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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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설과 사진, 음악 등 여러 영역의 미적 현상들을 다양한 이론의 도움을 빌려 읽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와 삶이 갇혀 있는 신화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일에 오랜 지적 관심을 두었다. 시민적 비판정신의 부재가 이 시대의 모든 부당한 권력들을 횡행케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믿으며.. (표지 안, 저자소개)

살아 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24쪽)

흐른다는 건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 그러나 흐르는 것만이 살아 있다. 흘러가는 ‘동안‘의 시간들. 그것이 생의 총량이다. 그 흐름을 따라서 마음 놓고 떠 내려가는 일 - 그것이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자유였던가. (51쪽)

세상의 일상은 무사하다. 그 무사함 안에 팩트들이 들어 있다.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중략)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60쪽)

긴 세월 타지에서 성실한 삶을 배운 뒤에 어느 날 문득 그곳이 타향임을 발견하고 고향을 기억하는 마음 같다고 할까. (중략) 한 생을 세상에서 산다는 건 타향을 고향처럼 사는 일인지 모른다. (62-63쪽)

많은 것이 달라졌다. 또 많은 것이 그대로다 어디에 발을 딛고 설 것인가. 답은 자명하건만 그 자명함 앞에서 매일을 서성인다. 서성임, 그건 자기연민일 뿐이다. (115쪽)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45쪽)

나는 말해야 한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166쪽)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건 나의 죽음이 누군가를 죽게 하고 누군가의 죽음이 나를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187쪽)

선한 사람이 된다는 건 온전히 기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선함이 사랑하는 정신의 상태라면 기쁨은 사랑받는 육체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194쪽)

사랑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건 내부에만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외부로의 표현이다. 사랑의 마음, 그건 사랑의 행동과 동의어다. (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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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 문학과 삶에 대한 열두 번의 대화
장정일.한영인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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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는 국민인데, 막상 정치라는 게임(노름판)에서는 주인이 아닌 겁니다. (중략) 투표를 독려하는 말 가운데, 선거는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최악과 차악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만큼 큰 차이가 있다는 의미죠. 그런데 한병철의 [피로사회]를 다시 읽으며 참 재미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차이란 같은 것das Gleiche이나 마찬가지다"(13쪽) 이런 명제가 나오게 된 책의 전체 맥락을 깊이 살펴야겠지만, 저 명제는 어디서든 써먹는 게 가능한 ‘스위스 칼‘ 같은 명구군요. ‘차이‘가 중요한 정치적 동기이자 자원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생각하면 반시대적이기까지 합니다. (51-52쪽, 장정일)

차이에 대한 기만적인 인정으로 무언가를 봉합해버리려는 편의적인 행태에 대해, 저 역시 선생님과 똑같이 못마땅해하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 그 다름 속에서 한껏 부대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계기를 촉발하지 않는 타자는, 아무리 ‘차이‘라는 명분으로 세련되게 포장하더라도 결국 동일성의 반복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 선생님과의 대화 혹은 열띤 논쟁이 즐거웠던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합의와 존중의 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7쪽, 한영인)

문학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는 것‘에 대한 ‘믿는 것‘의 우위가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문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문학을 알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문학 대신 옛 신문과 잡지, 영화, 드라마 등을 들여다봅니다. (중략) 문학에 대한 ‘앎‘이 문학에 대한 ‘믿음‘을 초과하게 되는 순간 문학의 죽음은 시작되는 것이겠습니다. (137쪽, 한영인)

조국 사태의 핵심은 조국이라는 고유명일 수 없죠. 그런데도 계급 사이의 불공정은 물론, 교육이 계급을 재생산한다는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 ‘조국 사태‘는 조국 부부의 인격과 그들이 법정에서 받게 될 ‘유죄냐, 무죄냐‘의 문제로 축소되었습니다. (중략)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학창시절 준비할 수 있는 ‘스펙‘이 차이가 나고, (중략) 그가 드러낸 사태의 본질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난생처음 받는 공포스러운 질문이 있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 어느 족을 선택해도 뒤끝이 좋지 않으리란 것을 아이는 직감적으로 압니다. 그런데도 기어코 한쪽을 택하게 되는 것이 아이가 처한 조건 또는 우둔함이죠.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는 이렇게 대답해야 해요. "나는 피자가 좋아!" 우물가에서 당장 숭늉을 마실 수 없듯이, 피자를 먹으려면 화덕부터 만들어야죠. 화덕을 만드는 게 진보죠. (157쪽, 장정일)

위악적인 사람은 거짓의 휘장을 벗고 가장 취약한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순간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지만 위선적인 사람은 오직 남에 의해 까발려질 때만 자신의 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게 됩니다. 이처럼 위선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립적으로 관계할 수 없기에 도덕적 능력 또한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172쪽, 한영인)

