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 러브크래프트 전집 특별판 러브크래프트 전집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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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서 사는 게 힘들 지경입니다.” 힘이 없어 보이는 저 표정이 말해주고 있다.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Clark Ashton Smith)는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체질이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던 스미스의 유일한 오락은 독서였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는 것을 포기하고 항상 책들과 어울려 놀았다. 스미스는 열여덟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첫 시집을 읽은 어느 소설가는 스미스를 ‘셰익스피어, 키츠, 셸리의 전통을 잇는 가장 위대한 미국 시인’이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그를 향한 혹평도 만만치 않았다. 소심한 성격의 스미스에게 혹평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 독이었다. 수줍은 성격 때문에 문단의 동료 작가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반짝인기에 그치고 만 스미스는 문단과 대중에 잊혀갔다. 만약에 스미스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면 살아있는 자들은 그를 ‘미국이 외면한 천재 요절 시인’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다행히 스미스는 키츠와 셸리처럼 요절 시인의 운명을 밟지 않았다. 스미스는 자비로 시집을 펴냈으며 가끔 양계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면서 생계를 근근이 이어왔다.

 

어느 날 스미스는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스미스의 시집을 읽은 ‘소설가’가 보낸 편지였다. 소설가의 편지는 스미스의 시집에 향한 극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인간관계에 이미 크게 한 번 데인 적이 있는 스미스는 소설가의 칭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시를 호의적으로 보는 소설가를 만나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소설가도 스미스처럼 세상의 교류를 끓은 채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스미스는 소설가의 칭찬이 진심으로 느껴졌고, 그가 추구하는 문학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답장을 보내기로 한다.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Providence). 수신자의 이름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였다.

 

“나는 프로비던스에서 태어났다(I’m Providence).” 러브크래프트가 생전에 했던 말은 그의 묘비명이 된다. 러브크래프트는 신(Providence)이다. 그는 무명작가로 남을 뻔한 스미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구세주(Providence)다. 러브크래프트의 조언을 받은 스미스는 책의 양분을 먹고 자란 상상력을 이용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스미스의 시집을 혹평한 평론가들은 스미스를 ‘불길한 작가’, ‘송장을 파먹는 구울(Ghoul)’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자신의 연약한 마음을 아프게 만든 독을 이용하여 과감하고 대범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스미스의 공포소설에 나오는 장소는 대체로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다. 거기다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도 등장한다. 스미스의 몸은 허약했으나 상상력이 충만한 정신은 아주 튼튼했다.

 

『노래하는 불꽃의 도시』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할란 엘리슨(Harlan Ellison)에게 영감을 준 의미 있는 소설이다. 할란 엘리슨은 이 소설을 읽고 본격적으로 환상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며, 『노래하는 불꽃의 도시』에 묘사된 음산한 도시의 풍경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도시』『콘크리트 믹서』(두 작품 모두 황금가지 출판사의 《일러스트레이티드 맨》에 수록)의 분위기와 흡사하다.

 

『요-봄비스의 지하 납골당』은 을씨년스러운 행성인 화성의 공포를 소재로 한 ‘SF 호러’ 작품이다. 폐허가 된 화성의 고대 유적지를 발견한 지구인 탐험대는 미로 같은 지하 납골당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곳에 잠들어 있던 무시무시한 괴물을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의 압권은 탐험대원들이 납골당에 갇혀 괴물의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장면이다. 독자도 탐험대원이 되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납골당 안을 헤매고 다닌다는 실감에 사로잡힌다.

 

스미스는 흑마술, 시체 숭배 의식오컬트(Occult)적인 소재를 이용하여 독자를 불길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꾸밀 줄 안다. 그것이 러브크래프트도 인정한 스미스의 탁월한 능력이다. 거기다가 흉측한 괴물의 모습까지 실감 나게 묘사한 스미스의 섬세한 표현력은 러브크래프트를 뛰어넘는다. 스미스가 창조한 괴물은 형태가 온전하게 드러나 있으며 인간의 눈에 보이는 존재이다. 정체를 끝까지 숨기려는 러브크래프트의 괴물과 차이가 있다. 『아삼마우스의 유고』, 『지하 무덤에서 나온 씨앗』, 『납골당의 신』은 작가의 잔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고문자들의 섬』은 그로테스크 상상력의 정점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여기에 스미스는 기괴하고 잔인한 몰골을 펼쳐낸다. 그는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섬뜩한 고문의 현장 또는 인간의 잔혹성, 폭력성 등 현실에서 겉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원초적인 욕구를 세밀하게 구체화시킨다. 이 소설은 고어 영화(gore film)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작품이다.

 

어딘가 아파 보이는 저 얼굴이 끔찍하고도 오싹한 이야기를 만든 작가라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스미스의 얼굴에 속지 마시라. 생긴 건 허약해 보여도 그는 분명 무서운 사람이다. 스미스는 세상의 잔혹함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공포에 약한 독자의 심장을 파먹는 작가이다. 평범한 무명 시인을 환상소설, 공포소설 작가로 만들어 준 러브크래프트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러프크래프트, 당신은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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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8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0-19 17:22   좋아요 0 | URL
놀라운 사실은 러브크래프트와 스미스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편지로 서로 안부를 전하고, 문학적 교류를 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류는 알라딘 마을에서 소통하는 것과 비슷해요. 얼굴을 알지 못하고,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잖아요. ^^

임모르텔 2017-10-19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생에서 운명을 바꾸는 인연을 만날 기회가 있다고해요. 예감..!! ㅎ
특히 아웃사이더들에게는 그런인연을 만날 기회가 아주 드문데 ,, 러브그래프트~ 스미스의 가디언이 보낸듯..^^ 스미스님의 센치하고 멜랑꼴리한 인상보니 상상이 풍부하게 생기셨네요.


cyrus 2017-10-19 17:25   좋아요 1 | URL
외톨이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서로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친하게 지낸다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

2017-10-23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23 15: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zombie 2017-11-01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는점은 스미스의 시를 인정해준 사람중에 앰브로스 비어스가 있었습니다. 하스터의 최초 창작자인 앰브로스로부터 로버트 체임버스로 이어지는 노란옷의 왕과 이를 좋아했던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장르까지. 당대 작가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준것을 보면 뭔가 시대가 요구했던 공통된 새로운 가치관이나 시선들이 아웃사이더들 사이에서 공유 공감된듯 합니다.

cyrus 2017-11-01 12:06   좋아요 0 | URL
정말 신기한 인연입니다. 재능 있는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특별한 안목이 있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