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생몽사(醉生夢死)라는 술을 아시나요?

마시면 기억을 잊는 술입니다. 영화 <동사서독>에서는 인간에게 번뇌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황량한 사막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살아가고 있는 구양봉(장국영)에게도 번뇌가 끊이지 않는 것은 사랑의 기억 때문이지요. 사랑을 약속했던 여인이 어느 날 형의 아내가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배신한 거죠.  사막에 살고 있는 구양봉에게 유일하게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복사꽃 필 무렵 나타나는 떠돌이 무사 황약사가 전부입니다. 황약사는 백타산에 살고 있는 여자와 사막에 사는 구양봉을 이어주는 매개체역할을 하지요. 이 '취생몽사'라는 술은 형수가 구양봉에게 보내는 선물이랍니다.  사랑을 잊기 위해  

기억을 잊을 수 있는 '취생몽사'라는 술을 마시는 것과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기억만 남기고 모두 잊는다는 것,

어떤 것이 쉬울까요?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기억만 남겨두고 모두 잊기로 했다<동사서독>의 대사는 멋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사랑했다는 기억마저 사라져도, 사랑하며 얻었던 감각과 세계가 남는 것이다. 잊혀지지 않는 사랑의 기억은 새로운 사랑을 저지한다. 반면 사랑이 나의 신체에 남기고 간 감각과 체험은 새로운 사랑의 모태가 되어준다. 사랑이 진정 하나의 사건이었다 함은, 사람이 떠나도 이미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이 다른 감각과 세계가 내게 남아 있다는 말인 터이다. - 이진경 / ‘삶을 위한 철학수업중에서

 

 

이진경의 <삶을 위한 철학수업>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했던 감각과 그 세계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억을 지우는 술은 마셔봤자 헛일이고 잊기로 애쓰는 것도 사랑앞에서는 더욱 헛일이죠.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남습니다. 영화 《이터널 션샤인》에서 이미 봤잖아요? 풋~   사랑의 기억을 클리너로 깨끗이 지웠음에도 자석처럼 이끌리고마는 것이 사랑입니다. 절대 지워지지 않는 , 마모되는 기억속에서도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이 바로 사랑이니까요.

 

 

 

 

 다시 동사서독의 주인공 이야기를 해 볼까요.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었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가질수는 없어도 잊지는 말자'라고 합니다. 웃기죠. 남자에게는 잊으라고 취생몽사를 보내놓고는 여자는 '절대 잊지 말자'라니, 아이러니하게도 구양봉은 그 취생몽사를 마시지 않아요. 대신 이런 말을 황약사에게 전합니다.  '복사꽃을 좋아했다는 기억만을  남겨두고 모두 있기로 했다'고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사랑했던 기억은 그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 되어 추억으로 두고두고 남습니다.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고 퇴색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잊혀질지라도 사랑했던 사실, 그녀가 좋아했던 무언가는 그대로 변함없이 잔상으로 남아있는 거예요. 결국 구양봉의 이 말은 죽어도 못 잊겠다는 독한 역설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추억)은 고정된 풍경이 아닌, 그것을 담는 자의 마음의 모양에 따라 변화되는 액체성의 풍경이라고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에서 유하 감독이 말했나요?  사랑했던 사람이 무언가를 좋아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건,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진한 노스탤지어인 동시에 그녀를 향한 밀어(은밀한 언어)였던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이 문장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의 제 삶 역시도 추억에 너무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거든요. 서울에서 반평생을 살다가 타향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찌보면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는 일이더군요.  조금씩 잊어가다 보면 지금 사는 이곳을 고향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없는 것보다는 낫고 잊으려고 하기 보다는 마음 한켠에 불꽃하나 피어놓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네요...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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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삶은 무기력의 최고봉이었으며, 상실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으며, 체제의 실패자였으며, 사보타주의 도구이자, 낙오자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르코 포그, 포그는 아이들이 '똘마니, 바보멍청이'  라 놀리기 좋은 이름이었으나, 자신의 이름자를 줄여  원고라는 뜻 ‘ manuscript’을 줄여서 'M.S포그라는 서명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그의 삶이 현재 쓰여지고 있으며, 아직 완료형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달의 궁전》은 포그의 삶을 찾아 써내려간 글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의 이른 죽음과 잇달은 외삼촌의 죽음으로 세계에 혼자 남겨진 포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센트럴 파크에서 노숙자가 아닌 척 살아가는 지성인이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도시의 방랑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쏟아진 폭우는 그의 삶을 모두 앗아가 버린다. 영양실조와 추위, 고열에 시달리며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죽어가던 그를 찾아낸 것은 친구 짐머의 아파트에서 우연하게 만났던 여인 키티였다. 십만분의 일 있을까말까한 우연의 연속으로 포그는 할아버지 에핑을 만나고 게다가 죽었다던 아버지까지 찾게 된다. <달의 궁전>의 계속된 우연, 이 부분에 대해 폴오스터는 어떤 대답을 할까?

