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 그림과 나누는 스물한 편의 인생 이야기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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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고 걷고, 세월이 흐르면서 길이 생겨났습니다.

그 길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갔고, 그 길을 따라 마음과 마음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는 삶의 애환이 서려 있습니다.

언덕길에는 고단한 인생사가 무수한 발자국처럼 박혀 있습니다.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오롯이 묻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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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삶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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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이 책에서 나의 눈을 사로잡은 첫그림은 이 그림이다. 새벽빛이 아스라이 길을 비추고 사람의 발길로 다져진 흙길을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이 그림,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꼬맹이 시절 시골 큰아버님의 길을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한 길이었기도 하다. 나무와 풀, 곳곳이 야생화천지에다 추억속의 그 길이 이렇듯 생생하게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흙길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쉬움때문에 더 반가운 것인지도 모른다. 흙길에 발을 디딛는 순간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이 되고 스스로가 아름다운 풍경과 동화되는 착각이 되는 그 느낌, 그리고 저 길 끝에는 희망이 나를 기다릴 것 같은 기분좋은 설레임을 주는 그림이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의 저자 이명옥은 저 흙길을 걸어가려면 신발에 흙이 묻는 것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고 , 신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과 장애물을 극복하지 않고, 삶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삶의 여정을 이렇듯 길에 비유한 화가도 있지만 삶의 여정을 흙이 묻은 구두에 비유한 화가가 있다.

 

이 책의 표지그림<구두 한켤레>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예전에 나는 이 그림을 보면서 별 생각이 없었다. 낡은 구두 한 켤레가 주는 의미를 알기에는 철이 없었다고 할까. 그저 부족함이 없는 생활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사치를 일삼았던 부르주아처럼 살았던 젊은 날에 내가 삶에 대한 깊이가 있으면 얼마나 있었으랴. 그러나 이 낡은 구두는 삶의 고달픔을 모르는 내게 "인생은 이렇게 살아야하는 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자가 넘치는 시대에 굳이 많은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 일까? 구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인생의 고단함을 겪어보지 않고 죽기 전에 나는 감히 내 인생에게 후회없이 살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울 수 있다면 마음이 편해질 텐데' 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타인을 위해 울기에는 나는 너무도 이기적인 인간이고

나 자신을 위해 울기에는 너무 늙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위의 그림은 피카소의 <우는 여자>이다. 여자의 눈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림에 담겨진 여자의 진짜 눈물이기 때문인데 그림 속 모델은 피카소의 연인 도라 마르이다. 피카소가 한 눈에 반한 이 여자는 스물 아홉이었고 피카소는 쉰다섯의 나이에 아내와 애인도 있었다. 연애의 달인이었던 피카소의 작업에 넘어가 피카소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 여자는 그 댓가로 평생 이렇게 울어야했다. 도라의 강한 개성과 지성미는 끊임없이 피카소의 욕망을 자극했고, 피카소도 도라를 사랑했지만 피카소의 사랑이란 다른 여자와 공존하는 사랑을 의미했기에 도라는 피카소의 아내와 연인들과 경쟁하며 눈물로 나날을 보내며 울고 또 울고 , 또 울었다. 그러면서도 피카소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반면 피카소는 그녀의 고통을 예술의 도구로 활용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우는 여자>이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후에 그림을 보면 이 여자의 눈물이 비로소 이해된다. 여자의 얼굴 형태는 일그러지고 해체된 반면, 여자의 패션은 세련미가 넘치고 화려하기 그지없다. 꽃으로 장식한 붉은 색 모자를 썼고, 머리카락도 단정하게 뒤로 빗어 넘겼다. 그러나 여자의 일그러지고 해체된 얼굴에서 굉장한 고통이 느껴진다.

 

이렇게 작가는 그림과 화가의 삶을 들려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인 희망과 행복과 추억, 눈물 , 그리움 , 고독 , 사랑 등 21가지 키워드를 통하여 인생을 말한다. 생명의 덧없음과 , 삶과 죽음의 순환, 인간은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것은 그림의 나비를 통하여 보여주고 밀레의 이삭줍기를 통하여 농민등의 뼈저린 가난과 힘든 노동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들은 굶주려 가난한 것이 아니라 나누어 줄줄 모르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한 조각의 빵에 굶주린 것보다 휠씬 더 심각한 가난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는 "마음의 가난" 에 굶주려 있음을 말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위대한 일들만 할 수는 없다. 위대한 사랑을 통해서 작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것은 사랑의 행동이 된다. 미소는 그 사람에게 선물이 된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행동이 된다."

