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3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신앙심이 두터웠던 다윈의 아내 에마는 남편의 진화론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다윈은 딸까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신에 대한 회의감이 극에 달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진화란 인간이나 신의 의지가 아닌 냉엄한 자연의 법칙에 의해 진행된다는 확신이 갈수록 강해진다. 그러나 다윈은 자연선택으로 살아남은 개체적 특성이 세대를 통해 어떻게 전달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멘델과 드 브리스에 이르러서야 유전자와 돌연변이의 개념이 알려지면서 비로소 진화의 원인이 설명된다.

 

 

 

 

 

 

생물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다음 세대에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다. 고등동물일수록 자식 사랑은 본능적이다. 고상하게 삶의 의미를 논하고 이 본능을 마다한 동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이미 멸종했다. 진화론은 오늘날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스스로 진화의 정점이라 여기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여전히 진화론에 파생된 오해를 믿고 있다. 진화론은 강자만이 살아남고 약자는 멸종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권력욕과 폭력은 강자의 권리로 포장됐고 사회적 약자의 문제는 패배자들의 약한 소리로 전락했다. 우파는 진화론을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 해석했고, 인간의 불평등을 합리화했다.

 

진화는 더욱 완전한 존재를 향한 발전 과정이 아니다. 꼭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동물과 식물은 진화라는 거대한 지구의 게임에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최선의 적응전략을 갖춘 개체만이 진화 게임에 살아남는다. 반면에 운 없는 개체도 나온다. 진화 게임의 극명한 결과를 보여주는 생물이 바로 고래와 스텔라바다소다.

 

바다에 사는 포유동물 고래는 생물 계통상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유전자 분석상 하마에 가깝다. 고래의 조상은 몸길이가 3m가 채 되지 않는 곰만 한 육식동물이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육상동물과 달리 두 눈의 간격이 좁고 주둥이가 길며 발달한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네 다리를 가졌으며 우제류의 특징적인 발목뼈 구조를 보여줬다. 그런 동물이 바다에 적응하더니 최대 150t이나 되는 초대형 고래로 진화했다. 고래가 코끼리보다 훨씬 큰 크기로 진화하게 된 이유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개체는 적의 눈에 띄기 쉽다. 특히 인간의 눈에 띄면 씨가 마른다. 다 자란 놈의 몸무게가 10t이나 됐던 스텔라바다소는 한때 북태평양 전역에서 살았지만, 인류의 눈에 띈 지 단 27년만인 1768년에 종의 수명을 다했다. 움직임이 느리고 순해 선원과 상인의 손쉬운 식량감이었다. 스텔라바다소는 현존하는 듀공, 매너티와 비슷하게 생겼다. 이 세 동물은 바다소목에 속한다. 듀공과 매너티도 최근 그 수가 격감하여 멸종위기에 있다.

 

 

 

 

 

번식은 동물의 본성이다. 그렇지만 섹스가 불가피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동물에게 섹스란 무척이나 복잡한 과정이며 성가신 일이다. 게다가 수명을 단축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중노동이다. 똘똘한 자식을 만들어줄 섹시한 파트너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도 벌여야 한다. 수컷은 자신이 진화적으로 더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페니스를 과시한다. 그런데 진화를 위해서 페니스를 퇴화하는 종이 있다.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 하지만 닭과 타조 등을 제외한 조류는 하늘에 오래 날기 위해서 페니스를 포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류는 작은 파충류로 진화의 여정을 시작하여, 깃털을 발달시키고, 서서히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그 과정에 뼈가 있는 꼬리와 이빨이 사라졌다. 꼬리가 있던 자리에 가벼운 꼬리 깃털이, 이빨 대신에 튼튼한 부리가 생겼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털이 없고, 눈은 좁쌀만 하다. 앞니만 톡 튀어나온 게 못생겨도 이렇게 못생길 수가 없다. 그러나 이 형태 또한 삶의 환경에 따라 진화한 것이다. 작은 눈은 평생 땅속에서 살기 때문에 빛만 감지하면 되므로 큰 눈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입 주변에 있는 수염이 눈 역할을 대신해 사물을 감지한다. 또한 털이 없는 이유는 땅속은 기온이 일정하므로 털의 역할이 없어져서 저절로 퇴화했다.

 

경계 : 배제된 생명들의 작은 승리는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숙연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진화는 있을지언정, 실패 없는 진보는 없다.’는 것.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인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인류의 진보를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일 진화론을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적용해보자. 수많은 종이 멸종하고 새로운 종들이 탄생해왔듯이, 인간도 언젠가는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거나 혹은 아예 멸종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멸종한 생물들을 진화에 실패한존재로 규정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인류의 생태적인 성공이 수많은 시련과 난관을 거쳐 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시도라는 긴 대열에서 유래했다. 스텔라바다소의 사례에 볼 수 있듯이 진화가 오로지 진보와 발전이 아닌 퇴행도 함을 잘 보여준다. 진화는 크고 작은 시련의 연속이다. 살아남은 생명은 또 하나의 가능성에 매달리면서 마침내 새로 진화했다. 새롭고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장대한 시련의 연속 속에서 종은 살아남기 위하여 나무로, 물로, 하늘로, 마침내 땅으로 내려와 도전과 실패의 과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화 게임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진화 게임은 완벽한 진보의 혜택을 누린 승자를 원하지 않는다. 진화의 의미는 막다른 환경의 골목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있다. 이는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여전히 자연의 변화 앞에 미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이제 우리는 다른 차원의 시련에 맞닥뜨렸다. 진화의 세계를 혹독하게 경험했던 털 없는 원숭이는 자연을 점점 더 큰 재앙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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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9-1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진화에 관심이 많아요. 별로 아는게 없어서 항상 새로운데 cyrus님 페이퍼 읽으니 역시나 많은 걸 배우게 되네요^^

cyrus 2016-09-18 18:39   좋아요 0 | URL
MID 출판사에서 나온 <멸종>과 <짝짓기>를 같이 읽으시면 진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2016-09-18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18 18:51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로 설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문장을 다시 보니까 표현이 어색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페니스가 없는 종은 번식에 불리하다.`로 고쳤습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