 실제로 폴오스터는 비평가들에게 이런 우연의 연속에 대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신의 책은 대부분의 픽션에서 발견되는 인과율보다는 우연의 일치에 의존해서 플롯을 이끌고 나가는데, 최근의 작품인 <달의 궁전.<우연의 음악>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우연을 사건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삶에 대해 당신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인식의 결과인가요? 아니면 이런 식의 접근이 미학적으로 좀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요?

 

-나는 그동안 우연때문에 평론가들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나는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우연은 리얼리티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연의 힘에 좌우되고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픽션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타당하게 보이지 않으면 죄다 부자연스럽다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비뚤어진 시각으로 책을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각을 소모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의 일반적인 관습에 함몰된 나머지 현실 감각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에서는 모든 인과관계가 매끈하게 설명되므로, 독특함은 사라지고 원인과 결과가 예측 가능한 세계만 보여줍니다. 책에서 눈을 들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리얼리즘이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겠죠. 달리 말하면 진실은 픽션보다 더 기이합니다. 내가 추구하려는 건 아마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만큼이나 기이한 소설을 쓰는 것이겠죠.

 

 

 

당신의 작품에서는 우연의 일치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른다는 거군요. ‘매끈하게 넘어가기위한 방편도 아니며. 보편적인 리얼리즘 작가들의 조작된 환상,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겠죠. 당신의 책은 미스터리와 우연의 일치에 기반을 둔 거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미스터리와 우연의 일치가 지배원리로 작동하면서 인과율과 합리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내가 말하는 우연의 일치란 사건을 교묘하게 조작하려는 욕망이 없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수준 낮은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기계적인 플롯장치, 모든 일을 매듭짓고자 하는 충동, 등장인물들 모두가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마침내 맞이하는 해피엔딩 등이 바로 그런 예가 되겠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 예측불허의 존재, 인간이 겪게 되는 황당한 경험들입니다. 누구에게든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철학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연성의 힘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 속해 있는 거죠.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 본들,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줄곧 이런 미스터리들과 부딪칩니다. 그 결과는 실로 끔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믹할 수도 있겠죠.

 

 

 《달의 궁전》에는 포그 뿐만 아니라 눈이 멀고 다리가 마비된 화가 에핑이 나온다.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고 살 속에 숨어버린 솔로몬 바버의 이야기도 나온다. 세 명이 주인공인 셈이지만, 세명의 이야기는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일 뿐 모두 같은 내용이다. 인생에서 모두 고독하고 외롭고 방랑자라는 점에서 말이다. 폴오스터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바탕을 두고 책을 쓰며 모든 소설은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인생이 지니고 있는 의문을 탐구하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가 글쓰기였다고 한다. 

 

