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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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짐을 지고 가던 한 노인이 지칠 대로 지쳐 짐을 땅에 내려놓고 죽음의 신을 소리쳐 불렀다. 노인의 부탁을 듣고 나타난 죽음의 신은 노인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노인이 힘든 기색을 얼른 감추면서 말했다. “제가 짐을 다시 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솝(Aesop)의 입에서 구전된 것으로 알려진 이 우화는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의 심경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을 하게 만든다. 인간의 삶은 모래시계에 비유된다. 모래시계 위에 있는 모래가 밑으로 떨어지듯이 내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줄어든다. 이처럼 인간에게 시간은 흘러가기보다는 없어진다. 어렸을 때는 세월이 너무 천천히 간다고 불평하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점점 적어진다는 걸 느끼는 순간부터 세월의 빠름을 한탄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인과(因果)를 벗어날 길이 없다. 이 세상에 목숨을 받고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고야 만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죽을지는 ‘창살 없는 사형수’이다. 영생불멸의 욕구, 인간만이 버리지 못하는 지독한 욕심이다. 
 
《슬픈 불멸주의자》를 집필한 세 명의 저자 모두 심리학자다. 그들은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 ‘공포 관리 이론’을 제시한다. 공포 관리 이론은 삶 속에 항상 죽음이 있음을, 그리고 죽음과 삶은 분리될 수 없음을 밝혀주는 학설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공포의 힘은 대단하다. 두려움은 인간에게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고, 인간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세차게 몰아넣는다. 그 힘이 셀수록 인간은 쉽게 절망하고 실패하게 된다. 그렇지만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이라는 두 개의 심리적 자원 때문에 인간은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문화적 세계관은 인간이 세상을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직접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살아가기 위해 지녀야 할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 자신의 의미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자존감까지 더한다면,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으며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
 
이렇듯 죽음과 삶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기에, 죽음을 제대로 죽지 못하게 되면 삶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게 됨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형편은 어떠한가? 죽음을 망각하면서 지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류발전의 동인(動因)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로, 어떤 사람은 쾌락에 탐닉하여 죽음의 공포에서 도피한다. 또한, 과학 기술로 수명을 더 연장하는 법을 개발하여 죽음의 공포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수명이 길어진 만큼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래 살기 위한 지식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지혜다. 인간은 죽음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자신보다 미약한 존재(동물, 사회적 약자 등)의 죽음을 외면하거나 심지어 그들이 겪은 고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고의 희생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까지 생긴다.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기회가 줄어들고, 죽음의 한복판에서 삶을 생각하는 인간다운 자세마저 사라지고 있다. 스멀스멀 엄습해오는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남 이야기처럼 느낀다.
 
죽음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는 삶에 대한 불안을 더욱 짙게 만든다.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그 불안을 감추기 위해 죽음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삶은 죽음 위에 군림하는 척하지만, 이런 집착은 삶의 황폐화를 가져온다. 세네카 같은 스토아학파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항상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의 공포에 해탈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건 쉽지 않다. 한평생 인간이 이 두려움의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인생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것, 이게 왜 이리 어려울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며 언제 죽음이 오더라도 태연히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나보다. 나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남아 있는 날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해, 또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죽음 앞에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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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6 2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7 12:5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김기춘은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심장에 문제 있어서 건강 상태가 안 좋다고 말하지 않나, 더 가관인 건 최순실입니다. 박근혜 덕분에 세계 여행 잘 하고 다녔으면서 ‘공항 장애‘ 때문에 청문회 출석 못한다고 우기더군요.

낭만인생 2016-12-07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결코 제대로 된 삶을 살수가 없을 겁니다. 비겁해 지니까요...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할 문제는 삶이 아니라 죽음이 아닐까 싶네요..

cyrus 2016-12-07 12:59   좋아요 0 | URL
올해 들어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나이가 들어서 임종 순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비겁해질 것 같습니다. 그 순간에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