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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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시 대작가네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인데도 가슴이 시릴 정도로 공감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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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보윤 초보습 크림 - 50ml
LG생활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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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심한 건성이라 많은 제품을 써봤지만 이 제품만큼 톡톡히 효과를 본 것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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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탕달의 연애론 - 새롭게 쓰는
스탕달 지음, 권지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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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달 전 정혜윤 PD의 독서기가 담긴 『침대와 책』에서 읽은 구절 하나가 있다. 그녀는 여러 감정들이 사무쳐 올 때 수천 가지 연애 감정을 적어놓은 스탕달의 『연애론』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읽는다고 했다. '책 속의 책'을 꼬리물기식으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애 감정이라는 것에는 상당히 무덤덤한 사람인지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무덤덤한데, 나이가 더 들면 얼마나 더 무감각해질까. 한 살을 더 먹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얼른 집어 들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애 이론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 두 사람이 있다.

─ "스탕달의 『연애론』을 지금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 " 이 책 읽으면 도움이 됩니까?"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왜냐하면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움과 감탄이 터지는 강렬한 기억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데, 우리의 풍습은 어떠한가. 젊은 여자를 시장에 내놓듯 맞선 시장에 선보여 미래의 남편을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런 합법적인 매춘 행위는 도덕심을 크게 해하는 일이다. (p. 111)

 

어떤가? 모르고 읽는다면 요즘 시대의 이야기라고 어느 누가 믿지 않겠는가. 물론 이 구절뿐만이 아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스탕달이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822년이었고, 분명 그 시대상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오래 전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연애'라는 것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사랑을 보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사랑을 보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보편적인 감정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은 달라질 수 있다.

 

두번째 질문의 답은 잘 모르겠다. 스탕달의 연애 이론을 읽으면서 '아, 그래서 그땐 그랬구나.'하며 그 상황을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이론을 적용시켜 볼 구체적인 상대가 없으니 이렇게 하면 통하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애'라는 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싶다. 스탕달 자신조차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하물며 그것을 정리하려 들다니.

그래서 내 결론은 지금도 적용은 할 수 있지만 도움이 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거다.

 

이 책은 그냥 스탕달의 『연애론』이 아니라 앞에 '새롭게 쓰는'이 붙었다. 번역자가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 윤문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경계를 분명히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의 즐거움은 사랑하는 것이다. 정열은 다른 사람에게 불어넣어줄 때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더 행복한 것이다." - 라 로슈푸코 (p. 263)

 

2007/12/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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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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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는 서양에만 있었다?

'18세기 조선 경제학자들의 부국론', 언뜻 생각해 보면 상당히 낯선 조합이다. 조선시대에도 부국론을 주장했던 경제학자가 있었나? 나름 학창 시절에 국사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렇다. 서양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경제학, 분명 조선에서도 존재했었다. 단지 '식민의 역사' 탓으로 잊혀졌을 뿐이고, 서양이나 일본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보다 훨씬 낮게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서양의 경제학과 궤적을 함께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상과 이론이 분명 존재했다.

 

조선의 경제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중농주의 사상은 나라의 모든 근본은 토지에 있으며 백성의 대부분이 농민이기 때문에 토지 개혁만 잘 한다면 부국안민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이 사상은 유형원 이익 → 정약용을 거쳐 '아래로부터의 농민(토지) 개혁'을 주장했던 갑오농민군에게 계승된다.

다음으로 중상주의 사상은 잘 살려면 농업 생산이 아닌 상품 유통과 해외 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이 사상은 이지함 → 유수원 → 박지원 → 박제가 → 박규수를 거쳐 '위로부터의 정치 혁명'인 개화 독립당(개화당)에게 계승된다.

그러나 이 두 사상의 개혁은 결국 실패했다. 갑오개혁이든 갑신정변이든 어느 하나라도 성공을 했더라면 조선이 그렇게 쉽게 외세에 의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17세기 조선 최대의 과제는 (지금처럼)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살리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토지 개혁이 필요했다. 조선 최고의 관료 경제 이론가였던 김육은 조세의 폐단을 막기 위해 대동법을 주장했다. 지방 토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는 대신 베와 쌀로만 조세를 수취하도록 한 대동법은 상공업과 시장 경제 발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화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상평통보가 만들어졌고 본격적으로 상품-화폐 경제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최고 관료의 신분으로 자신의 개혁 사상을 현실 정책으로 입안하고 실천한 그의 사상은 공업 발달과 상업적 농업의 진흥을 역설한 북학파에 의해 계승되었다.

 

조선의 최고 개혁 군주를 꼽으라고 한다면 전기는 세종대왕, 후기는 정조 대왕이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을 꼽으라고 하면 세종 시대는 황희 정승을 쉽게 떠올리지만 정종 시대는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 시대에도 황희 정승 못지않은 명정승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체제공이다. 그는 정조 대왕이 실현한 개혁의 총사령관으로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을 철폐시킨 '신해통공'을 단행해 일부 상인에 의한 시장 독점을 막았다. 또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적 계획도시라고 할 수 있는 화성 건설의 총지휘를 맡기도 했다. 당초 공사 기간을 10년으로 계획했지만, 그의 뛰어난 지휘로 2년 6개월로 단축했다. 당시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백성들의 강제 동원 대신 빈농들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급가모군'의 방법으로 노동력을 동원했다. 그 덕분으로 노동력 비용 절감과 공사 기간 단축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조선을 구한 경제학자에는 남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는 '암흑의 시대'였지만 생활 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저술해 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가 된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빙허각 이씨이다. 그녀는 전주 이씨 가문에서 태어나 달성 서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당시 달성 서씨 가문은 최고의 학자 가문으로 그녀의 남편인 실학자 서유본이 그녀의 학문 및 저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뿐만 아니라 시동생 서유구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보다 넓은 의미의 일반 경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남겼다.

