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사회 - 인간 사회보다 합리적인 유전자들의 세상
이타이 야나이 & 마틴 럴처 지음, 이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생명의 최소 단위는 세포다. 원시의 바다에서 단세포생물이 처음 출현한 그 날부터 계보를 이어 내려오면서 세포는 점점 복잡한 구조를 가진 고단위의 생명체로 진화해왔다. 세포를 만들어내고 그 세포가 생존에 더욱 적합하도록 진화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유전자다. 지금까지 유전자나 유전학에 대한 대중 과학서들이 대체로 ‘이기적 유전자’나 ‘이타적 유전자’라는 관점에서 자연현상을 풀어나갔다면, 《유전자 사회》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유전자 세계를 조망하고 순례한다. 유전자는 필연과 우연, 변화와 정체, 이기심과 이타심 같은 수단들을 필요할 때마다 적절히 사용하여 생명을 연속시켜 나간다. 이제껏 진화의 문제가 ‘생존 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 과정’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확산을 목적으로 한 진화 과정은 아무 의지 없이 진행되는 자연선택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그것은 사회 안에서 협동하고, 경쟁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결국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려면 먼저 우리가 ‘유전자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유전자 정보는 생명을 이루어줄 뿐만 아니라 개성까지 갖춰 준다. 사람의 개성이나 체질이란 서로 다른 극히 일부의 염기서열 차이에서 오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 유구한 세월 동안 환경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적응하며 진화해 온 존재이며, 어느 생명체도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부분 질병은 유전자들의 돌연변이에 의한 기능 이상 때문에 비롯된다. 인간 역시 다른 생물과 함께 진화의 과정 중에 있다. 유전자들의 변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돌연변이를 통해 여러 질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더 우수한 형질이 만들어지기도 하며 그것으로 생명체의 다양성도 유지된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 언젠가는 암도 정복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과 막연한 기대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들이 다음 세대에 자신들 유전자 정보를 물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생명체는 죽지만 유전자는 번식을 통해 계속 지구상에 살아남는다. 암세포는 원래 정상 세포의 유전자가 발암 요인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나 생긴다. 기하급수적으로 숫자를 늘려가며 주위의 정상조직을 파괴하고 자신의 졸병들을 혈관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급기야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다. 따라서 암은 유전자가 역동적으로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과정의 근본적인 결과다. 이런 시각에서 암의 발생 이유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암을 예방하기 위해 턱없이 비싼 건강식품이나 비법 등에 시간과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런 노력을 통해 내 몸에 존재하는 암 발병 가능성을 가진 유전자의 존재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치아가 약해지는 것이 순리인 것처럼, 암이 발생하는 원인은 인간이 유전자 속에 가진 정보일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유전자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식의 ‘유전자 결정론’을 깔고 있지 않다. 유전자가 사람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유전자 결정론은 다양한 인간의 삶을 획일화하고,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근거가 된다. 《유전자 사회》는 이 극단적인 생각과 전혀 관련 없다. 《유전자 사회》의 저자들은 인류의 유전자가 인종과 관계없이 99.9% 일치함에도 인종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를 짚어본다. 인종 간의 유전적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인종차별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문화적 변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본성은 유전자와 문화적 요소(관습과 교육)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문화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유전자란 해당 개체 생명체의 행동유형을 규제하긴 하지만 그런 유형은 사회적 및 자연적 환경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는다. 달리 말해서 기존 진화이론과 달리 유전자 역시 고립된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의 조건에 따라 서로 변화할 수 있다. 《유전자 사회》는 인간이 모든 생물 종의 가장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로부터 무수히 많은 것을 받았고, 지금도 그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여 우리를 겸허하게 한다. 인간은 생명의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유전자 세계 속의 간이역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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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07 0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학의 분석 단위가 ‘개체‘에서 ‘유전자‘로 내려가면서, ‘개인의 의지‘나 ‘생각‘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의 개념과 개체로서 ‘개인‘이 이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사회학의 변화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2-07 12:43   좋아요 1 | URL
흔히 유전자를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해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유전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여전히 연구해야 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유전자 세계를 하나의 사회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