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경제학자는 서양에만 있었다?

'18세기 조선 경제학자들의 부국론', 언뜻 생각해 보면 상당히 낯선 조합이다. 조선시대에도 부국론을 주장했던 경제학자가 있었나? 나름 학창 시절에 국사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낯설게 다가온다.

그렇다. 서양의 전유물로만 여겨져 왔던 경제학, 분명 조선에서도 존재했었다. 단지 '식민의 역사' 탓으로 잊혀졌을 뿐이고, 서양이나 일본 학자들의 학문적 성과보다 훨씬 낮게 평가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서양의 경제학과 궤적을 함께하고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사상과 이론이 분명 존재했다.

 

조선의 경제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중농주의 사상은 나라의 모든 근본은 토지에 있으며 백성의 대부분이 농민이기 때문에 토지 개혁만 잘 한다면 부국안민과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이 사상은 유형원 이익 → 정약용을 거쳐 '아래로부터의 농민(토지) 개혁'을 주장했던 갑오농민군에게 계승된다.

다음으로 중상주의 사상은 잘 살려면 농업 생산이 아닌 상품 유통과 해외 무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이 사상은 이지함 → 유수원 → 박지원 → 박제가 → 박규수를 거쳐 '위로부터의 정치 혁명'인 개화 독립당(개화당)에게 계승된다.

그러나 이 두 사상의 개혁은 결국 실패했다. 갑오개혁이든 갑신정변이든 어느 하나라도 성공을 했더라면 조선이 그렇게 쉽게 외세에 의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17세기 조선 최대의 과제는 (지금처럼)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살리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토지 개혁이 필요했다. 조선 최고의 관료 경제 이론가였던 김육은 조세의 폐단을 막기 위해 대동법을 주장했다. 지방 토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는 대신 베와 쌀로만 조세를 수취하도록 한 대동법은 상공업과 시장 경제 발달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덕분에 화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상평통보가 만들어졌고 본격적으로 상품-화폐 경제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최고 관료의 신분으로 자신의 개혁 사상을 현실 정책으로 입안하고 실천한 그의 사상은 공업 발달과 상업적 농업의 진흥을 역설한 북학파에 의해 계승되었다.

 

조선의 최고 개혁 군주를 꼽으라고 한다면 전기는 세종대왕, 후기는 정조 대왕이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재상을 꼽으라고 하면 세종 시대는 황희 정승을 쉽게 떠올리지만 정종 시대는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조 시대에도 황희 정승 못지않은 명정승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체제공이다. 그는 정조 대왕이 실현한 개혁의 총사령관으로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을 철폐시킨 '신해통공'을 단행해 일부 상인에 의한 시장 독점을 막았다. 또 우리 역사 최초의 근대적 계획도시라고 할 수 있는 화성 건설의 총지휘를 맡기도 했다. 당초 공사 기간을 10년으로 계획했지만, 그의 뛰어난 지휘로 2년 6개월로 단축했다. 당시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백성들의 강제 동원 대신 빈농들을 돈을 주고 고용하는 '급가모군'의 방법으로 노동력을 동원했다. 그 덕분으로 노동력 비용 절감과 공사 기간 단축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조선을 구한 경제학자에는 남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는 '암흑의 시대'였지만 생활 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저술해 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가 된 여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빙허각 이씨이다. 그녀는 전주 이씨 가문에서 태어나 달성 서씨 가문으로 시집을 갔다. 당시 달성 서씨 가문은 최고의 학자 가문으로 그녀의 남편인 실학자 서유본이 그녀의 학문 및 저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뿐만 아니라 시동생 서유구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보다 넓은 의미의 일반 경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를 남겼다.

 

사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국사보다는 지리 교과서에서 더 깊게 다룬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지형적인 요소만을 다루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토지의 비옥도와 경작 조건은 물론, 목면의 산지와 재배 조건, 특용작품 재배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 등을 밝혀 농업 생산성의 향상과 상업적 농업 경영을 주장했던 경제학자이다.

 

중상주의 학파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유수원은 '인구 증가가 빈곤의 원인'이라고 주장한 영국의 고전주의 경제학자인 맬서스의 인구론을 뒤집는 주장을 했다. (그는 맬서스보다 60년 앞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으니, 당연히 그의 이론을 알 리가 없다.) 『왜 세계의 절반을 굶주리는가?』에서 장 지글러는 기근이 인구 증가를 억제한다는 맬서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며 기근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다. 유수원 또한 백성이 점차 가난하고 궁핍해지는 이유는 인구 증가가 문제가 아니라 비효율적인 경제 제도와 시스템이 원인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18세기 조선 실학과 경제학의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성호사설》의 이익,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조선 최초로 중상주의를 통해 부국을 지향한 토정 이지함, 중상주의 팍파의 브레인 박제가, 중농주의 경제학의 대부 유형원,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오랑캐라도 섬기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 박지원, 통상 개화를 통한 자주적 부국의 길을 밝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 등도 등장한다. 사실 이들의 사상과 이론은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국사 교과서를 통해 접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분배'가 가장 큰 문제인 듯 하다. 이 책이 지금 나온 것은 아마도 시대의 반영과 요구 때문일 것이다. 특히 13인의 경제학자들을 모시고 구성한 가상 좌담은 마치 100분 토론을 보는 듯 해서 흥미로웠다.

 

2007/12/27 by 뒷북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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