 

사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국사보다는 지리 교과서에서 더 깊게 다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지형적인 요소만을 다루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토지의 비옥도와 경작 조건은 물론, 목면의 산지와 재배 조건, 특용작품 재배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 등을 밝혀 농업 생산성의 향상과 상업적 농업 경영을 주장했던 경제학자이다.

 

중상주의 학파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유수원은 '인구 증가가 빈곤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영국의 고전주의 경제학자인 맬서스의 인구론을 뒤집는 주장을 했다. (그는 맬서스보다 60년 앞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으니, 당연히 그의 이론을 알 리가 없다.) 『왜 세계의 절반을 굶주리는가?』에서 장 지글러는 기근이 인구 증가를 억제한다는 맬서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며 기근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다. 유수원 또한 백성이 점차 가난하고 궁핍해지는 이유는 인구 증가가 문제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경제 제도와 시스템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18세기 조선 실학과 경제학의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성호사설》의 이익,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조선 최초로 중상주의를 통해 부국을 지향한 토정 이지함, 중상주의 팍파의 브레인 박제가, 중농주의 경제학의 대부 유형원,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오랑캐라도 섬기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박지원, 통상 개화를 통한 자주적 부국의 길을 밝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등도 등장한다. 사실 이들의 사상과 이론은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국사 교과서를 통해 접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분배'가 가장 큰 문제인 듯 하다. 이 책이 지금 나온 것은 아마도 시대의 반영과 요구 때문일 것이다. 특히 13인의 경제학자들을 모시고 구성한 가상 좌담은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듯 해서 흥미로웠다.

 

2007/12/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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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의 검은 표범
아모스 오즈 지음, 허진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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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이 개입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분쟁을 보면서 사실 난 팔레스타인의 편이었다.

2,000년 전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유대인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그들은 각국에서 유대인의 명성을 떨치며 요직을 차지하고 있었고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굳이 그들은 그 땅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민족이었고, 오히려 잃어버린 땅 때문에 더 똘똘 뭉칠 수 있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가난했다. 그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 오랫동안 그곳이 자신들의 터전이라 믿으며 편하게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의 중국 대륙이 예전에 우리 고구려 용사들이 누비고 다녔던 곳이라고 해서 그곳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간혹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며 우리도 돌려달라고 미친 척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팔레스타인의 편을 드는 결정적인 이유는 강대국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대국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운 유대인들의 능력은 높이 사고 싶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 강대국들은 유대인들보다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돕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박해를 받고 나치에 의해 희생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다.

 

『지하실의 검은 표범』은 1948년 유대인에 의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1년 전인 1947년의 이스라엘 이야기이다.

'열 두살하고도 삼 개월'의 소년 프로피는 '영국군이 철수한 후 이스라엘이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태어나기 일 년 전',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여름 방학을 보내고 있다. 소년은 친구들과 함께 이른바 FOD(Freedom or Death)라는 비밀지하조직을 결성한다. 그리고 지하조직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하실의 검은 표범》의 제목을 따 자신의 별명으로 삼는다.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영국은 유대인에게 어떤 압제를 가했기에 어린 소년마저도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 책에는 구체적인 압제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소년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년이 비밀지하조직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상상만 할 뿐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일은 없다. 게다가 소년의 부모가 소년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도록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소년이 당한 제재라고는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경감과 집에 함께 간 후 부모님께 외출 금지를 당한 정도라고나 할까.

소년은 경감과 사제지간이다. 경감이 소년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면 소년은 경감에게 히브리어를 가르쳐 준다. 경감에게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면 진정한 배신자가 될 것 같아 절대 그에게 이름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함께하는 FOD 조직원들은 그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재판에 회부하기도 한다.

사실 어린 소년의 눈과 입을 통해 그려지는 이야기인지라 그리 잔혹하다거나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소년의 눈과 입을 빌려 그 분위기를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림자는 빼고요, 아빠. 조금 전에 세상의 모든 일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빠 말이 거의 옳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그림자는 한 면만 있다는 사실을 잊으셨어요. 못 믿으시겠거든 가서 확인해보세요. 실험도 한두 번 해볼 수 있겠죠. 법칙을 증명하는 것은 예외라고, 일반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신 건 아빠 아니었어요? 직접 저한테 가르쳐 주시곤 아빠는 잊으셨군요." (P. 19)

 

실제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당시 여덟 살이었던 작가 아모스 오즈의 원래 이름은 아모스 클라우스너였다. 이야기 속 프로피처럼 과격함을 쫓던 오즈는 열네 살 때 '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오즈'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옮은 것과 옳은 것이 부딪칠 때는 그 '옮음'보다 더 높은 가치가 이겨야 한다. 그 가치는 바로 생명 그 자체다"라는 주제를 일관되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가장 높은 가치가 바로 생명이라면,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유대인처럼 그들의 입장을 전해줄 수 있는 작가를 찾아볼 수 없다. 아모스 오즈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

 


정말로 일어난 일의 반대는 무엇일까?

"일어난 일의 반대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야." _ 어머니

"일어난 일의 반대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_ 아버지

"일어난 일의 반대는 거짓말과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야."_ 야르데나

(P. 226)

 

2007/12/22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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