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일침중에서 #점수청정

두보의 [곡강]시 제 4구는 ‘인생에 칠십은 옛날에도 드물었네‘란 구절로 유명하다. 칠십 세를 고희라 하는 것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퇴근 때마다 칠십도 못 살 인생을 슬퍼하며 봄옷을 저당 잡혀 거나해서야 귀가하곤 했다. 시의 5,6구는 이렇다.

꽃 사이로 나비는 깊이깊이 보이고
穿花蛺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 
물 점 찍는 잠자리 팔랑팔랑 나누나.
點水蜻蜓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거나해진 퇴근길에서 눈길을 주는 곳은 만발한 꽃밭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나비들, 잔잔한 수면 위로 꽁지를 살작 꼬부려 점 하나를 톡 찍고 날아가는 잠자리들이다. 여기저기 둘쑤석가리며 잠시도 가만 못 있고 부산스레 돌아다니는 그들은 부러워서 그 꽁무니를 따라 꽃밭 사이와 수면 위를 기웃기웃하곤 했다.

시가 밥을 먹여주나 떡을 주나. 예술이 배를 부르게 하는가. 하지만 인간은 개나 돼지가 아니니 밥 먹고 배불러 행복할 수는 없다.인생이 푸짐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지금보다 쓸데없는 말, 한가로운 일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 ‘쓸데‘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른데, 다들 영양가 있고 쓸데 있는 말만 하려다 보니 여기저기서 없어도 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실용과 쓸모의 잣대만을 가지고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너무 쉽게 폐기해왔다. 고희는커녕 백세도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수명이 늘어난 것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다.

삶의 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수는 오히려 끔찍한 재앙에 가깝다. 올 한 해는 좀 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봄날의 풍광을 더 천천히 기웃거리며 살아 버리라 다짐을 둔다.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고 말 테니까.

#일상

운동을 6년째 하다보니 더위나 추위를
남들보다 잘 견딘다.
치아도 튼튼하여
충치나 시린 이로 고생해 본 적이 없었다.
허나 작년 겨울, 새벽에 운동을 끝내고 나면
버릇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물 처럼 마시곤 했다.
목도 타곤 했지만 집 근처에
천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숖이 생기면서
습관처럼 그러했던 것이다.
가격 부담이 전혀 없어 더욱 습관이 굳어져 갔는데
여름 들어서야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기를 씹는 것이 힘들어졌고
아이스커피를 마실때 이가 시린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고통스러웠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고 나서는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전처럼
마실 수 없게 되었고
좋아하는 육류는 아주 천천히 씹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면
삶이 축복일 수도 있겠지만
고장난 몸으로 오래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재앙에 가까운 지도 모르겠다.
한 번 아팠던 기억이 식습관을 변화시키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일침 책을 펴니
[점수청정]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쓸모없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는 하는데
정말 가치있는 시간쓰기는
나를 위하고 내 건강을 위할 때
쓰는 시간들이다.
생의 수명이 늘어난 것처럼
생을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시간도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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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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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섬에 사는 어느 부족은 쓸모없는 나무를 제거해야 할 때면 온 부족민들이 모여 그 나무를 향해 이렇게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넌 필요 없는 나무야!” “넌 아무 가치가 없어!” 도끼나 톱으로 자르는 대신 그렇게 계속해서 큰소리로 “쓰러져라! 쓰려져라!” 하고 외치면 얼마 안 가 나무가 시들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가 나서 지르는 소리는 거리를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서로의 영혼을 죽게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면, 그것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고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뜻이다. 다정한 관계를 묘사하는 단어 중에 ‘첩첩남남喋喋喃喃’이라는 말이 있다. ‘작은 목소리로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이나 남녀가 마음이 맞아 정답게 속삭이는 모습’을 의미한다. 가슴이 더 멀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소리치지 않기,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이다.

-알라딘 eBook (류시화) 중에서

#인문 #끄적끄적

아침 출근길에 차가 바르게 주차되지 않은 모습을 보고 뭔가 불안한 감이 느껴져서 다시 주차를 해야 하지 않을까 망설이다가 그냥 돌아섰다.
오후즈음에 전화가 왔다.

‘0000차주 되시죠?‘
-아 네~맞습니다~
‘파란색 트럭이 차를 긁고 갔는데 연락 안 왔던가요?‘
-네 사고를 심하게 쳤나요?
‘일단은 오셔셔 상태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찜찜하던 그 감이 현실이구나하는 생각을 잠시 하고
가서 보니 한 눈에 파란색으로 그어진 기스가 보이고 범퍼가 찌그러져 있었다. 판금까지 해야 할 것 같은데 차를 누가 긁고 간 줄 알수가 없어 난감하던 중 어떤 분이 막 뛰어오셨다. 실수로 차를 긁은 사람이라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미안해 하는 모습을 보니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어 사진은 찍어놓으셨죠? 하니 사진 찍어놨다고 하시길래 우선은 돌아가시고 보험처리 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현금으로 보상하시길 원하세요?원하시는 걸로 하죠. 하고는 남편에게 전화해서 정비소에서 견적 좀 뽑아보라고 부탁을 했다.
어림짐작으로는 20만원 나올 것 같더니 정비소에서 뽑은 견적이 50만원이나 된다.
차를 긁은 사람에게 전화해서 50만원을 이야기하니 펄쩍뛰는데 판금을 하는 비용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했더니 20만원으로 쇼부를 보자한다.
깍아도 어쩜 도떼기 시장 가격흥정하듯이 ...
반토막 이상을 날리는지... 아침에 머리를 스치던 불길한 예감을 떠올리면 나의 잘못도 없지 않아 있기에 그러시라고 하고 말았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인디언 부족의 이야기를 읽다가 생각난 건데 사람의 가장 타고난 부분이 직감 또는 직관과 같은 영감이라고 한다. 인간을 물질과 동일선상으로 취급하는 현대는 이런 영적인 감각들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무디게 한다. 아마 인디언 부족이 말로 나무를 죽일 수 있다는 건 타고난 초감각적인 것들을 잃고 살아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각들이 깨어있는 사람들을 드물게 만나는데 대부분 자기절제와 명상으로 배우는 삶을 살고 계신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학습해야 할 부분은 가장 인간적인 것의 회복, 타고난 感감이 아닐까.

