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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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하와(Hawwah)가 탄생하기 전까지 아담(Adam)은 남성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었다. 하와가 탄생하고 나서야 ‘남성’, ‘여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남성은 남성적 가치관에 따라, 여성은 여성적 가치관에 따라 획일적으로 양육되며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아 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방법이자 가치라고 교육받는다. 또한, 이성애만이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랑이자 덕목이라고 배운다.

 

성(sex)은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의학적 개념이다. 젠더(gender)는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 · 문화 ·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현상을 포괄한 개념이다. 페미니즘(feminism)은 가부장적 질서에 반대하면서 젠더에 기초한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이다. 근대사회가 일원론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회였다면 오늘날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폭력 불감증에 걸려 있다. 특정 대상에게 향하는 혐오 발언에는 언제나 폭력이 있다. 일상생활에 침투한 혐오 발언은 가히 치명적이다. 주장이 다르면 공격하고 공격당한다. 다양성의 사회에 살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론이 설 자리를 잃고 설득이나 이해는 통하지 않는다.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 · 여성혐오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남녀차별이 존재한다. 김고연주《나의 첫 젠더 수업》은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어떤 식으로 성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했는지 청소년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가족 안에서 ‘고정된 성 역할’이 어떻게 주입되고 고착되는지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은 가정 내에서 소극적 · 수동적인 여성성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흔히 분홍색은 여성을 대변하는 색깔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강조하는 것이나 남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금기시하는 것 모두 비교육적이다. 성 정체성이 생기지 않은 시기에서부터 특정한 색을 접하는 아이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다워야만 취업이나 결혼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인간의 가치를 외모로만 따지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경시하는 속물주의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얼굴이나 몸매를 가장 먼저 쓰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시기부터 벌써 루키즘(lookism, 외모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학생들은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으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저자는 청소년 독자들이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현실적인 사례(비현실적인 바비 인형의 몸,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 등)를 들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근대 초기의 여성상은 가족의 생계 부양자이자 가장으로서의 남성상을 보완하는 모습이었다. 모성, 감정, 사랑스러움 등이 그 여성상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모성을 신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스스로 또는 타인에게 모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모성 본능은 본래부터 여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바댕테르의 입장을 인용하여 육아 노동을 전담하는 여성을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 본능’의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모성은 출산을 경험한 어머니에게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인간적 감정’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분법적 성 역할, 혐오 문제는 자신 또는 타인의 생각과 신체에 대한 생각과 행동 범위를 축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꼭꼭 숨기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손가락질하고 혐오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저자는 자신과 타인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한다면 남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정된 성 역할에 맞서는 남녀에게 당부하는 그녀의 말이 깊고도 넓은 혐오 사회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으로 이어질 것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타인에 향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사람은 타인과 정서적 연결을 맺고 타인을 공감한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다. 주제별로 읽는 것이다. 그때그때 관심에 따라, 이런 조합, 또 저런 묶음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접근을 통해 어른, 청소년 독자들은 젠더라는 새로운 시각이 사회를 달리 해석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성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은 왜곡된 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제대로 이끌어주려면 어른들도 성을 공부해야 한다. 어른도 잘 모르고 틀릴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성을 다시 공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다. 《나의 첫 젠더 수업》은 여성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여성, 남성을 넘어선 성숙한 인간이라는 목표에 좀 더 접근하도록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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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1-2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강조하는 것이나 남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금기시하는 것 모두 비교육적이다. ; 여자 아이가 스스로 분홍색을 좋아할 때, 그것을 금기시하는 것은 교육적일까요. 비교육적일까요?

우리 딸아이를 예로 든다면 유치원 입학하면서 분홍색을 좋아하다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저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cyrus 2018-01-24 15:19   좋아요 0 | URL
딸이 스스로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니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홍색은 ‘여자의 색’, 파랑색은 ‘남자의 색’이라는 편견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편견을 가르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됩니다. 남자 친구들 대부분이 분홍색보다 파랑색을 선호하면, 그들과 어울리는 남자 아이는 파랑색을 선호하게 됩니다. 여자 아이도 마찬가지에요. 분홍색을 선호하는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면 분홍색을 좋아하게 되죠. 다가 후토시의 <남자문제의 시대>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마립간님처럼 자녀가 무슨 색을 좋아하든 내버려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립간 2018-01-24 19:09   좋아요 0 | URL
아래 비밀댓글에 대한 답변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른의 개입 없이, 유치원생들 사이에서 색깔에 관한 남녀 편향이 생긴다면 어른이 아이들의 사고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때의 직접 개입은 설명이나 설득이 아닌 물리적 개입을 말합니다.


cyrus 2018-01-25 12:31   좋아요 1 | URL
<남자문제의 시대>의 저자는 남녀평등교육을 도입한 학교의 사례를 분석해서 남녀평등교육 도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합니다. 저자의 의견에 저도 동의하고요, ‘물리적 개입’으로 아이들의 색깔 편향을 바로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편견이 잘못된 내용임을 알려주는 것이 ‘개입’일까요? 저는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기 위해선 부모의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립간 2018-01-25 14:27   좋아요 0 | URL
cyrus 님이 전에 언급했던, 양성 평등을 위한 폭력을 반대한다는 일관된 가치관의 댓글로 보입니다.

편견을 바로 잡는 교육, 훈계 그 무엇이든 개입은 개입이죠. 긍정적인 개입일 뿐이죠.

남녀불평등에 관해, 물리적 개입이 아닌 ‘잘못된 내용임을 알려주는 개입‘으로 충분한가. 성인의 경우에는 아이와 무엇이 다른가가 생각해 볼 점이겠군요.

(그리고 사람을 악어에 비유하는 것은 언어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1-2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4 15:23   좋아요 1 | URL
학교도 고정된 성 역할과 관련된 편견을 습득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남자 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하는데, 동성 친구들이 ‘너 분홍색 좋아하니 여자구나’하고 놀리면, 남자 아이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여자의 색인 분홍색’이라는 편견을 스스로 극복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떳떳이 밝히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아이들은 동성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성 친구들의 취향을 따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