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CEO 읽는 CEO 1
고두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처럼 시가 간절해지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유치원을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속에 맴도는 수많은 말들을 차마 내뱉지 못할 때마다, 감성의 메마름을 탓한다. 옛사람들은 산을 볼 때마다 ,자연을 그릴 때마다, 벗과 함께 할 때마다 시를 짓고 시와 함께 한 생활을 하였건만 점점 시가 우리의 삶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산을 보고도 한 편의 시도 떠오르지 않다니 하며 상념에 잠겨있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격세지감에 빠져 있는 내안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김광석의 노래가사는 우리의 인생무상을 너무도 잘 표현해주는 노래라 듣고 나면 고독해진다. 나는 젊은 날에 여느 젊은이들처럼 성공에 목말라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성공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신문에는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화중씨가 유치원에 들려서 "할머니처럼 유치원부터 계속 1등 하면 장관이 되었고 장관이 되면 아주 좋아요"라고 하며 "독일과 미국으로 돈 안 들고 유학가게 되면 장관이 되니. 학교 들어가서 1등만 하세요" 라고 말한 사실이 확인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 성공했다는 사람이 유치원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고작 이런 말 밖에 없는 것이다. 아직도 성적지상주의에 물들어 있는 학교교육은 결국 이런 인재밖에 낳질 못하는 것이다.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더니 유치원에서 한글을 가르친다며 쓰기를 시키는 것도 모자라 숙제를 내주기에 유치원을 바꾼 적이 있다. 공부는 가르쳐주지 않고 노는 유치원으로 보내자 큰아이가 선생님에게 한 첫마디는 " 선생님 , 정말 숙제 안내주나요? , 진짜 놀기만 해도 되요? "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큰아이는 원없이 놀았고 지금도 유치원에 대한 즐거운 기억만을 이야기한다. 나는 교육이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가난과 싸워야 했고 계속된 사업실패에 아내에게는 버림받고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남은 건 빚더미 뿐인데다, 극한상황에 빠져 정신병원 신세까지 진 후 65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를 낸 사람이 있다. 바로 KFC 매장 앞에 서 있는 흰양복에 지팡이를 걸치고 서있는 노신사의 이야기다. 커넬 샌더스, 그는 "훌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무언가를 할 때만다 그 경험에서 배우고, 다음번에 더 잘할 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 이런 말을 남긴다. 만약 복지부장관이 그 날 유치원에 와서 이런 명언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부는 못해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예요 . 라는 상식적인 말 정도를 해 주었더라면 한 아이의 마음에 적어도 희망이 싹틀지도 모를텐데 말이다.

 

성공이란

랄프 왈도 에머슨

날마다 많이 웃게나,

지혜로운 사람에게 존경받고

해맑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거짓된 친구들의 배반을 견뎌내는 것,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알아보는 것,

튼튼한 아이를 낳거나

한 뼘의 정원을 개선하거나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이 시는 우리사회가 성공이란 개념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시이다. 더군다나 한국사회에 뿌리깊은 성적지상주의는 결국 아이들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 될 사람들조차 유치원에서 1등하면 자기처럼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이란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이다. '시 읽는 CEO'는 CEO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시를 읽는 이유와, 그 이유를 중심으로 기획된 신개념 자기계발서이다. 저자는 경제신문사 기자라는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시인이기에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함께 진정한 성공과 행복에 대해 깨닫고 구체화할 수 있는 자기창조의 지혜를 들려준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지혜로운 선택과 풍요로운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귀기울여 볼만한 책이다. 우리에겐 다름 무엇도 아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 필요한 때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즈음, 시 권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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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향기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개정판
게르하르트 J. 레켈 지음, 김라합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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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터키속담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주 오래 된 습관이라 존재자체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우며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많이 커피를 마신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한 잔의 커피같은 것이지도 모르겠다. 한 잔의 커피 안에 눈물을 담기도 하고 , 또 한 잔의 커피에는 사랑을 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빈 잔이 되어버리는 커피의 숙명은 바로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커피와 관련된 책을 꼭 보게 된다. 봄볕조는 병아리님의 블로그에서 커피향기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다른 무엇도 아닌 "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커피를 안다고 하지 말라." 라는 문구였다. 최근 읽었던 독일문학 제드 러벤펠드의 <죽음본능>과 같은 느낌의 추리소설인데 죽음본능보다 휠씬 더 뛰어난 작품같다.

