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터키속담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아주 오래 된 습관이라 존재자체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우며 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많이 커피를 마신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한 잔의 커피같은 것이지도 모르겠다. 한 잔의 커피 안에 눈물을 담기도 하고 , 또
한 잔의 커피에는 사랑을 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빈 잔이 되어버리는 커피의 숙명은 바로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커피와 관련된
책을 꼭 보게 된다. 봄볕조는 병아리님의 블로그에서 커피향기에 관한 소개글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다른 무엇도 아닌 "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커피를 안다고 하지 말라." 라는 문구였다. 최근 읽었던 독일문학 제드 러벤펠드의 <죽음본능>과 같은
느낌의 추리소설인데 죽음본능보다 휠씬 더 뛰어난 작품같다.
커피를 마시고 250명이 집단 사망하는 사건이 베를린에서 발생하자 도시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게 되고 아무도 커피를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잇다른 커피로 인한 사망자들이 계속 발생하게 되자 커피는 국가차원의 테러음료로 변한다. 여기에 커피를 사랑하는 한 남자 한스
브리오니는 개인 로스터로 베를린에서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250명이 커피로 집단 사망할 때 아들 야콥도 커피를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드라쿠스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모두 사망하자, 아들 또한 사망하게 될 까 걱정과 불안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중
브리오니는 과거 커피를 연구했던 모임을 기억해내고 거기에서 만난 한 여자 크리스티네 사보이에게 당시 커피연구의 보고서를 보여달라고 한다. 그러나
크리스티네 사보이를 찾아간 순간부터 브리오니는 테러 피해자에서 테러 협박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버린다. 그리고 브리오니를 피해자로 취재하던
새내기 여기자 아가테 역시 커피에 관하여 지나치게 박식하며 커피외에는 과거 대형커피사(드라쿠스)를 상대로 과격한 문서를 작성한 적이
있는 브리오니를 협박범으로 의심하게 되지만 아들 야콥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브리오니와 같은 도망자 신세가 되면서 뜻하지 않게 사건의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위에 염증이 있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아가테에게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커피와 제조법, 도망자 신세에도 커피 두봉지를 챙긴 브리오니를
처음에는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던 아가테는 브리오니의 커피에 대한 상식과 열정에 조금씩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데 아가테와 브리오니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베를린에서 중부 유럽을 가로질러 커피 집들의 도시인 빈으로 간다. 이 여행 중에 두 사람은 커피가 지난 250년 동안 정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되는데 돔마이어 교수의 '커피 박탈 영향에 대한 연구서' 에서 계몽의 시작은
커피향기로 부터 시작되었으며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앞서 커피반입량이 껑충 뛰었으며 프랑스 혁명에 비해 독일의 혁명세력이 약한 것은
커피를 묽게 마셨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연구자료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논문자료의 후원을 ‘시간 늦추기’ 라는 커피협회에서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돔마이어 교수처럼 후원을 받은 코르프 박사는 커피가 뇌에 미치는 진보적인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결국
누군가가 커피를 통하여 일어나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논문자료를 교수들에게 부탁하였다는 이야기이지만 교수들은 자신들의 후원금출처도 모르고
있었다. 정작 이 논문의 의뢰인은 오로지 한가지가 궁금하였다는 결론을 알게 된다. 커피를 없애면 혁명의 기운이 사라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정부에서는 '대개혁' 안을 발표하고 전국적으로 커피판매는 중지된 채 시작된 국민들의 혁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에게서 커피를 빼앗음으로서 이 사회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해외문학중에 유독 독일문학을 좋아하는데 독일문학은 대체적으로 인문학적인 사고와 추리소설의 결합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제드 러벤펠드의
<죽음본능>에서는 프로이트의 사상과 추리소설의 환상적인 결합을 보여주었는데 <커피향기>는 커피와 정치, 사회, 경제,
역사가 잘 어우러진 추리소설이다. 그리고 주인공들의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스라는 양념을 추가하니 지루할 틈도 없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책을
읽으면서 자연적으로 당장에 커피가 없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아마도 먹고 죽더라도 커피를 마실 것 같다. 커피에
얽혀있는 정치적인 음모, 커피가 우리 사회에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달콤쌉싸름한 커피향기와 불이 바작바작 타오르면서 커피 알 볶는 소리가 내 주위를 맴도는 판타스틱을 경험하게
되는 책이다. 커피를 사랑한다면 필독 ~ ^^
커피는 '카와'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했고, '악마의 열매'라는 뜻. ^^
사실, 거의 모든 커다란 위기 때 우리의 심장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따끈한 한 잔의 커피인 것
같다.
- 알렉산더 대왕
나는 커피 스푼으로 내 인생을 측량해 왔다.
- T.S. 엘리어트, 중에서
사람의 정신력은
바로 그가 마신 커피의 양에 비례한다.
- 제임스 매킨토시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