘의 과업은 여성의 경험 자아를 다시 창조하는 일이다. 오래된 반응, 오래된 습관, 오래된 감정적 확신을 새로운 관점, 즉 새로운 의식의 관점으로 다시 검토하는 광범위한 내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290-291쪽)

궁극적으로 우리 예술은 우리의 두려움에 엮인 욕망의 진영을 반영한다. 사회운동은 두려움이 우세를 물리치려는 본능적 욕구에서 곧바로 나올 때 의미가 있다. 그 욕구가 감정적인 -그리하여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서서히 확립하고 서서히 강제하는 한 가지 생각이 된다. (중략) 이제 가장 어두운 불안보다 명백한 욕구에 따라 행동하게 될수록 여성적 감수성도 성장할 것이고, 그렇게 발달하는 감수성으로 쓰여질 소설들은 동시에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즉 경험하는 자아의 해방을 향한 길잡이이자 반영이 될 것이다. (316-317쪽)

고닉이 존중하는 ‘증언‘ 혹은 경험의 진술은 상상력이 풍부한 언어를 동반해야 하는데, 이 언어를 음미하며 대화를 나누고(‘독서모임‘ 같은 실제 대화와 작품 속 페르소나와의 대화를 모두 말한다) 읽기 전과는 다른 지평으로 자신을 데려가는 행위가 고닉에겐 바로 궁극의 일기다. 그러나 고닉이 생각하는 상상력이 풍부한 언어는 소위 ‘미문‘이 아니다. 온갖 수사를 동원한 언어보다 경험의 의미를 가장 명료하게 전달하는 언어다 고닉에겐 가장 아름다운 언어일 것이다. (3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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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의 말 (경쾌한 에디션)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수전 손택 & 조너선 콧 지음,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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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바로 지금 겪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28쪽)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60쪽)

산다는 건 일종의 공격이에요. 세계 안에서 움직이다 보면 온갖 차원에서 공격과 연루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인이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을 점유하고 걸을 때마다 식물군, 동물군, 작은 생물들을 짓밟게 되죠. (82쪽)

사유와 감정의 분리를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요.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사실 모든 반지성적 견해들의 기반이죠. 심장과 머리, 사유와 감정, 판타지와 분별....... 전 그런 이항 대립이 옳다고 믿지 않습니다. (102쪽)

내 상상력이 제멋대로 뛰어다니게 두는 건 나를 어디 다른 곳으로 데려 가주는 교통수단 같아요. 정확하게 내가 하는 일, 생각하고 느끼는 것, 내가 사는 방식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해주거든요. 그래서 그런 게 좋은 거죠. 그래서 자전적인 글을 쓰지 않는 거고요. (156쪽)

언어가 참 근사한 건 우리가 같은 사물에 대해 이처럼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단어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언어가 무한한 보물인 거에요. (168쪽)

궁극적으로 우리는 거짓되고 선동적인 해석들을 파괴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중략) 저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바 작가의 소명은 온갖 종류의 허위에 맞서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에요...... 역시 마찬가지로 이것이 끝없는 작업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하는 일이죠. 아무리 해도 허위나 허위의식이나 해석의 체계를 끝장낼 수는 없을 테니까요.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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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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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을 위해 그만큼 울었을 거이고 남편을 다시 만나서도 그만큼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131쪽)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사람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고. 사람이 저지른 일이야. (162쪽)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206-207쪽)

불행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겨우 한숨을 돌렸을 때, 이제는 좀 살아볼 만한가보다 생각할 때. (266쪽)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고 살면 안 되갔어?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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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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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고, 핑계였다. 서있는 자도 아니고, 쓰러진 자도 아니고, 앉아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자였다. 전날도 아니고, 이튿날도 아니고, 같은 날이었다. 북역도 아니고 리옹역도 아니고, 생라자르역이었다. 부모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친구였다. 욕설도 아니고, 조롱도 아니고, 의복에 관한 조언이었다. (29쪽 부정해가며)

남자를 생라자르역 앞에서 다시 보았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 나는 그 조금 올려 달라고 그에게 말하는 그는 자신의 외투 위로 단추를 동료와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89쪽, 어절 단위로 늘려가며 바꾸기)

결국 두 시간 후, 생라자르역 앞에서 의복 개량을 그에게 제안하고 있는 우아한 친구 하나와 동행중인 이 인물이 다시 출현하여 내게 준 인상을 어떻게 진술하면 좋을까? (119쪽, 뭐라 말하면 좋을까?)

문학적이지도 않고, 유달리 흥미를 끈다고 할 수도 없으며, 아슬아슬한 모험담도 아니고, 서스펜스가 가득한 추리들도 아니며, 유머러스한 콩트도 아니고, 삶의 지혜나 심오한 철학이 배어있는 에세이도 아니며, 유려한 시나 웅장한 연설도 아닌, 그저 (중략) 어느 날 오후, 정오 무렵에 벌어진 이야기 하나를 우리는 보고 있다. (154-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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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 - 여든 이후에 쓴 시인의 에세이
도널드 홀 지음, 조현욱.최희봉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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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해도 별수 없다. 노령이라는 세계는 미지의 우주이자 뜻밖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18쪽)

글쓰기의 가장 큰 즐거움은 고쳐쓰기에 있다. (26쪽)

이혼은 슬펐다. 이혼은 항상 슬프다. (중략) 자라온 환경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취향은 달랐다. 내가 꿈꾸는 문학적 성공은 커비가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준비와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는 이국적이어서 매력으로 느껴졌던 차이점들이 점차 보기 싫어졌고 나중엔 관계를 무너뜨렸다. (66쪽)

계속해서 추락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리함이지 불명예는 아니다. (138쪽)

크리스마스나 생일에 물건을 받는 것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책이라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좋다. (중략) 어떤 친구들은 죽어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치매에 걸려버리고, 어떤 친구들은 서로 싸우고, 어떤 친구들은 늙어서 침묵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198쪽)

전체적으로 나는 똑같은 하루를 매일매일 산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잠깐 지루하다고 느낄 뿐 별로 개의치 않는다. (203쪽)

내겐 언제나 시가 중요했고 다른 건 거의 없었다.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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