 

 

커피를 마시고 250명이 집단 사망하는 사건이 베를린에서 발생하자 도시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게 되고 아무도 커피를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잇다른 커피로 인한 사망자들이 계속 발생하게 되자 커피는 국가차원의 테러음료로 변한다. 여기에 커피를 사랑하는 한 남자 한스 브리오니는 개인 로스터로 베를린에서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250명이 커피로 집단 사망할 때 아들 야콥도 커피를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드라쿠스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모두 사망하자, 아들 또한 사망하게 될 까 걱정과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브리오니는 과거 커피를 연구했던 모임을 기억해내고 거기에서 만난 한 여자 크리스티네 사보이에게 당시 커피연구의 보고서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나 크리스티네 사보이를 찾아간 순간부터 브리오니는 테러 피해자에서 테러 협박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버린다. 그리고 브리오니를 피해자로 취재하던 새내기 여기자 아가테 역시 커피에 관하여 지나치게 박식하며 커피외에는 과거 대형커피사(드라쿠스)를 상대로 과격한 문서를 작성한 적이 있는 브리오니를 협박범으로 의심하게 되지만 아들 야콥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브리오니와 같은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뜻하지 않게 사건의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위에 염증이 있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아가테에게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커피와 제조법, 도망자 신세에도 커피 두봉지를 챙긴 브리오니를 처음에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아가테는 브리오니의 커피에 대한 상식과 열정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데 아가테와 브리오니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베를린에서 중부 유럽을 가로질러 커피 집들의 도시인 빈으로 간다. 이 여행 중에 두 사람은 커피가 지난 250년 동안 정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는데 돔마이어 교수의 '커피 박탈 영향에 대한 연구서' 에서 계몽의 시작은 커피향기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앞서 커피반입량이 껑충 뛰었으며 프랑스 혁명에 비해 독일의 혁명세력이 약한 것은 커피를 묽게 마셨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연구자료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논문자료의 후원을 ‘시간 늦추기’ 라는 커피협회에서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돔마이어 교수처럼 후원을 받은 코르프 박사는 커피가 뇌에 미치는 진보적인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커피를 통하여 일어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논문자료를 교수들에게 부탁하였다는 이야기이지만 교수들은 자신들의 후원금출처도 모르고 있었다. 정작 이 논문의 의뢰인은 오로지 한가지가 궁금하였다는 결론을 알게 된다. 커피를 없애면 혁명의 기운이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는 '대개혁' 안을 발표하고 전국적으로 커피판매는 중지된 채 시작된 국민들의 혁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에게서 커피를 빼앗음으로서 이 사회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해외문학중에 유독 독일문학을 좋아하는데 독일문학은 대체적으로 인문학적인 사고와 추리소설의 결합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제드 러벤펠드의 <죽음본능>에서는 프로이트의 사상과 추리소설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주었는데 <커피향기>는 커피와 정치, 사회, 경제, 역사가 잘 어우러진 추리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스라는 양념을 추가하니 지루할 틈도 없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적으로 당장에 커피가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아마도 먹고 죽더라도 커피를 마실 것 같다. 커피에 얽혀있는 정치적인 음모, 커피가 우리 사회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달콤쌉싸름한 커피향기와 불이 바작바작 타오르면서 커피 알 볶는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도는 판타스틱을 경험하게 되는 책이다. 커피를 사랑한다면 필독 ~ ^^

 

커피는 '카와'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고, '악마의 열매'라는 뜻. ^^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끈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대왕
나는 커피 스푼으로 내 인생을 측량해 왔다.
- T.S. 엘리어트, 중에서
사람의 정신력은 바로 그가 마신 커피의 양에 비례한다.
- 제임스 매킨토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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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 그림과 나누는 스물한 편의 인생 이야기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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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고 걷고, 세월이 흐르면서 길이 생겨났습니다.