우리의 말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__^오늘의 밑줄 쫙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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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초신심 #일침중에서 #조선시대풍경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파초>란 글이 있다. 여름날 서재에 누워 파초 잎에 후득이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때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을 아껴 파초를 가꾸노라고 썼다. 없는 살림에도 소 선지에 생선 씻은 물, 깻묵 같은 것을 거름으로 주어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로 길러 낸 일을 자랑스러워했다.앞집에서 비싼 값에 사갈 테니 그 돈으로 새로 지은 서재에 챙이나 해 다는 것이 어떻겠느냐 해도, 챙을 달면 파초에 비 젖는 소리를 못 듣는다며 들은 체도 않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파초 기르는 것이 꽤 유행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파초 사랑도 유난했다. 파초는 남국의 식물이다. 겨울을 얼지 않고 나려면 월동 마련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폭염 아래서 파초는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로 초록 하늘을 만들어 눈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그래서 파초의 별명이 녹천이다. 이서구의 당호는 ‘녹천관‘인데, 집 마당의 파초를 자랑으로 여겨 지은 이름이다.


파초 잎에 시를 쓰며 여름을 나는 일은 선비의 운사로 쳤다. 여린 파초 잎을 따서 그 위에 당마라 왕유의 [망천절구]시를 쓴다. 곁에서 먹을 갈고 있던 아이가 갖고 싶어 한다. 냉큼 건네주면서 대신 호랑나비를 잡아오게 한다. 머리와 더듬이, 눈과 날개의 빛깔을 찬찬히 관찰하다가 꽃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향해 날려 보낸다. 이덕무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런 운치 말고도 옛 선비들이 파초를 아껴 가꾼 것은 끊임없이 새 잎을 올라오는 자강불식의 정신을 높이 산 까닭이다. 송나라 학자 장재라는 파초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초의 심이 다해 새 가지를 펼치니
새로 말린 새 심이 어느새 뒤따른다
새 심으로 새 덕 기름 배우길 원하노니
문득 새 잎 따라서 새 지식이 생겨나리

芭蕉心盡展新枝
新券新心暗已隨
願學新心養新德
旋隨新葉起新知


잎이 퍼져 옆으로 누우면 가운데 심지에서 어느새 새닢이 밀고 나온다.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늘 이렇듯 중단 없는 노력과 정진을 통해 키가 쑥쑥 커 나가는 법이다.

*****
새벽에 일어나 <일침>책을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다른 일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한 구절씩 꺼내 읽고 적던 시간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새삼 깨닫곤 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파초에 시를 필사하여
편지를 보내던 마음을
파초신심 네 글자로 되새겨 봅니다.
오늘도 낭비하는 시간없이
오롯이 하루에 충실할 수 있기를 빌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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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끄적끄적

니체는

‘살아갈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도 참도 견딜 수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아침 책상앞에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무언가를
무엇이라도 써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 또는 강박증이
봄부터 줄기차게 저를 따라다닙니다.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기억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눈뜨면 운동을 하러 나가고
저녁이 되면 잠들기 바빴습니다.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보통의 날들이었죠.
이 평범하고 보통의 날들이
살아갈 이유를 말해줄리가 없습니다.

어쩌면 현대는 이런 권태로운 일상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극한 상황에서야 빛을 발하는 살아갈 이유
살아가면서 극한 상황을 맞이할 확률은
과연 몇 퍼센트일까요

우리는 누구나 여전히 세상이 주입하는 가치관에
흔들리고 있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실존의 공허함에 시달립니다.
신념과 가치관은 바람앞의 갈대처럼
흔들리곤 합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극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의지, 신념과 같은
것들이 아닐런지요.

흔들리는 건
바람이 아니라
스스로 흔드는 갈대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듯이

삶에서 살아갈 이유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저 보통의 나날속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고민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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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두 사람을 너무 더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펼쳐보고는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습니다. 속도감있는 문체이기도 하지만 허를 찌르는 반전에 왠지모를 소름도 돋으니 더위를 어느새 잊고 말았어요. 현대를 살아가는 불행한 가족사를 보는 듯해 가슴 졸이기도 하였구요. 아마 상반기 가장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책하면 오직 두사람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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