이 책은 오스터와의 주요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 모음집이다. 나에게 소설은 한시적인 장르이기에 소설가 폴오스터가 대중문학에 종횡무진한 작가인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달의 궁전을 읽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글이었다. 나의 내면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고, 아주 오래 전 내 황활한 방황기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나- 세상에서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상기시켜 주는 바람에 하마트면 울뻔하기도 하면서 주인공 포그와 함께 철학적 사색놀이에 빠져있었다. 《글쓰기를 말하다》를 통해 작가 폴오스터에게 듣는 생각과 소설적 장치나 그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우연'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들었다. 삶에서 우리에게 우연은 얼마나 발생할까? 며칠 전 추석명절에 나는 이런 우연을 경험했다.  서울에서도 만나기 힘든 친구를 10만분의 1의 우연처럼 , 그것도 경상남도 함양에서 만나다니 , 그때의 놀라움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폴오스터가 말하는 '우연'이 삶의 리얼리티에 가깝다는 주장은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연이 또 다른 삶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주니까. 글쓰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작가 폴 오스터, 그의 삶에서도 이런 우연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가난해서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을 때 우연하게 받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되었고 우연하게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우연하게 딸에게서 삶의 몸짓을 배웠다고 한다. 그에게  '우연'은 문학의 외연이자 삶을 이어주는 끈이다.

 

 

글쓰기를 통해 서서히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p57

 

하지만 폴오스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 푼 만져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내인생의 글쓰기>에서 시인 안도현이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라며 문학은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폴오스터가 전해주는 글쓰기 역시도 자신에게 던져진 고독의 몫을 감당할 수 없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한다. 역시나 글쓰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 글쓰기는 외로움도 뭣도 아닌, 그저 이야기의 날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독이라는 씨줄이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삶이라는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  폴오스터의 글쓰기는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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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간통문학으로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에피 브리스트>를 꼽는다. 간통은 사회에서 터부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간통죄폐지를 앞두고 반대보다 찬성 여론이 많은 것을 볼 때 결혼관 자체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세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져 19세기의 결혼관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공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나 바람은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책임을 떠안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는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배웠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문학이라는 안경으로 사회를 인지하였던 그녀는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채 결혼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던져진 생의 잔인함은 엠마를 보바리즘이라는 ‘과대망상’의 대명사로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 더 잔인하였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은 명백하다. 당시 사회적 지위와 명예로 수행되었던 결혼제도는 여성들에게 잔인한 굴레였다. 물론 그러한 굴레에서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멋진 어머니상으로 남겨진 여성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표현한다면 희생없이 살아가기 힘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에 대해서는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가이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통해 허영과 비속한 부르주아의 단면들을 보바리 부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면면들을 통해 보여주며 통렬하게 시대를 비틀었지만, 엠마는 결국 시대에 허물어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막을 내렸다, 엠마의 불행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불행과 같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의 톨스토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마담 보바리>와 차별된다. 안나는 엠마와 달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안나는 19세기 여성차별에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였고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그런 주체성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여성상으로 나타난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주변 여성들이 자신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여기면서도 결혼제도에 갇혀 슬픔과 불행을 감수하는 것과는 반대로 안나는 자신의 사랑과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러나, 안나 역시도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사랑 역시 현실의 차가운 장벽 앞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피 브리스트》에서의 에피는 엠마와 안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에피는 여성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자각을 깨닫기도 이전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피해자이자 희생양일 뿐이다.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에피는 낙엽 구르는 모양새만 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천진난만한 소녀에 불과했다.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는  브리스트 가문의 외동딸로 가문의 명예에 순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는 것이다.  결혼 역시도 에피는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상대자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케신의 군수인 인슈테텐 남작과의 결혼은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 나이뻘인  인슈테텐의 나이를 비웃는 친구들이 오히려 에피의 입장에서는 불순종이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그녀의 의식 저변에는 사랑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셈이다. 그녀는 인슈테텐의 교육자적인 태도, 신혼인데도 무감각한 표현들, 매사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육적인 태도들을 묵묵히 감수해 나가지만, 어린 나이에 헤쳐가야 할 귀족사회와 나이 많은 부인들네들의 가십거리가 되자 서서히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귀족사회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하면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에피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난 젊디젊은 소령 크람파스 소령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젊은 피 크람파스와 외도를 하지만, 늘 한결같고 정중한 그러면서도 친절한 남편 인슈테텐을 향한 죄책감은 에피를 괴롭힌다. 그러던 중 베를린으로 승진 발령이 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크람파스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 7년이 지날 때까지 인슈테텐과 에피는 평온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에피가 여행간 사이 꽁꽁 숨겨둔 크람파스와의 연애 편지로 인슈테텐은 부하직원과 에피의 간통사실을 알게 되고,  인슈테텐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크람파스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결국 크람파스는 인슈테텐의 총에 맞아 죽는다.(당시 공증인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결투는 누가 죽던간에 정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전까지 에피가 말하듯 ‘사랑해야 할 점이 전혀 없지 않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자,  ‘사회적 고결함’ 그 자체였던 인슈테텐은 질투에 눈이 멀어 부하를 죽이고 에피를 사회에게 매장시키는 잔인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인슈테텐에게 버림받은 후,  에피는 사회적 명망이 높았던 브리스트 가문에서조차도 외면당하고 홀로 쓸쓸한 생을 이어가다 병사한다. 가난을 죄의 값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며 병으로 죽었을 때의 그녀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였다는 거.