그 길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고, 그 길을 따라 마음과 마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는 삶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언덕길에는 고단한 인생사가 무수한 발자국처럼 박혀 있습니다.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오롯이 묻어 있습니다
.

김영희<삶의 길>

 

.

 

흔히들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이 책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첫그림은 이 그림이다. 새벽빛이 아스라이 길을 비추고 사람의 발길로 다져진 흙길을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이 그림,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꼬맹이 시절 시골 큰아버님의 길을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한 길이었기도 하다. 나무와 풀, 곳곳이 야생화천지에다 추억속의 그 길이 이렇듯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흙길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쉬움때문에 더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흙길에 발을 디딛는 순간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이 되고 스스로가 아름다운 풍경과 동화되는 착각이 되는 그 느낌, 그리고 저 길 끝에는 희망이 나를 기다릴 것 같은 기분좋은 설레임을 주는 그림이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의 저자 이명옥은 저 흙길을 걸어가려면 신발에 흙이 묻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고 ,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과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고, 삶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삶의 여정을 이렇듯 길에 비유한 화가도 있지만 삶의 여정을 흙이 묻은 구두에 비유한 화가가 있다.

 

이 책의 표지그림<구두 한켤레>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예전에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낡은 구두 한 켤레가 주는 의미를 알기에는 철이 없었다고 할까. 그저 부족함이 없는 생활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치를 일삼았던 부르주아처럼 살았던 젊은 날에 내가 삶에 대한 깊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었으랴. 그러나 이 낡은 구두는 삶의 고달픔을 모르는 내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자가 넘치는 시대에 굳이 많은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일까? 구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을 겪어보지 않고 죽기 전에 나는 감히 내 인생에게 후회없이 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울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질 텐데'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타인을 위해 울기에는 나는 너무도 이기적인 인간이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늙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의 그림은 피카소의 <우는 여자>이다. 여자의 눈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림에 담겨진 여자의 진짜 눈물이기 때문인데 그림 속 모델은 피카소의 연인 도라 마르이다. 피카소가 한 눈에 반한 이 여자는 스물 아홉이었고 피카소는 쉰다섯의 나이에 아내와 애인도 있었다. 연애의 달인이었던 피카소의 작업에 넘어가 피카소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 여자는 그 댓가로 평생 이렇게 울어야했다. 도라의 강한 개성과 지성미는 끊임없이 피카소의 욕망을 자극했고, 피카소도 도라를 사랑했지만 피카소의 사랑이란 다른 여자와 공존하는 사랑을 의미했기에 도라는 피카소의 아내와 연인들과 경쟁하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며 울고 또 울고 , 또 울었다. 그러면서도 피카소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반면 피카소는 그녀의 고통을 예술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우는 여자>이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후에 그림을 보면 이 여자의 눈물이 비로소 이해된다. 여자의 얼굴 형태는 일그러지고 해체된 반면, 여자의 패션은 세련미가 넘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꽃으로 장식한 붉은 색 모자를 썼고,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겼다. 그러나 여자의 일그러지고 해체된 얼굴에서 굉장한 고통이 느껴진다.