눈에 보이는 오보로 인한 피해보다 ‘아무 생각 없음‘에 의해 발생하는 피해가 더 막대한데 언론중재법으로는 그와 같은 피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레거시 미디어가 자신들이 쓴 기사에 대해 아무런 책임감을 가지지 않듯 트위터리언들도 자신이 과거에 했던 트윗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서이제의 작품 [셀룰로이드 필름을 위한 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혐오를 세상에 대한 혐오로 치환하며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말만 내뱉을 뿐, 자기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해본 적 없는 인간들"(44-45쪽)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이지만 이런 부류들에 대한 아주 정확하고 인상적인 소묘라고 생각합니다. (225-226쪽, 한영인)

‘뻘짓‘은 ‘행위로의 이행‘이라는 지젝의 용어로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형도 알다시피 행위로의 이행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알리바이, 혹은 주체의 무기력을 감추기 위한 과잉 행동을 가리키죠. (중략) 그런데 전후 한국소설의 기본 바탕이 모두 이랬습니다. 거의 모든 작가가 행위로의 이행을 일삼습니다. 대표적인 작가가 손창섭이죠. 못나기 짝이 없는 가족과 친구들끼리 서로를 조롱.학대하고 시기.질투합니다. 적을 똑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임현의 "멜랑콜리적 죄의식" 역시 행위로의 이행으로 볼 여지는 없을까요. 한국의 근대 문학은 전후는 물론 4.19 이후에도 오랫동안 자신을 억압하는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적과 정면 대결하기를 회피했습니다. (중략) 적을 놓치고 적을 외면하면 할수록 증상으로서의 죄의식은 깊어지지요. (276-291쪽, 장정일)

제가 써왔던 비평이나 에세이에 거짓이나 허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 곧 진실을 말했다는 뜻은 결코 아니죠. (중략) 거짓되진 않지만 동시에 진실도 없는 이야기. 그에 비하면 소설은 허구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거짓을 초과하는 진심이 들끓곤 합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마땅히 분석과 비평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죠. (420쪽, 한영인)

저는 한국어로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한국문학의 내부자입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너무 아이러니합니다. (중략) 제가 한국문학을 읽는 것은 업계에 있어서라는 말이죠. 바로 이렇기 때문에 업계에 포획된 사람, 형 같은 평론가에게 절실한 것이 내부를 대타화할 수 있는 능력이고 거리 두기죠. 형 말처럼, 요즘 세상에 "거짓되진 않지만 동시에 진실도 없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이 지점에서부터 점검해볼 수 있습니다. (446쪽, 장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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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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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1쪽)

나는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중략) 나는 ‘언제나‘와 ‘어느 날‘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 기호들을 한데 모으면 나의 열정을 좀더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다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26-27쪽)

우리가 함께 사랑을 나누는 순간이 아니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언젠가 그 사람이 떠나는 순간이 올 거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나는 고통수러운 밀의 괘락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39쪽)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중략)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47쪽)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중략)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대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52쪽)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이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59쪽)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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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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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위로할 길이 없는 법이다. (21쪽, 봄)

그녀 생각으로는 이유 없는 심술과 똑똑함은 절대 공존할 수 없었다. (39쪽, 봄)

서로 간에 불꽃이 일어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그들에게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들은 예전에 알았던 쾌락을 더는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육체의 한계를 잊었다. 수치심이라든지 담대함이라든지 하는 단어들이 그만그만하게 추상적이 되었다. 이제 한두 시간 뒤에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이 부도덕하게 여겨졌다. (70쪽, 봄)

많은 은밀한 관계들이 이런 식으로 침무고가, 질문의 부재와, 되집지 않는 문장과, 작정하고 선택한 평범한 단어, 너무 평범해서 엉뚱해 보이는 단어에 의해 발각된다. 어쨌든 루실과 앙투안의 웃음을, 그 행복한 표정을 처음 보는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83쪽, 봄)

‘당연히 그가 돌아온 이후로 한 침대를 썼지. 이따금 그랬던 것처럼. 당연히 그건 너와 나 사이에 일어난 일, 그 영역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어. 그 영역, 그건 열정이고 열정은 다른 어떤 것과도 같지 않으니까. 내 몸은 너하고 있을 때만 상상력이 풍부해지고 똑똑해져. 너도 그걸 알 거야.‘ 그는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종류의 일에서 남자가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이미 수천 번이나 알려지고 확인된 통념이었다. (148-149쪽, 봄)

실제로 더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그것은 결국 우리고 충만함이라고 부는 것이었다. 하지만 루실은 언젠가, 어느 훗날엔, 이 충많ㅁㅁ의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어찌하면 좋을 지 의문이었다. 그녀는 행복했고, 두려웠다. (184쪽, 여름)

