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연애론 - 새롭게 쓰는
스탕달 지음, 권지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한 달 전 정혜윤 PD의 독서기가 담긴 『침대와 책』에서 읽은 구절 하나가 있다. 그녀는 여러 감정들이 사무쳐 올 때 수천 가지 연애 감정을 적어놓은 스탕달의 『연애론』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놓고 읽는다고 했다. '책 속의 책'을 꼬리물기식으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애 감정이라는 것에는 상당히 무덤덤한 사람인지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이렇게 무덤덤한데, 나이가 더 들면 얼마나 더 무감각해질까. 한 살을 더 먹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얼른 집어 들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연애 이론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 질문을 던진 두 사람이 있다.

─ "스탕달의 『연애론』을 지금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 " 이 책 읽으면 도움이 됩니까?"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왜냐하면 충분히 적용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놀라움과 감탄이 터지는 강렬한 기억으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사랑인데, 우리의 풍습은 어떠한가. 젊은 여자를 시장에 내놓듯 맞선 시장에 선보여 미래의 남편을 소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런 합법적인 매춘 행위는 도덕심을 크게 해하는 일이다. (p. 111)

 

어떤가? 모르고 읽는다면 요즘 시대의 이야기라고 어느 누가 믿지 않겠는가. 물론 이 구절뿐만이 아니다.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스탕달이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822년이었고, 분명 그 시대상이 녹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오래 전 이야기 같지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연애'라는 것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질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사랑을 보더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뜨거운 사랑을 보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물론 보편적인 감정을 둘러싸고 있는 시대적인 배경은 달라질 수 있다.

 

두번째 질문의 답은 잘 모르겠다. 스탕달의 연애 이론을 읽으면서 '아, 그래서 그땐 그랬구나.'하며 그 상황을 이해는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이론을 적용시켜 볼 구체적인 상대가 없으니 이렇게 하면 통하는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책을 읽는 내내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연애'라는 것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는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싶다. 스탕달 자신조차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는데, 하물며 그것을 정리하려 들다니.

그래서 내 결론은 지금도 적용은 할 수 있지만 도움이 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거다.

 

이 책은 그냥 스탕달의 『연애론』이 아니라 앞에 '새롭게 쓰는'이 붙었다. 번역자가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면서 윤문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 경계를 분명히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랑의 즐거움은 사랑하는 것이다. 정열은 다른 사람에게 불어넣어줄 때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을 때 더 행복한 것이다." - 라 로슈푸코 (p. 263)

 

2007/12/28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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