 

이렇게 작가는 그림과 화가의 삶을 들려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인 희망과 행복과 추억, 눈물 , 그리움 , 고독 , 사랑 등 21가지 키워드를 통하여 인생을 말한다. 생명의 덧없음과 , 삶과 죽음의 순환, 인간은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그림의 나비를 통하여 보여주고 밀레의 이삭줍기를 통하여 농민등의 뼈저린 가난과 힘든 노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은 굶주려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누어 줄줄 모르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한 조각의 빵에 굶주린 것보다 휠씬 더 심각한 가난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의 가난" 에 굶주려 있음을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대한 일들만 할 수는 없다. 위대한 사랑을 통해서 작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것은 사랑의 행동이 된다. 미소는 그 사람에게 선물이 된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행동이 된다."

 

이외에도 책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많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화폭에 담았던 화가. 그리고 그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르누아르는 자신의 행복바이러스를 감상자들에게 전염시켰고 지나치게 장밋빛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비난과 헐뜯음속에서도 곱고 예쁜그림을 그렸다. 카미유 코로는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림을 남겼으며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오직 그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의 첫장을 장식한 왓츠의 <희망>이라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책이야기를 마칠 까 한다.

두 눈을 가린 채 공에 위태롭게 올라탄 자세로 달랑 한 줄 남은 현에 의지해 악기를 연주하는 여자가 있다. 눈 먼 여자는 인류를 , 악기의 끊어진 현은 인류가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줄의 현은 희망을 뜻한다. 인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가닥 남은 희망에 의지하는 존재라는........ 버락 오바마는 이 그림을 보며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꿈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림은 강렬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침에 딸아이가 학교 준비물을 놓고 가 집에 다시 와야 했는데 딸아이가 하는 말이 "내 귀가 커서 아이들이 말하는 준비물을 들어서 다행이야 , 내 귀가 다른 사람보다 크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유난히 추운 아침에 집과 학교를 두번 왔다갔다하며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자신의 귀가 큰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그래 그렇게 작은 것에서 축복을 느낄 줄 안다면 너는 정말 아름답게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작은 것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이 책의 첫페이지에 저자의 첫 시작의 말은 요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예술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에는 예술가들의 삶과 그림을 통해 듣는 인생의 이야기와 더불어 아주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인생철학이 있다. 그림을 통해 나는 늘 위로를 받는다. 나날이 힘들어지는 우리의 삶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누구라도 신발에 흙이 묻는 것을 겁내지 말고 고흐의 구두를 신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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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2-02-0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훌륭한 서평을 쓰시지만 오늘 이 리뷰는 너무나 아름다워 더욱 행복합니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적이 있지요. 저도 구두를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평소 청바지를 즐겨 입는지라 구두는 심플하고 질 좋은 검정 가죽구두를 늘 신고 다니네요~ 아마 구두의 심미적인 장식성보다는 제게 편한 라이프스타일의 구두를 애용하는 걸 보니 아마 구두의 '상징성'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이멜다만큼 구두의 수집광이자, 구두 디자이너였던 앤디 워홀의 1950년대의 수십 편의 구두 드로잉 작품 밑엔 항상, 이런 문구가 자주 있었지요. 'Beauty is shoe, shoe beauty(아름다움은 구두, 구두는 아름다움).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의 명구, 'Beauty is truth, truth beauty'를 패러디한 상업주의를 예술로 접목시킨 그다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고흐의 구두가 주는 의미를 넘어 설 수 있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삶의 존엄이자 겸손을 뛰어 넘을 수는 없겠지요.
피카소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아마 스무살 때인가, 동숭동의 디자인센터에서 열렸던 '피카소展'을 보고 난 후였던 것 같습니다. 자그마하고 조용한 전시회였는데 피카소의 초기부터 마지막 까지의 모든 작품이 걸려 있던 그 곳에서의 감동이 지금까지 남아 있군요. 특히 피카소의 도라 마르는 퍽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아주 마르고 인상적인 여인임을 도록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리뷰를 통해 보니 더욱 감회가 깊네요~
저자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라는 김기림 詩人의 '쥬피타 추방'의 한 귀절이 떠올라 더욱 반갑고요.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왓츠의 '희망'은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하며 뭐라고 표현 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느껴집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인생철학이라는 드림모노로그님의 마지막 글에 저 역시 많이 공감합니다.
아하~ 참으로 특별하고 지혜로운 따님을 두셨군요~~저는 심플한 아들만 둘 두어서 몹시 부럽고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님 덕분에 서평 잘 읽었으며, 또 한 장의 기쁨을 마음의 방에 저장해 둡니다. 감사드리며 좋은 밤 되십시요~~