 

이외에도 책에는 아름다운 그림이 많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화폭에 담았던 화가. 그리고 그의 그림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르누아르는 자신의 행복바이러스를 감상자들에게 전염시켰고 지나치게 장밋빛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비난과 헐뜯음속에서도 곱고 예쁜그림을 그렸다. 카미유 코로는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그림을 남겼으며 아름다움을 해석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오직 그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그림의 첫장을 장식한 왓츠의 <희망>이라는 그림을 마지막으로 책이야기를 마칠 까 한다.

두 눈을 가린 채 공에 위태롭게 올라탄 자세로 달랑 한 줄 남은 현에 의지해 악기를 연주하는 여자가 있다. 눈 먼 여자는 인류를 , 악기의 끊어진 현은 인류가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줄의 현은 희망을 뜻한다. 인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고 한 가닥 남은 희망에 의지하는 존재라는........ 버락 오바마는 이 그림을 보며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을 꿈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그림은 강렬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아침에 딸아이가 학교 준비물을 놓고 가 집에 다시 와야 했는데 딸아이가 하는 말이 "내 귀가 커서 아이들이 말하는 준비물을 들어서 다행이야 , 내 귀가 다른 사람보다 크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아". 라고 말한다. 유난히 추운 아침에 집과 학교를 두번 왔다갔다하며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자신의 귀가 큰 것이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그래 그렇게 작은 것에서 축복을 느낄 줄 안다면 너는 정말 아름답게 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작은 것이 주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기에 우리는 불행한 것이다.  이 책의 첫페이지에 저자의 첫 시작의 말은 요즘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예술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다고 한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에는 예술가들의 삶과 그림을 통해 듣는 인생의 이야기와 더불어 아주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인생철학이 있다. 그림을 통해 나는 늘 위로를 받는다. 나날이 힘들어지는 우리의 삶에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누구라도 신발에 흙이 묻는 것을 겁내지 말고 고흐의 구두를 신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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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2-02-0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훌륭한 서평을 쓰시지만 오늘 이 리뷰는 너무나 아름다워 더욱 행복합니다~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저도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적이 있지요. 저도 구두를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평소 청바지를 즐겨 입는지라 구두는 심플하고 질 좋은 검정 가죽구두를 늘 신고 다니네요~ 아마 구두의 심미적인 장식성보다는 제게 편한 라이프스타일의 구두를 애용하는 걸 보니 아마 구두의 '상징성'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이멜다만큼 구두의 수집광이자, 구두 디자이너였던 앤디 워홀의 1950년대의 수십 편의 구두 드로잉 작품 밑엔 항상, 이런 문구가 자주 있었지요. 'Beauty is shoe, shoe beauty(아름다움은 구두, 구두는 아름다움). 키츠의 '그리스 항아리에 바치는 노래'의 명구, 'Beauty is truth, truth beauty'를 패러디한 상업주의를 예술로 접목시킨 그다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래도 고흐의 구두가 주는 의미를 넘어 설 수 있을까요? 가장 근원적인 삶의 존엄이자 겸손을 뛰어 넘을 수는 없겠지요.
피카소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아마 스무살 때인가, 동숭동의 디자인센터에서 열렸던 '피카소展'을 보고 난 후였던 것 같습니다. 자그마하고 조용한 전시회였는데 피카소의 초기부터 마지막 까지의 모든 작품이 걸려 있던 그 곳에서의 감동이 지금까지 남아 있군요. 특히 피카소의 도라 마르는 퍽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아주 마르고 인상적인 여인임을 도록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리뷰를 통해 보니 더욱 감회가 깊네요~
저자의 말씀을 들으니 문득, -땅을 밟고 하는 사랑은 언제나 흙이 묻었다-라는 김기림 詩人의 '쥬피타 추방'의 한 귀절이 떠올라 더욱 반갑고요.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왓츠의 '희망'은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하며 뭐라고 표현 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그림을 읽을 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삶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진실이 느껴집니다. 아주 작은 부분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어 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인생철학이라는 드림모노로그님의 마지막 글에 저 역시 많이 공감합니다.
아하~ 참으로 특별하고 지혜로운 따님을 두셨군요~~저는 심플한 아들만 둘 두어서 몹시 부럽고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님 덕분에 서평 잘 읽었으며, 또 한 장의 기쁨을 마음의 방에 저장해 둡니다. 감사드리며 좋은 밤 되십시요~~

드림모노로그 2012-02-02 17:19   좋아요 0 | URL
도라 마르 실제 사진으로 보면 너무 이쁘지요 ㅎㅎㅎ 나무 늘보님의 댓글은 제게 언제나 감동이에요 ㅎㅎㅎㅎ폭풍감동 ^^ 나무늘보님의 정성이 가득한 댓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 그리고 기분도 너무 좋구요 ㅎㅎㅎ 알라딘에서 제게 큰 재산은 나무늘보님을 알게 된 것 같아요 ㅎㅎ 왓츠 너무 멋지죠 ~ ^^ 고흐의 구두도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는 건 분명히 축복인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