루실은 이제 칵테일의 강렬한 빛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 알코올은 가차없고 결정적인 투광기가 되기도 하는데, 이 투광기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기 위해 매일 자신에게 했던 수천 가지 거짓말들을 적나라하게 비추었다. 그녀는 불행했고, 그것은 부당했다. 스스로에 대한 한없는 연민이 엄습해왔다. (212쪽, 가을)

예전엔 기다림으로 충만했던 빈 시간들이 정말로 빈 시간들이 되었다. 그녀가 그를 기적이 아닌 일상으로서 기다렸기 때문이다. (253쪽,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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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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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흥분이라 부르지만, 사실 그 말이 암시하는 바는 드디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 연인이 나의 본모습에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격려하고 인정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발견의 기쁨이다. (45쪽)

우리를 흥분시키는 구체적 요인들은 기이하고 비논리적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보다 건전하다고들 하는 다른 삶의 영역들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자질, 즉 이해, 공감, 신뢰, 조화, 관대함, 친절함의 메아리가 담겨있다. (47쪽)

결혼했다는 것은 조심성, 보수적 경향, 소심함과 연관 지을 수 있지만, 결혼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더 무모하고 그래서 호소력이 더 큰 낭만적 제안이다. (58쪽)

사실 라비와 커스틴의 결혼 생활에서 ‘아무것도 아닌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말다툼은 거의 없다. 작은 쟁점들은 사실 단지 필요한 관심을 받지 못한 큰 쟁점들이다. 일상에서의 논쟁은 그들 성격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어져 나온 실밥이다. (78쪽)

의사 전달을 잘하는 기본 요건은 자신의 성격 중 더 문제가 되거나 더 특이한 면이 있더라도 그 때문에 당황하지 않는 능력이다. (중략) 의사 전달을 잘하는 이런 사람은 어릴 적 모든 면에서 적절하고 완벽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도 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보호자로부터 보살핌을 받는 축복을 누렸음이 분명하다. (100-101쪽)

사랑의 모든 가정들 중 아주 알팍하리만치 불합리하고 미숙하고 개탄스럽지만 그럼에도 가장 흔히 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사랑을 서약한 사람이 우리의 감정적 실존의 중심일 뿐 아니라 - 그 결과로서, 또한 대단히 이상하고 객관적으로 비상식적이고 아주 부당한 방식으로 -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다 그에게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에는 기이하고 병적인 특권이 있다. (122쪽)

사람은 누군가의 곁에서 안전한 느낌을 받을 때에야 이 정도로 괴팍해질 수 있다. 아이가 떼를 쓰려면 먼저 주변 분위기가 충분히 호의적이어야 한다. (중략)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양치질, 숙제, 방 정돈, 취침 시간, 마음 넓게 쓰기, 컴퓨터 사용 제한에 대해 말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재미가 정말 시작되려는데 삶의 달갑지 않은 면들을 들이미는 싫고 짜증 나고 따분한 배역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듯 사랑을 드러나지 않게 실행한 결과로, 좋은 부모는 그 실행이 잘된 경우에 강렬한 분노와 적개심을 표적이 되고 만다. (166-168쪽)

심지어 우리는 외도라는 배신 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기이하게도 이는 우리가 상대방을 필요로 하지 않는 척하면서 체면을 지키려는 시도일 때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정말 마음을 쓰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은연중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차마 드러내지 못하고 그 사람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확보하고 아무도 모르게 제시하는 고달픈 증거인 것이다. (181쪽)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 기대하는 것은 고통의 평등이다. 그러나 괴로움의 복용량을 정확히 똑같게 계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은 주관적인 경험으로, 각 당사자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이 더 저주받았으며 파트너는 이를 인정하거나 속죄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언제라도 진지한 경재에 돌입할 수 있다. 자신이 더 힘들게 살고 있다는 자기 위안식의 결론을 피하려면 초인적인 지혜가 필요하다. (194쪽)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또한 파트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간밤에 어디에 있었는지 등등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의심이 들어도 (우리의 관계가 훌륭하다면 주기적으로 그럴것이다), 날카롭고 무자비한 심문자처럼 굴지 않는 편이 좋다. 그저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편이 더 친절하고 더 현명하고 사랑의 참된 정신에 더 가까울 수 있다. (241-242쪽)

사랑은 아주 든든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이 이해되고 있다는 경험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은 나의 외로운 내면을 이해하고, 나는 왜 하필 그 농담이 그렇게 재미있는지를 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공동의 적을 미워하고, 상당히 특화된 성적 시나리오를 함께 시도해보고 싶어 한다. 이 상황이 영원히 계속되진 않는다. 연인의 이해 능력에는 적정 한계가 있고, 우리는 언젠가 그 한계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직무유기라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애석하도옥 무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랑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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