드림모노로그 2012-02-02 17:19   좋아요 0 | URL
도라 마르 실제 사진으로 보면 너무 이쁘지요 ㅎㅎㅎ 나무 늘보님의 댓글은 제게 언제나 감동이에요 ㅎㅎㅎㅎ폭풍감동 ^^ 나무늘보님의 정성이 가득한 댓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그리고 기분도 너무 좋구요 ㅎㅎㅎ 알라딘에서 제게 큰 재산은 나무늘보님을 알게 된 것 같아요 ㅎㅎ 왓츠 너무 멋지죠 ~ ^^ 고흐의 구두도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는 건 분명히 축복인 것 같아요 ^^
 
소현세자 독살사건 - 조선 여 검객 이진의 숨 막히는 진실 게임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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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소현세자는 짧은 생과는 달리 끊임없이 현시대에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어 아마도 책으로나마 소현세자의 진실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소현세자를 주제로 나온 책중에 <민회빈 강씨>는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가 심양의 볼모로 있으면서 귀국하여 죽음 전후를 그린 소설이었고 <요동묵시록>은 더욱 세밀하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북벌취지에 관하여 쓰여진 책이다. <소현세자 독살사건>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부터 시작하여 세자빈 강씨의 죽음까지의 사건을 다룬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 역사서를 창조한 다작가이다. 그래서 작가의 소현세자는 어떨지 무척 기대가 된 소설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여 검객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인해 더욱 즐겁게 읽은 듯하다.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반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와 서인세력에게 소현세자는 청에서 신진문물을 배워왔다는 이유로 왕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상이 된다. 임금으로서도 위협의 대상이지만 아버지로서도 청나라에 무릎을 끓은 치욕이 아들 소현세자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소현세자가 귀국하자 인조의 불안감은 하늘을 찌른다. 더군다나 소현세자 내외가 귀국하기 전부터 청나라를 부추겨 부친인 인조를 심양으로 보내려는 공작을 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물론 이 말은 조소용과 간신 김자점의 무리들이 퍼뜨린 소문이었다. 청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는 소현세자에게 왕위를 세자에게 양위하라고 할까 봐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인조는 급기야 소현세자를 독살하기로 한다.소현세자의 주치의 이형익 뒤에는 인조의 후궁 조소용과 조소용과 내통하는 김자성이 있다. 인조와 조소용 사이에 공주가 하나 있는데 바로 현숙공주이다. 현숙공주와 연을 맺어줄 부마도위 오강우와 이형익의 딸 이요환과 세자빈의 조카 되는 이진은 소현세자의 독살사건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두 여검객 이요환= 조소용과 이진= 세자빈이라는 서로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이지만 이진과 이요환은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자 함에는 동지이다. 소현세자의 독살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바로 이어진 인조의 딸 현숙공주의 죽음은 세자빈이 불리한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고,평소에도 세자빈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인조는 자신의 딸의 죽음을 세자빈을 죽이기 좋은 이유로 만든다. 세자빈이 사약을 받고 남긴 한마디는

 

군불군(君不君)... 부불부(父不父)....임금은 임금 같지가 않고, 아비는 아비 같지 않다. 라는 한마디였다.