  

“그애가 너무 어렸던 건 아닐까요?”

“엄마, 그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병이 들어서 여기서 지낸 나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또 그가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았다는 것도요. 불쌍한 크람파스의 일, 그래요. 그 사람이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겠어요? ”

 

 

에피 브리스트는 안나처럼 자기 주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엠마처럼 허황된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회에서 파문당했다. 결혼이 주는 책임감이나 사회적 의무를 떠나 여인들에게 주어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유일했던 사랑의 댓가로는 너무 잔인한 결과가 아닐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사회적 제도안에서의 여성은 여전히 약자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간통문학의 주인공 에피와 안나, 엠마의 삶은 모두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과 결혼 그 치명적 경계에서 꿈과 현실의 비극적 간극은 불행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불행은 결코 간통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말인데.. 사랑이라는 환등상의 불꽃을 현실의 냉혹함으로 깨워준다는 의미로  '여성 3대 문학'으로 바꾸어 불렀으면 한다.......(간통문학 어감이 ..ㅋㅋ)  간통죄도 이제 없어진다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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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4-08-24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요즘 보바리 부인을 읽고 있던 차라 들어왔습니다.^^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아직 에피 브리스트는 안 읽었는데, 이 참에 읽어봐야겠어요~~

누군가는 결혼문학이라고도 하더라구요. 보통 다른 문제들-가정폭력조차도- 그 집안 사정이라고 쉬쉬하고 모른 체 하는데 간통은 국가가 나서서 벌을 주니.. 요상합니다. 그래도 요즘 점점 생각이 바뀌어가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드림모노로그 2014-08-25 12:00   좋아요 0 | URL
앗 ~ ! 안녕하세요 ~ 꼬마요정님 .. ㅎㅎㅎ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우선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 전 간통죄 폐지를 찬성하는 입장도 반대하는 입장도 아닙니다 ㅎㅎ
다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이해하는 입장 '에서
간통 문학을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ㅎㅎㅎ

좋은 말씀 감사드리고, 행복하고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

비로그인 2015-10-15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글 정말 좋아요........ 제 블로그에 공유하려고 했더니 공유하기에 트위터와 페이스북밖에 안 되네요 ㅠㅠ 네이버 블로그에 옮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네요.ㅠㅠㅠ 퍼가고 출처를 밝혀도 될까요~?

드림모노로그 2015-10-15 13:2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복사를 막아두지 않아서 복사로 네이버 블로그에 옮기시면 될 것 같아요.
대신 주소복사로 알라딘 링크를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 멋진 하루 보내시길 ㅎ~~~!!
 

글은 자신의 생각이고 삶이다. ⓒshutterstock

【강원국 작가, 前 청와대 연설비서관】

아주 간혹 글쓰기가 재미있다는 사람을 만난다. 느낌은 두 가지다. 부러움과 궁금증.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재미난 이유가 궁금하다.
내게 글쓰기는 어렵고 힘든 일이다. 괴로움이다. 산고의 고통이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면서 어느 한 번 쉬운 때가 없었다.

늘 막막했다. 그것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타고나지 않았다. 책임감과 노력의 결과다.
글쓰기가 어려운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유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같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은 시간에서 나온다.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맞다. 손끝으로 사유하는 작업이다.
한 편의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양이 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쓰기이다.

