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간통문학으로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에피 브리스트>를 꼽는다. 간통은 사회에서 터부시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간통죄폐지를 앞두고 반대보다 찬성
여론이 많은 것을 볼 때 결혼관 자체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음을 느낀다. 세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져 19세기의 결혼관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또한 공통적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나 바람은 국적을 막론하고 비슷한 책임을 떠안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마담 보바리>의 엠마는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배웠고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문학이라는 안경으로 사회를 인지하였던 그녀는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채 결혼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던져진 생의 잔인함은 엠마를 보바리즘이라는 ‘과대망상’의 대명사로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삶에서 더 잔인하였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은 명백하다. 당시 사회적 지위와 명예로 수행되었던 결혼제도는 여성들에게 잔인한 굴레였다. 물론 그러한 굴레에서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멋진 어머니상으로 남겨진 여성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표현한다면 희생없이 살아가기 힘든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제도에 대해서는 왜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는가이다. 플로베르는 <마담 보바리>를 통해 허영과 비속한 부르주아의 단면들을 보바리 부인뿐만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면면들을 통해 보여주며 통렬하게 시대를 비틀었지만, 엠마는 결국 시대에 허물어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막을 내렸다, 엠마의 불행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불행과 같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의 톨스토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마담 보바리>와 차별된다. 안나는 엠마와 달리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안나는 19세기 여성차별에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하였고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할 줄 알았다. 그런 주체성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서 희생할 줄
아는 여성상으로 나타난다.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하는 주변 여성들이 자신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여기면서도 결혼제도에 갇혀 슬픔과 불행을 감수하는
것과는 반대로 안나는 자신의 사랑과 삶을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러나, 안나 역시도 여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사랑 역시 현실의
차가운 장벽 앞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피 브리스트》에서의 에피는 엠마와 안나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에피는 여성이라는 아이덴티티의 자각을 깨닫기도 이전에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피해자이자 희생양일 뿐이다.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에피는 낙엽 구르는 모양새만 봐도 웃음보를
터트리는 천진난만한 소녀에 불과했다. 이제 막 사춘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는 브리스트 가문의 외동딸로 가문의 명예에 순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다는 것이다. 결혼 역시도 에피는
부모님이 정해준 결혼 상대자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케신의 군수인 인슈테텐 남작과의 결혼은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아버지 나이뻘인
인슈테텐의 나이를 비웃는 친구들이 오히려 에피의 입장에서는 불순종이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그녀의 의식 저변에는 사랑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셈이다. 그녀는 인슈테텐의 교육자적인 태도, 신혼인데도 무감각한 표현들, 매사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육적인 태도들을 묵묵히 감수해 나가지만, 어린 나이에 헤쳐가야 할 귀족사회와 나이 많은 부인들네들의 가십거리가 되자 서서히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귀족사회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하면서 고립무원의 신세가 된 에피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난 젊디젊은 소령 크람파스 소령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젊은 피 크람파스와 외도를 하지만, 늘 한결같고 정중한 그러면서도 친절한 남편 인슈테텐을 향한 죄책감은 에피를 괴롭힌다. 그러던 중 베를린으로 승진 발령이 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크람파스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
7년이 지날 때까지 인슈테텐과 에피는 평온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에피가 여행간 사이 꽁꽁 숨겨둔 크람파스와의 연애 편지로 인슈테텐은 부하직원과 에피의 간통사실을 알게 되고, 인슈테텐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크람파스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결국 크람파스는 인슈테텐의 총에 맞아 죽는다.(당시 공증인이 참석한 가운데 벌어진 결투는 누가 죽던간에 정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이전까지 에피가 말하듯 ‘사랑해야 할 점이 전혀 없지 않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자, ‘사회적 고결함’ 그 자체였던 인슈테텐은 질투에 눈이 멀어 부하를 죽이고 에피를 사회에게 매장시키는 잔인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인슈테텐에게 버림받은 후, 에피는 사회적 명망이 높았던 브리스트 가문에서조차도 외면당하고 홀로 쓸쓸한 생을 이어가다 병사한다. 가난을 죄의 값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며 병으로 죽었을 때의 그녀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였다는 거.
“그애가 너무 어렸던 건 아닐까요?”
“엄마, 그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병이 들어서 여기서 지낸 나날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예요. 또 그가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았다는 것도요. 불쌍한 크람파스의 일,
그래요. 그 사람이 달리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겠어요? ”
에피 브리스트는 안나처럼 자기 주장을 가져 본 적도 없고, 엠마처럼 허황된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회에서 파문당했다. 결혼이 주는 책임감이나 사회적 의무를 떠나 여인들에게 주어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서 유일했던 사랑의 댓가로는 너무 잔인한 결과가 아닐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아무리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사회적 제도안에서의 여성은 여전히 약자에 머물러 있다. 세계 간통문학의 주인공 에피와 안나, 엠마의 삶은 모두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다. 사랑과 결혼 그 치명적 경계에서 꿈과 현실의 비극적 간극은 불행을 잉태할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불행은 결코 간통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말인데.. 사랑이라는 환등상의 불꽃을 현실의 냉혹함으로 깨워준다는 의미로 '여성 3대 문학'으로 바꾸어 불렀으면 한다.......(간통문학 어감이 ..ㅋㅋ) 간통죄도 이제 없어진다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