 

너무도 빠른 전개에 지루할 틈 없이 읽었으나,역사속의 가정(假定)이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모든 간계의 원수 김자성의 존재인데, 간신 김자점이 드러난 간신이라면 김자점을 조정하는 드러나지 않은 인물로서 김자성은 모든 살인사건의 총수이다. 김자성 또한 허구의 존재이며, 주치의 이형익에 관한 사실도 역사와는 너무 동떨어진 사실에 의아함이 든다. 역사에는 이형익과 조소용의 생모가 정을 통한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이 소설에서는 조소용과 김자성과 정을 통한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에서 실제사실은 소현세자와 세자빈, 그리고 그들을 둘러 싼 사건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의문점은 봉림대군과 소현세자의 관계이다. 이 책에서는 봉림대군을 소현세자의 대립관계로 그리고 있는데 역사에서는 그 진위가 확실하지 않다 . 그런 가정들만 제외하면 이 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여검객 이진과 이요환의 검술, 외눈박이 검객 김재수, 부마도위 오강우를 둘러 싼 삼각관계, 추리소설과 같은 긴박감 등,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과연 역사속의 가정은 어디까지가 허용선일까 하는 , 소설이 주는 가정은 어디까지일까 하는 의문은 떠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역사팩션을 좋아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역사소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나친 가정은 오히려 혼란을 줄 뿐이라는 생각이 든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도 과연 재미만 있으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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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에 대항하는 논리학 백신
스티븐 로 지음, 윤경미 옮김, 이종권 감수 / 와이즈베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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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tvN '화성인 바이러스' 에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남과는 다른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민주공화당총재 허경영과 스스로 우주신과 소통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역술인인 빵상아줌마이다. 이 두사람이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는 모습을 보며 참 세상이 이상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과거 허경영처럼 말하는 사람은 방송이나 정치를 할 수 없는 화성인에 불과하였는데 현대에는 오히려 열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 누구도 허경영이 공중부양을 한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가 공중부양을 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열광한다. 누구도 빵상아줌마가 우주인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빵상아줌마를 보며 즐거워 한다.누구나 허구인줄 알고 있지만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회현상의 한 시각 '파타피지컬' 이라 하는데 파타피지컬한 세상에서 파타피지컬에 빠지지 않으려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책 <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를 읽으면 아마도 예방책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한다.

 

현 사회의 문제는 이런 화성인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 21세기가 되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광신론, 음모론, UFO, 점성술, 뉴에이지 자기계발서, 대체의학, 비합리적인 정치적 열성분자의 주장 등 얼토당토 않는 것들을 믿고 있으며 아직도 광신 집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효과 없는 대체의술에 피해를 입고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정치적 열성분자가 득세하고 '원하는 것을 생생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내용의 자기계발서가 전 세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UFO · 초능력 · 음모론 등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TV 토론에서 나오는 정치가들의 장황한 의견에는 분명 모순이 있어 보이는데 딱히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속시원히 꼬집어 반박할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터넷이나 TV는 물론, 우리의 일상 대화 속에서까지 이러한 비합리적인 믿음과 주장이 범람하고, 평범한 사람은 물론 고등교육을 받은 엘리트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러한 믿음과 주장에 혹하게 되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 그럴듯해 보이는 나름의 합리화 전략을 만들어 ‘가짜 합리성’이라는 지적 바이러스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기고, 사람들을 비합리적인 믿음의 덫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덫을 지적 블랙홀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무심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곧장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 더 이상 탈출이 불가능한 지적 블랙홀은 강한 흡인력을 지닌 지적인 덫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일단 블랙홀에 빠지게 되면 일단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메커니즘이 작용하는데 저자는 그러한 메커니즘을 여덟가지로 요약하였다.