두 번째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수학처럼 답이 없기 때문에 글쓰기가 어렵다. 글에 대한 평가는 십인십색이다.
대통령 연설문 검토회의에서 장관이나 수석들의 코멘트를 듣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셋째, 글쓰기는 다양한 역량을 요구한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글쓰기는 특히 그렇다. 어휘력과 수사력은 기본이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감각이 좋아야 한다. 때로는 감성까지 요구한다.
여기가지는 해볼 만하다. 육체노동은 하면 된다. 필요한 역량도 갖춰 나가면 된다.
끊임없이 연습하면 해결될 일이다. 정답이 없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길은 내 방식대로 만들어 가면 된다.
어떤 사람은 답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튼 우기면 된다. 이게 정답이라고.

문제는 네 번째 이유다.

글을 잘 쓰려면 잘 살아야 한다. 글은 자신의 생각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삶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건 사물이건, 사안이건 간에 주변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많이 생각하고 많이 겪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말은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My Llife is My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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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반을 함께 했던 텐트를 친구에게 넘기고 teepee텐트를 새로 질렀습니다 ㅎㅎㅎ

동계를 위해서는 캔버스가 갑이지만 추가 난방을 하기로 하고 결정한 텐트입니다,

기존의 텐트와는 경량면에서 굉장 가볍다는. 게다가 접었을 때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도 작아 매우 만족합니다.

4인 가족용인데, 두 가족 (8인)이 생활하기에도 넉넉한 공간입니다.

요즘 돔형식의 텐트가 유행이다보니 데크를 뽑아내고 이렇게 잔디밭만으로 구성된 캠핑장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희 텐트 역시 이제 작은 사이즈의 데크에는 사이즈가 안 맞을 것 같네요.

대신 바닥에 그라운드 시트를 좋은 걸로 사야했는데 , 그라운드 시트가 평균 십만원대 하는데

철물점에서 일명 '갑바'라 하는 시트를 3만8천원에 구입해서 깔았습니다..

텐트용품점에서 파는 그라운드 시트보다 방수, 두께, 쿠션이 더 좋습니다 ㅎㅎㅎ

밤이 되니 더 분위기 있는 텐트의 위용이.....정말 러블리하죠 .. 하하하~

이번 하동군 다목적 캠핑장은 정말 , 넘흐넘흐 좋은 곳입니다.

캠핑장 옆으로 맑은 덕천강이 흐르고 있고, 가까운 곳에 관광지가 무지 많은 곳이라

근처 여행하기도 좋고, 지리산 자락이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매우 좋더군요.

청학동까지 한시간 거리, 온천이 삼십분, 지리산 뱀사골 한시간 거리입니다.

운동삼아 저희도 삼성궁(한시간) 갔다왔는데 청학동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배달민족의 국조이신 환인, 환웅, 단궁을 모신 곳으로 몇몇 제자들의 도움으로

직접 솟대(돌탑)을 쌓아 놓은 곳이라고 합니다.

(표기는 한인,한웅,단궁이라고 되어 있는데, 오타인 줄 알았는데.... 한인, 한궁도 맞는 표현인가봐요?)

500m정도 배달길을 따라 걸어올라 묘신지문(卯神止門) 을 지나 삼성궁에 오르면 지리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삼신봉에서 영신대로 잇는 지리산맥은 왼편으로는 반야봉으로 이어지고

오른편으로 천황봉으로 이어지고 그 영험한 기운은 삼성궁으로 모여지는 듯 합니다.

도사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 묘한 기운이 ^^;;;

 

 

다시 캠핑장으로 와서 물놀이 실컷하고 노곤노곤한 몸에 시원한 캔맥주는 바로 천국의 맛 ~~!!

하동군에서 캠핑장을 운영관리하고 있어서인지 화장실 정말 깨끗하고요. (에어컨도 빵빵)

텐트가 없으신 분들은 글렘핑(하루 대여비 6만원)도 할 수 있고,

카라반(하루 대여비 십만원)도 구비되어 있어 펜션처럼 이용가능합니다.

샤워실에 뜨거운 물 콸콸 나옵니다

(단, 순환식 온수기라 사용자가 많으면 온수가 충전되는 시간이 걸립니다.)

개수대 역시도 관리 무지 잘 되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기에 최적의 캠핑장이었습니다.

(하루 사이트비 2만원)

바로 옆의 덕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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