 

☆ 그 여덟가지 정당화전략, 메커니즘은 말하자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가짜 합리성 전략이자 지적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다. ☆

1. 미스터리 카드 : 어떤 믿음에 대해서 과학이 증거할 수 없는 것이라며 미스터리한 것이라면 우기는 것으로 자신의 믿음을 반론으로부터 보호하는 전략.
2. “어쨌든 들어맞잖아!”, 그리고 나팔총 전략 : 증거와 이론을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맞게 하는 방법으로 어떤 이론이든 황당하든 말이 되지 않다해도 증거와 바합시키는 방법으로 개들이 금성의 스파이란 데이브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3. 핵폭탄 터뜨리기 : 자신의 주장이 결정적인 반대에 부딪혔을 때, 회의주의적이거나 상대론적인 주장으로 모든 믿음이 ‘합리성’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우기는 ‘비기기 전략’이다.모든 믿음은 결코 진리가 아니며, 여러 믿음 중에 어떤 것은 어느 누구에게라도 진리는커녕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임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관대하고 평등해 보이는 이러한 전략은 편의에 의해 모든 믿음이나 주장의 합리성을 동등하게 끌어내리는, 지적으로 매우 부정직한 전략인 것이다.
4. 의미적 골대 옮기기: 자신이 주장하는 것의 ‘의미’를 상황에 따라 왔다갔다 사용하며 반박을 피하는 전략이다. 의미적 골대 옮기기 전략은 주로 주류 종교의 아카데믹 학파 내 지식인들이 사용하는 전략이지만, 이러한 주장은 온갖 엉터리 믿음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반론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아, 오해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 주장은 그러한 의미가 아니라 ~입니다”와 같은 식으로 살짝살짝 의미를 교묘하게 넘나들며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TV 토론에서 상대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 이 전략을 곧잘 쓰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5. “난 그냥 알아!” : 어떤 믿음이 신 감지 장치나 초능력 같은 것에 의해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계시적 경험의 상당수는 사실 망상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근더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러한 주장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6 거짓 심오 :진부하거나 거짓인, 혹은 터무니없는 것을 가장하고 깊이 있어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자신 스스로가 인간조건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얻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7. 일화 나열하기:대부분의 일화들은 전적으로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초자연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로는 더욱더 가치가 없다. 하지만 일화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특히 여러 일화들이 한데 모여서 제시되었을 때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다.
8. 조종 버튼 누르기 : 조종 버튼 누르기는 다른 사람에게 특정 믿음을 심어주고 싶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미약하거나 아예 없어서, 속임수가 금방 탄로 날 것 같을 때 쓰는 극단적인 전략이다. 즉 속임수를 이성적 설득으로 위장하는 것마저 포기하고, 상대를 세뇌시키기 위해 체계적이고 집요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 형성 메커니즘으로는 흔히 고립, 통제, 불확실성, 반복, 감정적 조종이라는 5가지 수단이 사용되는데, 이는 개인이 집단 체제나 압력에 순응하려는 사회심리적 성향을 이용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광신 종교나 전체주의 국가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이 되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러한 기술이 일관성 있고 조직화된 방식으로 적용된 것이 바로 세뇌이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헛소리의 여덟가지 메카니즘 가짜 합리성 전략이자 지적바이러스" 를 통해 지적 블랙홀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살펴보게 되는데 사람이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이성을 마비하게 되고 분별력을 가지고 논리적, 이성적 사고는 살아갈 수록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어떤 믿음에 대해서 '난 그냥 알아"라고 망상에 빠진 빵상아줌마나 거짓 심오라는 것에 빠져 있는 허경영같은 정치인, 주변에서 쉽게 위의 여덟가지 중에 한가지에 빠져 있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논리적 , 이성적 사고가 부족한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에 취약하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그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배우지 못한 이유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이비 합리성, 위의 여덟가지 메커니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말과 같다. 더군다나 현대에는 도처에 지적 블랙홀이 널려 있다. 방심하는 순간 지적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논리적, 이성적 힘을 길러주는 논리적 백신으로서 스스로 감성적이고 즉흥적이면서도 자존심이 강하다고 주장한다면 이 책을 꼬옥 읽어볼 것을 감히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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